홍해의 뜨거운 감자: 호데이다 항구를 둘러싼 중동 갈등의 새로운 전선

세계 경제의 혈관, 홍해 항로의 심장부

예멘 서부 해안에 자리한 호데이다 항구는 단순한 지방 항구가 아니다. 이곳은 예멘 최대 물류 항이자 경제 근거지로, 홍해와 인도양을 잇는 바브엘만데브 해협이라는 세계적 물류 요충지에 위치해 있다.

호데이다가 중요한 이유는 명확하다. EU와 미주 동안을 오가는 해상 물류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으며, 우리나라는 EU수출의 약 80%를 해상운송에 의존하고 있어 자동차·부품, 기계, 철강, 석유화학 품목을 중심으로 물류애로, 운임상승 등의 부정적 영향이 예상된다는 점에서 그 파급력을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유럽과 아시아를 오가는 많은 화물들이 최단거리 해상로인 수에즈운하와 홍해 무역로를 이용하지 못하고 아프리카 남단 희망봉을 크게 돌아서 가는 우회항로로 몰리면서 적지않은 손실이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다.

2025년, 격화되는 공격과 보복의 악순환

2025년 들어 호데이다 항구를 둘러싼 충돌이 더욱 격화되고 있다. 이스라엘군이 홍해에 접한 예멘 서부 해안도시 호데이다의 항구에 있는 후티반군의 목표물을 공격했다고 최근 보도되었으며, 이러한 공격은 연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스라엘 육군도 성명을 내고 자국 해군의 미사일 구축함들이 호데이다항을 공격했다고 밝히고, 후티반군이 무기를 옮기는 데 이 항구가 쓰고 있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이는 호데이다 항구가 단순한 민간 시설이 아닌 군사적 거점으로 활용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공격의 강도도 상당하다. 2024년 12월 26일 목요일에 발생한 사나 국제공항, 사나 및 호데이다 주 발전소, 그리고 호데이다와 인근 항구 등 주요 민간 기반시설에 대한 공습이 있었으며, 이로 인해 호데이다 지역에서는 공습으로 전력 공급이 중단되면서 주요 신장 투석 센터가 몇 시간 동안 가동을 멈추는 사태가 발생해 즉각적인 인명 피해로 이어졌다는 심각한 상황이 발생했다.

경제적 타격의 실상

호데이다 항구에 대한 공격이 가져온 경제적 피해는 상상을 초월한다. 예멘 홍해항만공사(YRSPC)는 지난달 25일 발표를 통해,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인해 호데이다 항구를 비롯한 주요 항만의 피해 규모가 13억 8,700만 달러(약 1조 9,200억 원)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호데이다 항구만 해도 기반시설과 운영시설에 최소 10억 달러(약 1조 3,840억 원) 이상의 손실을 입었다고 예멘 당국이 발표했다. 이는 항만 인프라에 대한 직접적 피해뿐 아니라, 물류 차단과 서비스 중단 등으로 발생한 간접 피해까지 포함한 금액이라는 점에서 그 심각성을 보여준다.

후티 반군, ‘저항의 축’의 핵심 고리

호데이다 항구 공격의 배경을 이해하려면 후티 반군의 정체성부터 파악해야 한다. 2011년 예멘 민주화 운동 이후 예멘 전 대통령이던 살레에 충성하던 공화국 수비대와 예멘군 병력들을 흡수하며 세력을 키웠으며, 추후 이란이 사우디아라비아를 포위할 목적으로 대리전을 이끌기 위해 후티를 지원하면서 예멘 내전이 발발하였다.

후티 반군은 단순한 반정부 무장세력이 아니다. 헤즈볼라로부터 군사적 조언과 지원을 받았고, 이란으로부터 해상 지뢰, 탄도 및 순항 미사일, 드론 등 최신 무기와 기술을 지원받으며 2만여 명의 조직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이들의 실력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세계 3위의 국방비를 지출하는 사우디군을 번번히 패퇴시킬 정도로 만만치 않은 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이들은 이미 정규군 수준의 전력을 보유한 상태다.

이란-사우디 대리전의 새로운 무대

호데이다를 둘러싼 갈등은 예멘 내전의 연장선상에 있다. 현재 북예멘을 장악한 후티 반군은 이란의 후원을 받는 시아파이고 아덴으로 피난한 수니파 하디 정부를 후원하는 것은 사우디아라비아로 사실상 시아파 이란과 수니파 사우디 아라비아간의 대리전쟁이라고 볼수 있다.

이러한 구도에서 후티가 이란으로부터 기술지원을 받아 대함미사일, 대전차미사일, 휴대용지대공미사일, 순항미사일, 탄도미사일 등 다양한 미사일 기술과 드론 기술을 습득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 호데이다 항구는 이러한 무기들의 중요한 보급 기지 역할을 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팔레스타인 연대, 실익을 위한 명분

흥미롭게도 예멘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 실질적인 이해관계가 없으며, 홍해 해상 교통로를 방해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득도 없다. 그럼에도 후티 반군이 팔레스타인 연대를 명분으로 이스라엘 선박을 공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2015년부터 이어진 사우디 연합군의 공격 및 경제 봉쇄로 인한 피해는 물론 휴전 이후에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국가적 빈곤 상황은 국내에서 후티의 입지를 축소시키고 있었다. 이러한 차에 특별한 타개책이 없었던 후티 반군 입장에서는 이번 전쟁에서 공공의 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이스라엘을 공격함으로써 예멘인들의 지지를 얻고, 불만을 전환하는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이다.

국제 해운업계의 악몽

호데이다 항구 공격과 후티 반군의 홍해 봉쇄는 전 세계 해운업계에 엄청난 타격을 주고 있다. 홍해 우회로 인해 항해 거리가 3,500km나 늘어나면서 운항 일정이 최소 10일에서 15일씩 지연되고 있다는 상황이다.

이로 인해 동아시아에서 지중해까지의 해상 운임이 지난해 11월 초 대비 290% 상승한 가운데, 물류비용 상승과 이에 따른 공급 축소의 여파는 고스란히 소비자의 몫으로 남게 되었다는 심각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특히 아시아 주요 항구들의 혼잡도 심각해지고 있다. 싱가포르와 포트클랑 등 주요 허브항의 선박 대기 시간이 최근 크게 증가했으며, 싱가포르항의 경우 홍해 우회 전 월평균 160척을 처리했지만 우회 후엔 260척으로 62.5% 늘었다는 보고가 나오고 있다.

인도적 위기의 심화

호데이다 항구 공격이 가져온 가장 심각한 문제는 예멘 주민들의 생존권 위협이다. 호데이다 주의 항구는 생명을 구하고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인도적 지원을 비롯해 밀, 쌀과 같은 기본 식료품과 연료를 수입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사나 국제공항은 예멘 주민들이 해외로 나가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의료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돕는 중요한 생명선 역할을 하고 있으며, 이는 2022년 5월 제한적인 항공편이 재개된 이후 가능해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러한 인프라에 대한 공격은 예멘 주민들을 더욱 절망적인 상황으로 내몰고 있다.

더욱이 예멘은 세계에서 전력 연결 수준이 가장 낮은 국가 중 하나로, 많은 주민들이 비싼 민간 전력 공급에 의존하고 있다는 상황에서 발전소까지 공격받고 있어 인도적 재앙이 심화되고 있다.

‘눈물의 관문’이 된 바브엘만데브

호데이다가 위치한 바브엘만데브 해협은 아랍어로 ‘눈물의 관문’이란 뜻을 갖고 있다. 이 지역을 시작으로 아라비아반도와 이집트 일대 수많은 항구들이 놓여있고, 해협 자체도 좁다보니 해적이 판을 치고 물살도 거세 해상사고가 상당히 빈번했기 때문으로 알려져있다.

현재 후티 반군이 홍해에서 항해하던 자동차 운반선을 나포했으며, 후티 반군 대변인은 “적국 이스라엘이나 이스라엘과 관련된 선박들은 모두 예멘 군의 합법적 목표가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고 선언한 상황이다.

미국의 딜레마와 한계

미국과 서방 연합군의 대응도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후티 반군은 비교적 저렴한 공격수단을 활용하여 홍해 교통로 상 이동 선박을 위협하고 있는 반면 미국, 영국 등 연합국은 자국군을 파병하고 고가의 첨단무기로 도발에 맞서고 있다는 비대칭 전쟁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더욱이 연합국은 예멘의 수도 사나, 후티 반군의 근거지 등에 대해 대규모 공격을 하면서 거액의 인적, 물적 비용을 투입하고도 가시적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후티 반군에게는 오히려 세계 최강 군대에 맞서 싸우는 조직으로서 인지도가 올라갔음은 물론, 최대의 후원국인 이란으로부터도 큰 신뢰를 얻게 되었다는 역설적 결과를 낳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의 어부지리

이러한 혼란 속에서 후티가 이란과 친밀한 중국, 러시아 선박에 대해서는 안전을 약속해 준 덕에 세계 물류 시장에 우위를 갖게 되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서방이 우회항로를 이용해야 하는 동안 중국과 러시아는 상대적으로 안전하게 홍해 항로를 이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해결책은 있을까?

호데이다 항구를 둘러싼 갈등의 해결책은 쉽지 않다. 후티의 도발을 멈추고 자중할 수 있도록 하는 경제적, 정치적 레버리지를 가지고 있는 국가는 이란과 중국이다. 이 두 국가는 이번 도발로 이득을 얻은 국가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해결 의지가 의문시된다.

그러나 중국 역시 홍해 일대 개발 사업에 많은 투자를 한 상태로, 장기간의 불안정 상태를 원하지 않을 것이므로 중국이 이란을 통해 후티를 압박할 가능성을 기대해 볼 수 있다는 희망적 전망도 있다.

결론: 작은 항구가 만든 큰 파장

호데이다 항구는 더 이상 예멘의 작은 지방 항구가 아니다. 이곳은 중동의 복잡한 지정학적 갈등이 집약된 상징적 공간이 되었으며, 전 세계 물류와 경제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전략적 요충지로 부상했다.

이란과 사우디의 대리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갈등, 미국과 이란의 대립, 그리고 중국과 러시아의 기회주의적 행보까지… 21세기 중동의 모든 갈등 요소가 이 작은 항구도시에 집약되어 있다.

호데이다 항구의 운명은 단순히 예멘 한 나라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글로벌 질서의 변화와 중동 지역의 미래, 그리고 국제 해상 물류의 안정성까지 좌우하는 핵심 변수가 되었다. ‘눈물의 관문’이라 불리던 바브엘만데브 해협이 정말로 세계 경제의 눈물을 흘리게 만들지, 아니면 평화로운 통로로 되돌아갈지는 이제 국제사회의 지혜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