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IT 산업의 눈부신 성장과 현실
인도의 IT 서비스 수출은 2024 회계연도에 2,052억 달러를 기록했으며, 2022/23 회계연도 IT 산업 수입은 2,450억 달러에 달한다. 전 세계 AI 인재의 16%를 배출하는 IT 강국으로 자리잡은 인도. 하지만 이 화려한 성장 뒤에는 심각한 디지털 격차와 새로운 형태의 사회 불평등이 자리하고 있다.
인도는 상위 10%가 전체 부의 77%를 차지하고 있으며, IT 산업의 급속한 성장이 오히려 기존의 사회적 불평등을 디지털 영역으로 확산시키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러한 격차가 단순한 경제적 불평등을 넘어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계급 구조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도시와 농촌 간 디지털 대분할
인도의 디지털 불평등은 가장 먼저 지역 간 격차로 나타난다. 2023년 기준 인도는 약 7억 명의 인터넷 사용자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는 전체 인구의 약 50%를 차지한다. 하지만 이 수치만으로는 보이지 않는 심각한 지역 격차가 존재한다.
대부분 공립학교 교실에는 인터넷과 전기가 공급되지 않으며, 2020년 스마트폰 보유율은 일반 국민이 93.1%, 농어민은 85.3%였다. 컴퓨터 보유율은 국민이 83.2%인 데 반해 농어민은 61.3%에 불과하다.
이러한 인프라 격차는 교육 기회의 불평등으로 직결된다. 계층 간 격차가 심해서 상위 5~10%는 교육에 관심이 높지만, 나머지는 당장 밥벌이가 중요해 교육에 신경 쓸 여력이 없다. 코로나19로 인한 온라인 교육 전환은 이러한 격차를 더욱 극명하게 드러내며, 농촌 지역 학생들의 학습 공백을 심화시켰다.
카스트 제도와 IT 산업의 불편한 만남
전통적인 카스트 제도가 현대의 IT 산업과 만나면서 새로운 형태의 불평등이 나타나고 있다. 소프트웨어 전문직 노동시장에는 카스트와 계급, 종교, 지역 등에 따라 뚜렷한 불평등과 간접적인 차별이 존재하며, 이 불평등은 고소득 전문직으로 갈수록 더욱 심해진다.
현재 인도의 불가촉천민은 총 9,500만 명으로 인도 전체 인구의 6.8%에 해당하며, 이들은 여전히 IT 산업 진입에 있어 구조적 장벽에 직면하고 있다. 정부의 할당제 정책에도 불구하고, 민간 IT 기업에서는 여전히 은밀한 차별이 지속되고 있는 실정이다.
흥미롭게도 남부에 비해 북부가 교육 수준과 소득 수준이 월등히 높으며, 인도의 IT 중심지인 벵갈루루도 남인도권에 속하는 대도시다. 이는 전통적인 카스트 서열과는 다른 새로운 지역 격차를 보여주는 사례다.
언어 장벽이 만드는 디지털 소외
인도인 대부분이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으며, 이는 IT 분야에서 전 세계와 효율적인 의사소통을 가능케 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영어 능력에 따른 디지털 격차가 심각하다.
온라인 교육은 도시지역 대비 실수요가 높은 지방중소도시에서 더 인기를 끌고 있지만, 이런 지방중소도시 공략을 위해서는 영어뿐만 아니라 현지 언어로 된 콘텐츠가 필요하다. 영어 중심의 IT 교육과 취업 환경은 지역 언어만 구사하는 인구를 디지털 경제에서 배제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
교육 접근성의 이중 구조
인도의 IT 산업 성공은 과학, 기술, 공학, 수학 과목에 강력한 교육 체계에 기반하고 있지만, 이러한 교육 기회는 모든 계층에게 균등하게 제공되지 않는다.
인도의 교육은 한마디로 엘리트 교육이며, 인도는 오랫동안 영국의 통치를 받은 탓에 영국 귀족교육 시스템이 일반화되어 있다. 사립학교는 환경이 좋지만 공립학교는 전기나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은 곳이 부지기수다. 교사들은 학력이 낮고 의욕이 없다.
이러한 교육 환경의 격차는 IT 분야 진출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명문 사립학교나 IIT 같은 최상위 교육기관 출신들이 글로벌 IT 기업에서 활약하는 반면, 공립학교 출신들은 기본적인 디지털 역량 습득에도 어려움을 겪는다.
새로운 디지털 계급사회의 등장
인도 도시의 부유층 가구 수는 2019년 대비 86% 급증한 반면, 중산층 이하 가구 수는 25% 감소했다. IT 산업의 성장이 새로운 형태의 계급 구조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인도의 청년층은 영어를 구사할 뿐 아니라 디지털 기술에 관한 지식을 풍부하게 갖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이는 특정 계층에 한정된 이야기다. 디지털 기술에 접근할 수 있는 계층과 그렇지 못한 계층 간의 격차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전자 신원 인증 시스템과 은행 계좌 개설 정책으로 국민이 손쉽게 은행 계좌를 개설하고 디지털 결제 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게 됐지만, 이러한 디지털 금융 서비스도 기본적인 디지털 역량이 있는 계층에게만 실질적 혜택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정부의 대응과 한계
인도 정부는 디지털 격차 해소를 위해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인도는 디지털 공공 인프라(DPI)를 핵심 기반으로 디지털 전환을 추진 중이며, 디지털 인디아(Digital India) 전략을 통해 인터넷 및 통신 인프라를 확장하고 있다.
정부는 2016년에 위성 방송 기반의 스와얌 프라바(Swayam Prabha) 교육 TV 방송을 시작했으며, 32개 채널을 통해 IIT 등 유명 대학의 수업을 라이브로 방송하고 있다. 또한 향후 5년간 2조 루피를 투자하여 4,100만 명의 청년을 위한 고용 및 기술 개발 기회를 창출하고 1,000개의 산업 훈련 기관을 업그레이드할 계획이다.
하지만 이러한 정책들이 실제로 하층 계급까지 혜택을 전달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인도는 성인 문맹률이 30%에 달하며 전반적인 교육환경도 열악한 편이어서, 디지털 정책의 효과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미래 전망과 과제
인도중앙은행은 2026년까지 인도의 디지털 경제가 GDP의 1/5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한다고 밝혔지만, 이러한 성장이 사회 전반의 발전으로 이어질지는 의문이다.
디지털 격차의 심화는 사회 통합과 생산성을 악화시키며 궁극적으로 국가 성장을 저해하는 요소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농촌 지역의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향하고 있으나 도시에서 합리적인 생활 수준을 누릴 수 없어 새로운 사회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결론: 포용적 성장을 위한 새로운 접근
인도의 IT 산업 성공은 분명 주목할 만한 성과다. 하지만 이러한 성장이 만들어낸 디지털 불평등은 인도 사회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협하는 새로운 도전이 되고 있다.
기술 발전이 소수를 위한 기회가 아닌 모든 계층을 위한 발판이 되려면, 인프라 구축과 함께 교육 접근성 개선, 다언어 디지털 콘텐츠 개발, 그리고 무엇보다 기존의 사회적 차별 구조를 해체하려는 의지가 필요하다.
인도의 경험은 디지털 혁신이 반드시 사회적 진보를 동반하지는 않는다는 교훈을 우리에게 던져준다. 기술 발전과 사회적 포용성의 균형을 찾는 것, 이것이 21세기 디지털 사회가 풀어야 할 핵심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