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철학부터 영혼의 날개까지, 플라톤이 그려낸 에로스의 두 얼굴

플라톤의 대화편 중에서도 특히 매혹적인 두 작품이 있다. 바로 『향연』과 『파이드로스』다. 두 작품 모두 에로스(사랑)를 주제로 하지만, 접근 방식과 결론은 사뭇 다르다. 『향연』에서는 여러 화자들이 사랑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제시하며 철학적 토론을 벌이고, 『파이드로스』에서는 소크라테스가 미와 사랑에 대한 깊이 있는 철학적 성찰을 펼친다. 오늘은 이 두 걸작을 통해 플라톤이 그려낸 에로스의 본질과 그것이 인간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자세히 살펴본다.

『향연』: 사랑에 대한 7가지 시선

『향연』은 기원전 416년 비극 시인 아가톤의 집에서 열린 연회를 배경으로 한다. 술에 취하지 않고 각자 사랑에 대한 찬사를 바치기로 한 참석자들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플라톤은 이 설정을 통해 사랑에 대한 다양한 관점들을 체계적으로 제시한다.

파이드로스의 사랑: 가장 오래된 신

첫 번째 연설자인 파이드로스는 에로스를 가장 오래된 신 중 하나로 소개한다. 그에 따르면 사랑은 인간에게 용기와 명예를 가져다주는 위대한 힘이다. 연인 앞에서 부끄러운 일을 하지 않으려는 마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목숨도 바칠 수 있는 용기가 바로 에로스의 선물이라는 것이다.

파이드로스는 특히 군대에서의 연인 관계를 예로 든다. 연인들로 구성된 부대가 가장 용맹하게 싸운다는 것이다. 실제로 테베의 신성부대가 연인들로 구성되어 무적의 전력을 자랑했다는 역사적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파우사니아스의 이중적 사랑

파우사니아스는 사랑을 두 종류로 구분한다. 하나는 아프로디테 판데모스(대중적 아프로디테)의 사랑으로, 육체적이고 일시적인 사랑이다. 다른 하나는 아프로디테 우라니아(천상의 아프로디테)의 사랑으로, 정신적이고 영속적인 사랑이다.

그는 진정한 사랑은 후자라고 주장한다. 단순히 육체적 매력에 이끌리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영혼과 지성에 매료되는 사랑만이 가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사랑은 서로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주며, 덕과 지혜를 추구하게 한다.

에릭시마코스의 의학적 사랑

의사인 에릭시마코스는 사랑을 우주적 원리로 확장한다. 그에게 에로스는 단순히 인간의 감정이 아니라 전 우주를 지배하는 조화의 원리다. 건강한 몸과 아픈 몸, 조화로운 음악과 불협화음, 계절의 순환 등 모든 것이 에로스의 작용으로 설명된다.

특히 의학적 관점에서 건강은 몸 안의 다양한 요소들이 올바른 사랑으로 결합될 때 이루어진다고 본다. 병은 잘못된 사랑, 즉 부조화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이는 에로스를 개인적 감정에서 우주적 원리로 확장시키는 중요한 관점이다.

아리스토파네스의 원시적 사랑

희극 작가 아리스토파네스는 가장 유명하면서도 독특한 사랑의 기원 신화를 제시한다. 원래 인간은 현재의 두 배 크기였으며, 남남, 여여, 남녀의 세 종류가 있었다고 한다. 이들이 너무 강해져 신들에게 도전하자, 제우스가 이들을 반으로 쪼갰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평생 자신의 다른 반쪽을 찾아 헤맨다. 이것이 바로 사랑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운명적으로 만나야 할 상대방과 만났을 때 느끼는 그 강렬한 끌림과 완전함의 감각을 설명하는 매력적인 이야기다.

이 신화는 현대에도 “소울메이트”나 “반쪽”이라는 개념으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사랑을 운명적이고 숙명적인 것으로 보는 관점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아가톤의 미적 사랑

연회의 주인인 아가톤은 에로스를 가장 아름답고 완전한 신으로 묘사한다. 에로스는 젊고, 부드럽고, 유연하며, 모든 덕을 갖춘 완벽한 존재라는 것이다. 또한 에로스는 시인들에게 영감을 주고 예술을 창조하게 하는 힘이기도 하다.

아가톤의 연설은 화려한 수사법으로 가득하지만 내용면에서는 다소 피상적이다. 플라톤은 이를 통해 겉으로는 아름답지만 실질적 내용이 부족한 수사학의 한계를 은연중에 비판하고 있다.

소크라테스의 철학적 사랑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소크라테스는 이전의 모든 연설을 뒤엎는 혁명적인 관점을 제시한다. 그는 디오티마라는 지혜로운 여인에게서 들었다는 이야기를 통해 에로스의 진정한 본질을 밝힌다.

소크라테스에 따르면 에로스는 신이 아니라 신과 인간 사이의 중간적 존재, 즉 다이몬이다. 에로스는 결핍에서 출발한다. 아름다운 것, 좋은 것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그것을 갈망하는 것이다. 신은 이미 완전하므로 사랑할 필요가 없다.

사랑의 단계: 미의 사다리

소크라테스가 제시하는 사랑의 발전 단계는 플라톤 철학의 핵심이다. 이는 “미의 사다리” 또는 “에로스의 사다리”라고 불린다.

첫 번째 단계는 아름다운 한 몸에 대한 사랑이다. 젊은이는 아름다운 상대방의 육체에 끌리면서 사랑을 시작한다. 하지만 여기서 머물러서는 안 된다.

두 번째 단계는 모든 아름다운 몸에 대한 사랑이다. 아름다움이 특정 개체에만 속하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것임을 깨닫게 된다.

세 번째 단계는 영혼의 아름다움에 대한 사랑이다. 육체의 아름다움보다 영혼의 아름다움이 더 소중함을 알게 된다.

네 번째 단계는 제도와 법의 아름다움에 대한 사랑이다. 개인을 넘어서 사회와 문명의 아름다움을 인식한다.

다섯 번째 단계는 학문과 지식의 아름다움에 대한 사랑이다. 진리를 탐구하는 철학적 활동에서 최고의 기쁨을 찾는다.

마지막 단계는 미 자체, 즉 이데아의 미에 대한 직관이다. 이때 사랑하는 자는 진정한 깨달음에 도달하며, 영원불변의 진리를 체험한다.

알키비아데스의 등장: 현실적 사랑

소크라테스의 연설이 끝날 무렵, 술에 취한 알키비아데스가 등장한다. 그는 소크라테스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면서 이론적인 사랑 논의를 현실적인 차원으로 끌어내린다.

알키비아데스는 소크라테스의 외모는 추하지만 내면은 신과 같다고 말한다. 소크라테스 앞에서만은 자신이 부끄러움을 느끼며, 그의 말에 마음이 두근거린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육체적 관계를 거부하고 오직 영혼의 교감만을 추구한다.

이는 소크라테스가 제시한 사랑의 이론이 실제로 어떻게 실천되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다. 진정한 철학자는 육체적 욕망을 극복하고 영혼의 아름다움만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파이드로스』: 사랑과 수사학의 만남

『파이드로스』는 아테네 성벽 밖 일리소스 강변에서 소크라테스와 파이드로스가 나누는 대화를 그린다. 이 작품은 리시아스의 연설문을 둘러싼 토론에서 시작해 사랑의 본질과 올바른 수사학에 대한 깊이 있는 철학적 탐구로 발전한다.

리시아스의 역설적 연설

대화는 파이드로스가 리시아스의 연설문을 가져오면서 시작된다. 리시아스는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보다 낫다”는 역설적인 주장을 펼친다. 사랑하는 사람은 질투하고, 독점하려 하며, 비합리적으로 행동하기 때문에 위험하다는 것이다.

반면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이성적이고 신중하며, 상대방에게 진정한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당시 아테네의 파이데라스티아(연상의 남성과 연하의 남성 사이의 교육적 관계) 관습을 배경으로 한 실용적인 조언이었다.

소크라테스의 첫 번째 연설

소크라테스는 처음에는 리시아스의 주장에 동조하는 듯한 연설을 한다. 사랑은 일종의 광기이며, 사랑에 빠진 사람은 상대방에게 해로운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사랑하는 사람은 질투심 때문에 상대방이 다른 사람과 교제하는 것을 막고, 자신의 소유물로 만들려 한다는 것이다.

또한 사랑은 일시적인 감정이므로 시간이 지나면 식어버리고, 그때가 되면 이전의 약속들을 지키지 않게 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사랑하지 않지만 신중하고 이성적인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결론을 내린다.

소크라테스의 참회와 두 번째 연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곧 자신의 연설을 후회한다. 에로스는 신이므로 이를 모독한 것은 신성모독죄라는 것이다. 그는 참회의 의미로 에로스를 찬양하는 두 번째 연설을 시작한다.

이 두 번째 연설이 『파이드로스』의 핵심이자 플라톤 철학의 정수를 담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사랑을 신적인 광기의 하나로 규정하며, 이런 광기야말로 인간에게 가장 큰 선물이라고 주장한다.

영혼의 본질과 날개 달린 마차

소크라테스는 영혼의 본질을 설명하기 위해 유명한 “날개 달린 마차” 비유를 사용한다. 영혼은 마차꾼과 두 마리의 날개 달린 말로 구성되어 있다. 마차꾼은 이성을 상징하고, 흰 말은 의지나 기개를, 검은 말은 욕망을 상징한다.

신들의 영혼은 완전하므로 두 말이 모두 온순하고 아름답다. 하지만 인간의 영혼은 한 마리는 좋은 말이고 다른 한 마리는 나쁜 말이다. 따라서 마차꾼(이성)이 두 말의 균형을 잡아가며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영혼의 순환과 망각

영혼들은 신들을 따라 하늘을 순환하며 진리의 평원에서 참된 존재들을 관조한다. 하지만 인간의 영혼은 완전하지 못하므로 때때로 추락하여 지상의 몸에 갇히게 된다. 이때 영혼은 이전에 보았던 진리를 망각하게 된다.

하지만 완전히 잊어버리는 것은 아니다. 지상에서 아름다운 것을 보면 영혼은 천상에서 보았던 미 자체를 희미하게 기억해낸다. 이것이 바로 사랑의 시작이다. 아름다운 대상에 대한 사랑은 실제로는 미 자체에 대한 그리움인 것이다.

사랑의 광기와 영혼의 회복

진정한 사랑에 빠진 영혼은 일종의 신적 광기를 경험한다. 이는 미 자체의 기억이 되살아나면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사랑하는 자는 연인의 아름다움을 통해 진정한 아름다움을 회상하게 되고, 이로 인해 영혼의 날개가 다시 자라기 시작한다.

이 과정은 고통스럽다. 마치 날개가 돋아나는 것처럼 아프고 괴롭다. 하지만 이 고통을 통해 영혼은 점차 본래의 모습을 회복하고, 마침내 천상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된다.

철학적 사랑의 우월성

소크라테스는 사랑에는 여러 단계가 있다고 말한다. 가장 낮은 단계는 단순히 육체적 아름다움에 이끌리는 것이다. 이런 사랑은 일시적이고 영혼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진정한 철학적 사랑은 다르다. 이는 상대방의 영혼 속에서 지혜와 덕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사랑하는 것이다. 이런 사랑을 통해 두 영혼은 모두 더욱 완전해지고, 함께 진리를 추구하게 된다.

특히 스승과 제자 사이의 철학적 사랑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본다. 스승은 제자의 영혼 속에서 지혜에 대한 잠재력을 발견하고 이를 일깨워준다. 제자는 스승을 통해 진리의 아름다움을 보게 되고, 철학에 대한 사랑에 눈뜬다.

올바른 수사학

『파이드로스』의 후반부는 올바른 수사학에 대한 논의로 이어진다. 소크라테스는 리시아스의 연설문을 분석하면서 진정한 수사학의 조건들을 제시한다.

첫째, 진정한 수사학은 진리에 기반해야 한다. 단순히 사람들을 설득하는 기술이 아니라 진리를 전달하는 수단이어야 한다.

둘째, 청중의 영혼을 알아야 한다. 각각의 영혼은 서로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에 맞는 적절한 방법으로 접근해야 한다.

셋째, 적절한 때와 방법을 알아야 한다. 같은 내용이라도 언제,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효과가 달라진다.

문자와 기억에 대한 비판

『파이드로스』는 문자에 대한 플라톤의 유명한 비판으로 끝난다. 소크라테스는 이집트 신화를 인용하면서, 문자의 발명이 인간의 기억력을 약화시키고 진정한 지혜의 습득을 방해한다고 주장한다.

문자로 쓰인 것은 살아있는 지식이 아니라 죽은 지식이다. 책은 질문에 답하지 못하고, 오해받아도 스스로를 변명할 수 없다. 진정한 지식은 영혼 속에 새겨지는 것이며, 이는 직접적인 대화와 토론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이는 플라톤이 왜 대화편 형식을 택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다. 철학은 일방적인 지식 전달이 아니라 살아있는 대화를 통한 영혼의 교감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두 작품의 비교와 대조

『향연』과 『파이드로스』는 모두 사랑을 주제로 하지만 접근 방식이 다르다. 『향연』은 여러 관점을 제시하는 복합적 구조를 취하고, 『파이드로스』는 소크라테스의 일관된 철학적 성찰을 중심으로 한다.

사랑의 정의

『향연』에서 사랑은 결핍에서 출발하여 완전함을 추구하는 욕망으로 정의된다. 미의 사다리를 통해 점진적으로 상승하여 마침내 미 자체를 직관하게 된다.

『파이드로스』에서 사랑은 망각된 진리의 기억을 되살리는 신적 광기로 정의된다. 지상의 아름다움을 통해 천상의 미를 회상하고, 영혼의 날개를 되찾아 본래의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충동이다.

사랑의 과정

『향연』의 사랑은 단계적 상승의 과정이다. 개별적인 것에서 보편적인 것으로, 감각적인 것에서 지적인 것으로 점진적으로 발전한다.

『파이드로스』의 사랑은 회상과 회복의 과정이다. 이미 알고 있던 것을 다시 기억해내고, 본래 가지고 있던 능력을 되찾는 것이다.

사랑의 결과

『향연』에서 사랑의 최종 목표는 미 자체의 직관이다. 이때 사랑하는 자는 진정한 지혜와 불멸을 얻게 된다.

『파이드로스』에서 사랑의 최종 목표는 영혼의 완전한 회복이다. 날개를 되찾은 영혼은 신들과 함께 천상에서 진리를 관조할 수 있게 된다.

현대적 의미와 시사점

플라톤의 사랑 철학은 2500년이 지난 현재에도 여전히 많은 시사점을 준다. 특히 현대 사회의 피상적이고 즉흥적인 사랑 문화에 대한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

진정한 사랑의 의미

플라톤은 진정한 사랑이 단순한 감정이나 욕망이 아니라 영혼의 성장을 추구하는 철학적 활동임을 보여준다. 상대방을 소유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진리를 추구하는 동반자로 보는 관점은 현대의 연애 문화에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교육과 성장

플라톤의 사랑 이론은 교육 철학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스승과 제자 사이의 철학적 사랑은 현대의 멘토링이나 코칭 관계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다. 상대방의 잠재력을 발견하고 이를 일깨워주는 것이 진정한 교육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미디어와 소통

『파이드로스』의 문자 비판은 현대의 디지털 미디어 환경에 대한 성찰을 요구한다. SNS나 메신저를 통한 소통이 진정한 대화를 대체할 수 있는지, 온라인 교육이 면대면 교육과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는지 등의 문제들을 생각해보게 한다.

플라톤의 『향연』과 『파이드로스』는 사랑이라는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경험을 통해 철학의 본질을 탐구한 불멸의 걸작이다. 이 두 작품을 통해 우리는 사랑이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진리를 향한 영혼의 여정임을 깨닫게 된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이런 관점은 여전히 유효하다. 피상적인 만남과 일회적인 만족에 머물지 않고, 서로의 영혼을 성장시키는 진정한 사랑을 추구하는 것. 그것이 플라톤이 2500년 전에 우리에게 남긴 영원한 메시지다. 에로스의 날개를 달고 진리의 세계로 비상하는 영혼의 여정, 그 아름다운 모험이 지금도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