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결제 기업 Visa가 중앙·동유럽, 중동 및 아프리카(CEMEA) 지역에서 스테이블코인 기반 결제 서비스를 대폭 확대하기로 발표했다. 이번 발표는 단순한 서비스 확장을 넘어서 전통적인 결제 인프라와 블록체인 기술을 융합한 ‘차세대 글로벌 결제 시스템’ 구축의 신호탄으로 해석된다. 특히 아프리카 전역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Yellow Card와의 전략적 파트너십은 신흥 시장에서 스테이블코인이 어떻게 금융 혁신을 이끌어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가 될 전망이다.
“2025년, 모든 금융기관은 스테이블코인 전략이 필요하다”
Visa의 CEMEA 지역 제품 및 솔루션 담당 수석 부사장 고드프리 설리반은 이번 확장 발표에서 주목할 만한 선언을 했다. “2025년, 우리는 돈을 이동시키는 모든 기관이 스테이블코인 전략을 필요로 할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하며, 스테이블코인이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음을 강조했다.
이는 단순한 미래 전망이 아니다. Visa는 이미 2023년부터 스테이블코인 정산 서비스를 시범 운영해왔으며, 현재까지 참여 고객들을 통해 2억 2,500만 달러 이상의 스테이블코인 거래량을 처리했다. 이번 CEMEA 지역 확대는 이러한 성공적인 파일럿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한 본격적인 시장 진출이라 할 수 있다.
블록체인으로 국경을 허무는 새로운 결제 인프라
Visa의 새로운 스테이블코인 정산 솔루션은 전통적인 은행 시스템의 한계를 획기적으로 개선한다. 기존에는 국경 간 달러 거래를 위해 복잡한 은행 네트워크와 며칠에 걸친 정산 과정을 거쳐야 했다. 하지만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새로운 시스템은 이러한 제약을 완전히 뛰어넘는다.
새로운 시스템의 핵심 장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정산 비용의 대폭 절감이다. 기존 SWIFT 시스템을 통한 국제 송금은 여러 중개 은행을 거치면서 수수료가 누적되지만,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하면 이러한 중개 단계를 대폭 줄일 수 있다. 둘째, 유동성 관리의 혁신이다. 전통적인 시스템에서는 각 지역별로 복잡한 유동성 관리가 필요했지만, 스테이블코인을 통해 실시간으로 자금을 이동시킬 수 있어 효율성이 크게 향상된다.
가장 혁신적인 부분은 365일 24시간 정산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기존 은행 시스템은 주말이나 공휴일에는 정산이 중단되지만, 블록체인 기반 시스템은 시간의 제약 없이 언제든 거래를 처리할 수 있다. 이는 특히 글로벌 전자상거래나 실시간 국제 거래에서 엄청난 경쟁 우위를 제공한다.
Yellow Card 파트너십이 열어가는 아프리카 금융 혁신
이번 확대에서 가장 주목받는 부분은 아프리카 전역에서 활동하는 핀테크 기업 Yellow Card와의 전략적 파트너십이다. Yellow Card는 20개 이상의 아프리카 국가에서 라이선스를 보유하고 있으며, 소비자, 기업, 개발자들에게 스테이블코인 접근성을 제공하는 선도적인 플랫폼이다.
Yellow Card의 공동창립자 겸 CEO인 크리스 모리스는 “Visa와 함께 전통 금융과 미래 화폐 이동 사이의 가교를 구축하고 있다”며 “더욱 안전하고 효율적이며 투명한 결제 솔루션을 혁신할 새로운 솔루션을 계속 개발해 나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 파트너십은 단순한 기술 협력을 넘어서 아프리카 대륙의 금융 포용성을 높이는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아프리카 많은 지역에서는 전통적인 은행 인프라가 제한적이고, 국경 간 송금에 대한 수요가 매우 높다. 스테이블코인 기반의 결제 시스템은 이러한 지역에서 빠르고 저렴한 금융 서비스 접근성을 제공할 수 있다.
실전에서 검증된 스테이블코인 정산 시스템
Visa의 스테이블코인 전략은 이론이 아닌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발전해왔다. 2021년 Crypto.com과의 파일럿 프로그램이 그 시작이었다. 초기에는 Crypto.com 고객들이 Visa 카드로 암호화폐 결제를 할 때, 여전히 복잡한 환전 과정과 국제 전신 송금을 거쳐야 했다. 하지만 새로운 시스템 도입 후 USDC로 직접 정산이 가능해지면서 과정이 획기적으로 단순화되었다.
2023년 9월에는 서비스 범위를 카드 발급사에서 가맹점 인수업체로 확대했다. Worldpay와 Nuvei 같은 주요 결제 대행업체들이 참여하면서 가맹점들도 USDC로 직접 대금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단계적 확장을 통해 Visa는 스테이블코인 생태계 전반에 걸친 경험과 노하우를 축적했다.
현재까지의 성과도 인상적이다. 2억 2,500만 달러 이상의 스테이블코인 거래량 처리는 이 시스템이 단순한 실험이 아닌 실용적인 결제 인프라로 자리잡았음을 보여준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 과정에서 얻은 기술적 안정성과 규제 준수 경험이다.
스테이블코인 시장의 폭발적 성장과 Visa의 포지셔닝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시장의 성장 속도는 가히 혁명적이다. 글로벌 자산운용사 아크인베스트에 따르면 지난해 스테이블코인 거래액은 15조 6,000억 달러로 전년 대비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이는 Visa와 마스터카드에서 1년 동안 이뤄지는 거래량보다 2~3배 큰 규모다. 한국 GDP의 8배가 넘는 엄청난 시장이 형성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Visa의 전략은 매우 명확하다. 스테이블코인을 경쟁자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인프라를 통해 이 거대한 시장에 참여하겠다는 것이다. “못 이기면 합류하라(If you can’t beat them, join them)”는 전략을 택한 셈이다.
실제로 일부 개발도상국에서는 테더(USDT)가 현지 통화를 대체하는 선호 결제 수단으로 자리잡고 있다. BitMEX 창립자 아서 헤이즈가 최근 언급했듯이, 일부 개발도상 경제에서 USDT가 빠르게 선호 결제 수단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Visa는 이러한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면서 새로운 결제 생태계에서의 입지를 확보하려 하고 있다.
더 넓은 디지털 자산 생태계로의 확장
Yellow Card와의 파트너십은 Visa의 스테이블코인 전략에 새로운 차원을 추가한다. Yellow Card가 USDC뿐만 아니라 USDT, cUSD, PYUSD 등 다양한 스테이블코인을 지원하기 때문에, 향후 Visa의 결제 인프라에 USDC 이외의 다른 코인들도 통합될 가능성이 열렸다.
이는 Visa의 더 큰 디지털 통화 전략의 일부다. 작년에 출시한 Visa 토큰화 자산 플랫폼(VTAP)은 스테이블코인과 토큰화된 예금을 지원하도록 설계되었으며, BBVA는 이를 활용해 이더리움 기반 스테이블코인 파일럿을 계획하고 있다. 또한 Visa는 최근 B2B 스테이블코인 결제 회사인 BVNK에 투자하기도 했다.
이러한 다각적 접근은 Visa가 단순히 기존 결제 시스템에 스테이블코인을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새로운 디지털 자산 생태계를 구축하려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신흥 시장에서의 기회와 도전
CEMEA 지역에서의 스테이블코인 확산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이 지역의 많은 국가들은 전통적인 금융 인프라가 충분히 발달하지 않았고, 국경 간 송금에 대한 수요가 매우 높다. 특히 아프리카 대륙에서는 송금이 경제 활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어, 빠르고 저렴한 결제 솔루션에 대한 니즈가 크다.
또한 일부 국가에서는 디지털 달러가 현지 통화와 경쟁하는 소매 결제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는 통화 불안정이나 인플레이션 문제를 겪고 있는 국가들에서 특히 두드러지는 현상이다. 스테이블코인은 이런 지역에서 안정적인 가치 저장 수단이자 결제 도구로 기능할 수 있다.
하지만 도전도 만만치 않다. 각국의 규제 환경이 다르고, 여전히 많은 지역에서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법적 프레임워크가 불명확하다. Visa와 Yellow Card의 파트너십이 성공하려면 각국의 규제 요구사항을 충족하면서도 혁신적인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섬세한 균형이 필요하다.
전통 금융과 디지털 자산의 융합점
Visa의 이번 움직임은 전통 금융 시스템과 디지털 자산 생태계가 어떻게 융합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다. 스테이블코인이 기존 은행 시스템을 완전히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두 시스템이 상호 보완하면서 더 효율적인 글로벌 결제 인프라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Visa Direct와의 통합 가능성도 주목할 만하다. Visa Direct는 190개 이상 국가와 지역에서 안전하고 원활한 자금 전달을 가능하게 하는 실시간 결제 서비스다. 이와 Yellow Card의 스테이블코인 인프라가 결합되면, 전 세계 어디서나 실시간으로 저렴한 국경 간 결제가 가능한 혁신적인 시스템이 구축될 수 있다.
글로벌 결제 시장의 새로운 표준
Visa의 CEMEA 지역 스테이블코인 확장은 단순한 지역적 서비스 확대를 넘어서 글로벌 결제 시장의 새로운 표준을 제시하는 의미를 갖는다. 365일 24시간 실시간 정산, 대폭 절감된 수수료, 투명하고 프로그래밍 가능한 결제 시스템 – 이 모든 것이 스테이블코인 기반 인프라를 통해 가능해졌다.
특히 주목할 점은 Visa가 스테이블코인을 단순한 정산 레이어로만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엔드투엔드 결제 플로우를 혁신하는 도구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마스터카드와 함께 법정화폐를 완전히 배제한 솔루션을 모색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빠르게 진화하는 결제 시장에서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기 위한 선제적 대응인 셈이다.
앞으로 Visa의 스테이블코인 전략이 CEMEA 지역에서 어떤 성과를 거둘지, 그리고 이것이 다른 지역으로 어떻게 확산될지 주목된다. 분명한 것은 전통적인 결제 기업과 블록체인 기술의 융합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금융 생태계의 모습이 점점 구체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Visa의 이번 도전이 성공한다면, 글로벌 결제 시장에서 스테이블코인은 더 이상 실험적 기술이 아닌 핵심 인프라로 자리잡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