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토 방위비 5% 논란, 서유럽 균열 드러낸 헤이그 정상회의

2025년 6월 24-25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가 예상보다 훨씬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이 제안한 GDP 대비 5% 방위비 지출 목표를 두고 회원국들 사이에서 찬반이 극명하게 갈리면서, 유럽 안보의 미래가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노르웨이 vs 스페인, 정면충돌한 두 입장

뤼터 사무총장은 2032년까지 직접 군사비로 GDP의 3.5%를 지출하고, 나머지 광범위한 안보 관련 분야에 1.5%를 추가 지출해 총 5% 목표를 충족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이 제안은 현재 GDP 2% 목표의 2.5배에 달하는 대폭 증액이다.

노르웨이는 이 제안에 즉각 찬성 의사를 밝혔다. 요나스 가르 스퇴레 총리는 유럽 안보의 공통 책임이라는 원칙 하에 5% 목표가 필요하다고 평가했다. 북유럽 국가로서 러시아와 인접해 있는 지정학적 위치상 안보 위협을 직접적으로 체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대편에선 스페인이 강력히 반발했다. 페드로 산체스 총리는 뤼터 사무총장에게 보낸 서한에서 “지출 목표를 선택 사항으로 만들거나 스페인을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는 더 유연한 방식을 택해달라”며 GDP 대비 5% 일괄 인상안에 난색을 표했다. 산체스 총리는 “5% 목표를 못 박는 건 불합리할 뿐 아니라 역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며 “국방비 지출을 5%까지 늘릴 경우 우리 복지 제도나 세계관과 양립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독일과 덴마크, 실질적 방어 조치 강화

독일은 러시아를 ‘실존적 위협’으로 간주하며 국방비 확충 노선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독일 정부는 기존 2% 목표를 넘는 중장기 국방계획 수립을 검토 중이다.

덴마크는 발트해 해저 인프라 보호를 위해 미국과 협력해 해상 감시 드론을 배치하는 등 실질적인 방어조치에 착수한 상황이다. 더 나아가 메테 프레데릭센 덴마크 총리는 “올해와 내년 국방비를 500억 크로네(약 10조원) 추가 편성한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덴마크의 국방비가 국내총생산(GDP)의 3%를 넘긴다. 3년 전인 2022년 국방비가 GDP 대비 1.2% 수준이었음을 고려하면 엄청난 변화다.

트럼프 효과와 미국의 압박

이번 논란의 배경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강력한 압박이 있다.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은 “다음주 NATO 정상회의에서 동맹국들이 국내총생산(GDP)의 5%를 국방비 및 국방 관련 투자에 지출한다는 공약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마이크 왈츠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10년 전, 말 그대로 10년 전 최소한 GDP의 2%를 방위비로 내기로 한 약속을 나토 회원국 중 3분의 1이 이행하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6월 나토 정상회의까지 모든 회원국이 GDP 2% 목표를 먼저 달성한 뒤, 5% 상향을 논의하자는 입장이다.

각국의 현실적 부담과 딜레마

현재 나토 회원국들의 방위비 지출 현황을 보면 입장 차이가 뚜렷하다. 현재 주요국의 GDP 대비 국방비 비율을 살펴보면, 남북이 대치 중인 한국은 약 2.8%, 미국은 3.5%,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는 6.7%에 달한다.

유럽 국가들 중에서는 프랑스, 독일, 영국 정도만 2%를 약간 넘는 수준이며, 러시아와 국경을 접한 폴란드는 4%에 이른다. 반면 이탈리아(1.5%), 스페인(1.3%) 등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은 여전히 1%대에 머물고 있다.

나토 창립회원국인 캐나다도 올해에야 가까스로 GDP 대비 2% 목표 달성을 예고했다.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는 지난해 GDP 대비 1.37%인 국방비를 올해 GDP 대비 2% 수준에 맞추겠다고 밝혔다.

러시아 위협의 현실화

유럽의 군비 증강 압박은 러시아의 실질적 위협 때문이기도 하다. 러시아 정부가 공표한 예산안에 따르면 2025년도 러시아 국방예산은 총 13조5000억루블(약 175조2300억원)로 전년 대비 29.8% 증가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방비 비율은 28.3%에서 32.5%로 상승했다.

러시아의 해저 인프라 교란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의도로 덴마크가 발트해 감시 드론을 배치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한국에 미칠 파급효과

이번 나토의 방위비 논란은 한국에도 직접적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헤그세스 장관은 “NATO 동맹이 강화되면서 이제 아시아를 포함한 전 세계 모든 동맹국이 따라야 할 방위비 지출에 대한 새로운 기준이 마련됐다”고 덧붙였다.

한국의 2025년 기준 GDP 대비 국방비는 2.37%로 나토의 5% 기준에는 상당히 못 미친다. 2023년 한국 GDP 규모가 약 2천401조 원이었으니까 0.43%라고 해도 단순 계산으로도 10조 원 이상 국방비를 늘려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

헤이그 정상회의의 향후 전망

뤼터 사무총장은 “헤이그에서 열리는 나토 정상회의에서 내릴 최종 결정을 논의하고 있다”며 “32개 회원국이 공동 입장에 도달할 수 있을 것으로 상당히 확신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스페인과 같은 남유럽 국가들의 강한 반대를 고려할 때, 일괄적인 5% 목표 달성보다는 단계적 인상이나 선택적 적용안이 대안으로 제시될 가능성이 높다. 이탈리아의 안토니오 타야니 외무장관은 뤼터 사무총장의 제안에 “매우 만족한다”면서도 “유연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해석된다.

유럽 안보의 새로운 전환점

이번 헤이그 정상회의는 단순한 방위비 증액 논의를 넘어 전후 유럽 안보 질서의 근본적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미국의 압박과 러시아의 위협 사이에서 유럽 각국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나토의 미래뿐만 아니라 글로벌 안보 질서 자체가 재편될 수 있다.

특히 복지국가 모델을 추구해온 서유럽 국가들에게는 ‘총과 버터’ 딜레마가 현실로 다가왔다. 국방과 복지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하는 이들의 선택이 향후 유럽의 방향을 결정할 것이다.

한국 역시 이런 변화의 물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나토의 방위비 기준 변화는 한미동맹과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변화하는 안보 환경에 맞는 전략적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