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 육군총장과의 이례적 회동이 불러온 인도의 분노와 지정학적 파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파키스탄 육군참모총장 아심 무니르를 백악관으로 초청해 극진히 환대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남아시아 외교 지형에 새로운 균열이 생기고 있다. 트럼프는 무니르 총장을 “인도와 파키스탄 간 전쟁을 막은 공로자”라고 치켜세웠지만, 정작 인도는 이를 강력히 부인하며 미국의 정책 변화에 깊은 우려를 표하고 있다.
백악관에서 벌어진 이례적 환대
2025년 6월 20일, 파키스탄 육군참모총장 아심 무니르가 트럼프 대통령의 초청으로 백악관을 방문해 회담을 가졌다. 이는 미국 대통령이 현역 파키스탄 군 고위 인사를 백악관에서 공식 접견한 전례 없는 일이었다.
트럼프는 오찬 회동 후 “오늘 아심 무니르 원수를 초대하게 되어 영광이었다”며 “이 사람은 파키스탄 측에서 전쟁을 막는 데 매우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극찬했다. 특히 지난 5월 인도-파키스탄 간 발생했던 카슈미르 테러 사건 이후의 군사적 충돌을 언급하며 “모디 총리는 인도 측에서, 무니르 총장은 파키스탄 측에서 이를 막았다”고 평가했다.
무니르 장군은 현재 파키스탄의 최대 수출 시장인 미국을 5일간 공식 방문 중이었으며, 이번 회동이 성사된 배경에는 무니르가 최근 공개적으로 트럼프가 “인도와 파키스탄 간의 핵전쟁”을 막는 데 기여한 공로로 노벨상을 받아야 한다고 언급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인도의 강력한 반발과 사실 부인
하지만 트럼프의 이러한 발언에 대해 인도 측은 즉각 강력히 반발했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트럼프와의 전화 통화에서 “델리는 카슈미르 분쟁에 대해 파키스탄과의 제3자의 중재를 절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비크람 미스리 인도 외무장관도 “미국이 인도-파키스탄 문제에 제3자로 개입한 적은 없으며, 특히 지난 5월 양국 간 충돌을 막았다는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정면 반박했다. 인도 정부 관리는 “우리는 오랫동안 카슈미르 분쟁 관련 제3국의 중재에 반대해 왔다”며 미국의 중재 역할을 부인했다.
인도가 이렇게 강하게 반발하는 이유는 파키스탄을 오랜 기간 핵무장 경쟁자이자 테러 지원국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인도 입장에서 미국의 이례적인 ‘파키스탄 군 고위급 환대’는 동맹에 대한 신뢰를 흔드는 행보로 비칠 수밖에 없다.
2025년 카슈미르 위기와 미국의 중재 논란
이번 논란의 배경에는 2025년 4-5월에 실제로 발생한 인도-파키스탄 간 군사적 충돌이 있다. 4월 22일 잠무 카슈미르 파할감에서 힌두교 관광객 25명을 포함해 총 27명이 사망한 테러 사건이 발생했고, 이를 계기로 양국 간 긴장이 극도로 고조되었다.
인도는 테러 배후로 파키스탄을 지목하며 보복 공습을 단행했고, 파키스탄도 대규모 반격에 나서면서 핵보유국 간의 전면전 위기까지 치달았다. 5월 10일에는 파키스탄이 핵무기를 감독하는 국가지휘권(NCA) 회의를 소집하는 등 상황이 극도로 악화되었다.
이때 마르코 루비오 국무장관과 J.D. 밴스 부통령이 ‘마라톤 전화 외교’를 통해 양국 간 휴전을 중재했고, 트럼프는 “미국의 중재로 인도-파키스탄 간 전면적이고 즉각적인 휴전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인도는 이를 파키스탄과의 직접 협상을 통한 결과라며 미국의 중재 역할을 축소했다.
미국의 남아시아 전략 전환 신호
미국이 파키스탄과의 관계 회복에 적극 나서는 배경에는 복합적인 전략적 고려가 있다. 파키스탄은 중국과의 일대일로 협력에도 불구하고, 중동과 중앙아시아를 잇는 지정학적 요충지에 위치해 있어 미국에게는 여전히 활용 가치가 크다.
특히 트럼프는 “강한 군사 지도자와의 협력”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으며, 무니르 총장의 실용적 군사외교 스타일과 코드가 맞는다는 분석이다. 또한 미국이 중국 견제, 아프간 잔여 테러 조직 대응, 신흥 광물 자원 확보라는 전략 과제를 안고 있는 만큼, 파키스탄과의 협력은 장기적으로도 실익이 크다.
아심 무니르는 파키스탄 군 역사상 유일한 명예의 검 수상자이자, 파키스탄 최고 군사 정보 기관 수장을 역임한 인물이다. 그가 “터프가이”로 평가받는 강경한 태도와 “흠잡을 데 없는 평판”을 동시에 인정받고 있다는 점도 트럼프가 그를 선호하는 이유로 보인다.
인도-미국 관계에 드리운 그림자
문제는 이러한 행보가 기존 인도-미국 전략적 파트너십에 어떤 균열을 만들 수 있느냐다. 바이든 행정부 아래에서 미국과 인도는 쿼드(Quad) 협력과 대중국 견제라는 공통의 전략 목표를 공유하며 밀착해왔다.
그러나 트럼프가 파키스탄과의 관계를 강화하며 인도-파키스탄을 다시 연계하는 정책(re-hyphenation)으로 돌아간다면, 부시 행정부에서 시작된 탈분리 정책(de-hyphenation)의 후퇴로 평가될 수 있다. 이는 인도-미국 전략적 파트너십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특히 2025년 인도-파키스탄 위기 상황에서 쿼드 동맹이 침묵을 지킨 것에 대해 인도 내에서는 심각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인도 여론은 모디 총리의 휴전 합의를 미국의 압박에 굴복한 것으로 강하게 비판하고 있으며, 카슈미르 문제는 인도에서 가장 민감한 주권 및 안보 사안이기 때문에 정치적 타격은 불가피해 보인다.
무역을 지렛대로 한 외교의 한계
트럼프는 이번 휴전 중재 과정에서 무역을 지렛대로 활용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무역을 상당 부분 활용하여 휴전을 중재했다”며 “여러 이유가 있지만 무역이 큰 이유”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인도는 회계연도 2023-24년 기준 대미 약 367억 달러의 무역 흑자를 기록하고 있으며, 트럼프는 과거 인도를 ‘관세 폭군(Tariff King)’이라고 칭하며 비판한 바 있다. 트럼프가 파키스탄과의 휴전을 무역 문제와 연계시킴으로써, 카슈미르 관련 외교와 무역 협상이 복잡한 상황이 되었다.
그러나 인도는 이러한 주장을 즉각 부인했다. 자이샨카르 외교장관은 “협상이 진행 중이며 관세 양보에 대한 어떠한 결론도 시기상조”라고 반박했으며, 무역 협상과 안보 문제를 연계하는 것에 대해 강한 불편감을 드러냈다.
남아시아 지정학의 새로운 변수
향후 미국의 대남아시아 전략이 인도 중심에서 파키스탄을 포함하는 다변화 전략으로 전환될 경우, 이 지역의 외교·군사 균형은 상당한 변화를 겪게 될 것이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는 데 가장 중요한 파트너인 인도를 고립시킬 수는 없다고 분석하지만, 트럼프의 예측 불가능한 외교 스타일은 여전히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트럼프가 카슈미르 문제에 대한 중재를 거듭 제안하고 있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워싱턴에서 파키스탄계 미국인 커뮤니티를 대상으로 한 연설에서 무니르 장군은 인도가 지역적 “패권”을 추구하는 대신 “문명화된 국가”로서 관여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반면 파키스탄은 인도와의 휴전을 중재한 트럼프 대통령의 공로를 인정하며 카슈미르 분쟁에 대한 미국의 중재에 열려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는 양국 간 입장 차이를 더욱 부각시키는 요소다.
트럼프의 남아시아 외교는 단순한 양자 관계를 넘어 지역 전체의 권력 균형을 재편할 수 있는 중대한 변곡점이 될 수 있다. 실용주의를 내세운 미국의 정책 변화가 과연 지역 안정에 도움이 될지, 아니면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될지는 앞으로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