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이 추진하는 ‘오프쇼어 망명 처리’, 실현될 수 있을까

최근 유럽 각국이 난민과 이민자 문제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식을 모색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오프쇼어 망명 처리(offshore asylum processing)’라는 논쟁적인 정책이 자리하고 있다. 이 정책은 망명 신청자들을 유럽 본토가 아닌 제3국으로 이송해 그곳에서 심사를 진행하는 방식이다. 영국의 르완다 정책과 유사하지만, 이번에는 EU 차원에서 더욱 체계적으로 추진되고 있어 주목받고 있다.

왜 지금 오프쇼어 망명 처리인가

유럽의 난민 정책이 다시 한번 전환점을 맞고 있다.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대규모 난민 유입이 지속되고 있고, 동시에 기후변화와 중동·아프리카 지역의 정치적 불안정으로 인한 이민 압력도 증가하고 있다. 특히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등 남유럽 국경 국가들은 수용 한계에 도달했다는 신호를 반복적으로 보내고 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방글라데시, 콜롬비아, 이집트, 인도, 코소보, 모로코, 튀니지 등 7개 국가를 “안전한 출신 국가”로 지정했다. 이는 해당 국가 출신 망명 신청자들의 심사를 신속하게 처리하려는 움직임의 일환이다.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이미 이민 수용 기준을 강화하거나 재검토에 착수했으며, 덴마크는 오프쇼어 망명 처리 관련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런 흐름 속에서 EU는 국경 통제를 강화하면서도 인도주의적 원칙을 유지할 수 있는 ‘정치적 절충점’을 찾고자 한다.

오프쇼어 망명 처리의 구체적 내용

오프쇼어 망명 처리는 유럽에 도달한 망명 신청자들을 제3국으로 이송하여 그곳에서 난민 여부를 심사하는 제도다. 핵심 메커니즘은 다음과 같다.

망명 심사의 역외 처리: 유럽 본토가 아닌 제3국에서 모든 심사 과정을 진행한다. 자격이 인정된 난민은 이후 유럽 정착을 허용하고, 자격이 없는 신청자는 제3국이나 출신국으로 송환한다.

수용 시설의 외부화: 망명 신청자들이 심사 기간 동안 머물 시설도 유럽 외부에 설치한다. 이는 유럽 내 수용 시설의 부담을 줄이고, 불법 체류나 이차 이동을 방지하는 효과를 기대한다.

법적 프레임워크 정비: 단순한 이송이 아닌, 국제법과 EU법에 부합하는 체계적인 법적 근거를 마련하려 한다.

이탈리아의 알바니아 모델

현재 가장 구체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사례는 이탈리아의 알바니아 망명 처리 센터다. 이탈리아는 알바니아에 두 개의 이민자 수용 센터를 개설하여 매년 최대 36,000명의 남성 망명 신청자를 수용할 계획이다.

하지만 실행 과정에서 큰 걸림돌에 부딪히고 있다. 로마 민사법원은 11월 11일 알바니아로 이송된 7명의 이민자(방글라데시인 5명, 이집트인 2명)를 이탈리아로 돌려보내라고 명령했다. 법원은 적어도 2025년 7월까지 이민자 구금을 중단할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런 법적 갈등의 배경에는 ‘안전국가’ 지정에 대한 해석 차이가 있다. 법원은 방글라데시와 이집트가 모든 거주민에게 안전하다고 볼 수 없다며, 특히 LGBT 개인이나 정치적 반대자들에게는 위험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각국의 엇갈린 접근

덴마크의 선제적 입법: 덴마크는 2021년 6월 망명 신청자를 유럽 외부 제3국으로 이송할 수 있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르완다와 사전 협의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독일의 신중한 검토: 독일은 EU 외 국가들과의 협정을 통해 ‘제3국 망명 처리 센터’ 설치 방안을 연구하고 있지만, 신중한 접근을 유지하고 있다.

네덜란드의 아동 대상 정책: 네덜란드 정부는 망명 신청이 거부된 아동들을 유럽연합 외부의 ‘송환 허브’에서 본국 송환을 기다리게 하는 계획을 제안했다.

법적·인권적 쟁점들

오프쇼어 망명 처리 정책은 여러 법적 쟁점을 안고 있다.

국제법과의 충돌: non-refoulement 원칙에 따르면 망명 신청자나 난민을 인권이 위협받을 수 있는 국가로 돌려보내는 것이 금지된다. 제3국의 안전성 보장이 핵심 쟁점이 된다.

EU 기본권과의 상충: 유럽사법재판소(ECJ)의 심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며, EU 인권 헌장과의 양립성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절차적 권리 보장: 망명 신청자들의 법적 대리권, 통역권, 항소권 등 기본적 절차적 권리가 제3국에서도 동일하게 보장될 수 있는지가 의문이다.

비용과 효과성 논란

오프쇼어 망명 처리의 경제적 측면도 논란이 되고 있다. 호주의 경우 오프쇼어 처리 정책으로 2014년부터 2020년까지 83억 호주달러(약 62억 미국달러)가 소요된 것으로 추정된다.

영국의 NGO들은 호주 수치를 바탕으로 계산했을 때 영국이 이런 오프쇼어 운영을 할 경우 연간 14억 4천만 파운드가 들 것이라고 추산했다. 막대한 비용에 비해 실제 억제 효과나 효율성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인권단체들의 강력한 반발

휴먼라이츠워치는 “호주의 학대적인 오프쇼어 처리 정책은 수천 명의 취약한 망명 신청자들에게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을 초래했다”고 비판했다.

오프쇼어 망명 처리가 신식민주의적 함의를 가지고 있으며, 글로벌 북부에서 글로벌 남부로 망명 신청자와 난민을 제거하고 송환하는 명백한 인종차별적 성격을 띤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실현 가능성과 전망

현재 오프쇼어 망명 처리 정책의 실현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이탈리아의 알바니아 모델이 법원의 잇따른 제동으로 사실상 중단 상태에 놓여 있고, 영국의 르완다 정책도 노동당 정부가 들어서면서 폐기되었다.

정치적 압력: 우파와 중도우파 정당들의 정치적 입지가 커지면서 강경한 이민 정책에 대한 정치적 압력이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법적 정당성과 국제적 이미지 사이에서 균형을 맞춰야 하는 딜레마에 직면해 있다.

법적 허들: EU 사법재판소의 최종 판단이 2025년 여름으로 예정되어 있어, 그 결과에 따라 정책의 향방이 크게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

대안 모색: 일부 전문가들은 외부 처리를 기존 영토 내 망명 시스템을 제한하는 수단이 아니라 보완하는 방식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제안하고 있다.

유럽 정체성의 갈림길

오프쇼어 망명 처리 정책은 단순한 이민 정책을 넘어 유럽의 정체성과 가치관을 시험하는 문제가 되고 있다. 국경 통제와 주권 보호, 그리고 인도주의적 가치와 국제법 준수 사이에서 유럽이 어떤 선택을 할지가 주목받고 있다.

앞으로 1-2년 내에 일부 국가에서 제한적으로 시행되는 사례가 등장할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법적 안정성, 비용 효율성, 인권 보장 등 다양한 측면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오프쇼어 망명 처리의 성공 여부에 따라 유럽 전체의 이민 정책 패러다임이 재편될 수 있지만, 현재로서는 정책적 실험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유럽이 추구하는 ‘안전하고 질서 있는 이민’이라는 목표와 ‘인권과 법치주의’라는 기본 가치 사이의 조화점을 찾는 것이 앞으로의 핵심 과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