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총과 플래카드로 외친 절규: 남유럽이 관광객에게 보내는 진짜 메시지

물총을 든 시민들이 바르셀로나 거리를 행진하고, 베네치아에서는 ‘관광객 집에 가라’는 그래피티가 벽마다 새겨지고 있다. 2025년 6월 15일, 스페인부터 이탈리아, 포르투갈까지 남유럽 전역에서 벌어진 과잉관광 반대 시위는 단순한 불만 표출을 넘어 지역민들의 생존권을 위한 절규였다.

2600만 관광객 vs 160만 주민, 도시가 견딜 수 있는 한계

바르셀로나의 인구는 160만 명이지만, 2024년에만 2600만 명의 관광객이 몰려들었다. 숫자만 봐도 압도적이다. 주민 1명당 16명의 관광객이 찾는 셈이다. 바르셀로나시가 실시한 조사에서는 주민의 31%가 관광업이 도시에 해를 끼친다고 답했는데, 이는 역대 최고치다.

이번 시위를 주도한 ‘SET(남유럽 과잉관광 반대 연합)’은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 3개국의 시민단체들이 연합한 조직이다. 바르셀로나의 ‘관광 축소를 위한 지역 주민 연합’ 대변인 다니엘 파르도 리바코바는 “공식들이 우리는 관광업에 특화해야 한다고 말할 때, 그들은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들이 더 부자가 되도록 당신들이 더 가난해져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물총 시위부터 공항 피켓까지, 평화로운 저항의 다양한 얼굴

시위 주최자들은 2024년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던 전술을 되살려 관광객들에게 물총을 쏘는 상징적 행위를 통해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도 과잉관광의 영향을 강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물총은 단순한 장난이 아니다. ‘이곳이 놀이터가 아니라 우리가 사는 곳’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상징적 도구다.

시위는 주요 관광 명소인 바르셀로나와 마요르카(스페인), 베네치아와 팔레르모(이탈리아), 리스본(포르투갈)에서 벌어질 예정이다. 참가자들은 역사 지구를 행진하고, 공항 같은 교통 허브에서 피켓을 벌이며, 교통량이 많은 관광 명소로의 접근을 막을 계획이다.

베네치아의 경우 좀 더 조용한 방식을 택했다. 베네치아의 한 시위 주최자는 “SET 네트워크의 각 도시는 자체적인 방식으로 시위를 조직한다”며 두 곳에서 배너를 내걸어 과잉관광의 영향을 규탄할 것이라고 말했다.

집값 폭등과 생계 위기, 관광 뒤편의 씁쓸한 현실

과잉관광이 가져온 문제는 생각보다 심각하다. 단기 임대 숙소가 지역 주민들을 내쫓으면서 주거 부족이 악화되고, 임대료가 급등해 현지인들이 자신들의 동네에서 밀려나고 있다. 관광객 교통으로 대중교통 시스템이 마비되고, 방문객 수로 인한 오염과 환경 파괴도 문제다.

특히 에어비앤비 같은 플랫폼이 주거용 건물을 관광숙소로 바꾸면서 현지인들이 살 곳을 잃고 있다. 바르셀로나시는 이미 2028년까지 단기 임대를 완전히 금지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주민들은 더 즉각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경제 vs 삶의 질, 어디서 선을 그어야 할까

흥미롭게도 관광업은 이들 지역 경제의 핵심이다. 카나리아 제도의 경우 2022년 전체 GDP의 35%, 일자리의 40%가 관광업과 직접 관련이 있어 169억 유로(약 187억 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스페인 전체로는 2023년 국가 GDP의 12.8%가 관광업에서 나왔다.

이탈리아도 마찬가지로 2023년 관광업이 국가 GDP의 10.5%를 차지하며 2150억 유로(약 2380억 달러)를 경제에 기여했다. 베네치아의 경우 2020년 2만 5천 명의 베네치아인이 관광업에 종사했는데, 당시 베네치아 역사 중심가에 거주하는 주민은 5만 1208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시위대는 단순히 관광업을 반대하는 게 아니다. 지속 가능하지 않은 성장 모델을 문제 삼고 있다. 카나리아 제도 시위의 한 대변인은 관광과 복지의 균형이 만성적으로 지속 불가능해졌다며, 자신들은 관광 자체에 반대하는 게 아니라 지속 불가능한 성장을 허용하는 관광 모델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정부 대응과 변화의 조짐

각국 정부도 손을 놓고 있지는 않다. 바르셀로나는 2014년부터 새로운 관광 숙소 허가를 중단했고, 2028년까지 기존 1만 개 단위의 관광 숙소 허가를 모두 철회하기로 했다. 베네치아는 당일치기 관광객에게 입장료를 부과하는 시범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스페인은 EU 비거주자의 부동산 구매에 100% 세금을 부과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외국인, EU 시민 포함한 주택 구매가 전체 주택 시장의 약 15%를 차지한다는 스페인 부동산 등기소 자료에 따른 조치다.

2024년부터 이어진 분노의 역사

이번 시위는 갑자기 나타난 현상이 아니다. 2024년 4월부터 스페인에서는 과잉관광에 반대하는 시위가 시작됐는데, 특히 발레아레스 제도와 카나리아 제도, 바르셀로나와 말라가 같은 본토 도시에서 벌어졌다. 이 세 곳은 스페인에서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상위 3개 지역이다.

2024년 4월 카나리아 제도에서는 2만~5만 명이 과잉관광에 반대하는 조직적 시위에 참여했다. 시위대는 관광이 주민의 복지와 섬의 환경을 훼손했다고 주장했으며, 그린피스와 WWF 같은 환경단체들도 시위를 지지했다.

유럽 관광업계의 미래를 묻는 질문

2025년 유럽의 국제 여행 지출은 11% 증가해 838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며, 스페인과 프랑스가 기록적인 관광객 수를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2024년 1분기 유럽 국제 여행은 팬데믹 이전보다 7.2% 증가해 총 1억 2천만 명의 국제 방문객을 기록했다.

숫자는 계속 늘어나는데 지역민들의 불만도 동시에 커지고 있다. 이제 선택의 기로에 섰다. 단순히 관광객 수를 늘리는 양적 성장에서 벗어나, 지역민과 관광객이 함께 공존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관광 모델을 찾아야 한다.

이번 남유럽 시위는 단순한 항의가 아니라 관광업계 전체에 던지는 근본적 질문이다. 과연 우리가 추구하는 관광이 누구를 위한 것인가? 그리고 진정한 의미의 지속 가능한 관광이란 무엇인가? 물총을 든 바르셀로나 시민들의 외침에서 그 답을 찾아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