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 시대 중동 개입의 유산
중동에 대한 외부 세력의 개입은 20세기 초 오스만 제국 해체 이후부터 본격화되었지만, 현재와 같은 패턴이 형성된 것은 냉전 시대였다. 1956년 수에즈 위기를 통해 영국과 프랑스의 중동 지배력이 약화되면서 미국과 소련이 중동의 새로운 패권 경쟁자로 등장했다.
미국은 1957년 아이젠하워 독트린을 통해 중동에서 공산주의 확산을 막겠다고 선언했다. 이스라엘, 사우디아라비아, 이란(팔레비 왕조) 등을 핵심 동맹국으로 삼아 소련의 영향력 확산을 견제했다. 특히 1973년 석유 파동 이후 걸프 지역의 석유 공급 안정이 미국의 핵심 국익으로 설정되었다.
소련은 이집트의 나세르, 시리아의 바트당, 이라크 등 아랍 민족주의 세력을 지원했다. 1967년 6일 전쟁과 1973년 욤키푸르 전쟁에서 소련은 아랍 국가들에 대규모 무기를 공급했다. 하지만 1979년 캠프 데이비드 협정으로 이집트가 미국 진영으로 이동하면서 소련의 중동 전략은 큰 타격을 받았다.
1979년 이란 이슬람 혁명과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은 중동 지정학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았다. 미국은 이란을 잃고 소련의 남하를 막기 위해 파키스탄과 아프간 무자헤딘을 지원했다. 1980년 카터 독트린은 걸프 지역에 대한 외부의 지배 시도를 미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한다고 명시했다.
냉전 종료 후 미국은 중동에서 일방적 패권을 확립했다. 1991년 걸프전에서 이라크를 압도적으로 제압하면서 미국의 군사적 우위가 확인되었다. 오슬로 평화협정(1993), 아랍-이스라엘 평화 과정 등도 미국이 주도했다. 하지만 2003년 이라크 전쟁의 실패와 2011년 아랍의 봄 이후 미국의 상대적 쇠퇴가 나타나면서 다극화 시대가 시작되었다.
미국의 중동 전략 변화와 현황
미국의 중동 정책은 지난 20년간 큰 변화를 겪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9/11 테러 이후 ‘대테러 전쟁’을 명분으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침공했다. 민주주의 확산을 통한 중동 변화를 추구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이라크 전쟁으로 수십만 명이 사망하고 지역 안정이 파괴되었다.
오바마 행정부는 중동 개입을 줄이고 아시아 회귀 정책을 추진했다. 2011년 이라크에서 철수하고 아프가니스탄 병력도 단계적으로 감축했다. 대신 이란과의 핵 협상(JCPOA)을 통한 외교적 해결을 시도했다. 하지만 시리아 내전에서 소극적 대응으로 러시아와 이란의 영향력 확대를 허용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중동 정책을 재편했다. JCPOA에서 탈퇴하고 이란에 대한 ‘최대 압박’ 정책을 추진했다. 동시에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 간의 관계 정상화를 중재하여 아브라함 협정을 성사시켰다. 가셈 솔레이마니 암살(2020년 1월) 등 대이란 강경책을 폈다.
바이든 행정부는 중동에서 ‘책임감 있는 철수’를 추진하고 있다. 2021년 8월 아프가니스탄에서 완전 철수했고, 이라크와 시리아에서도 병력을 단계적으로 감축하고 있다. 대신 중국과의 전략적 경쟁에 집중하기 위해 아시아-태평양으로 자원을 재배치하고 있다.
현재 미국은 중동에 약 6만 명의 군사 인력을 배치하고 있다. 주요 군사 기지는 카타르의 알 우데이드 공군기지, 바레인의 제5함대 사령부, 쿠웨이트의 아리프잔 기지, UAE의 알 다프라 공군기지 등이다. 이라크와 시리아에도 대테러 작전을 위한 병력이 주둔하고 있다.
미국의 무기 판매는 중동 정책의 핵심 도구다. 2020-2024년 기간 중동 국가들에 대한 미국의 무기 수출은 연간 500억 달러를 넘어선다. 주요 고객은 사우디아라비아(30%), 이스라엘(20%), UAE(15%), 이집트(10%) 등이다. F-35 전투기, 패트리어트 미사일, 아파치 헬기 등 첨단 무기 시스템이 주력 수출 품목이다.
하지만 미국의 중동 영향력은 예전만 못하다. 전통적 동맹국들도 미국에만 의존하지 않고 다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중국과 러시아와의 관계를 강화하고 있고, 터키는 미국과 갈등을 빚으며 러시아제 무기를 도입했다. 이스라엘마저 중국과의 경제 관계를 확대하고 있다.
러시아의 중동 복귀와 전략
러시아는 2015년 시리아 내전 개입을 통해 중동에 극적으로 복귀했다. 소련 붕괴 후 25년간 중동에서 주변적 역할에 머물렀던 러시아가 다시 주요 행위자로 부상한 것이다. 푸틴의 러시아는 미국 주도 질서에 대한 도전자로서 중동에서 영향력 확대를 추구하고 있다.
러시아의 시리아 개입은 여러 목적을 달성했다. 첫째, 바샤르 아사드 정권을 구원하여 지중해에서 유일한 해군 기지인 타르투스를 보존했다. 둘째, 러시아제 무기의 실전 성능을 입증하여 무기 수출 증대에 기여했다. 셋째, 미국과 서방에 대한 지정학적 견제 효과를 거뒀다.
러시아는 시리아에서 혁신적인 군사 기술을 선보였다. 칼리브르 순항미사일의 장거리 정밀 타격, Su-57 스텔스 전투기의 실전 테스트, 다양한 드론 시스템 활용 등이 세계적 주목을 받았다. 이런 성과는 러시아 무기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고 수출 확대로 이어졌다.
중동에서 러시아의 무기 판매는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터키에 S-400 미사일 시스템을 판매한 것이 대표적 성과다. 이집트도 Su-35 전투기와 Mi-35 헬기 등을 도입했다. 이라크는 Mi-28 공격 헬기를, 알제리는 Su-34 전투폭격기를 구매했다. 러시아 무기의 장점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과 정치적 조건 없는 판매다.
러시아는 에너지 분야에서도 중동 진출을 확대하고 있다. 시리아와 이집트에서 천연가스 탐사 권리를 확보했고, 이라크 석유 개발에도 참여하고 있다. 원자력 분야에서는 이집트, 터키, 사우디아라비아 등과 원전 건설 계약을 체결했다.
푸틴은 중동의 모든 주요 행위자들과 대화 채널을 유지하는 ‘옴니밸런싱’ 정책을 구사한다. 이란과 협력하면서도 이스라엘과 우호 관계를 유지하고, 터키와 갈등하면서도 협력한다. 사우디아라비아와 OPEC+를 통해 유가 조절에 협력하면서도 이란과 시리아를 지원한다.
하지만 러시아의 중동 정책에는 한계도 있다. 경제력이 상대적으로 약해 대규모 투자나 원조는 어렵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자원이 분산되면서 중동에 대한 집중도가 떨어질 수 있다. 또한 중동 국가들도 러시아에만 의존하지 않고 다각적 관계를 추구한다.
중국의 신중한 진출과 경제 우선 전략
중국의 중동 진출은 러시아와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중국은 군사적 개입보다는 경제적 진출을 우선시하는 ‘저프로필’ 전략을 구사한다. 일대일로(BRI) 구상의 일환으로 중동을 유라시아 경제권의 핵심 연결고리로 보고 있다.
중국은 현재 중동 최대 교역 파트너다. 2023년 중국과 중동 간 교역량은 5000억 달러를 넘어섰다. 중국은 중동에서 석유와 천연가스를 수입하고, 제조업 제품과 인프라 건설 서비스를 수출한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는 중국의 최대 석유 공급국이다.
중국의 중동 투자는 인프라 건설에 집중되어 있다. UAE의 두바이 월드 센터, 이집트의 신행정수도, 이스라엘의 아시도드 항만, 그리스의 피레우스 항만 등 대규모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이런 투자는 일대일로의 서쪽 종착점 역할을 하는 중동의 지정학적 가치를 높인다.
에너지 분야에서 중국의 중동 진출도 활발하다. 중국석유천연기업(CNPC), 중국석유화공집단(시노펙), 중국해양석유총공사(CNOOC) 등이 중동 각국에서 유전 개발과 정제시설 건설에 참여하고 있다. 이라크 루마일라 유전, 이란 사우스 파르스 가스전 등이 대표적 사례다.
중국은 중동에서 신중한 외교를 펼친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 이란 핵 문제, 시리아 내전 등에서 중립적 입장을 유지하며 모든 당사자와 관계를 유지하려 한다. 2023년 3월 사우디-이란 관계 정상화를 중재한 것은 중국의 중동 외교력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중국의 무기 판매는 아직 제한적이다. 중동 무기 시장에서 중국의 점유율은 5% 미만이다. 하지만 드론 분야에서는 급속히 성장하고 있다. 중국제 드론은 가격 대비 성능이 우수해 사우디, UAE, 이라크, 이집트 등이 도입하고 있다. 특히 CH-4, 윙룽 시리즈 등이 인기가 높다.
중국의 중동 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에너지 안보다. 중국은 석유 수입의 50% 이상을 중동에 의존하고 있어 이 지역의 안정이 중국 경제에 직결된다. 따라서 중국은 지역 갈등에 개입하기보다는 모든 국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여 에너지 공급의 안정성을 확보하려 한다.
하지만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 증대는 필연적으로 정치적·군사적 개입을 수반할 수 있다. 중국의 해외 자산과 인력이 증가하면서 이를 보호해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지부티에 첫 해외 군사 기지를 설치한 것이 그 시작일 수 있다.
지역 강대국들의 대응과 균형 전략
중동 지역 강대국들은 외부 세력의 경쟁을 활용하여 자국의 영향력을 극대화하는 헤징(hedging)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더 이상 한 강대국에만 의존하지 않고 다각적 관계를 통해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하려 한다.
사우디아라비아는 가장 적극적인 다변화 정책을 펼치고 있다. 전통적으로 미국의 핵심 동맹국이었지만 최근 중국, 러시아와의 관계를 대폭 강화했다. 2023년 시진핑 주석의 사우디 방문은 양국 관계의 전환점이 되었다. 사우디는 중국과 7000억 달러 규모의 투자 협정을 체결하고 위안화 결제 확대에도 합의했다.
사우디의 러시아 관계도 크게 개선되었다. OPEC+를 통한 유가 조절 협력이 양국 관계의 기반이다.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서방이 러시아 제재를 강화했지만 사우디는 에너지 협력을 지속했다. 이는 미국과의 마찰을 불러왔지만 사우디는 자국 이익을 우선시했다.
터키는 NATO 회원국이면서도 러시아와 복잡한 관계를 유지한다. 시리아 내전에서는 대립하면서도 아스타나 프로세스를 통해 협력하기도 한다. 2019년 러시아제 S-400 미사일 시스템을 도입하여 미국과 심각한 갈등을 빚었다. 터키는 또한 중국과의 경제 관계도 확대하여 일대일로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이란은 미국 제재로 인해 중국과 러시아에 더욱 의존하게 되었다. 2021년 중국과 25년간 4000억 달러 규모의 포괄적 협력 협정을 체결했다. 러시아와는 시리아에서의 협력 경험을 바탕으로 군사 기술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에 드론을 제공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이스라엘은 미국과의 특수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중국,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에 나서고 있다. 중국과의 경제 관계는 급속히 확대되어 중국이 이스라엘의 제2위 교역 파트너가 되었다. 러시아와는 시리아에서 이란 견제를 위한 묵시적 협력을 하고 있다.
UAE는 가장 성공적인 다변화 정책을 구사하는 국가로 평가된다. 미국과의 안보 동맹을 유지하면서도 중국과의 경제 협력을 확대하고, 러시아와도 실용적 관계를 맺고 있다. 이란과도 경제 관계를 지속하여 지역의 스위스 역할을 자처한다.
이집트는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외부 지원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미국으로부터 연간 13억 달러의 군사 원조를 받으면서도 러시아제 무기를 도입하고, 중국과 신행정수도 건설 협력을 하고 있다. 걸프 국가들의 경제 지원도 받아 복잡한 대외 관계를 유지한다.
무기 판매와 기술 이전의 지정학
중동은 세계 최대 무기 수입 지역으로 전 세계 무기 수입의 35%를 차지한다. 이는 지역 내 안보 위협과 강대국 간 경쟁, 그리고 풍부한 석유 수익이 결합된 결과다. 무기 판매는 단순한 경제적 거래를 넘어서 정치적 영향력 행사의 핵심 수단이 되고 있다.
미국은 여전히 중동 최대 무기 공급국이다. 2019-2023년 기간 중동 무기 시장의 54%를 차지한다. 미국 무기의 강점은 첨단 기술과 상호 운용성이다. F-35 전투기, 패트리어트 미사일, 아이언 돔 등은 최고 수준의 성능을 자랑한다. 하지만 가격이 비싸고 기술 이전에 제약이 많다.
러시아는 가격 경쟁력과 정치적 조건 없는 판매로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고 있다. 러시아 무기의 장점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과 유지 보수의 용이성이다. S-400 미사일 시스템, Su-35 전투기, Mi-35 헬기 등이 인기 품목이다. 러시아는 기술 이전에도 상대적으로 관대한 편이다.
중국은 후발주자이지만 급속히 성장하고 있다. 특히 드론 분야에서는 이미 상당한 시장 점유율을 확보했다. 중국 무기의 강점은 저렴한 가격과 빠른 납기다. 정치적 조건도 거의 없어 서방 무기를 구매하기 어려운 국가들이 선호한다.
프랑스, 영국, 독일 등 유럽 국가들도 중동 무기 시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라팔 전투기, 유로파이터, 레오파르트 탱크 등이 주력 수출 품목이다. 유럽 무기는 미국 무기의 대안으로 인기가 높다.
무기 판매와 함께 기술 이전도 중요한 경쟁 요소가 되고 있다. 중동 국가들은 단순한 무기 도입을 넘어서 자체 국방 산업 육성을 추구한다. UAE의 EDGE, 사우디의 SAMI, 터키의 TAI 등이 대표적 사례다. 이들은 외국 기업과의 합작이나 기술 이전을 통해 자체 무기 개발 능력을 키우고 있다.
드론 기술은 중동 군사 혁신의 핵심이 되고 있다. 터키의 바이라크타르 TB2 드론은 시리아, 리비아, 나고르노-카라바흐 분쟁에서 효과를 입증했다. 이란도 샤헤드 시리즈 등 자살 드론을 개발하여 지역 내 군사 균형을 바꾸고 있다. 이스라엘은 드론 기술의 선구자로 하피, 헤론 등을 수출하고 있다.
에너지와 인프라를 둘러싼 경쟁
중동의 에너지 자원은 외부 세력 개입의 핵심 동기다. 중동은 전 세계 원유 매장량의 65%, 천연가스 매장량의 45%를 보유하고 있다. 특히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원유 운송량의 21%가 통과하는 전략적 요충지다.
미국은 셰일 혁명으로 에너지 순수출국이 되었지만 여전히 중동 에너지 안보를 중요시한다. 동맹국들의 에너지 안보 확보와 달러 기축통화 체제 유지가 주요 목적이다. 중국과 유럽이 중동 에너지에 크게 의존하고 있어 미국은 이를 전략적 레버리지로 활용할 수 있다.
중국은 중동에서 석유 수입의 절반 이상을 조달한다. 따라서 중국에게 중동 에너지 공급로의 안정성은 사활적 이익이다. 중국은 파키스탄 과다르 항, 스리랑카 함반토타 항 등을 통해 인도양 진출을 강화하여 에너지 수송로를 다변화하고 있다.
러시아는 자체적으로 에너지 자원이 풍부하지만 중동에서 에너지 시장 지배력 확대를 추구한다. OPEC+를 통한 사우디와의 협력으로 국제 유가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또한 중동 국가들의 원전 건설에 참여하여 원자력 에너지 시장에서도 입지를 넓히고 있다.
인프라 건설도 치열한 경쟁 분야다. 중국의 일대일로는 중동을 핵심 경유지로 설정하고 있다. 중국 기업들이 중동 각국에서 항만, 철도, 도로, 통신망 건설에 참여하고 있다. 이런 인프라는 경제적 가치뿐만 아니라 지정학적 영향력 확대에도 기여한다.
미국과 유럽도 인프라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EU의 글로벌 게이트웨이, 미국의 파트너십 포 글로벌 인프라스트럭처 등이 중국의 일대일로에 대응하는 구상이다. 하지만 자금 규모와 실행 속도에서 중국에 뒤지는 상황이다.
사이버 공간과 정보전의 새로운 전장
21세기 중동에서 외부 세력의 경쟁은 사이버 공간으로도 확대되고 있다. 사이버 공격, 정보전, 소셜미디어를 통한 여론 조작 등이 새로운 개입 수단으로 등장했다. 이는 전통적인 군사적·경제적 수단보다 비용이 적게 들면서도 큰 효과를 낼 수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 핵 시설에 가한 스턱스넷(Stuxnet) 공격(2010년)은 사이버전의 새 시대를 열었다. 이란의 우라늄 농축 원심분리기를 마비시킨 이 공격은 사이버 무기의 위력을 보여줬다. 이후 이란도 사이버 공격 능력을 키워 미국과 이스라엘을 상대로 보복 공격을 가하고 있다.
러시아는 정보전과 여론 조작에 특히 능숙하다. RT(Russia Today), 스푸트니크 등 국영 언론을 통해 러시아 관점을 확산시키고 있다. 소셜미디어를 통한 가짜 뉴스 유포, 봇 네트워크를 이용한 여론 조작 등도 활발하다. 시리아 내전에서 러시아의 정보전은 서방의 대응을 무력화하는 데 기여했다.
중국은 디지털 인프라 수출을 통해 사이버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화웨이, ZTE 등 중국 기업들이 중동 각국의 5G 네트워크 구축에 참여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기술 수출을 넘어서 정보 수집과 영향력 행사의 기반이 될 수 있다.
중동 국가들도 사이버 능력을 강화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세계 최고 수준의 사이버 기술을 보유하고 있고, 8200부대 출신들이 설립한 사이버 보안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을 선도한다. UAE는 국가 차원의 사이버 보안 전략을 수립하고 외국 전문가를 대거 영입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도 비전 2030의 일환으로 사이버 보안 산업 육성에 나섰다. 국가 사이버보안청(NCA)을 설립하고 사이버 보안 전문 인력 양성에 투자하고 있다. 이란은 서방의 제재를 우회하고 자국을 방어하기 위해 사이버 능력을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군사 기지와 전략적 거점 확보 경쟁
외부 세력들의 중동 개입에서 군사 기지와 전략적 거점 확보는 핵심 요소다. 지리적 위치, 동맹 관계, 경제적 이익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기지 배치가 결정된다. 최근에는 전통적인 대규모 기지보다는 소규모의 전진 배치 기지나 접근권 확보가 중요해지고 있다.
미국은 중동에서 가장 광범위한 군사 기지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다. 카타르의 알 우데이드 공군기지는 중동 지역 미군의 중추 역할을 한다. 1만1000명의 미군이 주둔하고 있으며 중앙사령부 전진사령부가 위치한다. 바레인의 NSA 바레인은 미 해군 제5함대 사령부로서 페르시아만과 아라비아해에서의 해상 작전을 총괄한다.
쿠웨이트의 캠프 아리프잔과 캠프 부에링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작전의 주요 후방 기지 역할을 했다. UAE의 알 다프라 공군기지에는 F-35 전투기가 배치되어 있어 이란 견제의 최전선이다. 요단의 알 아지라크 기지는 시리아 내 대테러 작전을 지원한다.
러시아는 시리아에서 전략적 거점을 확보했다. 지중해 연안의 타르투스 해군 기지는 소련 시절부터 운영해온 러시아의 유일한 해외 해군 기지다. 2017년 아사드 정부와 49년간 임대 계약을 체결하여 러시아의 지중해 진출 교두보를 확보했다. 흐메이밈 공군기지는 러시아 공군의 중동 작전 중심지 역할을 한다.
러시아는 다른 중동 국가에서도 기지 확보를 모색하고 있다. 이집트에서 러시아군 수송기의 영공 통과권을 확보했고, 수단에서는 홍해 연안 해군 기지 건설을 추진했다. 리비아에서도 동부 정부와 협력하여 군사적 영향력을 확대하려 한다.
중국은 군사 기지보다는 상업적 거점 확보에 집중한다. 지부티의 첫 해외 군사 기지는 예외적 사례다. 대신 중국은 ‘진주목걸이’ 전략을 통해 인도양과 중동 일대에 상업 항만을 확보하고 있다. 파키스탄의 과다르 항, 스리랑카의 함반토타 항, 이란의 차바하르 항 등이 대표적이다.
중국의 상업 항만들은 필요시 군사적 용도로 전환 가능하다는 점에서 ‘이중 용도’ 시설로 평가된다. 중국은 공식적으로는 해외 군사 기지 확장에 소극적이라고 하지만, 상업 인프라를 통해 실질적인 군사적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터키는 카타르와 소말리아에 해외 군사 기지를 운영하고 있다. 2014년 카타르에 설치한 군사 기지는 2017년 카타르 외교 위기 때 중요한 역할을 했다. 소말리아 모가디슈의 터키 군사 기지는 아프리카 진출의 거점이다. 최근에는 리비아에서도 군사적 개입을 확대하고 있다.
이란은 정규 해외 기지는 없지만 시아파 민병대와 대리 세력을 통해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한다. 레바논의 헤즈볼라, 시리아의 친이란 민병대, 이라크의 인민동원군, 예멘의 후티 등이 이란의 지역 거점 역할을 한다. 이를 통해 이란은 ‘저항의 축’을 형성하여 이스라엘과 미국을 견제한다.
경제 제재와 우회 네트워크
경제 제재는 현대 중동에서 강대국들이 자주 사용하는 개입 도구다. 군사적 개입보다 비용이 적게 들면서도 상대국에 상당한 압박을 가할 수 있다. 하지만 제재 효과는 제한적인 경우가 많고, 오히려 제재 우회를 위한 새로운 네트워크가 형성되기도 한다.
미국의 이란 제재가 가장 포괄적이고 장기간 지속되는 사례다. 1979년 인질 사건 이후 시작된 제재는 핵 문제, 테러 지원, 인권 문제 등을 명분으로 계속 확대되었다. 특히 2018년 트럼프 행정부의 JCPOA 탈퇴 이후 ‘최대 압박’ 제재가 이란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주었다.
하지만 이란은 제재 우회를 위한 다양한 방법을 개발했다. 중국, 러시아와의 물물교환, 암호화폐를 이용한 거래, 제3국을 경유한 우회 수출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중국은 미국 제재에도 불구하고 이란산 석유를 지속적으로 수입하여 제재 효과를 반감시켰다.
러시아에 대한 서방 제재도 중동에 파급 효과를 미쳤다.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가 SWIFT에서 배제되고 자산이 동결되면서, 러시아는 중동 국가들과의 거래에서 달러 이외의 통화 사용을 확대했다. 사우디아라비아, UAE 등도 러시아와의 거래에서 자국 통화나 위안화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중국에 대한 미국의 기술 제재도 중동에 영향을 미친다. 화웨이, ZTE 등 중국 기업들의 5G 장비 사용을 제한하는 미국의 압박에 대해 중동 국가들은 서로 다른 반응을 보인다. 이스라엘과 UAE는 미국 압박에 부분적으로 동조하는 반면,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집트는 중국 기업과의 협력을 지속하고 있다.
제재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낳기도 한다. 이란 제재는 중국과 러시아의 중동 진출을 촉진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서방 기업들이 제재로 인해 이란 시장에서 철수하자 중국과 러시아 기업들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이는 장기적으로 미국의 중동 영향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미래 전망과 새로운 도전
중동에서 외부 세력의 개입 패턴은 계속 변화하고 있다. 미국의 상대적 쇠퇴와 중국의 부상, 러시아의 복귀가 새로운 다극화 구조를 만들고 있다. 하지만 이런 변화가 중동의 안정을 가져다줄지는 불확실하다.
기후변화는 중동 지정학에 근본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탈탄소 전환으로 석유 수요가 줄어들면 중동의 지정학적 가치도 변할 수 있다. 반면 리튬, 코발트 등 배터리 원료나 희토류 확보 경쟁이 새로운 개입 동기가 될 수 있다.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기술도 새로운 경쟁 분야다.
인공지능, 양자컴퓨팅, 바이오테크놀로지 등 신기술 분야에서의 경쟁도 중동으로 확산될 것이다. 이미 UAE와 사우디아라비아는 AI 허브 구축에 나서고 있고, 이스라엘은 첨단 기술 강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런 기술 경쟁은 새로운 형태의 외부 세력 개입을 불러올 수 있다.
우주 개발도 새로운 경쟁 영역이다. UAE는 화성 탐사선 발사에 성공했고, 사우디아라비아도 우주 프로그램을 가속화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이미 위성 기술 강국이다. 우주 기술은 통신, 정찰, 내비게이션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되어 국가 경쟁력과 직결된다.
사이버 보안과 정보전 영역에서의 경쟁도 더욱 치열해질 것이다. 중동 국가들의 디지털화가 가속화되면서 사이버 위협도 증가하고 있다. 국가 차원의 사이버 공격, 테러 조직의 사이버 활동, 산업 스파이 등이 새로운 안보 위협으로 부상하고 있다.
결론
중동에서 외부 세력의 개입은 이 지역의 지정학적 중요성, 에너지 자원, 그리고 복잡한 갈등 구조가 결합된 결과다. 미국, 러시아, 중국이라는 3대 강대국의 경쟁은 중동 국가들에게 기회이자 도전이 되고 있다. 중동 국가들은 더 이상 한 강대국에만 의존하지 않고 다각적 관계를 통해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하려 한다.
무기 판매와 군사 기지 확보 경쟁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그 양상이 변하고 있다. 전통적인 대규모 군사 개입보다는 경제적 영향력, 기술 협력, 사이버 능력 등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중국의 경제 우선 전략이 이런 변화를 대표한다.
하지만 강대국 간 경쟁이 중동의 안정과 발전에 기여하는지는 의문이다. 시리아, 리비아, 예멘에서 벌어지는 대리전은 외부 세력의 개입이 오히려 갈등을 장기화시킬 수 있음을 보여준다. 중동 국가들의 헤징 전략도 때로는 일관성 있는 정책 추진을 어렵게 만든다.
미래에는 기후변화, 신기술, 우주 개발 등 새로운 요인들이 중동 지정학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 것이다. 외부 세력들의 개입 방식도 계속 진화할 것이다. 중동 국가들이 이런 변화에 어떻게 적응하고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을지가 향후 중동 질서를 결정하는 핵심 요인이 될 것이다.
결국 중동의 진정한 안정과 발전은 외부 세력의 개입보다는 지역 내 국가들 간의 협력과 합의에 달려 있다. 하지만 현재의 갈등 구조와 강대국 간 경쟁을 고려할 때 이런 지역적 해결책을 찾기는 매우 어려워 보인다. 중동은 당분간 외부 세력들의 경쟁 무대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