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질서의 미래 전망: 다극화 시대의 이스라엘-걸프 정상화와 에너지 전환의 지정학적 함의

기존 중동 질서의 해체와 새로운 축의 등장

21세기 중동 질서는 근본적인 재편 과정에 있다. 20세기 후반을 지배했던 아랍-이스라엘 대립, 냉전 구조, 미국 일극 체제가 동시에 해체되면서 완전히 새로운 지정학적 지형이 나타나고 있다. 이런 변화의 핵심에는 세 가지 거대한 흐름이 있다: 다극화 진행,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 간의 관계 정상화, 그리고 에너지 전환이 가져오는 구조적 변화다.

전통적 중동 질서는 아랍-이스라엘 갈등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후 70여 년간 아랍 국가들과 이스라엘 간의 적대 관계가 중동 정치의 기본 축이었다. 팔레스타인 문제는 아랍 민족주의의 핵심 의제였고, 이스라엘은 적대적 아랍 세계에 둘러싸인 고립된 존재였다.

하지만 이런 구조는 이미 1970년대부터 균열이 시작되었다. 1979년 이집트-이스라엘 평화협정이 첫 번째 돌파구였고, 1994년 요단-이스라엘 평화협정이 뒤를 이었다. 그러나 진정한 변화는 21세기 들어 가속화되었다. 이란의 부상과 시아파-수니파 갈등의 심화, 테러와의 전쟁, 아랍의 봄과 그 여파가 중동의 전략적 우선순위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2020년 아브라함 협정으로 상징되는 이스라엘-걸프 정상화는 이런 변화의 절정이었다. UAE, 바레인, 모로코, 수단이 차례로 이스라엘과 관계를 정상화하면서 70년 넘게 지속된 아랍-이스라엘 대립 구조가 근본적으로 흔들렸다. 이제 아랍 세계는 친이스라엘 진영과 반이스라엘 진영으로 분열되었고, 팔레스타인 문제는 더 이상 아랍 통합의 상징이 아니게 되었다.

동시에 미국 중심의 일극 체제도 쇠퇴하고 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실패, 2008년 금융위기, 중국의 부상 등으로 미국의 상대적 영향력이 감소했다. 러시아의 중동 복귀, 중국의 경제적 진출, 지역 강대국들의 자율성 증대가 새로운 다극화 구조를 만들고 있다.

에너지 전환도 중동 질서에 근본적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기후변화 대응과 탈탄소 정책으로 석유 수요가 장기적으로 감소할 전망이다. 이는 석유 수입국과 수출국 간의 관계, 에너지 안보 개념, 그리고 중동의 지정학적 가치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다.

이스라엘-걸프 정상화의 동력과 함의

2020년 아브라함 협정은 중동 외교사의 분수령이 되었다. UAE와 바레인이 이스라엘과 관계를 정상화한 데 이어 모로코와 수단도 뒤따랐다. 이는 단순한 외교적 돌파구를 넘어서 중동 질서의 근본적 재편을 의미한다.

정상화의 가장 중요한 동력은 이란 위협에 대한 공통 인식이다. 이란의 핵 개발, 지역 내 시아파 민병대 네트워크 구축, 탄도미사일과 드론 기술 확산은 이스라엘과 수니파 아랍 국가들에게 공통의 위협이 되었다. 특히 2019년 사우디 석유 시설에 대한 드론 공격은 걸프 국가들에게 이란의 위협을 실감하게 만들었다.

경제적 이익도 중요한 요인이다. 이스라엘의 첨단 기술과 걸프 국가들의 자본이 결합하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특히 물 기술, 농업 기술, 사이버 보안, 핀테크 등에서 이스라엘의 기술력은 걸프 국가들의 경제 다각화에 기여할 수 있다. UAE는 이미 이스라엘과 100억 달러 규모의 투자 기금을 조성했다.

지정학적 계산도 작용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적극적 중재와 미국의 안보 공약이 걸프 국가들의 결정을 용이하게 만들었다. 또한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중동 이탈 가능성에 대비하여 지역 내 협력 체제를 구축할 필요성도 있었다.

정상화는 여러 차원에서 중동 질서를 변화시키고 있다. 첫째, 아랍-이스라엘 갈등이라는 전통적 대립 구조가 약화되고 있다. 팔레스타인 문제는 여전히 중요하지만 더 이상 아랍 외교의 절대적 우선순위가 아니다. 둘째, 이란 견제를 위한 새로운 협력 축이 형성되고 있다. 이스라엘, 사우디, UAE, 바레인 등이 비공식적 안보 협력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셋째, 경제 통합이 가속화되고 있다. 이스라엘과 걸프 국가들 간의 무역, 투자, 기술 이전이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 넷째, 군사 협력도 확대되고 있다. 정보 공유, 공동 훈련, 무기 기술 협력 등이 이뤄지고 있다. 다섯째, 국제 사회에서 공동 대응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유엔 등 국제기구에서 이란 관련 결의안에 공동 대응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하지만 정상화에는 한계도 있다. 팔레스타인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아랍 대중들의 반발이 여전하다. 2023년 10월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과 가자 전쟁은 이런 한계를 드러냈다. 아랍 여론의 반이스라엘 정서가 다시 부각되면서 정상화 확대에 제동이 걸렸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정상화 여부가 향후 중동 질서의 향방을 결정할 핵심 변수다. 사우디는 아랍 세계의 맹주로서 막대한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사우디의 정상화는 다른 아랍 국가들의 줄서기를 촉발할 수 있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구체적 진전 없이는 사우디의 정상화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에너지 전환이 중동에 미치는 영향

기후변화 대응과 에너지 전환은 중동 질서에 근본적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파리기후협정 이후 전 세계가 탄소중립을 목표로 삼으면서 화석연료 수요가 장기적으로 감소할 것이 확실시된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30년경 석유 수요가 정점에 달한 후 감소세로 돌아설 것으로 전망한다.

이런 변화는 중동 산유국들에게 실존적 도전이다. 석유 수익에 크게 의존하는 경제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동시에 석유가 지정학적 무기로서의 영향력을 잃으면서 중동의 전략적 가치도 변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변화는 위기이자 기회가 될 수 있다.

중동 산유국들은 두 가지 전략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첫째는 석유 산업의 경쟁력을 극대화하여 탈탄소 시대에도 최후의 공급자가 되는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 생산비는 배럴당 3달러로 세계 최저 수준이다. 수요가 감소해도 고비용 생산지역을 먼저 퇴출시키고 시장 점유율을 유지할 수 있다.

둘째는 신재생에너지 강국으로 변신하는 것이다. 중동 지역은 태양광과 풍력 발전에 최적의 자연조건을 갖고 있다. 사우디는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50%까지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UAE는 이미 세계 최대 규모의 태양광 발전단지를 가동 중이다.

수소 경제는 중동에게 새로운 기회다. 풍부한 태양광을 이용한 그린수소 생산이나 천연가스를 활용한 블루수소 생산에서 중동은 비교우위를 갖는다. 사우디는 2030년까지 연간 400만 톤의 수소를 생산하여 세계 최대 수소 수출국이 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네옴 프로젝트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그린수소 생산시설이 포함되어 있다.

탄소포집·저장·활용(CCUS) 기술도 중요한 전환 도구다. 석유·가스 산업에서 배출되는 탄소를 포집하여 저장하거나 다른 용도로 활용하는 기술이다. UAE는 중동 최초로 상업적 규모의 CCUS 프로젝트를 가동하고 있다.

에너지 전환은 중동의 지정학에도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석유 수송로인 호르무즈 해협의 전략적 중요성이 감소할 수 있다. 반면 신재생에너지 기술과 핵심 광물 확보 경쟁이 새로운 지정학적 쟁점이 될 수 있다. 리튬, 코발트, 희토류 등 배터리와 태양광 패널에 필요한 원료의 공급망 확보가 중요해진다.

중동 국가들 간의 관계도 변할 수 있다. 에너지 협력이 새로운 외교적 도구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이집트와 요단은 태양광 발전에 적합한 조건을 갖고 있지만 자본이 부족하다. 걸프 국가들의 투자와 기술이 결합되면 지역 에너지 통합이 가능하다.

하지만 에너지 전환이 중동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완전히 없애지는 못할 것이다. 전환 과정에서 천연가스의 역할이 여전히 중요하고, 석유화학 원료로서 석유의 수요는 지속될 것이다. 또한 중동이 신재생에너지 허브로 변신한다면 오히려 지정학적 중요성이 더 커질 수도 있다.

다극화 시대의 새로운 균형

중동에서 미국 일극 체제의 종료와 다극화 진행은 이미 되돌릴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미국, 러시아, 중국이라는 3대 강대국과 이란, 터키,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지역 강대국들이 복잡한 경쟁과 협력의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미국은 여전히 중동에서 가장 강력한 외부 세력이지만 예전과 같은 지배적 지위는 잃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실패, 시리아 내전에서의 소극적 대응, 사우디와의 관계 악화 등으로 미국의 신뢰도가 떨어졌다. 바이든 행정부의 아시아 회귀 정책도 중동에서 미국의 관심과 자원 배분을 줄이고 있다.

러시아는 2015년 시리아 개입을 통해 중동에 극적으로 복귀했다. 아사드 정권을 구하고 지중해에서 군사적 거점을 확보한 러시아는 이제 중동의 주요 행위자로 인정받고 있다. 러시아의 강점은 이념에 얽매이지 않는 실용적 외교와 상대적으로 저렴한 무기 공급이다.

중국은 군사적 개입보다는 경제적 진출에 집중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일대일로의 서쪽 종착점인 중동에서 인프라 투자와 에너지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2023년 사우디-이란 관계 정상화를 중재한 것은 중국의 외교적 역량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지역 강대국들도 더욱 자율적으로 행동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미국과의 전통적 동맹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중국, 러시아와의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터키는 NATO 회원국이면서도 러시아제 무기를 도입하고 시리아와 리비아에서 독자적 정책을 펼친다. 이란은 미국 제재 속에서도 중국, 러시아와의 협력을 통해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

이런 다극화는 중동 국가들에게 기회이자 도전이다. 더 많은 선택지가 생겨 전략적 자율성을 높일 수 있지만, 동시에 복잡한 균형 외교를 해야 하는 부담도 있다. 강대국들 사이에서 잘못된 선택을 하면 큰 대가를 치를 수 있다.

다극화 시대의 중동에서는 유연한 동맹과 파트너십이 고정된 진영보다 중요해질 것이다. 이슈별로 다른 협력 파트너를 선택하는 ‘가변 기하학적 동맹’이 일반화될 것이다. 예를 들어 에너지 문제에서는 러시아와 협력하고, 경제 개발에서는 중국과 협력하며, 안보 문제에서는 미국과 협력하는 식이다.

지역 기구의 역할도 변할 것이다. 걸프협력회의(GCC), 아랍연맹 같은 기존 조직들은 영향력이 제한적이다. 대신 이슈별 협력체나 소다자 협의체가 더 중요해질 수 있다. 아브라함 협정 당사국들 간의 협력, 동지중해 가스 포럼, 중동 평화 구상 등이 그런 예다.

새로운 안보 위협과 대응

21세기 중동은 전통적 안보 위협과 새로운 위협이 동시에 존재하는 복합적 안보 환경에 직면해 있다. 국가 간 전쟁의 가능성은 줄어들었지만 비국가 행위자의 위협, 사이버 공격, 기후변화 등 새로운 도전이 등장했다.

테러와 극단주의는 여전히 중요한 위협이다. ISIS는 영토적 기반을 잃었지만 사상과 네트워크는 여전히 존재한다. 알카에다 계열 조직들도 시리아, 예멘, 이라크 등에서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이들은 정부 통제력이 약한 지역을 근거지로 삼아 인근 국가들을 위협한다.

이란의 대리전 전략도 지역 안정을 위협하는 요소다. 레바논의 헤즈볼라, 예멘의 후티, 이라크의 시아파 민병대, 시리아의 친이란 세력 등이 ‘저항의 축’을 형성하여 이스라엘과 미국을 견제한다. 이들은 정규군이 아니어서 전통적 억제 논리가 적용되기 어렵다.

드론과 미사일 기술의 확산도 새로운 위협이다. 이란이 개발한 샤헤드 시리즈 자살 드론은 사우디 석유 시설을 공격하여 충격을 줬다. 후티 반군도 이란제 드론과 미사일로 사우디와 UAE를 공격하고 있다. 이런 비대칭 무기는 상대적으로 저렴하면서도 큰 피해를 줄 수 있어 지역 안보에 새로운 도전이 되고 있다.

사이버 공격도 증가하고 있다. 국가 차원의 사이버 공격, 테러 조직의 사이버 활동, 산업 스파이 등이 새로운 안보 위협으로 부상했다. 2010년 이란 핵 시설에 대한 스턱스넷 공격 이후 중동에서 사이버전이 일상화되었다. 석유 시설, 전력망, 통신망 등 핵심 인프라에 대한 사이버 공격은 국가 안보에 직접적 위협이 된다.

기후변화도 장기적 안보 위협이다. 중동은 기후변화에 가장 취약한 지역 중 하나다. 기온 상승, 강수량 감소, 사막화 진행 등으로 물 부족과 식량 부족이 심화될 것이다. 이는 인구 이동, 사회 불안, 국가 간 갈등을 촉발할 수 있다. 특히 물 자원을 둘러싼 갈등이 새로운 분쟁 요인이 될 수 있다.

이런 새로운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전통적 군사력보다는 종합적 안보 역량이 필요하다. 사이버 보안, 정보 공유, 국경 통제, 사회 통합 등이 중요해진다. 또한 단일 국가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지역 차원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중동 국가들은 새로운 안보 협력 체제를 모색하고 있다. 걸프 국가들은 통합 미사일 방어 시스템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사이버 보안 분야에서도 정보 공유와 공동 대응 체제를 만들고 있다. 테러 대응에서는 정보 공유와 국경 통제 협력이 확대되고 있다.

하지만 지역 안보 협력에는 정치적 장애물이 많다. 이란-사우디 갈등, 터키와 아랍 국가들 간의 갈등, 이스라엘-아랍 갈등 등이 포괄적 안보 협력을 어렵게 만든다. 신뢰 구축과 정치적 합의가 선행되어야 효과적인 안보 협력이 가능하다.

경제 통합과 새로운 성장 동력

중동은 경제 통합과 다각화를 통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고 있다. 석유 의존 경제에서 벗어나 지식 기반 경제로 전환하려는 노력이 가속화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지역 내 경제 협력과 통합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아브라함 협정은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 간의 경제 협력을 크게 확대시켰다. 이스라엘의 첨단 기술과 걸프 국가들의 자본이 결합하여 새로운 시너지를 창출하고 있다. 특히 농업 기술, 물 기술, 의료 기술, 사이버 보안 분야에서 협력이 활발하다.

UAE는 이스라엘과의 무역량이 2021년 6억 달러에서 2023년 25억 달러로 급증했다. 두바이는 이스라엘 기업들의 중동 진출 허브 역할을 하고 있다. 바레인도 이스라엘과 핀테크, 물류 분야에서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에너지 분야에서도 새로운 협력이 나타나고 있다. 동지중해 가스전 개발을 위한 이스라엘-그리스-키프로스 협력, 이집트-이스라엘 간 천연가스 거래, 요단과 UAE 간 태양광 발전 협력 등이 대표적 사례다. 이런 에너지 협력은 단순한 경제적 이익을 넘어서 지정학적 협력의 기반이 되고 있다.

디지털 경제도 새로운 성장 동력이다. 중동 각국이 디지털 전환을 가속화하면서 핀테크, 전자상거래, 디지털 헬스케어 등이 급성장하고 있다. UAE와 사우디아라비아는 스마트시티와 인공지능 허브 구축에 대규모 투자를 하고 있다.

관광업도 경제 다각화의 핵심 분야다. UAE,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가 관광 인프라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다. 2022 카타르 월드컵, 2025 리야드 엑스포, 2027 사우디 아시안 게임 등 대형 이벤트를 통해 관광업을 육성하고 있다.

하지만 경제 통합에는 여러 장애물이 있다. 첫째, 유사한 경제 구조로 인한 경쟁 관계다. 걸프 국가들은 모두 석유 수출과 금융업, 관광업에 의존하고 있어 보완적 관계보다는 경쟁 관계에 있다. 둘째, 정치적 갈등이 경제 협력을 제약한다. 2017-2021년 카타르 봉쇄 사태가 대표적 사례다.

셋째, 제도적 기반의 부족이다. 중동에는 EU나 ASEAN 같은 효과적인 지역 경제 통합 기구가 없다. 아랍연맹이나 GCC는 정치적 성격이 강하고 경제 통합 기능은 제한적이다. 넷째, 인프라 연결성이 부족하다. 국가 간 교통, 통신, 에너지 인프라 연결이 미흡하여 경제 통합을 어렵게 만든다.

미래에는 이런 장애물을 극복하고 경제 통합을 심화할 필요가 있다. 역내 자유무역협정 체결, 공동 인프라 프로젝트 추진, 표준화와 규제 조화 등이 필요하다. 특히 디지털 경제와 녹색 경제 분야에서 지역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미래 시나리오와 변수

중동 질서의 미래는 여러 변수에 따라 다양한 시나리오가 가능하다. 핵심 변수로는 미중 경쟁의 양상, 이란 핵 문제의 향방, 팔레스타인 문제의 진전, 에너지 전환의 속도, 기후변화의 영향 등이 있다.

첫 번째 시나리오는 ‘안정적 다극화’다. 미국, 중국, 러시아가 중동에서 세력균형을 이루고, 지역 국가들이 이를 활용하여 발전을 추구하는 경우다. 이란 핵 문제가 외교적으로 해결되고, 사우디-이스라엘 정상화가 성사되며, 팔레스타인 문제에도 진전이 있어 지역 전체가 상대적 안정을 누리는 상황이다.

이 시나리오에서는 경제 협력이 정치적 갈등을 완화하는 역할을 한다.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중동 국가들이 신재생에너지 허브로 성공적으로 변신하고, 기술 협력과 투자가 활발해진다. 아브라함 협정이 확대되어 더 많은 아랍 국가들이 이스라엘과 관계를 정상화한다. 지역 안보 협력 체제도 구축되어 테러와 사이버 위협에 효과적으로 대응한다.

두 번째 시나리오는 ‘신냉전 구조’다. 미중 경쟁이 격화되면서 중동이 두 진영으로 분열되는 경우다. 미국은 이스라엘, 사우디아라비아, UAE 등과의 동맹을 강화하고, 중국은 이란, 시리아 등과의 협력을 확대한다. 러시아는 기회주의적으로 양쪽을 오가며 영향력을 확대한다.

이 시나리오에서는 경제적 단절과 기술 경쟁이 심화된다. 중국의 일대일로와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이 중동에서 경쟁하며, 각 진영은 상대방의 기술과 투자를 배제하려 한다. 이란 핵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제재가 지속되며, 이스라엘-아랍 정상화도 제한적으로 머문다.

세 번째 시나리오는 ‘지역 패권 경쟁’이다. 강대국들이 중동에서 상대적으로 후퇴하고 지역 강대국들 간의 경쟁이 주도하는 상황이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경쟁, 터키와 UAE의 갈등, 이스라엘과 이란의 대립이 중동 질서를 결정한다.

이 시나리오에서는 대리전과 무력 충돌의 위험이 높다. 시리아, 예멘, 리비아에서 벌어지는 갈등이 장기화되고, 새로운 갈등이 레바논, 이라크 등지로 확산될 수 있다. 핵 확산 위험도 증가한다. 이란이 핵무장을 완료하면 사우디아라비아와 터키도 핵 개발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네 번째 시나리오는 ‘혼돈의 시대’다. 복합적 위기가 동시에 발생하여 중동 전체가 불안정에 빠지는 최악의 상황이다. 기후변화로 인한 물 부족과 식량 위기, 경제 침체, 대규모 난민 발생, 테러 확산 등이 동시에 일어난다.

이 시나리오에서는 국가 붕괴와 사회 해체가 광범위하게 일어난다. 시리아, 예멘, 리비아처럼 중앙 정부의 통제력을 상실한 국가들이 늘어난다. 난민과 실향민이 대규모로 발생하여 지역 전체가 불안정해진다. 극단주의와 테러리즘이 다시 확산되고, 국제 개입도 효과적이지 못하다.

핵심 동인과 불확실성

중동 질서의 미래를 결정할 가장 중요한 동인은 에너지 전환의 속도와 성공 여부다. 탈탄소 정책이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되면 산유국들의 경제적 기반이 급속히 무너질 수 있다. 반대로 전환이 지연되면 기후변화의 영향이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산유국들이 신재생에너지로의 전환에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에 따라 중동의 미래가 크게 달라진다.

이란 핵 문제도 결정적 변수다. 이란이 핵무장을 완료하면 중동의 군사적 균형이 근본적으로 바뀐다. 사우디아라비아, 터키, 이집트 등도 핵 개발에 나설 가능성이 높아진다. 반면 이란 핵 문제가 외교적으로 해결되면 지역 긴장이 크게 완화될 수 있다. JCPOA 복원이나 새로운 핵 협상의 성사 여부가 중동 안보의 향방을 좌우할 것이다.

팔레스타인 문제의 진전도 중요하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이 해결되지 않으면 이스라엘-아랍 정상화에 한계가 있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주요 아랍 국가들은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진전 없이는 정상화에 나서기 어렵다. 반면 두 국가 해법이 실현되면 중동 평화에 획기적 전환점이 될 수 있다.

미중 경쟁의 양상도 중동에 큰 영향을 미친다. 두 강대국이 중동에서 직접적으로 대립하면 지역 국가들이 선택을 강요받을 수 있다. 반면 미중이 중동에서는 공존하면서 다른 지역에서 경쟁한다면 중동 국가들의 전략적 자율성이 높아질 것이다.

기후변화의 영향도 갈수록 중요해진다. 중동은 기후변화에 가장 취약한 지역 중 하나다. 기온 상승, 강수량 감소, 극한 기상 현상 증가가 이미 현실이 되고 있다. 이런 변화가 사회 불안과 정치적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 특히 물 부족 문제는 국가 간 갈등의 새로운 원인이 될 수 있다.

기술 발전도 중동 질서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인공지능, 사이버 기술, 드론 기술, 우주 기술 등의 발전이 군사적 균형을 바꿀 수 있다. 특히 이스라엘과 UAE 같은 기술 선진국과 다른 국가들 간의 기술 격차가 벌어질 수 있다.

인구 구조 변화도 고려해야 할 요소다. 중동은 여전히 젊은 인구 비중이 높지만 출산율이 감소하고 있다. 청년 실업과 사회적 불만이 정치적 불안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 반면 젊은 세대의 가치관 변화가 사회 개혁과 민주화의 동력이 될 수도 있다.

지역 협력의 가능성과 한계

중동의 미래는 지역 내 협력 확대에 크게 달려 있다. 안보, 경제, 환경 문제 등은 단일 국가의 노력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렵다. 지역 차원의 협력과 통합이 필요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많은 장애물이 있다.

경제 협력은 가장 가능성이 높은 분야다. 에너지 전환, 물 관리, 식량 안보 등에서 지역 협력의 필요성이 크다. 특히 걸프 국가들의 자본과 이스라엘의 기술, 이집트와 요단의 노동력이 결합되면 큰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아브라함 협정이 이런 협력의 촉매 역할을 하고 있다.

안보 협력도 점차 확대되고 있다. 테러, 사이버 위협, 불법 이민 등 공통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정보 공유와 공동 대응 체제가 구축되고 있다. 걸프 국가들과 이스라엘 간의 안보 협력이 대표적 사례다. 하지만 이란과 시리아 같은 국가들은 이런 협력에서 배제되어 있다.

환경 협력의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기후변화, 물 부족, 대기 오염 등은 국경을 넘나드는 문제다. 요단강과 티그리스-유프라테스강 같은 국제 하천의 공동 관리, 사막화 방지, 신재생에너지 협력 등이 필요하다. 하지만 정치적 갈등이 환경 협력을 어렵게 만든다.

하지만 지역 협력에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 첫째, 권위주의 체제의 한계다. 대부분의 중동 국가들이 권위주의 체제여서 시민사회의 역할이 제한적이다. 정부 간 협력에만 의존하면 지속성과 효과성에 한계가 있다.

둘째, 종파 갈등과 지정학적 경쟁이다. 수니파-시아파 갈등, 아랍-페르시아 경쟁, 이스라엘-아랍 갈등 등이 여전히 존재한다. 이런 갈등이 해결되지 않으면 포괄적 지역 협력은 어렵다.

셋째, 외부 세력의 개입이다. 강대국들이 각자의 이익을 위해 중동 국가들을 이간질할 수 있다. 지역 협력이 강대국의 이익에 반한다고 판단되면 방해할 수도 있다.

넷째, 경제 구조의 유사성이다. 많은 중동 국가들이 석유 수출이나 서비스업에 의존하고 있어 보완적 관계보다는 경쟁 관계에 있다. 진정한 경제 통합을 위해서는 산업 구조의 다변화가 선행되어야 한다.

글로벌 차원의 함의

중동 질서의 변화는 글로벌 차원에서도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중동은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지정학적 요충지이자 세계 에너지 공급의 핵심 지역이다. 중동의 안정과 번영은 세계 경제와 안보에 직접적 영향을 미친다.

에너지 안보 측면에서 중동의 중요성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다. 탈탄소 전환이 진행되더라도 과도기에는 석유와 천연가스의 역할이 여전히 중요하다. 중동이 신재생에너지 허브로 변신한다면 오히려 글로벌 에너지 시스템에서 역할이 더 커질 수 있다.

경제적으로도 중동의 잠재력은 크다. 6억 명의 인구와 3조 달러의 경제 규모, 수조 달러의 주권부펀드를 보유한 중동은 거대한 시장이자 투자 주체다. 중동 경제가 다각화되고 개방되면 글로벌 경제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안보 측면에서도 중동 안정은 글로벌 평화에 중요하다. 중동에서 발생하는 갈등은 테러 확산, 난민 발생, 에너지 공급 중단 등을 통해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친다. 반면 중동이 안정되면 글로벌 안보 환경도 개선될 것이다.

기후변화 대응에서도 중동의 역할이 중요하다. 중동은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은 지역이지만 동시에 신재생에너지 잠재력도 크다. 중동이 탈탄소 전환에 성공한다면 글로벌 기후변화 대응에 큰 기여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중동 혼돈이 글로벌 시스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도 크다. 에너지 가격 급등, 난민 대량 발생, 테러 확산, 핵 확산 등은 모두 글로벌 안정을 위협하는 요소들이다. 따라서 국제사회의 중동 안정화 노력이 중요하다.

정책적 시사점과 제언

중동 질서의 미래 전망은 여러 정책적 시사점을 제공한다. 첫째, 중동 국가들은 다변화 전략을 통해 위험을 분산해야 한다. 경제적으로는 탈석유 경제로의 전환을 가속화하고, 외교적으로는 헤징 전략을 통해 여러 강대국과 균형 잡힌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둘째, 지역 협력 메커니즘을 강화해야 한다. 기존의 아랍연맹이나 GCC 같은 조직들은 실효성이 제한적이다. 새로운 형태의 협력체나 이슈별 협의체를 만들어 실질적 협력을 확대해야 한다. 특히 경제 통합과 안보 협력에 중점을 둬야 한다.

셋째, 갈등 해결과 신뢰 구축에 노력해야 한다. 이란 핵 문제, 팔레스타인 문제, 시리아 내전 등 주요 갈등들의 해결 없이는 지역 안정이 어렵다. 단계적이고 점진적 접근을 통해 신뢰를 쌓고 갈등을 완화해야 한다.

넷째, 새로운 도전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다. 기후변화, 사이버 위협, 기술 변화 등에 대비한 역량을 구축해야 한다. 특히 젊은 세대의 교육과 훈련에 투자하여 미래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

다섯째, 국제사회의 건설적 역할이 중요하다. 강대국들은 제로섬 경쟁보다는 협력을 통해 중동 안정에 기여해야 한다. 유엔 등 국제기구들도 갈등 예방과 중재에 더 적극적 역할을 해야 한다.

결론

중동 질서는 현재 역사적 전환점에 서 있다. 아랍-이스라엘 대립 구조의 해체, 미국 일극 체제의 종료, 에너지 전환의 가속화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완전히 새로운 질서가 등장하고 있다. 이런 변화는 기회이자 위험이다.

가장 낙관적인 시나리오에서는 중동이 안정적 다극화를 통해 평화와 번영을 누릴 수 있다. 이스라엘-아랍 정상화가 확대되고, 에너지 전환이 성공하며, 지역 협력이 활성화되어 ‘새로운 중동’이 탄생할 수 있다. 하지만 가장 비관적인 시나리오에서는 복합적 위기가 겹쳐 혼돈의 시대가 올 수도 있다.

어떤 시나리오가 현실이 될지는 중동 국가들과 국제사회의 선택과 노력에 달려 있다. 지혜롭고 균형 잡힌 정책을 통해 긍정적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 아니면 근시안적 이익 추구로 혼돈을 자초할지는 향후 10-20년이 결정적 시기가 될 것이다.

중동의 미래는 단순히 이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다. 글로벌 에너지 시스템, 기후변화 대응, 국제 안보, 세계 경제에 모두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중동의 평화와 번영은 전 인류의 공통 과제라 할 수 있다. 지역적 해결책과 글로벌 협력이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지속 가능한 중동 질서가 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