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요약: 6월 6일부터 시작된 LA 이민단속 반대 시위와 트럼프 행정부의 방위군 투입은 현대 국가권력이 어떻게 ‘질서 유지’라는 명목으로 시민의 자유와 저항권을 억압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는 푸코가 『감시와 처벌』에서 제시한 현대 권력의 작동 방식과 민주주의의 근본적 가치들 사이의 긴장을 현실에서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사례다.
폭력에서 통제로: 현대 권력의 변주
6월 6일 ICE(미국 이민세관집행국)의 대규모 단속으로 118명이 체포되면서 시작된 LA 시위는 단순한 이민 정책 반발을 넘어선 권력과 저항의 충돌이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6월 7일 Title 10 조항을 근거로 2,000명의 캘리포니아 주방위군을 연방 소속으로 전환하여 동원한 것은 현대 국가권력의 특징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푸코가 『감시와 처벌』에서 분석한 바와 같이, 18세기 이후 주류적인 처벌 형태로 자리잡은 ‘감옥’은 일종의 훈련을 통해 수감자들을 순종하는 신체로 재생산해낸다. 이는 과거 군주권력이 공개적이고 잔인한 처형을 통해 권력을 과시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이다. 현대의 권력은 더 은밀하고 효율적이다.
LA 사태에서도 이런 양상이 명확히 드러난다. 시위대를 향해 방패와 소총으로 무장한 군인들이 접근하고, 최루탄과 고무탄을 쏘며 진압에 나서는 모습은 표면적으로는 ‘질서 유지’라는 명목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시민들의 저항 의지를 꺾기 위한 심리적 압박이다.
감시 사회의 현실화
파라마운트 지역에서 시위대 수백 명이 이민당국 요원들과 충돌하여 진압요원들이 고무탄과 섬광탄, 최루탄을 발사하고, 시위대가 거리 곳곳에서 나무와 쓰레기를 불에 태우는 등 매우 격렬한 시위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현장 상황은 푸코가 말한 “현대 사회의 권력은 감시를 통해 사람들의 의식을 통제하는 것”이라는 분석을 현실에서 확인해준다.
근대사회는 만인이 감시와 통제의 대상이 됨으로써 누구나 감시망에 노출될 수 있는 평등화된 개인화 사회라고 할 수 있다. LA 시위 과정에서 오스트레일리아 기자가 미국 경찰이 발사한 고무탄에 맞은 사건은 권력의 감시와 통제가 언론까지 제약하려는 시도로 해석될 수 있다.
시민저항과 민주주의의 재정의
그러나 이 사건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시민들의 저항이 가진 의미다. 캐런 배스 로스앤젤레스 시장은 “이민자들이 자랑스럽게 살고 있는 도시의 시장으로서, 우리 도시에 여러모로 기여하는 저는 이번 일에 대해 깊은 분노를 느낍니다. 이러한 행위는 우리 지역 사회에 공포를 조장하고 도시의 기본 안전 원칙을 무너뜨립니다”라고 비판했다.
저항권은 국가권력에 의하여 헌법의 기본원리에 대한 중대한 침해가 행하여지고 그 침해가 헌법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는 것으로서 다른 합법적인 구제수단으로는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때에 마지막 헌법 보호 수단이자 기본권 보장의 최후의 수단으로서 국민이 자기의 권리, 자유를 지키기 위하여 실력으로 저항하는 권리라는 관점에서 볼 때, LA 시위는 단순한 ‘폭동’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를 지키려는 시민들의 정당한 권리 행사로 해석될 수 있다.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자국민에게 군대를 배치하겠다는 발상은 광기”라며 반발했고, “연방정부가 캘리포니아주 방위군을 장악하고 LA에 병력 2천명을 투입한 이유는 법집행인력 부족이 아니라 저들이 거창하게 보여줄 것을 원한 데 있다”며 이러한 행보가 일종의 정치적 쇼임을 지적했다.
자유와 공공성의 재조합
참여민주주의는 1960년대 신좌파의 등장과 함께 자유주의적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유력한 대안으로 부상했다. LA 시위는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시위 참가자들은 단순히 이민 정책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목소리가 제도권 정치를 통해 반영되지 않을 때 직접 행동으로 나서는 참여민주주의의 실천이었다.
12살이 된 청소년도 시위에 참가하여 “트럼프 대통령이 아이들을 부모로부터 떼어놓고 있어요. 부모들은 그저 자녀들에게 더 나은 삶을 주려고 한 것이었어요”라고 말한 것은 민주주의가 단순히 절차적 정당성을 넘어 실질적 자유와 인권 보장을 포함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권력의 미시물리학과 저항의 가능성
푸코는 권력의 새 기술이 피지배자들의 신체활동에 대해 면밀한 통제와 지속적인 관리를 통해 통제의 강도를 높여나간다고 분석했다. 이로써 규율 권력은 인간의 신체를 권력 장치 속으로 편입시키고, 복종하는 신체, 규율화된 신체, 순종하는 신체로 재구성한다.
하지만 LA 시위는 이런 권력의 작동에 대한 시민들의 거부감과 저항 의지를 보여준다. 보스턴, 포틀랜드, 솔트레이크시티, 하트퍼드, 탬파, 크라멘토, 휴스턴, 샌안토니오, 피닉스, 시애틀, 필라델피아, 디트로이트, 볼티모어, 시카고에서도 연대 시위가 열렸다는 사실은 권력의 통제에 맞서는 시민들의 연대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음을 의미한다.
민주주의의 윤리적 책임
이 사건이 던지는 가장 중요한 질문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국가권력과 시민저항 사이의 적정한 균형점이 어디인가 하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는 고전적 자유주의 원리 하에 대의 민주주의가 작동되는 형태의 통치 체제로, 다원주의 하의 선거 실시, 권력 분립, 법치주의, 사유재산 인정 하의 시장 경제, 인권의 평등, 사회권, 시민권, 시민 자유, 정치적 자유 보장 등을 특징으로 한다.
그런데 LA 사태는 이런 자유민주주의의 원칙들이 현실에서 어떻게 제약받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전국 2천여 곳에서 열린 집회에 500만 명이 참가했다는 사실은 단순히 소수의 ‘과격분자’들이 일으킨 소동이 아니라, 광범위한 시민들의 정당한 우려와 저항이었음을 시사한다.
결론: 권력과 저항의 새로운 균형점 찾기
LA 이민단속 반대 시위와 방위군 투입 사건은 21세기 민주주의가 직면한 근본적 딜레마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한편으로는 국가가 질서 유지와 법 집행이라는 명목으로 시민들의 자유와 저항권을 제약하려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시민들이 제도권 정치의 한계를 넘어선 직접 행동으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려 한다.
푸코는 “모두가 스스로 평화롭게 일하면서 자유로운 결합에 근거하여 살아간다는 길”을 제시하며 “어떤 강제도, 강요도, 지시도, 명령도, 훈시도, 감시도, 통제도, 규율도, 훈련도 있어서는 안된다”고 했다. 하지만 현실의 민주주의는 이런 이상과는 거리가 멀다.
결국 이 사건이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단순히 선거와 대의제도로만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의 자유로운 의사 표현과 저항권이 보장될 때 비로소 실현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국가권력은 아무리 정당한 명분을 내세워도 시민들의 기본권을 침해할 때는 그 정당성에 의문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LA의 거리에서 벌어진 이 충돌은 단순히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 세계 민주주의 국가들이 공통으로 직면한 권력과 저항, 질서와 자유 사이의 긴장을 보여주는 거울이다. 앞으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민주주의는 이런 긴장을 어떻게 창조적으로 해결해나갈 것인가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