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무대와 저항의 목소리: 워싱턴 군사 퍼레이드와 ‘No Kings’ 시위의 상징 정치

서론: 대조되는 두 개의 무대

2025년 6월 14일, 워싱턴 D.C.에서는 미군 창설 250주년을 기념하는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가 열렸다. 트럼프 대통령의 79번째 생일과 겹친 이날, 150대의 차량과 50대의 항공기, 6,600명의 군인이 참가한 이 퍼레이드는 단순한 기념행사를 넘어선 정치적 상징의 무대가 되었다.

하지만 같은 날, 미국 전역 2,000여 도시에서 ‘No Kings’ 시위가 동시다발적으로 펼쳐졌다. 시위 조직자들은 500만 명 이상이 참여했다고 추산한다고 발표했다. 한쪽에서는 권력의 위엄을 과시하는 군사 퍼레이드가, 다른 쪽에서는 ‘왕은 필요 없다’고 외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러한 대조적인 장면은 단순한 정치적 갈등을 넘어, 현대 사회에서 권력이 어떻게 작동하고 저항이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다. 미셸 푸코의 권력-감시 이론과 에밀 뒤르켐의 집단 의식 이론을 통해 이 사건을 분석해보면, 권력의 상징화와 집단 저항의 메커니즘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푸코의 눈으로 본 군사 퍼레이드: 권력의 스펙터클

왕권에서 규율권력으로의 전환

푸코는 18세기와 19세기를 거치며 ‘왕권적 권력(sovereign power)’이 점진적으로 ‘규율권력(disciplinary power)’으로 전환되었다고 주장한다. 왕권적 권력은 왕이나 중앙 권위에 대한 복종을 바탕으로 하며, 필요시 장엄한 권력의 시연을 통해 작동한다.

트럼프의 군사 퍼레이드는 흥미롭게도 이러한 ‘왕권적 권력’의 현대적 재현으로 해석할 수 있다. 푸코가 언급한 “권력의 스펙터클”의 전통을 따르는 것처럼, 이 퍼레이드는 권력자의 위엄을 과시하고 시민들에게 그 권력을 각인시키려는 의도를 드러낸다.

판옵티콘과 현대적 감시

푸코가 제시한 판옵티콘(Panopticon) 개념은 권력이 어떻게 내재화되는지를 보여준다. 감시당하고 있다는 의식 자체가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를 규율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군사 퍼레이드 당일, 워싱턴 D.C.에는 18마일에 달하는 방호벽이 설치되었고, 퍼레이드 경로 주변 몇 블록 내에는 대규모 주차 제한이 실시되었으며, 내셔널 몰과 펜실베이니아 애비뉴가 차단되었다.

이러한 광범위한 보안 조치는 단순히 안전을 위한 것이 아니라, 권력이 얼마나 광범위하게 감시하고 통제할 수 있는지를 시연하는 장치로도 작동한다. 푸코가 말한 대로 “권력은 어디에나 있으며”, 이는 담론과 지식, 그리고 ‘진리의 체제’ 속에 스며들어 있다.

규율권력의 현대적 발현

현대의 규율권력은 더욱 미묘하고 분산되어 있으며 지속적이다. 이는 감시를 통해 개인을 규율하고 규범을 내재화하도록 유도하는 기관들(감옥, 병원, 학교, 군대)을 통해 증식한다.

군사 퍼레이드는 이러한 규율권력의 집약적 표현이다. 탱크와 수천 명의 군인이 참가한 이 대규모 퍼레이드는 전국적인 트럼프 반대 시위와 동시에 벌어졌다. 이는 권력이 단순히 물리적 강제력만이 아니라 상징적 위압을 통해서도 작동함을 보여준다.

뒤르켐의 집단 의식과 ‘No Kings’ 시위

집단 의식의 형성과 작동

뒤르켐에 따르면 집단 의식(collective consciousness)은 “사회의 평균적 구성원들에게 공통된 믿음과 감정의 총체”이다. 이는 개인의 의식을 넘어서는 별개의 실체로 존재하며, 사회적 행동에 강제적 영향력을 행사한다.

‘No Kings’ 시위는 바로 이러한 집단 의식의 발현으로 볼 수 있다. 시위 참가자 중 한 명인 캘리포니아 왓슨빌의 마르고 로스는 “우리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 완전히 두렵다”며 “처음부터 이것은 쿠데타이자 파시스트 전복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는 개인적 의견을 넘어선, 공유된 위기 의식과 저항 정신의 표현이다.

기계적 연대에서 유기적 연대로

뒤르켐은 전통적이거나 원시적 사회에서는 종교적 상징, 담론, 믿음, 의례가 집단 의식을 촉진한다고 관찰했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기계적 연대”가 형성되어 공유된 가치와 믿음을 통해 자동적으로 결속이 이루어진다. 반면 현대 산업사회에서는 분업을 바탕으로 한 “유기적 연대”가 나타난다.

흥미롭게도 ‘No Kings’ 시위는 이 두 형태의 연대가 복합적으로 작동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메릴랜드 아나폴리스의 시위에서는 조지 워싱턴 재연자가 1783년 워싱턴이 군사 지휘권을 자발적으로 포기했을 때의 연설을 재현했다. 이는 미국의 건국 신화와 민주주의 전통이라는 기계적 연대의 요소를 활용한 것이다.

동시에 시위는 MoveOn, 미국시민자유연맹(ACLU), 미국교사연맹, 미국통신노동조합 등 200개 이상의 조직들이 연합하여 조직되었다. 이는 현대적 분업과 전문화된 역할을 바탕으로 한 유기적 연대의 특징을 보여준다.

집단 의식의 현대적 발현

뒤르켐이 설명한 집단 격정(collective effervescence)은 개인들이 함께 모였을 때 발생하는 강렬한 공유된 감정적 활성화와 통합감을 의미한다. 이는 시위, 의례, 의식, 축제 등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필라델피아에서 수만 명이 평화롭게 행진했고, 조직자들은 이곳을 주요 행사장으로 선택했다고 밝혔다. “필라델피아와 국가가 설립된 자유와 이상 사이에는 지울 수 없는 연관성이 있다”고 No Kings 시위의 후원 단체 중 하나인 MoveOn의 대변인이 설명했다. 이러한 상징적 장소의 선택과 대규모 집회는 집단 격정을 통해 공유된 정체성과 목적 의식을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상징의 정치: 왕관 vs 민주주의

권위의 상징화

군사 퍼레이드와 ‘No Kings’ 시위는 모두 강력한 상징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퍼레이드 참석자들 중에는 MAGA 모자를 쓴 사람들과 함께 J6 모자, 트럼프 2028 배너, 심지어 트럼프를 왕이라고 선언하는 팻말을 든 사람도 있었다. 이는 전국적으로 벌어지는 수많은 “No Kings” 집회에 대한 반박으로, 조직자들이 트럼프의 확대되는 권위주의에 대한 반대로 보는 것에 대한 찌르기였다.

이러한 대조는 단순한 정치적 대립을 넘어, 서로 다른 권력 개념과 사회 조직 원리 간의 충돌을 반영한다. 한쪽은 강력한 지도자와 국가 권력의 위엄을 강조하는 반면, 다른 쪽은 시민의 자율성과 권력 견제의 중요성을 주장한다.

저항의 언어와 전략

시위자들의 핵심 논점은 워싱턴이 자발적으로 군사 권력을 포기한 반면, 트럼프는 퍼레이드를 통해 더 많은 권력을 축적하려 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단순히 현재의 정치적 상황에 대한 비판을 넘어, 미국 민주주의의 근본적 원칙에 대한 상기시키기이기도 하다.

시위 조직자들은 의도적으로 워싱턴 D.C.에서의 집회를 피했다고 밝혔다. 이는 “갈등이 아닌 대조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이러한 전략적 선택은 직접적 대립보다는 상징적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더 효과적인 메시지 전달을 의도한 것으로 보인다.

현대 민주주의의 딜레마

권력의 양면성

푸코와 뒤르켐의 이론을 통해 분석해보면, 이 사건은 현대 민주주의가 직면한 근본적 딜레마를 드러낸다. 푸코가 지적했듯이 권력은 억압적인 것만이 아니라 생산적이기도 하다. 권력은 이해관계나 욕망을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대신 신체를 재구성된 행동 패턴에 종속시켜 생각, 욕망, 이해관계를 재구성한다.

군사 퍼레이드는 국가의 정당한 권위와 안보 역량을 과시하는 측면이 있지만, 동시에 권력의 과시를 통해 시민들을 위압하고 복종을 유도하는 장치로도 작동할 수 있다. 비판자들은 이를 “자기탐닉적이고 공적 자금의 오용”이라고 규정했으며, 군대를 이런 식으로 이용하는 것은 “국가에 대한 통제권을 소통하고, 자신을 미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저항과 순응의 변증법

뒤르켐이 강조했듯이 집단 의식은 개인들을 결속시키고 사회 통합을 만들어낸다. 동시에 그것은 개인들의 행동과 상호작용을 통해 생산된다. ‘No Kings’ 시위는 바로 이러한 집단 의식의 생산적 힘을 보여준다.

시위 참가자들은 “우리는 킹 박사와 말콤 엑스, 그리고 자신들의 생명을 바친 수많은 다른 이들의 후손”이라며 “우리는 두렵지 않다”고 선언했다. 이는 과거의 저항 전통을 현재의 상황에 연결시키며, 새로운 집단 정체성을 형성하는 과정이다.

글로벌 맥락에서의 의미

권위주의적 스펙터클의 확산

푸코의 ‘부메랑 효과’ 개념은 식민지 주변부와 제국의 중심부 사이에서 권력 기술과 실천이 양방향으로 흐른다는 것을 보여준다. 현대에도 이와 유사한 현상을 관찰할 수 있다. 비판자들은 이번 퍼레이드가 “러시아나 북한 같은 곳에서 독재자들과 연관된 군사력 과시”와 유사하다고 지적했다.

이는 권위주의적 통치 기술이 국경을 넘나들며 확산되는 현상을 반영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위기 상황이나 정치적 필요에 따라 권위주의적 스펙터클을 차용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저항의 연대와 확산

반면 ‘No Kings’ 시위는 저항의 국제적 연대 가능성을 보여준다. 시위는 미국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평화롭게 수십 개 도시에서 벌어졌다. 이는 권위주의에 대한 우려가 국경을 넘나드는 공통의 문제가 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디지털 시대의 소통 기술은 이러한 연대를 더욱 용이하게 만든다. 현대의 집단 의식 개념에는 연대적 태도, 밈, 집단 사고와 집단 행동 같은 극단적 행동, 그리고 집단 의례나 댄스 파티 등에서 집단적으로 공유되는 경험이 포함된다.

결론: 민주주의의 미래를 위한 성찰

워싱턴의 군사 퍼레이드와 ‘No Kings’ 시위는 단순한 정치적 이벤트를 넘어, 현대 사회에서 권력과 저항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연구다. 푸코의 권력 이론은 군사 퍼레이드가 어떻게 권력의 스펙터클을 통해 시민들에게 복종을 유도하려 하는지를 설명하고, 뒤르켐의 집단 의식 이론은 시민들이 어떻게 공유된 가치와 저항 정신을 바탕으로 연대하는지를 보여준다.

33마일 떨어진 아나폴리스의 시위에서 워싱턴 D.C.의 퍼레이드 관람석까지의 여행은 “두 개의 다른 나라 사이의 여행” 같았다고 한 관찰자는 기록했다. 이는 단순히 물리적 거리가 아니라, 서로 다른 정치적 상상력과 사회적 비전 사이의 거리를 의미한다.

현대 민주주의는 이러한 긴장 속에서 자신의 미래를 찾아가야 한다. 권력의 정당성과 효율성을 유지하면서도 시민의 자율성과 비판적 참여를 보장하는 균형점을 찾는 것이 핵심 과제다. ‘No Kings’ 시위가 보여준 것처럼, 민주주의의 생명력은 결국 시민들이 스스로 권력을 견제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능력에 달려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권력과 저항의 상징 정치는 단순한 갈등이 아니라 민주주의가 자기 갱신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과정이 폭력이 아닌 평화적 방식으로, 그리고 상호 이해와 대화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방향으로 진행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