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 분쟁의 재점화: 태국-캄보디아 국경 충돌이 불러온 지정학적 파장

2025년 5월 태국-캄보디아 국경에서 발생한 총격전으로 1명이 사망하며 양국 간 100년 넘은 영토 분쟁이 다시 격화되고 있다. 프레아 비히어 사원을 둘러싼 갈등의 배경과 현재 상황, 그리고 향후 전망을 심층 분석한다.

충돌의 발화점: 10분간의 총격전이 남긴 충격

지난 5월 28일 오전, 태국 우본라차타니주와 캄보디아 프레아 비히어주 접경 지역에서 약 10분간 지속된 총격전이 벌어졌다. 이 짧은 교전으로 캄보디아군 병사 1명이 목숨을 잃었고, 양국은 즉시 국경 지역에 추가 병력을 배치하며 긴장감이 급속도로 고조됐다.

캄보디아 측은 태국군이 자국 영토에 무단 침입해 선제공격을 가했다고 주장하는 반면, 태국은 캄보디아 측의 지속적인 영토 침범에 대한 정당한 대응이었다고 맞서고 있다. 양측의 상반된 주장 속에서 사건의 진상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프레아 비히어 사원: 천년 유적이 된 분쟁의 씨앗

이번 충돌의 배경에는 프레아 비히어 사원을 둘러싼 복잡한 역사가 자리하고 있다. 9세기 크메르 제국 시대에 건립된 이 힌두교 사원은 525미터 높이의 당그레크 산 절벽 위에 위치해 있어 전략적 가치가 매우 크다.

분쟁의 뿌리는 1904년 프랑스 식민정부가 태국과 캄보디아(당시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간 국경을 획정하면서 측량 오류로 시작됐다. 프랑스가 제작한 지도에서 사원 지역이 캄보디아 영토로 표시됐지만, 태국 측은 이를 제때 발견하지 못하고 50여 년간 묵인했다.

1962년 국제사법재판소(ICJ)는 태국이 장기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캄보디아의 사원 소유권을 인정했다. 하지만 사원 주변 4.6㎢ 지역의 영유권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고, 이것이 오늘날까지 갈등의 핵심이 되고 있다.

2008년 세계유산 등재가 부른 화약고

2008년 프레아 비히어 사원이 캄보디아 단독 명의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면서 갈등이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태국은 공동 등재를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이후 양국 간 무력 충돌이 잇따라 발생했다.

특히 2011년 4월에는 18명이 사망하는 대규모 교전이 벌어져 4만여 명의 주민이 피난을 떠나야 했다. 이에 ICJ는 2013년 사원 지역을 비무장지대로 지정하고 양국 군대의 철수를 명령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했다.

현재 상황: 병력 증강과 외교적 대립

최근 충돌 이후 양국은 서로를 향해 병력 증강을 비난하며 군사적 대치를 강화하고 있다. 품탐 웨차야차이 태국 국방장관은 “캄보디아가 국경 지역 긴장을 악화시키고 있다”며 자국의 군사 태세 강화를 선언했다.

외교적으로도 해법 찾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캄보디아는 ICJ 제소를 통한 법적 해결을 추진하고 있지만, 태국은 ICJ 관할권을 인정하지 않으며 양자 대화를 통한 해결을 고집하고 있다.

다행히 양국 육군 총사령관들이 5월 30일 국경에서 긴급 회담을 갖고 국경 공동위원회(JBC)를 통한 2주 내 해결방안 모색에 합의했다는 점은 희망적이다.

민족주의 감정과 국내 정치의 개입

이번 갈등에는 양국의 민족주의 감정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태국 내에서는 민족주의 단체들이 캄보디아 대사관 앞에서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고, 캄보디아에서도 반태국 정서가 확산되고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현재 양국 정상의 개인적 배경이다. 태국 총리 파에통탄 친나왓은 탁신 전 총리의 딸이고, 캄보디아 총리 훈 마넷은 훈 센 전 총리의 아들이다. 과거 탁신과 훈 센이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던 점을 고려하면, 현재의 갈등이 더욱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경제적 파급효과: 국경 무역의 위기

양국은 총 817km에 이르는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17개의 국경 통로를 통해 활발한 무역을 하고 있다. 만약 갈등이 장기화된다면 국경 무역 중단으로 인한 경제적 타격이 불가피하다.

특히 캄보디아 서부 포이펫과 태국 사깨우주 사이 구간은 양국 무역의 핵심 통로 역할을 하고 있어, 이 지역의 통행 제한은 양국 모두에게 큰 손실을 안겨줄 것이다.

지역 안보에 미치는 영향

태국-캄보디아 갈등은 단순한 양자 문제를 넘어 동남아시아 전체의 안보에도 영향을 미친다. 아세안(ASEAN)은 회원국 간 평화적 분쟁 해결을 핵심 원칙으로 삼고 있는데, 이번 갈등이 장기화될 경우 아세안 결속력에도 균열이 생길 수 있다.

또한 미-중 경쟁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동남아시아 내 불안정 요소가 늘어나는 것은 지역 전체의 전략적 균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해결의 실마리: 6월 중순 회담이 분수령

현재로서는 오는 6월 중순 예정된 양국 국경 공동위원회 회담이 갈등 해결의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과거에도 JBC는 여러 국경 분쟁을 성공적으로 중재한 경험이 있어 이번에도 실질적인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말레이시아와 중국 등 주변국들도 중재 의지를 보이고 있어, 국제 사회의 적극적인 개입이 갈등 완화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역사의 교훈: 100년 갈등의 근본적 해결책

태국-캄보디아 국경 갈등은 식민지 시대 무책임한 영토 분할의 후유증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1904년 프랑스의 측량 오류로 시작된 이 분쟁은 121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양국이 과거의 역사적 맥락을 인정하면서도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접근을 취해야 한다. 영토 분할보다는 공동 관리나 경제적 공동 개발 등의 창의적 해법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

결론: 평화적 해결을 향한 기로

태국과 캄보디아 간 국경 갈등은 역사, 정치, 경제, 문화가 복잡하게 얽힌 다차원적 문제다. 단순한 영토 분쟁을 넘어 민족주의, 국내 정치, 지역 안보까지 연결된 이 갈등의 해결은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양국 모두 평화와 안정이 갈등보다 더 큰 이익을 가져다준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 6월 중순 국경 공동위원회 회담이 새로운 전환점이 될 수 있을지, 그리고 100년 넘게 이어진 이 갈등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을지 국제 사회가 주목하고 있다.

무엇보다 양국 국민들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해법을 찾는 것이 시급하다. 과거의 원한에 매몰되지 않고 미래 지향적 관계를 구축해 나가는 것만이 진정한 해결책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