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볼리비아 월드컵 예선 후 출국 봉쇄 사건의 전말

2025년 6월 6일, 베네수엘라 마투린에서 벌어진 2026년 FIFA 월드컵 남미 예선 경기가 단순한 축구 경기를 넘어 국제 스포츠 외교 사건으로 번졌다. 베네수엘라가 볼리비아를 2-0으로 제압한 후, 볼리비아 축구 국가대표팀이 귀국하려던 중 베네수엘라 당국에 의해 출국이 저지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경기 후 벌어진 충격적인 상황

예고 없는 출국 금지 조치

경기가 끝난 후 볼리비아 대표팀은 정상적인 절차에 따라 마투린 공항으로 향했다. 볼리비아 대표단은 귀국에 필요한 모든 서류와 허가를 갖추고 있었다고 주장했지만, 베네수엘라 당국은 명확한 설명 없이 그들의 항공편 출발을 막았다.

볼리비아 대표단은 몇 시간을 공항에서 대기한 후, 베네수엘라를 떠날 수 있는 허가를 받지 못한 채 한밤중에 호텔로 돌아가야 했다. 이러한 상황은 볼리비아 축구팀 기술감독 오스카르 비예가스(Óscar Villegas)에게도 완전히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사전 협의도 무용지물

더욱 충격적인 것은 볼리비아 측이 사전에 베네수엘라 정부와 협의를 시도했다는 점이다. 비예가스 감독은 이전에 볼리비아 정부 장관에게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정부와 협력하여 출국을 원활하게 진행해달라고 요청했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러한 사전 협의에도 불구하고 베네수엘라 당국은 볼리비아 대표팀의 출국을 허용하지 않았다. 이는 국제 스포츠 경기 후 상대팀 선수단의 이동을 보장하는 기본적인 외교 관례를 무시한 행위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월드컵 예선 경기의 중요성

베네수엘라의 역사적 도전

마투린의 모누멘탈 스타디움에서 펼쳐진 이번 경기는 베네수엘라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베네수엘라는 남미축구연맹(CONMEBOL) 소속 국가 중 유일하게 월드컵 본선에 진출해본 경험이 없는 나라다. 이번 2026년 월드컵은 베네수엘라가 역사상 처음으로 월드컵 무대를 밟을 수 있는 기회였다.

경기 결과 베네수엘라는 2-0으로 승리하며 남미 예선 7위를 유지했다. 15경기에서 18점을 획득한 베네수엘라는 대륙간 플레이오프 진출권을 확보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반면 볼리비아는 14점으로 8위에 머물며 월드컵 진출이 더욱 어려워졌다.

볼리비아의 월드컵 꿈

볼리비아도 1994년 이후 31년 만의 월드컵 진출을 꿈꾸고 있었다. 오스카르 비예가스 감독이 이끄는 볼리비아는 4승 2무 8패로 베네수엘라와 단 1점 차이에 있어 이번 경기가 매우 중요했다. 하지만 2-0 패배로 월드컵 진출 가능성이 크게 줄어들었다.

특히 볼리비아가 월드컵 예선 원정에서 마지막으로 승리한 것이 2015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패배는 더욱 아쉬운 결과였다.

경기 내용과 결정적 순간들

자책골로 시작된 베네수엘라의 승리

경기는 볼리비아 골키퍼 기예르모 비스카라(Guillermo Viscarra)의 실수로 결정됐다. 초반 볼리비아가 적극적으로 공격을 펼쳤지만, 예상치 못한 자책골로 베네수엘라가 선제골을 얻었다. 헤르토르 쿠에야르(Héctor Cuéllar)의 미숙한 클리어링이 자신의 골문으로 향하면서 베네수엘라에게 값진 1-0 리드를 안겨줬다.

살로몬 론돈의 결정타

30분경 베네수엘라의 에이스 살로몬 론돈(Salomón Rondón)이 페르난도 아람부루(Fernando Aramburu)의 절묘한 패스를 받아 중앙 박스에서 왼발 강슛을 날렸다. 이 골은 론돈의 예선 다섯 번째 골이자 국가대표 통산 47호 골로 기록되며 베네수엘라의 2-0 승리를 확정지었다.

마두로 정권의 정치적 배경

국내외 압박 속의 베네수엘라

베네수엘라는 현재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 하에서 심각한 정치적 위기를 겪고 있다. 2024년 7월 28일 대선에서 부정선거 논란이 일었고, 여러 국가들이 마두로의 승리를 인정하지 않고 외교 관계를 단절한 상태다.

최근 몇 주 동안 베네수엘라 당국은 정부 전복 음모와 관련해 30명 이상을 체포했다고 발표했다. 디오스다도 카베요(Diosdado Cabello) 내무장관은 이들이 대사관, 병원, 경찰서에 폭발물을 설치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콜롬비아와의 항공편 중단 사례

실제로 베네수엘라는 최근 콜롬비아에서 오는 항공편을 전면 중단한 바 있다. 5월 19일 카베요 장관은 “음모” 혐의로 체포된 30여 명 중 17명의 외국인이 콜롬비아를 통해 입국했다는 이유로 콜롬비아발 항공편을 즉시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리비아 축구팀의 출국 봉쇄 사건도 마두로 정권의 강경 정책의 연장선상에서 이해될 수 있다.

국제 사회의 반응과 우려

FIFA와 CONMEBOL의 입장

국제축구연맹(FIFA)과 남미축구연맹(CONMEBOL)은 아직 이 사건에 대한 공식 입장을 발표하지 않았지만, 스포츠 외교의 기본 원칙이 훼손될 수 있는 심각한 사안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국제 경기 후 상대팀 선수단의 안전한 귀국은 축구계의 기본적인 관례다.

스포츠와 정치의 경계

이번 사건은 스포츠가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특히 남미에서는 축구가 단순한 스포츠를 넘어 국가적 자존심과 정치적 메시지를 담는 중요한 도구로 여겨지는 만큼, 이번 사건의 파장은 길게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베네수엘라 축구의 역사적 맥락

축구 불모지에서 월드컵 도전자로

베네수엘라는 오랫동안 남미에서 축구 실력이 가장 떨어지는 국가로 여겨져 왔다. 야구와 펜싱이 더 인기 있는 스포츠였고, 1975년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아르헨티나에게 0-11로 참패하며 축구 역사상 최다 실점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베네수엘라 축구는 놀라운 발전을 보이고 있다. 마투린에서 치른 3연속 홈 경기에서 단 한 골도 허용하지 않는 철벽 수비를 자랑하며, 역사상 처음으로 월드컵 진출의 꿈에 한 발 다가섰다.

앞으로의 험난한 여정

베네수엘라에게는 아직 3경기가 남아 있다. 우루과이 원정, 아르헨티나전, 콜롬비아전이 기다리고 있어 월드컵 진출을 위해서는 더 많은 승점이 필요한 상황이다. 특히 아르헨티나와 콜롬비아는 남미 최강급 팀들이어서 쉽지 않은 여정이 예상된다.

볼리비아의 고충과 전망

원정 경기의 고질적 약점

볼리비아는 라파스의 고지대(해발 3,600m)에서는 강력한 경기력을 보이지만, 원정에서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최근 5경기에서 경기당 평균 3.2골을 내주는 등 수비적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다.

오스카르 비예가스 감독 체제에서 4승 2무 8패를 기록한 볼리비아는 월드컵 진출을 위해 남은 경기에서 반드시 승점을 따내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다.

사건의 의미와 향후 전망

스포츠 외교의 시험대

이번 베네수엘라-볼리비아 출국 봉쇄 사건은 스포츠와 정치가 어떻게 얽힐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됐다. 마두로 정권의 강경 정책이 스포츠 영역까지 확장되면서 국제 사회의 우려를 낳고 있다.

월드컵 예선에 미칠 영향

이번 사건이 향후 월드컵 예선 진행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FIFA와 CONMEBOL이 어떤 조치를 취할지, 그리고 다른 국가들이 베네수엘라와의 경기에서 비슷한 우려를 갖게 될지 지켜봐야 할 상황이다.

볼리비아 축구팀의 출국이 언제, 어떤 조건으로 허용될지에 따라 이 사건의 성격도 달라질 것이다. 단순한 행정적 실수였는지, 아니면 의도적인 정치적 압박이었는지에 따라 국제 축구계의 대응도 크게 달라질 전망이다.

이번 사건은 스포츠의 순수성과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다시 한번 일깨워주는 계기가 되고 있다. 축구는 국경과 정치를 초월한 인류 공통의 언어라는 점에서, 이런 사건이 재발하지 않기를 바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