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22일, 인도의 대표적인 관광지인 카슈미르 파할감에서 벌어진 총기 테러는 단순한 안전 사고를 넘어 인도와 파키스탄 사이의 79년 묵은 갈등을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불과 26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 사건이 어떻게 남아시아 전체를 전쟁의 공포로 몰아넣었는지, 그리고 왜 이 분쟁이 전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는지 살펴보자.
카슈미르 파할감, ‘인도의 스위스’에서 벌어진 비극
4월 22일 오후, 잠무 카슈미르 아난트나그구의 파할감 마을 인근 바이사란 계곡에서 일어난 사건은 평화로운 관광지를 순식간에 공포의 현장으로 바꿔놓았다. 울창한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이곳은 ‘인도의 스위스’로 불릴 만큼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며, 많은 관광객들이 피크닉을 즐기러 찾는 명소였다.
테러리스트들은 피해자들에게 발포하기 전 그들의 잠재적 종교적 정체성에 대해 질문했으며, 특히 비무슬림 관광객을 표적으로 삼았다는 목격자 증언이 이 테러의 잔혹성을 보여준다. 쿠란 암송이나 할례 여부까지 확인하며 힌두교도만을 골라 총격을 가한 것이다.
이번 공격으로 인도인 25명과 네팔인 1명이 사망하고 20명 이상이 부상했다. 이는 2008년 뭄바이 테러 이래 인도에서 일어난 가장 피해자가 많은 테러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배후 세력과 양국의 상반된 주장
테러 직후 파키스탄 기반의 무장단체인 ‘저항전선(TRF)’이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인도 정부는 TRF가 유엔이 지정한 테러 집단인 라슈카레 타이바가 설립한 분파라고 밝혔다.
인도는 즉각 파키스탄 정부가 이들 테러 단체를 지원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반면 파키스탄은 테러와의 연관성을 강력히 부인하며, 카와자 아시프 국방장관은 “파키스탄은 이번 테러와 관련이 없다”고 반박했다.
인도의 극강 보복 조치들
테러 발생 하루 만인 4월 23일,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예정된 사우디아라비아 방문을 중단하고 긴급히 귀국해 안보내각위원회를 소집했다. 이 회의에서 결정된 인도의 보복 조치들은 그 강도에서 전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65년 만의 인더스강 조약 중단
가장 충격적인 조치는 1960년 맺은 인더스강 조약 효력을 “파키스탄이 국경 간 테러리즘 지원을 확실하게 철회할 때까지” 중지한다는 결정이었다. 이 조약은 지난 65년간 양국 간 3차례 전쟁과 수많은 분쟁 속에서도 한 번도 중단된 적이 없는 ‘성역’이었다.
파키스탄은 전체 수자원 중 약 80%를 인더스강에서 충당하고 있어, 이 조치는 파키스탄 경제와 농업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 파키스탄 정부는 즉각 “물 공급을 방해하려는 모든 노력을 전쟁 행위로 간주하겠다”며 강력 반발했다.
전방위 외교적 압박
인도는 또한 다음과 같은 조치들을 단행했다:
- 아타리-와가 국경 검문소 즉시 폐쇄
- 모든 파키스탄인 비자 발급 중단 및 기존 비자 취소
- 파키스탄 고등판무관실 국방 고문들을 ‘외교 기피 인물’로 지정, 일주일 내 추방
- 주파키스탄 인도 대사관 인원을 55명에서 30명으로 감축
파키스탄의 맞대응과 국경 긴장 고조
파키스탄 역시 인도의 조치에 상응하는 보복으로 대응했다:
- 인도와의 모든 무역 중단
- 인도 항공기에 대한 영공 폐쇄
- 인도인 비자 정지 및 외교관 추방
- 1972년 심라 협정 중지 발표
4월 24일부터 통제선(Line of Control)을 따라 무장 충돌이 발생하기 시작했고, 양국은 연일 소규모 교전을 지속했다.
인도의 ‘신두르 작전’과 3일 전쟁의 시작
5월 7일 새벽 5시, 인도는 마침내 군사적 보복에 나섰다. ‘신두르 작전(Operation Sindoor)’이라는 코드명으로 파키스탄령 카슈미르(무자파라바드, 코틀리)와 파키스탄 펀자브 주(바하왈푸르, 무리드케)의 9개 지역을 표적으로 삼아 미사일 및 공습을 감행했다.
인도는 민간 및 군사 시설이 아닌 테러리스트 기반 시설만을 목표로 삼았다고 주장했지만, 파키스탄 측은 민간인 피해가 발생했다며 강력 반발했다.
파키스탄의 반격과 공중전
5월 8일, 파키스탄은 인도의 암리차르 등 여러 도시에 드론 및 미사일 공격으로 보복했다. 양국은 드론, 미사일, 전투기를 동원한 현대적 공중전을 펼쳤다.
특히 주목할 점은 파키스탄군이 인도 공군의 다쏘 라팔 전투기 3기를 격추시켰다고 주장했는데, 물증이 확인되며 최소 1기가 격추된 것으로 밝혀졌다는 것이다. 이는 라팔 전투기의 첫 전투 손실로 기록되었다.
미국의 중재와 신속한 휴전
양국의 무력 충돌이 격화되자 국제사회가 즉각 중재에 나섰다. 미국의 부통령과 국무장관은 양국 간의 긴장 완화를 위해 중재에 나섰으며, 5월 10일 양국의 군사 작전 책임자 간의 핫라인 통화를 통해 휴전에 합의했다.
놀랍게도 이 분쟁은 단 3일 만에 일단 막을 내렸다. 2019년 분쟁이 1달 이상 지속된 것과는 대조적이다.
핵 보유국 간 갈등의 위험성
이번 분쟁이 전 세계의 주목을 받은 이유는 양국이 모두 핵무기 보유국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인도와 파키스탄이 둘 다 핵보유국이기 때문에 ‘심리적 억제력’이 생겨 전면전으로 확전할 가능성이 낮다고 평가했지만, 자칫 실수나 오판이 있었다면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될 수 있었다.
카슈미르 분쟁의 뿌리깊은 역사
이번 갈등을 이해하려면 카슈미르 분쟁의 역사적 배경을 알아야 한다. 분쟁은 1947년 인도와 파키스탄이 영국 식민지배로부터 분리 독립하는 과정에서 시작됐다.
당시 카슈미르의 힌두교도 군주 하리 싱은 주민 대다수가 이슬람교도임에도 불구하고 인도 편입을 결정했다. 이후 78년간 양국은 이 지역을 두고 3차례 전쟁을 치렀고, 크고 작은 무력 충돌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모디 정부는 2019년 카슈미르의 특별자치권을 박탈하고 인도 연방으로 강제 편입시켜 현지 주민들의 반발을 샀다. 이러한 정책변화에 따라 지방당국은 카슈미르 외부 주민들에게 거주자격을 확대 부여할 수 있게 되었고, 이를 통해 이전에는 접근할 수 없었던 지역에서 토지를 구매하고 일자리를 얻을 수 있도록 허가했다.
국제적 파장과 우려
이번 분쟁은 단순히 인도와 파키스탄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과 중국의 신냉전 구도에서 각각 인도와 파키스탄을 파트너로 하고 있어, 자칫 갈등이 확산될 경우 지역을 넘어 글로벌 분쟁으로 번질 위험이 있다.
중국은 카슈미르 서쪽 악사이친을 실질적으로 점령하고 있으며 일대일로 프로젝트에서 파키스탄을 전략적 파트너로 규정하고 있다. 반면 인도는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인도-태평양전략에서 핵심파트너인 동시에 호주, 일본과 함께 4개국안보회담인 ‘쿼드’의 회원국이다.
현재 상황과 전망
현재 양국 간 휴전이 성사되었지만, 근본적인 문제들은 해결되지 않았다. 카슈미르 분쟁, 테러리즘 문제, 수자원 갈등 등이 여전히 남아있어 언제든 새로운 충돌의 불씨가 될 수 있다.
국제사회는 수자원 전쟁이 자칫 양국의 전면전으로 비화될 가능성에 양국의 자제와 외교적 해결을 주문하고 있지만 타협점을 찾기 쉽지 않아 보인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한국에 미치는 영향
이번 분쟁은 멀리 떨어진 한국에도 영향을 미쳤다. 분쟁이 한창이던 중에도 에티오피아 항공 ET672편이 파키스탄 분쟁 지역을 돌파했는데, 하필 이 항공편이 아디스아바바에서 인천국제공항으로 향하는 한국행 비행편이었다.
또한 인도는 한국의 주요 무역 파트너로, 분쟁 장기화 시 한국 기업들의 인도 투자와 수출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마무리: 평화의 길은 여전히 멀다
2025년 인도-파키스탄 갈등은 비록 3일 만에 휴전되었지만, 남아시아가 얼마나 불안정한 화약고인지를 다시 한번 보여줬다. 파할감에서 시작된 작은 불씨가 어떻게 지역 전체를 전쟁의 위기로 몰아넣을 수 있는지, 그리고 핵무기 시대에 갈등 관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해준 사건이었다.
앞으로 양국이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진정한 대화에 나설 수 있을지, 아니면 또 다른 테러나 사건을 계기로 더 큰 충돌이 벌어질지는 지켜봐야 할 일이다. 분명한 것은 카슈미르의 평화 없이는 남아시아 전체의 안정도 없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