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0억 결혼식과 베네치아 폭염, 완벽한 타이밍이 만든 논란의 중심

이탈리아 베네치아가 지금 전 세계의 시선을 받고 있다.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조스의 초호화 결혼식이 막 시작된 가운데, 남유럽 전역을 강타한 기록적인 폭염과 맞물려 복합적인 이슈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과연 이 두 사건이 우연히 겹쳤을 뿐일까, 아니면 더 깊은 의미가 담겨 있는 걸까?

세기의 결혼식, 베네치아를 뒤흔들다

6월 26일부터 28일까지 사흘간 베네치아에서 진행되는 베조스와 방송기자 출신 로런 산체스의 결혼식은 그야말로 ‘세기의 결혼식’이라 불릴 만하다. 총 비용이 약 5000만 달러(한화 680억원)에 달하는 이번 행사에는 빌 게이츠, 오프라 윈프리, 킴 카다시안,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등 200여 명의 초대형 셀럽들이 참석했다.

결혼식 장소도 압권이다. 26일 환영파티는 16세기 거장 틴토레토의 명화가 걸린 마돈나델로트 성당에서 열렸고, 27일 본식은 산조르조마조레 성당에서 진행된다. 피로연은 중세 선박 건조장으로 유명한 아르세넬레 전시장에서 이어진다. 베조스 부부는 1박 최소 4000유로(약 580만원)에 달하는 아만 베네치아 호텔에 머물고 있다.

하지만 화려함 뒤에는 거센 반발이 숨어 있었다. ‘No Space for Bezos(베조스를 위한 공간은 없다)’라는 구호로 뭉친 시민단체들이 도시 곳곳에 반대 포스터를 붙이고 시위를 벌였다. 심지어 리알토 다리에는 대형 현수막이 걸리고, 산 마르코 광장에서는 “1%가 세상을 망친다”는 문구의 현수막이 내걸렸다.

기록적 폭염이 덮친 남유럽

베조스의 결혼식과 거의 같은 시기에 남유럽 전역은 섭씨 40도를 넘나드는 기록적인 폭염에 시달리고 있다. 이탈리아의 로마, 나폴리, 피렌체, 베네치아를 포함한 13개 도시가 적색 경보 수준의 폭염 위험 지역으로 지정되었고, 스페인, 그리스, 포르투갈까지 남유럽 전역이 불길에 휩싸인 듯한 더위를 겪고 있다.

특히 베네치아는 폭염으로 인해 시민들에게 외출 자제를 요청하고 관광객 안전 경보를 발령한 상태였다. 하지만 정작 도심 중심부는 사적 행사로 통제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졌다.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폭염 속에서도 부유층의 축제는 계속되는 모습이 시민들의 분노를 더욱 키웠다.

이번 폭염은 단순한 날씨 현상이 아니다. 2025년 여름철 북태평양고기압의 강화와 확장으로 폭염 발생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기상청 분석처럼, 기후변화의 가시적 증상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최근 몇 년간 남유럽의 폭염은 점점 더 빈번해지고 강도도 세지고 있다.

도시 상업화 논란, 수면 위로

이번 사태의 핵심은 베네치아라는 도시의 정체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베네치아가 과연 누구를 위한 공간인가? 시민단체들이 “베네치아는 돈으로 살 수 있는 도시가 아니다”라고 외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베네치아는 이미 수년 전부터 관광 과잉과 환경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대형 크루즈선 입항 금지, 관광객 세금 부과 등 다양한 조치를 취했지만, 여전히 세계적인 자본과 권력은 이 도시를 ‘배경’으로만 활용하고 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베조스 측도 논란을 의식한 듯 베네치아 지원 단체 3곳에 총 300만 달러(약 41억원)를 기부했다고 발표했다. 또한 하객들에게 전통적인 결혼 선물 대신 베네치아 문화·환경 단체에 대한 기부를 요청하는 청첩장을 보냈다. 하지만 이런 ‘선의’조차 “돈으로 비판을 잠재우려는 것”이라는 냉소적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기후위기와 불평등의 상징적 만남

흥미롭게도 베조스는 평소 환경보호와 지속가능성을 강조해온 인물이다. 아마존의 ‘기후서약(Climate Pledge)’을 통해 2040년까지 탄소중립을 선언했고, 베조스 어스 펀드를 통해 100억 달러 규모의 기후변화 대응 기금을 조성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기후변화의 직접적 피해를 받고 있는 지역에서, 그것도 극심한 폭염 경보가 내려진 시점에 대규모 탄소 집약적 행사를 치른다는 점에서 모순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환경단체들은 “지속가능성을 외치는 기업가가 기후 재난이 심화된 시점에 이런 행사를 베네치아에서 치르는 것은 정치적·윤리적으로 무책임한 행위”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관광업계는 환영, 시민들은 반발

하지만 모든 현지인이 베조스의 결혼식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관광업이 주요 수입원인 베네치아 지역 당국과 관광업계는 이번 결혼식을 ‘평생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돈벌이 기회’로 보고 있다. 현지 숙박업체, 제과업체, 유리공예업체, 이벤트 업체들은 억만장자의 결혼식 특수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지역 관광 가이드 마티아 브란디는 “베조스 결혼식이 베네치아에 가져다주는 것은 순이익뿐”이라며 “도시의 평온을 깨는 건 오히려 시위대”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베네토 주의 루카 자이아 주지사 역시 이번 결혼식이 베네치아 지역에 대한 장기적인 투자로 이어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미래를 위한 교훈

이번 사태는 단순히 한 번의 폭염이나 결혼식으로 끝나지 않는다. 지속 가능한 도시란 무엇인가, 누구를 위한 공간인가, 기후 위기 속 부의 윤리는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가라는 본질적 질문을 던지는 계기가 되고 있다.

특히 2025년 여름이 평년보다 더욱 뜨거울 것이라는 전망 속에서, 남유럽의 폭염은 이제 예외가 아닌 일상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베네치아 같은 문화유산 도시들이 어떻게 지속가능성과 경제성을 균형 있게 추구할 것인지는 전 세계가 주목해야 할 과제다.

베조스의 결혼식은 끝났지만, 이 사건이 던진 질문들은 여전히 우리 앞에 남아 있다. 지중해의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벌어진 이 모든 일들이 단순한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 우리 시대가 직면한 근본적 모순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