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멕시코 사막에서 발견된 고대 발자국 하나가 인류 역사를 다시 쓰고 있다. 화이트샌즈 국립공원에서 확인된 이 발자국들은 2만 3천 년 전부터 2만 1천 년 전 사이에 만들어진 것으로, 북미 대륙 인류 정착사를 무려 8천 년이나 앞당기는 충격적인 발견이다.
학계를 뒤흔든 작은 발자국의 큰 충격
2021년 처음 발표된 이 연구는 수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연구진은 발자국 주변에서 발견된 수생식물 씨앗을 방사성탄소 연대측정법으로 분석했는데, 일부 학자들은 이 방법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하지만 2025년 6월, 아리조나대학을 비롯한 연구진이 두 가지 추가 연대측정법을 사용해 같은 결과를 얻어내면서 논란은 일단락됐다. 광자극발광법(OSL)과 침엽수 꽃가루 분석을 통해 동일한 시대를 확인한 것이다.
빙하기 최절정에도 살아남은 인류
이 발견이 더욱 놀라운 이유는 시기 때문이다. 2만 3천 년 전은 마지막 빙하기 최절정기(LGM)로, 거대한 빙상이 북미 대륙 상당 부분을 덮고 있던 시기였다. 기존 학설로는 이 시기에 아시아에서 북미로 이어지는 베링해 육교가 빙하로 막혀 인류 이동이 불가능했다고 여겨졌다.
발자국들이 발견된 곳은 당시 오테로 호수(Lake Otero)라는 거대한 빙하기 호수가 있던 자리다. 연구진은 이곳에서 인간뿐만 아니라 매머드, 거대땅늘보, 다이어울프 등 플라이스토세 거대동물들의 발자국도 함께 발견했다고 밝혔다.
기존 ‘클로비스 문화’ 이론의 한계
그동안 북미 대륙 최초 정착민은 약 1만 3천 년 전 클로비스 문화를 남긴 사람들로 여겨져 왔다. 이들은 정교한 석기 기술과 대형 동물 사냥으로 유명했지만, 화이트샌즈 발자국은 이보다 훨씬 이른 시기의 인류 존재를 증명한다.
흥미롭게도 발자국 분석 결과 이들은 주로 청소년과 어린이들이었으며, 성인 남성의 발자국은 상대적으로 적었다는 점이다. 이는 당시 사회 구조나 이동 패턴에 대한 새로운 단서를 제공한다.
다른 증거들과 함께 그려지는 새로운 그림
화이트샌즈만이 유일한 증거는 아니다. 칠레의 몬테베르데 유적지(1만 8천 5백 년 전), 텍사스의 골트 유적지(2만 년 전), 멕시코의 치키우이테 동굴(3만 년 전) 등 여러 지역에서 초기 인류 정착 증거가 나오고 있다.
일부 고고학자들은 이를 ‘포스트-화이트샌즈’ 시대의 시작이라고 부르며, 북미 인류사를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원주민 공동체의 시각
아코마 푸에블로족의 킴 파스쿠알-찰리는 “이것들은 우리 조상들의 발자국”이라며 “우리 구전 지식으로는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라고 말했다. 많은 아메리카 원주민 공동체에서는 과학적 발견이 자신들의 전통 지식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여전히 남은 미스터리들
발자국들이 누구의 것인지, 이들이 어떤 경로로 북미에 도달했는지는 여전히 수수께끼다. 현재까지는 발자국 외에 정착 유물이나 인골이 발견되지 않아 이들의 문화나 생활방식에 대해서는 알기 어렵다.
연구진은 이들이 빙하기 동안 어떻게 혹독한 환경에서 생존했는지, 어떤 기술을 가지고 있었는지에 대한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인류사 재작성의 시작점
화이트샌즈 발자국은 단순한 고고학적 발견을 넘어선 의미를 갖는다. 인류의 적응력과 생존력, 그리고 새로운 땅을 개척하는 용기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이른 시기부터 발휘되었음을 보여준다.
앞으로 더 많은 유적이 발견된다면 북미 정착사뿐만 아니라 인류 전체의 이동과 생존 서사를 새롭게 이해하게 될 것이다. 2만 3천 년 전 뉴멕시코 호숫가를 걸었던 한 사람의 발걸음이, 오늘날 우리가 인류사를 바라보는 관점을 완전히 바꾸어 놓은 셈이다.
작은 발자국 하나가 이토록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아직 우리가 모르는 인류사의 비밀이 얼마나 많이 땅 속에 묻혀 있는지를 짐작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