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캄보디아 국경 분쟁 해결 기대감, 프놈펜 긴급 회담서 진전 신호

동남아시아에서 또 다른 분쟁의 불씨가 타오르고 있다. 태국과 캄보디아가 5월 28일 국경 충돌 이후 악화된 관계 개선을 위해 6월 14일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서 긴급 회담을 개최했다. 이번 회담이 양국 간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고 지역 안정을 회복하는 전환점이 될 수 있을지 국제사회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5월 총격전이 불러온 나비효과

모든 것은 5월 28일 태국 우본라차타니주 남위안 지역에서 벌어진 10여 분간의 총격전에서 시작됐다. 이 짧은 교전에서 캄보디아 군인 1명이 사망하면서 양국 관계가 급속도로 악화되기 시작했다.

사건 발생 후 양국의 주장은 정면으로 엇갈렸다. 태국 측은 캄보디아 병사가 참호를 파던 중 “중단하라”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먼저 발포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캄보디아는 자국 군인들이 오랫동안 주둔해온 곳에서 태국군이 선제공격을 가했다고 맞섰다.

이후 상황은 더욱 복잡해졌다. 캄보디아가 6월 2일 이 사건을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하겠다고 발표하면서 단순한 국지 충돌이 국제 법정 분쟁으로 번질 조짐을 보였다.

군사적 긴장의 고조, 양국 병력 증강 경쟁

외교적 갈등이 심화되면서 군사적 대치 상황도 격화됐다. 태국 부총리 겸 국방장관 품탐 웨차야차이는 6월 7일 “캄보디아가 국경 지역 긴장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며 자국 병력 증강을 공식 발표했다.

태국군은 캄보디아가 국경 지역에서 병력을 늘리고 태국 영토를 반복적으로 침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응해 태국·캄보디아 접경의 모든 검문소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했으며, “주권 침해에 대응하기 위한 고강도 작전을 펼칠 준비가 돼 있다”고 경고했다.

양국의 군사적 대치는 실생활에도 영향을 미쳤다. 태국 정부는 양국 간 육로 국경 개방 시간을 기존 06:00~22:00에서 08:00~16:00로 대폭 단축했고, 일부 검문소는 주 3회(월·수·금)만 운영하도록 제한했다.

프놈펜 회담, 외교적 해법 모색

이런 악순환을 끊기 위해 양국은 6월 14일 프놈펜에서 공동경계위원회(JBC) 회담을 개최했다. 태국 외교부는 회담 후 성명을 통해 “양국 간 상호 이해 증진에 진전이 있었다”며 “외교적 대화가 진전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양국이 6월 15일에도 협상을 이어가기로 합의한 것은 긍정적인 신호로 해석된다. 다만 캄보디아 정부는 “회담이 끝나기 전에는 회담 내용을 말하지 않겠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번 회담에서는 분쟁 지역에 대한 공동조사단 구성과 현장 실사 계획이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문제의 핵심 지역인 프레아비히어 사원 인근에 대한 지도 조정과 사법적 자문 절차가 검토되고 있다.

프레아비히어 사원, 끝나지 않는 분쟁의 상징

이번 갈등의 근본 원인은 프레아비히어 사원을 둘러싼 오랜 영토 분쟁에 있다. 1962년 국제사법재판소 판결로 사원 자체는 캄보디아 영토로 인정받았지만, 사원으로 가는 주요 접근로가 태국 영토를 통과하는 구조적 모순이 계속해서 갈등을 불러오고 있다.

2008년 이 사원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면서 양국 간 분쟁은 더욱 격화됐다. 태국 내 보수 세력들은 당시 정부가 사원의 세계유산 등재에 동의한 것을 “매국 행위”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양국은 총 820km에 달하는 국경선을 공유하고 있지만, 이 중 상당 구간의 경계가 명확하게 설정되지 않은 상태다. 특히 캄보디아가 프랑스 식민지였던 1900년대 초반에 제작된 지도의 부정확성도 현재 분쟁의 한 원인이 되고 있다.

정치적 배경과 이해관계

이번 분쟁에는 양국의 복잡한 정치적 배경도 얽혀 있다. 현재 태국 총리는 탁신 친나왓 전 총리의 딸인 파에통탄 친나왓이고, 캄보디아 총리는 훈 센 전 총리의 아들인 훈 마넷이다.

흥미롭게도 탁신과 훈 센은 과거부터 긴밀한 정치적 유대를 유지해왔다. 하지만 현재 훈 마넷 정부는 국경 문제를 활용해 민족주의 정서를 자극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훈 센 전 총리는 “국경 분쟁이 해결되지 않으면 이 지역이 ‘가자 지구’처럼 고통받는 분쟁 지역이 될 수 있다”며 강경한 경고까지 내놓았다. 이는 국내 정치적 지지 기반 강화를 위한 전략으로 해석되고 있다.

경제적 파급효과와 지역 안보

양국 간 갈등은 경제적으로도 적지 않은 타격을 주고 있다. 국경 개방 시간 단축으로 양국 간 무역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으며, 국경 지역 주민들의 생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태국 내에서는 군부와 정부 간 입장 차이도 뚜렷하다. 군부는 국경 폐쇄와 군사 대응 강화를 주장하지만, 경제적 피해를 우려하는 신중론도 만만치 않다.

더 넓은 관점에서 보면, 이번 분쟁은 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회원국 간 갈등이라는 점에서 지역 통합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미국과 중국이 동남아 지역에서 영향력 경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역내 불안정은 외부 세력의 개입 명분을 제공할 우려도 있다.

앞으로의 전망과 과제

6월 14-15일 회담이 긍정적인 분위기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은 희망적이다. 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몇 가지 과제가 남아 있다.

먼저 국경선의 명확한 경계 설정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양국 공동의 지도 작업과 국제 전문가의 중재가 병행되어야 한다. 또한 ICJ를 통한 사법적 해결 방안도 고려해볼 만하다. 캄보디아는 ICJ 제소를 통한 해결을 원하지만, 태국은 양국 간 직접 대화를 선호하는 상황이다.

정치적으로는 양국 모두 국내 여론과 민족주의 정서를 자극하지 않으면서 외교적 절충안을 찾아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안고 있다. 특히 양국 지도자 모두 전임자의 아들이라는 점에서 정치적 정당성 확보를 위해 강경 노선을 취할 유혹에 빠질 수 있다.

마무리: 외교적 지혜가 필요한 시점

태국과 캄보디아의 국경 분쟁은 동남아시아 지역의 안정성을 시험하는 중요한 사안이다. 5월 총격전에서 시작된 갈등이 6월 프놈펜 회담을 통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양국이 군사적 대치보다는 외교적 대화를 통해 평화적 해결책을 모색하기로 한 것은 긍정적인 변화다. 하지만 뿌리 깊은 영토 분쟁을 완전히 해결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이번 사태는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과거의 유산에 얽매이지 않고 미래 지향적 협력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ASEAN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서는 회원국 간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제도적 메커니즘이 더욱 강화되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