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가는 지구의 탄소 저장고, 맹그로브 위기와 생존 전략

바다와 육지가 만나는 경계에서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 신비로운 나무들이 있다. 염분이 가득한 바닷물 속에서도 굳건히 버티며 수천 년간 탄소를 저장해온 ‘맹그로브’다. 하지만 이 지구의 소중한 탄소 저장고가 지금 전례 없는 위기에 직면해 있다.

지구 최고의 탄소 흡수원, 맹그로브의 놀라운 능력

맹그로브는 육상 산림보다 최대 5배 뛰어난 탄소 저장 능력을 자랑한다. 1헥타르의 맹그로브 군락은 연간 3,754톤의 탄소를 저장할 수 있는데, 이는 연간 2,650대 이상의 자동차가 뿜어내는 탄소를 제거하는 것과 맞먹는다.

이런 놀라운 능력의 비밀은 맹그로브가 자라는 환경에 있다. 해양 생태계는 물에 잠겨 있어 산소가 거의 없다. 산소가 없으니 해안가에 사는 박테리아들은 호흡할 수 없어서 물속에 가라앉은 유기물이 이산화탄소로 분해되지 않은 채 곧바로 바닷속 흙에 묻힌다.

멕시코의 한 맹그로브 군락지에서 토양 표본을 채취한 결과 5000년 전 흡수한 탄소까지 저장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처럼 맹그로브는 탄소를 흡수할 뿐만 아니라 수천 년간 안전하게 보관하는 천연 탄소 저장고 역할을 한다.

매년 축구장 1400개 면적씩 사라지는 맹그로브

하지만 이 소중한 생태계가 놀라운 속도로 사라지고 있다. 2010~2020년 동안 매년 102.4km²의 맹그로브 숲이 사라졌는데, 그중 43.3%는 양식장, 오일 팜 농장, 쌀농사 등이 원인이 되었다.

더 심각한 문제는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적 위협이다. 해수면 상승은 해안 생태계를 파괴하며, 미국 플로리다의 맹그로브 숲은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바닷물의 염분 농도가 증가하면서 점차 축소되고 있다.

2024년에 전 세계 해수면은 5.9mm 상승했는데, 이는 연간 예상 해수면인 4.3mm보다 상당히 높은 수치다. 해수면 상승이 가속화되면서 맹그로브 서식지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기후변화의 이중 타격: 해수면 상승과 극한 기상

맹그로브가 직면한 위협은 해수면 상승만이 아니다. 기후변화로 인한 사이클론의 강도와 빈도 증가도 심각한 문제다. 2024년 지속되는 기후변화로 탄소 배출량이 또다시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극단적인 기상현상이 더 빈번하고 강력해지고 있다.

특히 미얀마는 아시아에서 맹그로브 감소 속도가 가장 빠른 나라 중 하나로, 지난 수십 년간 해안 지역에서 급속한 삼림 파괴가 이루어졌다. 맹그로브는 풍랑과 태풍으로부터 마을을 보호하고, 어류 산란장 및 생계 자원으로도 중요한 역할을 하므로 이 숲의 파괴는 지역 공동체의 기후 적응력을 저하하는 요인이 된다.

생물다양성의 보고, 맹그로브 생태계의 가치

맹그로브의 중요성은 탄소 저장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맹그로브 군락에는 열대어에서부터 산호초, 상어까지 산란 또는 난태생하여 새끼를 치기 때문에, 뿌리 사이사이로 치어들이 자리 잡아 산다. 수많은 어종의 보육원 역할을 하는 맹그로브 숲 덕분에 극적으로 어획량이 증가하는 등 지역사회의 경제에도 크게 이바지한다.

전 세계적으로 맹그로브 숲은 전체 열대림의 1% 미만, 전체 삼림지의 0.4% 미만이지만 맹그로브 숲은 지역사회의 식량 안정성과 생물, 산림물, 지속 가능한 어업, 해안선 보호, 기후변화와 극심한 날씨 변화 완화 등에 큰 역할을 하기에 지구 환경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

전 세계가 주목하는 블루카본의 가치

맹그로브를 포함한 블루카본의 중요성이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2013년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에서 발간한 ‘국가 온실가스 인베토리 작성 가이드라인’ 부속서에 블루카본이 탄소흡수원으로 추가돼 국제 공식 감축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됐다.

바하마는 맹그로브 숲 보존 및 복원을 통해 탄소흡수력을 높인단 계획으로 올해 중으로 블루카본 배출권을 국제 시장에 판매할 예정이며, 해당 계획이 성공적으로 진행될 경우 바하마는 해양 기반의 블루카본 배출권을 판매한 세계 최초의 국가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블루카본 전략과 맹그로브 연구

한국도 블루카본 연구에 적극 나서고 있다. 해양수산부는 최근 ‘블루카본 실증연구센터’를 마련하고 해양생물자원관 등과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세계 최대 맹그로브 군락지인 인도네시아 정부와 협력해 맹그로브 서식 동향을 관찰하고 있다.

한-인니 블루카본 ODA 사업은 2024년부터 블루카본 생태계 강화를 목표로 하는 장기 사업으로, 주요 세부 사업으로 국가 맹그로브 블루카본 지도 구축, 갯벌을 포함한 맹그로브 서식지의 탄소저장량 조사, 블루카본 연구인력 양성 및 역량 강화, IPCC 갯벌 블루카본 온실가스 인벤토리 등록 협력 등의 구체적인 청사진과 로드맵이 논의됐다.

기후변화로 북상하는 맹그로브, 기회인가 위기인가

흥미롭게도 기후변화로 인해 맹그로브가 한반도로 북상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현재 속도로 수온과 기온이 계속 오르면 아열대·열대 수종인 맹그로브가 국내에 들어올 가능성이 크다.

가까운 미래에 한국 연안에는 중국이나 일본에서 기원한 맹그로브 종자들이 해류를 따라 자연스럽게 정착할 가능성이 있다. 맹그로브 숲은 이산화탄소를 효과적으로 흡수하여 해양 생태계를 보전할 수 있는 핵심 수단으로 부각되고 있는 만큼,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해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국제협력을 통한 맹그로브 보전 노력

전 세계적으로 맹그로브 보전을 위한 국제협력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한-베트남 맹그로브숲 조성사업은 2020년부터 2024년까지 5년간 총 45억 원의 공적개발원조(ODA) 자금으로 베트남 홍강 삼각주의 남딘, 닌빈 지역에서 맹그로브숲 복원, 양묘장 조성, 주민생계개선, 역량강화 사업 등을 추진 중이다.

한국의 산림청은 기후변화 대응의 일환으로 아랍에미리트와 인도네시아가 주도하고 22개국이 참여하는 맹그로브 연합(Mangrove Alliance for Climate, MAC)에 가입하여, 개발도상국에서 맹그로브 복원 사업을 추진하며 국제사회의 재난 관리 및 기후변화 대응에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기업들의 ESG 경영과 맹그로브 복원

기업들도 ESG 경영의 일환으로 맹그로브 보전에 나서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ESG 경영 실천의 일환으로 기후변화 대응 및 생물다양성 보존을 위한 ‘맹그로브 숲 복원사업’을 지속 추진한다. 베트남 짜빈(Tra Vinh) 성(省) 인근 ‘번 섬(Ban islet)’ 일대에서 맹그로브 묘목 식수 활동을 펼치고 있다.

로레알그룹은 맹그로브나우(Mangroves Now) 프로젝트를 진행해 방글라데시, 인도, 스리랑카 등 동남아 국가를 기반으로 한 맹그로브 숲 복원 프로젝트를 지원한다. 로레알 그룹은 “생태 복구를 위한 로레알 기금을 통해 지금까지 약 2200만 유로(한화 약 320억)를 투자했다”고 밝혔다.

미래를 위한 블루카본 연구 확대

2026년부터 본격 시행되는 EU 탄소국경세도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우리나라 블루카본 활용을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이끌어갈 구심점으로 국비 420억원을 들여 환동해 블루카본센터를 설립하기로 국회에서 작년 결정했다. 포항시 구룡포항에 2027년 센터가 완공되면 경북대가 위탁 운영한다.

현재 국제적으로 탄소흡수원으로 인정받는 블루카본 생태계는 수 많은 해양생태계들 중에서 맹그로브와 염습지, 잘피림 3가지뿐이며 국제인증을 통해 비식생갯벌과 같은 신규 탄소흡수원의 적절한 관리가 시급하고, 이를 위해서는 정부와 학계의 지속적인 연계가 필수적이다.

맹그로브 보전, 지구의 미래를 위한 선택

맹그로브는 단순히 나무가 아니다. 지구 온난화를 막는 천연 방패이자, 수많은 생명체들의 보금자리이며, 해안 지역 주민들의 생계를 책임지는 생명선이다.

유네스코는 맹그로브와 관련된 86곳을 ‘세계 생물권 보전 네트워크(WNBR, World Network of Biosphere Reserves)’에 편입시켜 관리하고 있으며, “일부 국가는 1980년에서 2005년 사이에 종종 해안 개발로 인해 맹그로브의 40% 이상을 잃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경고했다.

해수면 상승과 극한 기상으로 인한 이중 위협 속에서도 맹그로브를 지키기 위한 전 세계의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국제협력을 통한 복원 사업, 기업의 ESG 경영 참여, 그리고 블루카본으로서의 가치 인정 등이 맹그로브 보전의 희망적 신호다.

지구의 탄소 저장고인 맹그로브를 지키는 일은 결국 우리 모두의 미래를 지키는 일이다. 기후위기 시대, 맹그로브 보전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