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아메리카 경제의 양면성, 의료 대기업 철수와 투자 열풍의 모순

최근 라틴아메리카를 둘러싼 두 가지 상반된 뉴스가 동시에 주목받고 있다. 미국 최대 보험회사 유나이티드헬스가 중남미에서 10억 달러 규모의 사업을 정리하며 철수하는 한편, 글로벌 투자자들은 브라질과 멕시코 증시에 뜨거운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 대조적인 현상은 라틴아메리카 경제가 겪고 있는 구조적 전환기의 복잡성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유나이티드헬스의 완전 철수, 83억 달러 손실의 쓰라린 교훈

2025년 6월 9일 로이터 통신의 독점 보도에 따르면, 유나이티드헬스그룹이 라틴아메리카에서 운영하던 반메디카(Banmedica) 사업을 약 10억 달러에 매각하려 한다. 이는 2022년부터 시작된 중남미 철수 프로젝트의 마지막 단계다.

유나이티드헬스의 라틴아메리카 진출은 처음부터 험난했다. 가장 큰 타격은 브라질에서 나왔다. 십여 년 전에 인수한 브라질 아밀(Amil) 사업에서만 71억 달러의 손실을 기록했고, 2023년 말 완전히 철수했다. 반메디카에서도 12억 달러의 손실이 발생했다. 총 83억 달러라는 천문학적 손실 규모는 미국 기업의 해외 진출 실패 사례 중에서도 손꼽힐 만하다.

현재 반메디카는 콜롬비아와 칠레에서 170만 명의 보험 가입자를 보유하고 있으며, 7개 병원과 47개 의료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연간 EBITDA가 2억 달러를 넘는 수익성 있는 사업이지만, 유나이티드헬스는 “규모가 너무 작다”며 매각을 결정했다.

매각 경쟁에 뛰어든 다양한 입찰자들

반메디카 매각에는 네 곳의 주요 입찰자가 참여하고 있다. 워싱턴 DC 소재 사모펀드 아콘 인베스트먼트(Acon Investments), 상파울루 기반 패트리아 인베스트먼트(Patria Investments), 텍사스의 비영리 의료기관 크리스투스 헬스(Christus Health), 그리고 리마 소재 의료보험 업체 아우나(Auna)가 그 주인공들이다.

유나이티드헬스는 7월까지 구속력 있는 제안서 마감일을 설정할 예정이며, BTG팍츄알이 매각 과정을 주관하고 있다. 이러한 매각 시도가 급박하게 진행되는 배경에는 유나이티드헬스가 미국 내에서 겪고 있는 위기가 있다.

미국 본사의 연쇄 위기가 가속화한 철수

유나이티드헬스의 라틴아메리카 철수에는 본사의 심각한 위기가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2025년 들어 연쇄적인 악재가 몰아쳤다. 새로 부임한 스티브 헴슬리 CEO는 메디케어 사기 의혹에 대한 형사 수사 보도와 실적 부진으로 투자자들의 신뢰를 회복해야 하는 상황이다.

주가도 참담한 수준이다. 5월 한 달 동안만 25.5% 폭락했고, 연초 대비 40% 하락했다. 6000억 달러였던 시가총액에서 3000억 달러가 증발한 상태다. 2024년 2월에는 체인지 헬스케어 자회사가 랜섬웨어 공격을 받아 미국 의료 시스템 전체가 마비되는 사태도 겪었다.

이런 상황에서 해외 사업 정리를 통한 자금 확보와 본업 집중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유나이티드헬스는 페루에서도 올해 3월 철수를 완료했으며, 이제 라틴아메리카에서 완전히 손을 떼게 된다.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투자 열풍

유나이티드헬스가 철수하는 동안 전혀 다른 움직임도 포착되고 있다. 글로벌 투자자들이 라틴아메리카 금융시장에 뜨거운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브라질 보베스파 지수는 2025년 초부터 2.16% 상승했고, 멕시코 IPC 지수는 5.71%나 급등했다.

이러한 상승세는 단순한 단기 현상이 아니다. 미중 갈등과 유럽 경기 침체로 기존 투자처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면서, 상대적으로 정치적 안정성을 유지하고 있는 라틴아메리카가 “대체 투자처”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멕시코는 미국과의 인접성과 리쇼어링·니어쇼어링 트렌드의 수혜를 동시에 받고 있다. 중국 의존도를 줄이려는 미국 기업들이 멕시코를 생산기지로 활용하면서 투자 유치에 유리한 조건을 갖추게 되었다.

금융시장 상승의 이면에 숨은 위험 요소들

하지만 라틴아메리카 투자 열풍에도 주의할 점들이 있다. 브라질의 경우 2025년 1월 급등의 절반이 헤알화 가치 상승에서 나왔다는 분석이 있다. 환율 변동성이 여전히 큰 리스크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의미다.

또한 기업 이익 전망도 여전히 부정적이다. 브라질 기업들의 이익 전망은 여전히 음수 구간에 머물러 있으며, 다만 하향 폭이 줄어들면서 상대적 개선으로 인식되고 있을 뿐이다. 펀더멘털보다는 기대 심리와 자금 흐름에 의존한 상승이라는 한계가 있다.

정치적 불확실성도 상존한다. 라틴아메리카 지역에서는 진보 성향 정권으로의 교체가 이어지고 있으며, 이에 따른 투자 관련 법령과 규제 변화가 수익성에 악영향을 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의료 인프라 공백과 사회적 우려

유나이티드헬스의 철수는 단순한 기업 차원의 문제를 넘어 사회적 영향도 크다. 공공의료 체계가 취약한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에서 대형 민간 의료업체의 철수는 의료 접근성과 서비스 품질에 직접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

콜롬비아와 칠레에서 170만 명의 보험 가입자와 연간 400만 명의 환자가 이용하던 시설들이 새로운 운영자에게 넘어가는 과정에서 서비스 공백이나 품질 저하가 우려된다. 특히 중간계층의 의료 보험 선택권이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이는 라틴아메리카가 경제 성장과 사회 인프라 구축 사이의 균형을 잡아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음을 보여준다. 금융시장의 호황이 실제 주민 생활의 질 향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지속가능한 발전은 어려울 것이다.

중앙아메리카의 새로운 기회와 도전

중앙아메리카 국가들에게는 이런 변화가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유나이티드헬스 같은 대형 외국 기업의 철수로 생긴 시장 공백을 현지 기업들이 채울 수 있고, 글로벌 투자 관심 증가로 자금 조달 여건도 개선될 수 있다.

과테말라, 온두라스, 코스타리카 등은 지리적으로 미국과 가깝고 인건비가 상대적으로 저렴해 제조업 투자 유치에 유리하다. 니어쇼어링 트렌드가 지속된다면 이들 국가에도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정치적 안정성 확보와 인프라 개선, 법치주의 정착 등 기본적인 투자 환경 조성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과제가 남아 있다.

라틴아메리카 경제의 새로운 국면

유나이티드헬스의 철수와 투자 열풍이라는 상반된 현상은 라틴아메리카 경제가 전환기를 맞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과거 자원 수출 중심의 단순한 경제 구조에서 벗어나 제조업과 서비스업, 금융업이 균형을 이루는 다변화된 경제로 진화하고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불균형과 모순도 주목해야 한다. 금융시장의 활황과 의료 서비스 공급 부족, 외국 자본 유입과 기존 다국적 기업의 철수가 동시에 벌어지고 있다. 이런 현상들을 종합적으로 관리하지 못한다면 경제 성장의 과실이 고르게 분배되지 않을 위험이 있다.

라틴아메리카가 진정한 경제 강국으로 도약하려면 단순히 외국 자본을 유치하는 것을 넘어 자체적인 산업 경쟁력을 키우고, 사회 인프라를 견고히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유나이티드헬스의 실패 사례는 외국 기업에만 의존하는 발전 전략의 한계를 보여주는 교훈이기도 하다.

앞으로 라틴아메리카 각국이 이런 도전들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지, 그리고 투자 열풍이 실질적인 경제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