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유럽의 여름: 터키 이즈미르 산불이 보여주는 기후위기의 현실

2025년 6월 30일부터 이틀째 계속되는 터키 이즈미르 지역의 대형 산불로 5만 명 이상이 대피했다. 이번 사태는 남유럽을 강타한 기록적 폭염과 맞물려 발생한 것으로, 기후변화가 더 이상 미래의 문제가 아닌 현재 진행형 위기임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터키 서부 이즈미르 지역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이 이틀째 계속되면서 5만 명 이상의 주민이 긴급 대피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단순한 자연재해를 넘어 남유럽 전역을 강타한 기록적 폭염과 연결된 이번 사태는 기후변화의 파괴적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5만 명 대피, 멈추지 않는 불길

6월 30일 오후 터키 이즈미르 지역의 세페리히사르와 멘데레스 구역 사이에서 시작된 산불은 시속 25-30mph(40-50km/h)의 강풍에 휩쓸려 순식간에 확산됐다. 터키 산림부 장관 이브라힘 유마클리는 5만 명 이상이 41개 정착지에서 대피했다고 발표했으며, 이 중 4만 2천 명이 이즈미르 지역에서 대피한 것으로 집계됐다.

불길은 주택가로 번져 일부 가옥과 차량이 전소되었고, 이즈미르 아드난 멘데레스 공항도 화재로 인해 운항이 중단됐다. 1,000명 이상의 소방인력과 헬리콥터, 소방항공기 등이 투입됐지만 강풍으로 인해 진화 작업이 난항을 겪고 있다.

특히 우르크메즈 마을 주민들은 스스로 나무를 베어 방화선을 만들어야 할 정도로 절박한 상황에 내몰렸다. 가지에미르 지역의 매립지에서 시작된 별도 화재는 인근 산림지대로 번져 오토켄트 산업단지의 자동차 판매점들까지 위협하고 있다.

남유럽을 덮친 살인적 폭염

이번 터키 산불은 남유럽 전역을 강타한 때 이른 폭염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EU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 서비스의 사만사 버지스는 “서유럽의 상당 부분이 보통 7-8월에 관찰되는 극심한 더위와 열파 상황을 6월에 경험하고 있다”며 “일부 지역은 이 시기보다 5-10도 더 높은 기온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스페인과 이탈리아 등 남유럽 각국이 최고기온 섭씨 42도까지 치솟는 살인적인 폭염을 앞두고 비상경계에 들어간 상황이다. 그리스 아테네 인근에서도 대형 산불이 발생해 포세이돈 신전으로 향하는 해안도로가 일부 폐쇄됐고, 프랑스 마르세유는 공공 수영장을 무료 개방했다.

유럽의 때 이른 폭염은 지난달 중순부터 시작됐으며, 북극에 가까운 아이슬란드에서 최고기온이 26도를 넘어서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어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40도 안팎까지 기온이 오르더니 7월 들어 유럽 전체가 폭염에 시달리고 있다.

기후변화의 가속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현실

터키는 최근 몇 년간 여름철 산불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터키의 연안 지역은 최근 몇 년간 여름이 더 뜨겁고 건조해지면서 산불로 황폐화되고 있는데, 과학자들은 이를 인간이 유발한 기후변화의 결과로 보고 있다.

2021년 터키 안탈리아에서 시작된 산불에서는 8명이 사망하고 수십만 헥타르의 산림이 소실됐다. 당시에도 기온이 37도까지 오르는 폭염과 강풍이 화재 확산의 주요 원인이었다. 같은 해 남유럽 전역에서 연쇄적으로 발생한 산불로 그리스에서는 에비아 섬이 초토화되고, 이탈리아에서도 수백 건의 산불이 발생했다.

문제는 이런 극단적 기상현상이 더 이상 예외적 사건이 아니라는 점이다. 영국 기상청 산하 해들리센터는 올해 여름 유럽을 덮친 사상 최악의 폭염이 2035년이면 ‘평균적인 여름 날씨’가 될 것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2022년 유럽 전역을 덮친 기록적인 폭염으로 6만 1,000명 이상이 숨졌다는 분석도 나왔다. 가장 많은 사망자가 발생한 국가는 이탈리아(1만 8,010명), 스페인(1만 1,324명), 독일(8,173명) 순이었다.

관광산업에도 타격, 변화하는 유럽 여행 패턴

기후변화는 남유럽의 핵심 산업인 관광업에도 심각한 타격을 주고 있다. 그리스와 이탈리아는 여행·관광 산업이 지난해 전체 경제의 각각 18.5%, 10% 이상을 차지했다.

하지만 폭염으로 인해 기존의 여행 패턴이 크게 바뀌고 있다. 뉴욕의 한 여행사는 고객들이 로마 여행을 취소하고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일정을 바꾸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고 전했다. 영국에서 남부 유럽으로 가는 항공편 검색량이 7월 초 58%로, 한 달 전 62%보다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7-8월 성수기에 집중됐던 유럽 관광이 상대적으로 시원한 봄과 가을로 분산되고, 북유럽을 찾는 관광객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분석하고 있다.

재난 대응 체계의 한계 드러내

이번 터키 산불은 각국의 재난 대응 체계가 급변하는 기후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터키 당국은 신속하게 헬리콥터와 소방항공기를 투입했지만, 강풍으로 인해 공중 진화 작업이 제한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즈미르 주지사 술레이만 엘반은 “앞으로 4-5일은 매우 뜨겁고 강풍과 낮은 습도가 이어질 것”이라며 “이는 산불에 이상적인 조건”이라고 경고했다. 담배꽁초 투기나 야외 화기 사용 금지 등 기본적인 예방 수칙 준수를 강조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유럽 각국은 기존의 재난 대응 시스템을 기후변화 시대에 맞게 전면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산불 예방과 초기 대응, 대피 체계, 의료 시스템 연계 등 모든 영역에서 업그레이드가 시급하다.

온실가스 감축, 더 이상 늦출 수 없다

이번 터키 산불과 남유럽 폭염은 기후변화가 더 이상 먼 미래의 문제가 아님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극심한 폭염은 탄소 배출에 의한 것이며, 전 세계 정부가 즉각적인 탄소 감축을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폭염으로 인한 불평등이 심화되고, 경제와 건강에 심각한 타격을 줄 것”이라고 경고했다.

특히 한국의 상황도 심각하다. 환경부 발표에 따르면 한국의 기온은 1912년부터 2020년까지 109년 동안 약 1.6도 상승하여, 전세계 평균 상승폭인 1.09도보다 빠르게 온난화가 진행되고 있다.

세계자원연구소의 레베카 카터 박사는 “우리가 앞으로 많이 보게 될 트렌드의 시작”이라며 “언제, 어디로 갈지 등을 결정할 때 날씨와 기후 변화는 그러한 판단 요소의 일부로 포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새로운 현실에 맞는 적응 전략 필요

터키 이즈미르의 산불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강풍이 계속되는 동안 완전한 진화는 어려울 전망이고, 비슷한 기상 조건이 계속되면 새로운 화재 발생 위험도 높다.

이제 남유럽의 여름은 40도를 넘나드는 폭염과 대형 산불이 일상이 된 시대가 됐다. 이는 과거의 기준으로는 대처할 수 없는 새로운 현실이다. 온실가스 감축을 통한 근본적 해결책과 더불어, 변화된 기후에 적응하는 새로운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

더 이상 미룰 시간이 없다. 터키 이즈미르의 불길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기후위기는 지금 여기에 있고, 우리의 대응도 지금 시작돼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