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들어 제조업계에 찬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그동안 상승세를 이어가던 제조업 체감경기지수(BSI)가 10개월 만에 하락 전환하면서 경기둔화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다. 기업들이 체감하는 경기 온도가 급격히 떨어지면서 한국 경제의 핵심 축인 제조업 분야에 빨간불이 켜졌다.
BSI 하락의 의미와 현황
BSI(Business Survey Index)는 기업들이 직접 느끼는 경기 상황을 수치로 나타낸 지표다. 100을 기준으로 이보다 높으면 경기가 좋아진다고 보는 기업이 많다는 뜻이고, 낮으면 그 반대를 의미한다.
2025년 4월 기준 제조업 업황실적 BSI는 68을 기록했다. 이는 기준선인 100을 크게 밑도는 수치로, 제조업체들이 현재 상황을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중소기업의 BSI는 59로 대기업(76)보다 훨씬 낮은 수준을 나타냈다.
2025년 제조업 전망, 더욱 어두워져
올해 들어 제조업계의 전망은 갈수록 암울해지고 있다. 산업연구원이 지난달 1500개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2025년 연간 매출 전망 BSI가 91에 그쳐 2024년 전망치(99)보다 하락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3분기 연속 악화되는 추세로, 제조업계가 올해를 매우 어려운 한 해로 예상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특히 주력 산업들의 전망이 일제히 어두워졌다는 점이 우려스럽다. 반도체(92→88), 자동차(94→92), 조선(99→95), 정유(97→85), 철강(92→74) 등 대부분 업종의 전망이 보다 어두워졌다.
기업들이 꼽는 주요 우려 요인들
제조업체들이 경영 활동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꼽은 것들을 살펴보면 현재 상황의 심각성이 드러난다. 제조업체들은 ‘내수 부진 및 재고 누증'(49%), ‘대외 불확실성 지속'(47%), ‘고환율 및 생산비 부담 가중'(42%) 등을 주요 부정적 요인으로 꼽았다.
특히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과 관련해서는 ‘인플레이션 재심화 및 고금리 지속'(41%), ‘고율 관세 부과 영향'(24%) 등을 우려했다고 나타났다. 이는 대외 여건 악화가 제조업계의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대·중소기업 격차 심화
경기 체감도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격차도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한국은행 기업경기조사에 따르면 제조업 대기업의 BSI는 76인 반면, 중소기업은 59에 그쳤다.
이러한 격차는 중소기업이 경기 변화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며, 대외 불확실성과 비용 부담에 더 취약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특히 내수 기업의 BSI가 64로 수출 기업(75)보다 낮게 나타나는 것도 국내 소비 부진의 영향을 반영한다.
4년 만에 최악 수준으로 떨어진 기업심리
기업심리지수가 석 달째 후퇴하면서 4년 4개월 만에 최악 수준으로 떨어졌다는 보도가 나올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다. 이는 단순한 일시적 하락이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가 누적된 결과로 해석된다.
대한상공회의소의 2025년 1분기 제조업 기업경기전망지수 조사에서는 전분기 대비 24포인트, 전년 동기 대비 22포인트 하락한 61을 기록해 4년 만에 최저치를 나타냈다. 특히 계엄사태 전후로 나뉜 조사에서 사태 이후 지수가 11포인트 추가 하락한 것으로 나타나 정치적 불안정이 기업심리에 직접적인 타격을 준 것으로 분석된다.
전체 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
제조업은 한국 경제의 핵심 축이기 때문에 이 분야의 경기 악화는 전체 경제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다. KDI는 경제활동별로 건설업이 대폭 감소한 가운데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증가세도 둔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고용증가세는 건설업과 제조업에서 감소세가 심화되면서 완만한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점이 우려스럽다. 제조업 경기 악화가 일자리 창출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는 셈이다.
글로벌 불확실성과 대외 여건 악화
최근 우리 경제는 건설업이 부진한 가운데, 미국 관세인상으로 수출도 둔화되면서 경기 전반이 미약한 상태에 머물러 있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주의 정책이 본격화되면서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제조업에 직격탄이 되고 있다.
2025년 들어 무역전쟁 우려로 주가 대폭락이 발생하는 등 글로벌 경제 불안정성이 증가한 상황에서, 제조업계는 더욱 어려운 여건에 직면해 있다.
업종별 명암 엇갈려
모든 제조업 분야가 어려운 것은 아니다. 무선통신기기와 조선, 바이오·헬스 정도가 올해 전년 대비 나을 것으로 기대되는 산업으로 꼽혔다.
하지만 반도체, 자동차, 정유, 철강 등 주력 산업들의 전망이 모두 어두워진 상황에서는 이런 일부 업종의 선전만으로 전체적인 분위기를 바꾸기는 어려워 보인다.
정책적 대응의 필요성
2025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컨센서스는 1%대 중반까지 내려왔고, 하반기 개선 기대가 약화되면 1%대 초반까지 떨어질 가능성이 커 보인다는 전망이 나오는 상황에서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동안 내수경기에 하방 압력으로 작용해 왔던 고금리 기조와 건설수주 부진이 일부 해소되고 있어 향후 시차를 두고 내수 부진이 다소 완화될 가능성도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제조업계의 근본적인 어려움을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앞으로의 전망과 대응방안
제조업 경기심리의 급냉은 단순한 순환적 둔화를 넘어서는 구조적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보인다. 대외 불확실성 확대, 내수 부진, 고비용 구조, 정치적 불안정 등이 동시에 제조업계를 압박하고 있다.
특히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정책 방향과 중국 경제의 둔화, 글로벌 공급망 재편 등 대외 여건이 당분간 불확실한 상황에서 제조업계의 어려움은 쉽게 해소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정부는 금리 인하를 통한 기업 부담 완화, 수출 다변화 지원, 중소기업 금융 지원 확대 등 종합적인 정책 패키지를 마련해야 할 시점이다. 아울러 기업들도 내수 시장 개척, 비용 구조 개선, 혁신을 통한 경쟁력 강화 등 자구 노력을 배가해야 할 것이다.
제조업 경기심리의 회복 없이는 한국 경제 전체의 활력을 되찾기 어렵다는 점에서, 이번 BSI 하락은 단순한 지표 악화를 넘어 경제 정책의 우선순위를 재점검해야 할 신호로 받아들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