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 26일, 중앙아메리카를 순방 중이던 미국 국토안보장관 크리스티 노엄이 폭탄선언을 했다. 과테말라와 온두라스가 미국과 ‘제3국 수용국’ 협정을 체결했다는 발표였다. 하지만 정작 당사국들은 즉각 이를 부인했고, 국제사회는 혼란에 빠졌다.
노엄 장관의 발표 내용
노엄 장관은 과테말라 시티에서 중앙아메리카 순방을 마무리하며 “온두라스와 과테말라가 다른 국가 출신 난민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하는 협정에 서명했다”고 발표했다.
그는 “미국만이 유일한 선택지여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난민에게 중요한 건 안전한 곳에서 보호받는 것이지, 반드시 미국일 필요는 없다”고 설명했다. 또한 이 협정은 수개월간 진행된 작업의 결과이며, 미국 정부가 양국에 압력을 가해 성사시켰다고 덧붙였다.
양국 정부의 즉각 부인
하지만 노엄 장관의 발표 직후 상황은 급반전됐다. 과테말라 대통령실은 “정부는 제3국 수용 협정이나 이민 관련 협정을 체결한 바 없다”며 공식 부인했다. 과테말라 측은 단지 미국이 송환하는 중앙아메리카 출신자들이 본국으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경유하는 역할만 하기로 했다고 해명했다.
온두라스 이민청장 윌슨 파스 역시 그런 협정에 서명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으며, 외교부는 논평 요청에 즉답하지 않았다.
트럼프 1기 정책의 재현?
이번 논란은 도널드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의 정책을 떠올리게 한다. 트럼프 대통령 첫 임기 중 미국은 온두라스, 엘살바도르, 과테말라와 제3국 수용국 협정을 체결한 바 있다. 이 협정들은 미국이 일부 난민 신청자들을 미국 보호 대상에서 제외하고 ‘안전하다’고 간주되는 해당 국가들로 송환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당시에도 이 정책은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과테말라, 온두라스, 엘살바도르는 자국민들이 미국으로 대거 이주하는 상황에서 타국 난민까지 수용하기에는 역량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현실적 문제들
중앙아메리카 국가들의 현실을 보면 이번 협정 논란이 왜 복잡한지 알 수 있다. 온두라스는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살인율을 기록하는 국가 중 하나다. 과테말라 역시 빈곤율이 높고 치안이 불안정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들 국가가 타국 난민을 수용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인권단체들은 지속적으로 이러한 정책이 난민들을 더 위험한 상황에 노출시킬 수 있다고 경고해왔다.
정치적 계산과 외교적 압박
노엄 장관이 “정치적으로 이들 정부에게는 어려운 협정”이라고 언급한 것은 이번 사안의 복잡성을 보여준다. 중앙아메리카 국가들은 미국과의 관계를 고려해야 하는 동시에, 자국 내 여론과 실질적 수용 능력도 고려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특히 과테말라의 경우, 베르나르도 아레발로 대통령이 집권한 이후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해왔지만, 이런 민감한 사안에서는 신중한 접근을 보이고 있다.
미국 내부의 정책 조율 문제
이번 사태는 미국 행정부 내부의 정책 조율 문제도 드러낸다. 노엄 장관의 발표가 있었지만, 백악관이나 국무부의 공식 확인은 뒤따르지 않았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 내에서도 이민 정책에 대한 접근 방식에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앞으로의 전망
이번 논란은 단순한 외교적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 행정부가 공언한 대규모 이민자 추방 정책을 추진하려면 이런 제3국 수용 협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앙아메리카 국가들의 거부감과 실질적 수용 능력의 한계를 고려할 때, 미국은 더 현실적이고 지속가능한 접근 방식을 찾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인권과 국제법의 관점
국제 인권법 전문가들은 이런 협정이 난민 보호 원칙에 어긋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난민들을 안전하지 않은 지역으로 송환하는 것은 ‘강제송환금지 원칙’에 위배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과테말라와 온두라스 자체가 자국민의 미국 이주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이들 국가를 ‘안전한 제3국’으로 간주하는 것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결론: 진실과 정치적 의도 사이
이번 미국-중앙아메리카 난민 협정 논란은 여러 겹의 복잡한 이해관계를 보여준다. 미국은 이민 부담을 줄이려 하고, 중앙아메리카 국가들은 미국과의 관계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자국의 현실적 한계를 고려해야 한다.
무엇보다 이런 정책 논의에서 가장 취약한 위치에 있는 난민들의 안전과 인권이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진정한 해결책은 이들 국가의 근본적인 문제 해결과 지역 전체의 안정을 위한 포괄적 접근에서 나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