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악몽이 되살아나다, 과테말라 푸에고 화산 재분화

“72시간 버틸 짐을 싸서 대피하라”

2025년 6월 5일, 중앙아메리카 과테말라에서 가장 위험한 화산 중 하나인 푸에고 화산이 다시 분화했다. 스페인어로 ‘불의 화산’을 뜻하는 이 화산은 이름에 걸맞게 7년 만에 다시 한번 과테말라 주민들에게 공포를 안겨주고 있다. 과테말라 재난당국은 “최소 72시간 버틸 수 있는 짐을 싸서 대피하라”는 긴급 경보를 발령했다.

위험 경보 3단계, 7km까지 화산쇄설물 확산

과테말라 재난당국(CONRED)은 이날 푸에고 화산에서 독성 기체와 화산재 분출을 감지하고 ‘위험’ 경보를 발령했다. 이는 1~4단계로 나눈 화산 경보에서 두 번째로 높은 등급인 3단계로, “강력한 분화가 예상될 때” 발령되는 수준이다.

과테말라 국립지질연구소(INSIVUMEH)에 따르면, 해발 3,763m의 푸에고 화산에서는 전날 밤부터 24시간 모니터링 시스템을 통해 폭발 징후가 포착됐다. 화산 활동은 40시간 동안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며, 화산재 구름은 고도 3,000~7,000m까지 치솟아 항공 운항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화산쇄설물(화산 분화로 분출되는 물질)은 협곡을 따라 7km까지 확산되어 이동했다. 현지 언론은 화산 일대 마을에 하얀 잿가루가 눈처럼 떨어졌다고 보도했다. CONRED는 화산재와 가스가 화산 북서쪽, 서쪽, 남서쪽에 위치한 여러 지역사회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발표했다.

594명 긴급 대피, 39개 학교 휴교

과테말라 수도에서 남서쪽으로 약 50km 떨어진 푸에고 화산 인근의 치말테낭고, 에스퀸틀라, 사카테페케스 지역에서 최소 594명이 대피소로 긴급 이동했다. 하지만 화산 활동이 지속되면서 대피자 수는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당국은 39개 학교의 휴교를 명령했으며, 과테말라 남부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식민지 도시 안티구아를 연결하는 고속도로도 통제했다. 28세 주민은 “처음에는 평소와 다름없었다. 아침에 분화가 있었고 화산 활동이 조금 증가했다”며 “하지만 적절한 시간 안에 대피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중미에서 가장 활발한 ‘살아있는 화산’

푸에고 화산은 중앙아메리카에서 가장 활동이 활발한 화산 중 하나로, 지금도 소규모 분화를 반복하고 있는 성층 화산이다. 이 화산은 고대 매세타 화산이 붕괴된 자리에서 형성되었으며, 옆에는 8,500년 전에 화산체 전체가 붕괴된 아카테난고 산이 있다.

푸에고 화산의 최근 거대한 폭발은 1974년에 일어났으며, 당시 대량의 용암이 시속 60km의 속도로 흘러내렸고 화산쇄설류와 대량의 화산재가 발생했다. 이후에도 지속적인 화산 활동으로 인해 최근 몇 년간 여러 차례 대규모 대피가 실시되었으며, 가장 최근에는 2025년 3월에도 분화가 있었다.

2018년 참사의 트라우마

많은 과테말라인들에게 이번 분화는 2018년 6월 3일의 악몽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푸에고 화산은 40여 년 만에 가장 강력한 분화를 일으켜 215명이 사망하고 230여 명이 실종되는 대참사가 벌어졌다.

2018년 분화 당시 화산재와 화산가스, 암석 등이 뒤섞인 화산쇄설물이 시속 100km 이상의 빠른 속도로 화산 경사면을 타고 흘러내렸다. 이는 서기 79년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폼페이가 매몰된 상황과 유사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La Reunion 리조트, San Miguel Los Lotes 마을, El Rodeo 마을 등이 화산쇄설물에 완전히 매몰되었고, 특히 San Miguel Los Lotes 마을은 마을 전체가 화산재와 암석 더미 속에 파묻혀 버렸다. 과테말라 재난방지청은 현장 작업 조건 악화를 이유로 재난 발생 2주일 만에 수색작업을 공식적으로 중단했으며, 해당 마을들을 집단 묘지로 선포했다.

하와이 킬라우에아와 다른 위험성

현재에도 대규모 분출을 계속하고 있는 하와이 킬라우에아 화산에 비해 푸에고 화산의 피해가 훨씬 컸던 이유는 분출물의 성격 차이에 있다. 킬라우에아 화산의 경우 분출물이 주로 용암으로 지표면을 타고 천천히 흐르는 반면, 푸에고 화산은 용암보다는 화산재와 화산가스, 암석 등이 섞인 화산쇄설물이 대규모로 분출되면서 매우 빠른 속도로 흘러내리기 때문이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푸에고 화산은 ‘폭발적 분화’를 일으키는 것으로 유명하며, 대피 시간이 매우 제한적이다. 2018년 당시 화산쇄설물 흐름의 폭은 수십 미터, 높이는 수 미터에 달했으며, 분화구로부터 14km 떨어진 곳까지 영향을 미쳤다.

국제사회의 지원과 한국의 역할

2018년 재난 당시 미국, EU, 멕시코 등 국제사회의 인도적 지원이 이뤄졌으며, 우리 정부도 화산폭발 피해자들을 위한 인도적 지원금 20만 달러를 과테말라 적십자사를 통해 지원했다. 한인회와 동포기업, 월드쉐어 등 과테말라에서 활동 중인 NGO 단체와 한인교회 등도 적극적인 구호활동을 전개했다.

당시 과테말라 정부는 피해액 총 규모가 6억 케찰(8천만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는데, 이는 과테말라 국내총생산의 0.5%에 달하는 규모였다.

기후변화 시대의 화산 위험

최근 전 세계적으로 화산 활동이 증가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일본의 사쿠라지마 화산은 2025년 5월부터 또다시 화산재와 용암을 내뿜는 분화를 일으키고 있으며, 러시아 캄차카반도의 시벨루치 화산도 최근 분화해 10km 상공까지 화산재가 치솟았다.

전문가들은 지구 온난화와 극지방 빙하 융해로 인한 지각 변동이 화산 활동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또한 인구 증가로 화산 인근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화산 재해의 잠재적 피해 규모도 커지고 있다.

자연재해 앞의 인간

푸에고 화산의 재분화는 자연재해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취약한 존재인지를 다시금 보여주는 사례다.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달해도 화산 폭발을 막을 수는 없고, 정확한 예측도 여전히 어렵다.

과테말라는 2018년 참사 이후 조기 경보 시스템을 개선하고 모니터링 역량을 확충했지만, 이번 사태는 여전히 대응 시스템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빠르게, 효과적으로 대응하느냐이다.

2025년 푸에고 화산 분화는 아직 진행 중이다. 다행히 현재까지 사망자나 중상자는 보고되지 않았지만, 지역 사회는 장기적인 환경 피해와 재정착 문제에 직면해 있다. 과테말라는 지금 이 위기 앞에서 또 한 번 시험대에 올랐다. 2018년의 교훈이 이번에는 더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