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 위협 앞에 굴복한 민주적 공론장
2025년 6월 9일부터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개최될 예정이었던 대규모 친이스라엘 회의가 “심각한 보안 위협”을 이유로 전격 취소됐다. 이 사건은 단순한 행사 취소를 넘어, 미국 내에서 점점 격화되고 있는 정치적 갈등이 물리적 위협으로 변질되면서 표현의 자유 자체가 위험에 처해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 되었다.
기독교-이스라엘 연대의 상징이었던 회의
이번 회의는 ‘Israel Guys’와 복수의 보수 성향 친이스라엘 기독교 단체들이 공동 주최했으며, 약 1,000명의 참석자가 참가할 예정이었다. The Israel Guys는 “이스라엘의 진실되고 진정한 이야기를 전하는 것에 헌신한다”며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활동을 펼치고 있는 단체다.
연사 명단에는 전직 미국 고위 외교관, 이스라엘 정부 관계자, 하마스 공격 생존자 등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핵심 인사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행사의 주요 목적은 이스라엘과의 연대를 재확인하고, 하마스를 비롯한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들의 테러에 대한 국제사회의 대응을 촉구하는 것이었다.
이런 성격의 회의는 미국 내 보수 기독교계와 친이스라엘 단체들이 정기적으로 개최해왔던 형태의 행사로, 과거에는 큰 문제없이 진행되어왔다. 하지만 2025년의 상황은 달랐다.
두 차례 장소 변경, 그리고 결국 전면 취소
회의는 당초 댈러스 인근의 한 호텔에서 진행될 예정이었지만, 초기부터 보안 우려가 제기되면서 장소를 한 차례 변경했다. 하지만 새롭게 확정된 장소 역시 팔레스타인 지지 단체인 ‘Palestinian Youth Movement Dallas’가 SNS를 통해 정보를 노출하며, 또 다른 보안 리스크가 불거졌다.
Palestinian Youth Movement Dallas는 댈러스 지역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지지 단체로, 과거 이스라엘의 라파 공격에 항의하는 집회를 조직하는 등 팔레스타인 연대 활동을 이어왔다. 이들이 회의 정보를 공개하면서 반대 시위가 조직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하지만 결정적인 계기는 다크웹에서 발견된 위협적 콘텐츠였다. 회의 참가자를 상대로 한 구체적인 폭력적 암시와 공격 계획이 보고되었고, FBI와 지역 경찰의 협조에도 불구하고 주최 측은 행사를 예정대로 강행하는 것은 참가자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미국 내 격화되는 이스라엘 갈등
최근 미국에서는 이스라엘을 공개 지지하는 활동에 대한 반발이 점점 더 과격해지고 있다.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공격 이후, 미국 내에서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을 둘러싼 의견 대립이 첨예하게 벌어지고 있다.
대학 캠퍼스에서는 친팔레스타인 시위가 확산되고 있으며, 지난해 5월에는 텍사스 대학교 댈러스 캠퍼스에서 학생들이 천막을 설치하며 시위를 벌이다 21명이 체포되는 사건도 발생했다. 이처럼 미국 내에서 이스라엘 관련 갈등은 단순한 의견 대립을 넘어 물리적 충돌로 확산되고 있는 상황이다.
국제적으로도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2025년 현재에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등 다양한 세력 간 크고 작은 갈등이 이어지고 있으며, 이러한 지정학적 갈등이 사이버 공간과 실제 물리적 공간에서의 위협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사이버 위협의 새로운 양상
이번 사건에서 주목할 점은 다크웹을 통한 위협이 실제 행사 취소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2025년 사이버 보안 전문가들은 다크웹에서의 위협이 더욱 구체적이고 조직적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경고해왔다.
안랩이 선정한 ‘2025년 5대 사이버 보안 위협 전망’에서도 적대세력 간 사이버전 및 핵티비스트 활동 격화를 주요 위협 중 하나로 꼽았다. 핵티비스트란 해커와 행동주의자를 합친 말로, 정치적·사회적 이슈에 대한 투쟁의 수단으로 해킹을 사용하는 활동가를 의미한다.
이들은 정치적·사회적 메시지를 퍼뜨리기 위해 DDoS 공격, 웹사이트 변조, 정보 유출, 딥페이크 영상 유포 등 다양한 방식을 활용하며, 단순한 메시지 전파를 넘어 실제 물리적 위협까지 가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표현의 자유와 공공 안전의 딜레마
전 미국 주이스라엘 대사인 데이비드 프리드먼은 이번 사태에 대해 “법 집행 기관이 협조했음에도 불구하고 회의가 취소된 것은 미국 사회가 이스라엘 지지자들의 기본적 자유를 보장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는 경고 신호”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보수 언론과 기독교계 단체들도 “표현의 자유가 위협받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반면 일부 진보 성향 단체들은 “이스라엘에 대한 비판이 곧 증오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며 반박하고 있다.
이는 미국 사회가 직면한 근본적인 딜레마를 보여준다.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이지만, 그 표현이 물리적 위협으로 이어질 때 공공 안전과 어떻게 균형을 맞춰야 하는가의 문제다.
민주적 공론장의 위기
이번 사건은 단순히 보안 문제가 아니라, 미국 내 정치적·종교적 갈등이 실질적인 공공 안전 문제로 비화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친이스라엘 혹은 반이스라엘 입장을 지지하는 행사들이 더 이상 자유롭게 개최되지 못하는 상황은 민주적 공론장의 근본적 위기를 보여준다.
온라인을 통한 위협 확산과 다크웹에서의 계획적 폭력 예고 등 새로운 형태의 보안 위협이 민주주의적 공론장을 침식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이는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민주주의 사회가 맞이한 구조적 과제를 상징적으로 드러낸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앞으로의 과제
댈러스에서의 친이스라엘 회의 취소는 미국 내에서의 이스라엘 지지 활동이 점점 더 강력한 저항과 위협에 직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는 친이스라엘 활동만의 문제가 아니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주제를 다루는 모든 행사가 비슷한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하다.
미국 사회는 표현의 자유와 공공 안전 사이의 균형점을 찾아야 하는 과제에 직면해 있다. 단순한 법 집행 강화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다. 사회 구성원들이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과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문화적, 제도적 기반을 다시 구축해야 할 때다.
앞으로 미국 내에서 유사한 정치·종교적 행사들이 얼마나 자유롭게, 그리고 안전하게 열릴 수 있을지는 미국 민주주의의 건강성을 가늠하는 중요한 척도가 될 것이다. 댈러스의 취소된 회의는 그 첫 번째 경고등이 켜진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