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 아프리카 말리에서 중대한 군사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3년 반 동안 말리에서 활동해온 러시아의 민간군사기업 와그너 그룹이 “임무 완수”를 선언하며 철수를 시작했고, 그 자리를 러시아 국방부 산하의 ‘아프리카 군단’이 대체하고 있다. 이 변화는 러시아의 아프리카 전략이 민간 용병 조직에서 정규군 중심으로 전환되는 역사적 전환점을 의미한다.
와그너의 말리 활동과 철수 배경
3년 반의 활동과 성과 주장
민간 군사 기업(PMC)의 전문가들이 아프리카에 도착한 지 3,5년 반 만에, 바그너 PMC 전투기들이 말리를 떠나고 있습니다. 그들이 수행하던 임무가 이제 완료되었기 때문입니다라고 와그너 측은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와그너는 자신들의 성과를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아프리카 국가 국방부의 발표에 따르면, 러시아 PMC 직원들의 조치 덕분에 말리 광업 부문의 3개 핵심 기업이 활동을 재개하고, 불법적인 천연자원 채굴로 인한 피해를 거의 절반으로 줄이고 운송 경로의 안전한 운영이 가능해졌습니다고 전해진다.
와그너 전투원들은 2022년 초부터 말리에서 활동해 왔습니다. 그들은 불법 이슬람 무장 단체와 싸우고, 지역 보안군을 훈련시키고, 고위 정부 관리들을 보호해 왔습니다라는 공식 활동 내역을 통해 자신들의 역할을 정당화해왔다.
프랑스 철수 후 생긴 공백 메우기
와그너의 말리 진입은 2021년 말리 군부 쿠데타 이후 프랑스와 유엔 평화유지군이 단계적으로 철수하면서 생긴 안보 공백과 직결된다. 2013년부터 프랑스는 Serval 작전을 통해 말리 북부 영토를 수복하고, 이후 사헬지역 대테러작전인 Barkhane 작전을 전개했지만, 2020년대 들어 말리 정부와의 관계가 급속히 악화됐다.
특히 2023년 8월에는 유엔 안보리 결의 2690호에 따른 MINUSMA 1단계 철수가 완료되고 2단계가 진행되면서 서방 세력의 영향력이 크게 축소됐다. 말리는 2024년 1월에는 부르키나파소·니제르와 함께 서아프리카국가경제공동체(ECOWAS) 탈퇴까지 선언하며 서방과의 결별을 공식화했다.
와그너의 어두운 그림자: 인권 침해 논란
민간인 학살 의혹과 국제적 비난
와그너의 말리 활동은 군사적 성과 못지않게 심각한 인권 침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영국 가디언지의 보도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4월 중순 사이 말리군과 와그너 그룹이 관련된 9건의 사건에서 민간인이 456명 사망했다고 밝혀졌다.
가장 충격적인 사건은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통제하는 한 마을에서 4일간 350∼380명이 살해된 것이다. 여러 목격자는 이 작전을 주도한 이들은 모르는 말을 하는 백인이라고 증언했으며, 이들 중 일부는 러시아인으로 확인됐다.
인권 단체 휴먼라이츠워치는 이를 “말리의 10여년 무력 충돌에서 최악의 단일 잔학 행위”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논란은 2023년 1월 미국 백악관이 와그너 그룹을 국제 범죄조직으로 지정하고, 3월에는 미국 법무부가 테러조직 지정을 검토하는 배경이 됐다.
모우라 대학살과 국제사회 압력
2022년 모우라 지역에서 발생한 대규모 학살 사건은 와그너의 잔혹성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이 사건으로 인해 유엔과 국제인권단체들은 와그너의 철수를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 와그너 그룹 수장인 예브게니 프리고진은 말리 학살 의혹과 관련해서 가디언지가 거짓말을 한다고 비판했지만, 국제사회의 압력은 계속 커져갔다.
아프리카 군단: 새로운 러시아 전략의 등장
민간에서 정규군으로의 전환
와그너가 물러난 자리는 러시아 국방부가 창설한 ‘아프리카 군단(Africa Corps)’이 채우고 있다. 러시아가 그동안 니제르에 대사관을 두지 않고 바그너그룹(현 ‘아프리카 군단’) 등 민간 용병 기업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진 만큼 공식적인 외교 활동을 넓히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이 부대는 기존 와그너 용병 일부를 포함하여 러시아군 출신 장병들로 구성되며, 이제는 러시아 정부의 직접 지휘 하에 작전을 수행한다. 이는 러시아가 ‘비공식 개입’에서 ‘공식 파병’ 전략으로 아프리카 정책을 재편하려는 의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프리고진 사망 후 통제 강화
푸틴 정부는 와그너 창립자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2023년 6월 24일 반란을 일으켰다가 8월 사망한 이후, 민간 용병 조직의 자율성을 억제하고 국방부가 아프리카 전략을 통제하려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프리고진의 죽음은 러시아 정부가 더 이상 통제 불가능한 민간 용병 조직을 용인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줬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아프리카 전선의 연결고리
말리-우크라이나 외교 단절
2024년 8월, 아프리카 말리가 국내 반군을 지원한 혐의로 우크라이나와 외교 관계를 끊었다는 사건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아프리카까지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압둘라예 마이가 말리 군정 대변인은 “우크라이나와 외교 관계를 즉각적으로 단절한다”며 “우리 군인들의 사망을 초래한 무장 테러 단체의 야만적인 공격에 우크라이나가 관여했음을 인정한 데 따른 조처”라고 밝혔다.
지난달 25일 알제리 접경 말리 북부 틴자우아텐 지역에서는 투아레그족 반군과 정부군, 러시아 용병조직 바그너 그룹 사이에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다. 며칠간 이어진 전투에서 투아레그족 반군은 바그너 용병 최소 84명과 말리 정부군 47명을 사살했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 정보부의 개입 의혹
현지 군 요원들은 말리에서 발생한 무장 세력의 공격과 우크라이나 특수 정보기관의 연계성을 발견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말리 측은 우크라이나 국방부 산하 중앙정보국(GUR)이 이 아프리카 국가에서 발생한 테러 지하디스트 단체의 공격에 연루되었다고 주장한다.
우크라이나의 국방부 산하 정보총국 대변인인 안드리 유소프는 말리반군이 필요한 정보를 받아 ‘러시아 전쟁범죄자들’을 상대로 한 군사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이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유럽을 넘어 아프리카 대륙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준다.
러시아의 아프리카 전략 확대
경제적 영향력 확산
아프리카 내 러시아의 영향력은 안보뿐 아니라 경제 등 다양한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BBC 방송에 따르면 압둘라예 디옵 말리 외무장관은 러시아와 군사 협력은 물론, 에너지, 통신, 기술, 광업 등에서 공동 프로젝트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말리 새 집권세력이 와그너 그룹에 월 1천만 달러(약 127억원) 상당의 현금과 광물 추출권을 제공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러시아가 아프리카에서 단순한 군사적 개입을 넘어 경제적 이익까지 추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러시아-아프리카 파트너십 포럼
2024년 11월 9-10일 러시아 남부 소치에서 열린 제1회 러시아-아프리카 파트너십 포럼은 아프리카 대륙에서 영향력을 키우는 러시아의 과감한 행보를 보여주는 자리였다. 타스통신에 따르면 이 행사에는 아프리카 국가들의 장관급 인사 45명을 포함해 약 1천500명의 대표단이 참석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이 대독한 연설을 통해 “우리나라는 지속 가능한 개발, 테러리즘 및 극단주의와 싸움, 전염병 퇴치, 식량 문제 및 자연재해 등 다양한 분야에서 아프리카 친구들을 계속해서 전폭적으로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방의 대응과 우려
프랑스와 유럽의 입지 축소
러시아의 이러한 전략 변화는 서방 국가들, 특히 프랑스 및 유럽연합과의 긴장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말리는 이미 2023년 유엔 평화유지군 철수를 요청하며 서방과의 관계를 급속히 악화시킨 상태다.
니제르와 말리 군정은 대신 러시아에 군사적 도움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니제르는 과거 이슬람국가(IS), 알카에다 등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세력에 맞서 미국과 프랑스 등 서방의 군사 거점이었지만, 이제는 아프리카 내 러시아의 위상 강화를 보여주는 대표적 국가가 됐다.
미국의 아프리카 정책 딜레마
로이터통신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아프리카에서 미국의 힘이 쇠퇴한 가운데 바통을 이어받는다며 미국이 아프리카에서 중국, 러시아에 뒤처질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조원빈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중국은 오래전부터 아프리카에 대한 투자를 늘려왔고 러시아도 투자뿐 아니라 안보 분야에서 용병을 통한 영향력 확대를 위해 노력해왔다”면서 “아프리카에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트럼프 당선인은 집권 2기에서도 비슷한 행보를 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말리의 복잡한 현실
풍요로운 과거와 현재의 빈곤
말리라는 이름은 말리 제국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이는 “왕이 사는 곳”을 의미하며, 힘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13~17세기까지 존재했던 서아프리카의 제국이었던 말리 제국은 14세기 초 홀로 전세계 황금 생산량의 절반을 책임질 정도로 무지막지한 양의 황금을 채굴했다.
그야말로 막장화된 말리의 현 상황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말리 역사의 최전성기였다. 현재 말리는 출산율 세계 랭킹 4위로 2025년 기준 5.6명이며, 현재 말리 인구의 43%는 17세 미만이다. 인구가 2004년에는 12,956,788명이었지만 2025년에는 2600만명까지 늘었지만, 빈곤과 내전 등 고질적인 사회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지속되는 불안정
2012년부터 이슬람 급진세력과 연계된 투아레그족 반군 등 무장단체와 분리주의 세력의 준동으로 불안한 정세가 이어지고 있다. 2025년 2월에는 말리 서남부에서 폐광이 무너져 최소 48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는 등 사회 안전망도 취약한 상황이다.
미래 전망과 지정학적 함의
새로운 냉전 구도의 아프리카 전선
와그너 그룹의 철수와 아프리카 군단의 배치는 단순한 병력 교체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이는 러시아의 아프리카 전략이 비공식 민간 개입에서 벗어나, 국가 주도의 정규 작전으로 전환되는 분수령이다.
동시에 말리 내전과 지역 안보 상황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향후 러시아의 군사적 존재감이 아프리카 전역으로 확산될 가능성도 있는 만큼, 국제사회는 이 변화의 파장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인권 문제의 지속성
중요한 것은 와그너의 민간인 피해 논란이 아프리카 군단으로 그대로 이어질 가능성이다. 러시아 정부의 공식 통제로 인해 상황이 개선될 것인지, 아니면 기존의 문제가 지속될 것인지는 앞으로의 행보를 통해 판단될 것이다.
말리는 현재 아프리카 내에서 가장 첨예한 외국 군사 개입 사례로 떠오르고 있으며, 러시아와 서방, 그리고 아프리카 내부 세력 간의 힘의 균형이 앞으로 어떻게 재편될지 주목된다. 와그너에서 아프리카 군단으로의 전환은 아프리카 대륙에서 벌어지는 새로운 지정학적 경쟁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일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