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의 날이 된 비극의 시작
2025년 6월 7일, 이슬람 세계는 한 해의 가장 중요한 명절 중 하나인 ‘이드 알 아드하’를 맞았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아들을 제물로 바치려다 대신 양을 제물로 바쳤다는 성경의 이야기에서 유래된 이 명절은, 원래라면 온 가족이 모여 기도하고 제물을 나누며 이웃과 함께 축복을 나누는 거룩한 날이어야 했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는 이날 새벽부터 이스라엘군의 대규모 공습이 시작됐다. 230만 명이 살고 있는 이 좁은 땅에서, 명절 기도 대신 폭격 소음이 울렸고, 제물을 나누는 대신 구호물자 배급소에서 피가 흘렀다.
라파와 사브라에서 일어난 일
이날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곳은 가자시티의 사브라 지역이었다. 비교적 밀집된 주거지역인 이곳에서 단일 공습으로 15명이 목숨을 잃고 50명 이상이 부상했다. 대부분이 비무장 민간인들이었다. 현장 구조대는 이를 “전면적인 학살”이라고 표현했다.
더욱 충격적인 사건은 가자 남부 라파에서 벌어졌다. 구호물자를 받기 위해 줄 서 있던 주민들을 향한 이스라엘군의 발포로 최소 6명이 사망했다. 이곳은 국제 구호단체가 운영하는 식량 배급소 인근이었고, 희생자 대부분이 여성과 노약자였다. 생존을 위해 모인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은 것이다.
파괴된 모스크, 사라진 명절의 의미
이드 알 아드하는 이슬람력 12월 10일에 열리는 이슬람교의 중요한 축제로, 아브라함이 알라의 명으로 이스마엘을 제물로 바치려다 대신 염소를 바친 것에서 유래한다. 전통적으로 무슬림들은 이날 양이나 염소, 소, 낙타 등을 제물로 바치고, 그 고기의 3분의 1은 자기가 먹고 나머지는 이웃과 가난한 사람들과 나눈다.
하지만 가자지구에서는 이런 전통적인 축제를 지킬 수 없었다. 무너진 모스크 앞 공터에서 야외 기도를 드리는 모습이 곳곳에서 목격됐다. 제물로 바칠 가축을 구할 수 있는 가정은 거의 없었고, 식료품 가격은 몇 주 사이에 3배 가까이 폭등했다.
아이들은 명절 선물을 받지 못했고, 어른들은 가족의 생존을 걱정하며 하루를 보내야 했다. ‘제물 없는 제사의 날’이 된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고립된 땅
가자지구는 약 360제곱킬로미터 정도의 면적에 약 214만 명이 거주하여 세계에서 13번째로 인구밀도가 높은 지역이 되었다. 한국의 세종특별자치시 정도 크기에 대구광역시 인구와 맞먹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셈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들 중 대부분이 난민이라는 점이다. 현재 가자지구 인구의 3분의 2는 1948년 제1차 중동 전쟁에 의해 발생한 팔레스타인 난민 또는 그 자손이다. 거주하는 주민 중 14세 이하 아동이 43.5%, 18세 미만 아동이 50%로 청소년 비율이 상당히 높다.
경제 상황도 절망적이다. 46% 이상인 실업률은 세계에서 가장 높으며, 청년 실업률은 70%에 이른다. 주민의 80%가 식료품 등의 원조에 의존하여 생활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전쟁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휴전이 깨진 배경
2025년 1월 19일에 임시 휴전이 시작되었지만 얼마 안가 2025년 3월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공격으로 휴전이 중단되었다. 약 두 달간 지속된 휴전 기간에도 완전한 평화는 없었다. 이스라엘군은 무인기 등을 동원해 산발적인 소규모 공격을 가했고, 긴장 상태는 계속 유지됐다.
이번 대규모 공습은 이스라엘이 18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대규모 공습을 재개하며 위태위태하게 이어져 온 휴전이 사실상 종료된 것과 맥락을 같이한다. 휴전 연장을 위한 협상이 결렬되면서 전쟁이 재개된 것이다.
국제사회의 반응과 침묵
이번 공습에 대한 국제사회의 반응은 엇갈렸다. 유엔 인권이사회는 즉각적인 조사를 촉구했고, 국제적십자사와 국경없는의사회는 인도주의적 대응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실질적인 압박은 부족했다. 미국과 유럽연합은 민간인 피해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지만, 동시에 이스라엘의 ‘자위권’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이는 명절 기간 중 벌어진 폭력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는 국제사회의 한계를 보여준다.
아랍 국가들은 “명절 기간 중 벌어진 폭력은 종교적 모욕”이라고 규탄했으며, 레바논과 요르단 등은 외교 경로를 통한 항의에 나섰다. 하지만 분쟁을 중재하거나 평화 프로세스를 되살리려는 실질적 움직임은 현재로선 보이지 않는다.
일상이 된 전쟁, 사라진 평화
이번 사건이 보여주는 가장 충격적인 현실은 가자지구에서 전쟁이 더 이상 예외적 사건이 아니라는 점이다. 심지어 이슬람 최대 명절에도, 심지어 구호물자를 기다리는 줄에서도 생명이 위협받는다.
2023년 10월 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상대로 선전포고 없이 대규모 침공 공격을 감행하며 시작된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의 전쟁은 이제 2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다. 이는 1973년 제4차 중동전쟁 이후 역대 최대 규모의 충돌로서 이스라엘 역사상 최대 전쟁이 되었다.
전쟁은 일상이 되었고, 평화는 더 이상 ‘당연한 상태’가 아니다. 가자지구 주민들에게 전쟁은 예외가 아닌 삶의 조건이 되어버렸다.
멈추지 않는 고통의 악순환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군사적 충돌은 단순한 정치적 갈등을 넘어, 민간인의 삶 그 자체를 파괴하고 있다. 가자지구는 현재의 봉쇄로 인해 사람과 물품이 자유롭게 영토에 출입하는 것이 불가능해 가자지구는 종종 ‘옥외 감옥’이라고 불린다.
2025년 6월 7일 가자에서 울린 공습의 굉음은 단순한 포탄의 폭발음이 아니다. 그것은 세계가 아직도 제대로 된 해답을 내놓지 못한 질문의 메아리이기도 하다.
평화는 언제쯤, 누구에 의해, 어떻게 찾아올 수 있을까? 이드 알 아드하라는 희생과 나눔의 명절이 오히려 새로운 희생을 낳는 비극적 아이러니 속에서, 가자지구의 230만 주민들은 여전히 답 없는 질문 앞에 서 있다.
국제사회는 더 이상 관찰자의 입장에 머무를 수 없다. 구호, 중재, 압박 — 어떤 방식이든 이 고통을 멈추기 위한 진정한 개입이 필요한 때다. 명절마저 전쟁터가 되어버린 가자지구의 현실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무겁고도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