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아메리카 마약 카르텔과 치안 위기: 조직범죄의 진화와 국가 대응 전략의 한계

라틴아메리카는 세계 마약 거래의 중심지다. 콜롬비아에서 생산되는 코카인의 70%, 멕시코를 통해 미국으로 밀수되는 마약의 90%가 이 지역을 거쳐 간다. 하지만 마약 문제는 단순한 불법 거래를 넘어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강력한 무력을 갖춘 마약 카르텔들이 정부와 맞서고, 일부 지역에서는 사실상 국가를 대체하는 역할까지 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 앞에서 각국 정부의 대응 전략과 국제 공조 체계는 근본적인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마약 카르텔의 역사적 진화와 권력 구조

라틴아메리카의 마약 거래는 1970년대 콜롬비아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초기에는 소규모 밀수업자들이 개별적으로 활동했지만, 1980년대 들어 메데인 카르텔과 칼리 카르텔이라는 거대 조직이 등장했다. 파블로 에스코바르가 이끈 메데인 카르텔은 전성기에 하루 6,000만 달러의 수익을 올렸으며, 콜롬비아 GDP의 10%를 차지할 정도로 막강한 경제력을 보유했다.

1990년대 콜롬비아 정부의 강력한 소탕 작전으로 메데인과 칼리 카르텔이 해체되자, 마약 거래의 중심지는 멕시코로 이동했다. 멕시코 카르텔들은 처음에는 콜롬비아 마약의 운송업체 역할에 머물렀지만, 점차 생산부터 유통까지 전체 사슬을 통제하는 종합 조직으로 발전했다.

현재 멕시코에는 주요 카르텔이 7-8개 존재한다. 시나로아 카르텔, 할리스코 신세대 카르텔(CJNG), 걸프 카르텔, 로스 세타스, 후아레스 카르텔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각자의 세력권을 구축하고 있으며, 세력권 확장을 둘러싼 피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시나로아 카르텔은 멕시코에서 가장 오래되고 강력한 조직이다. 엘 차포로 불렸던 호아킨 구스만이 이끌었던 이 조직은 미국, 유럽, 아시아에 이르는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구스만이 2016년 체포된 후에도 조직은 건재하며, 현재는 그의 아들들이 지휘하고 있다.

멕시코의 마약전쟁과 폭력의 일상화

2006년 펠리페 칼데론 대통령이 선언한 ‘마약과의 전쟁’은 멕시코를 피로 물들였다. 정부군과 카르텔 간의 충돌, 카르텔들 간의 세력 다툼으로 지난 17년간 35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이는 같은 기간 아프가니스탄 전쟁 사망자보다 많은 수치다.

폭력의 양상도 점점 잔혹해지고 있다. 카르텔들은 상대방을 제압하기 위해 참수, 신체 절단, 산 채로 화형 등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한다. 이러한 잔혹 행위는 동영상으로 촬영되어 소셜미디어에 유포되면서 사회 전체에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다.

특히 할리스코 신세대 카르텔은 군용 무기를 사용하여 정부군과 대등하게 맞서고 있다. 2015년 5월에는 이 조직이 헬리콥터 6대를 격추시켜 군인 8명을 사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는 카르텔의 화력이 어느 수준에 이르렀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마약 폭력은 언론인들에게도 큰 위협이 되고 있다. 2000년 이후 멕시코에서 살해된 언론인은 150명을 넘는다. 국경없는기자회는 멕시코를 언론인에게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국가 중 하나로 분류하고 있다.

콜롬비아의 마약 생산 증가와 새로운 도전

콜롬비아는 여전히 세계 최대 코카인 생산국이다.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ODC)에 따르면 2021년 콜롬비아의 코카 재배 면적은 20만 4,000헥타르로, 이는 벨기에 면적의 3분의 2에 해당한다. 연간 코카인 생산량은 1,400톤으로 추정되며, 이는 전 세계 생산량의 70%를 차지한다.

2016년 정부군과 콜롬비아혁명군(FARC) 간의 평화협정 체결 후 오히려 코카 재배가 증가하는 역설적 상황이 벌어졌다. FARC가 통제하던 지역에서 국가 권력의 공백이 발생하면서 다른 무장단체들과 범죄조직들이 진출했기 때문이다.

현재 콜롬비아에서는 민족해방군(ELN), 콜롬비아 자위군(AUC) 잔존 세력, 그리고 FARC 탈영병들로 구성된 신규 무장단체들이 마약 거래를 둘러싸고 경쟁하고 있다. 이들은 과거보다 더 분산되고 유연한 구조를 가지고 있어 정부의 소탕 작전에도 쉽게 적응한다.

콜롬비아 정부는 코카 작물 대체 프로그램을 통해 농민들에게 커피, 카카오, 과일 재배로 전환할 것을 유도하고 있다. 하지만 성과는 제한적이다. 코카 1헥타르당 연간 수익이 2,000-3,000달러인 반면, 커피는 500-800달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중미 지역의 마약 중계기지화와 사회 해체

과테말라, 온두라스, 엘살바도르로 구성된 중미 북부 삼각지대는 콜롬비아산 마약이 미국으로 향하는 주요 경유지다. 이 지역의 살인율은 인구 10만 명당 40-60명으로 세계 최고 수준이며, 이는 전쟁 중인 국가보다도 높은 수치다.

온두라스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국가 중 하나로 꼽힌다. 수도 테구시갈파와 산페드로술라의 살인율은 인구 10만 명당 85명에 달한다. 마약 카르텔들이 이 지역을 중계기지로 활용하면서 지역 갱단들과 결합하여 폭력이 일상화되었다.

마라 살바트루차(MS-13)와 바리오 18 같은 갱단들은 원래 1980년대 내전을 피해 미국으로 이주했던 중미인들이 로스앤젤레스에서 결성한 조직이다. 이들이 본국으로 추방되면서 중미 지역에 뿌리를 내렸고, 현재는 마약 거래, 인신매매, 갈취 등 다양한 범죄에 관여하고 있다.

엘살바도르의 나이브 부켈레 대통령은 2022년 3월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갱단 소탕 작전을 벌여 7만 명 이상을 체포했다. 이로 인해 살인율이 급격히 감소했지만, 인권 침해 논란도 일고 있다. 국제인권단체들은 무고한 시민들이 갱단원으로 오인되어 체포되는 사례가 많다고 비판한다.

브라질의 도시 폭력과 마약 거래 네트워크

브라질은 세계 최대 코카인 소비국 중 하나이면서 동시에 유럽으로 향하는 마약의 중계기지 역할을 한다. 상파울루의 첫 번째 수도 명령(PCC), 리우데자네이루의 적색 명령(CV) 같은 대형 범죄조직들이 마약 거래를 주도하고 있다.

PCC는 1993년 감옥에서 결성된 조직으로, 현재 브라질 전역에 3만 명의 조직원을 둔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감옥 내에서도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교도소 폭동을 조직하여 정부에 압력을 가한다. 2006년에는 상파울루에서 대규모 폭동을 일으켜 버스 수백 대를 불태우고 경찰서를 공격했다.

리우데자네이루의 파벨라(빈민가)는 마약 거래의 거점이다. 로시냐, 시다드데데우스 같은 대형 파벨라에서는 마약상들이 사실상 지역을 통치하고 있다. 이들은 자체 법정을 운영하고, 주민들에게 보호비를 받으며, 때로는 공공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한다.

브라질 정부는 2008년부터 평화유지부대(UPP) 프로그램을 통해 파벨라에 경찰을 상주시키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성과를 거두었지만, 마약상들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풍선 효과’만 일으킬 뿐 근본적 해결책이 되지 못하고 있다.

페루와 볼리비아의 코카 재배와 전통 문화의 딜레마

페루는 콜롬비아에 이어 세계 2위 코카인 생산국이다. 특히 후알라가 계곡과 VRAEM(아푸리막·에네·만타로강 계곡) 지역에서 코카 재배가 집중되고 있다. 페루의 연간 코카 재배 면적은 6만 1,000헥타르로, 이 중 90% 이상이 불법 목적으로 사용된다.

VRAEM 지역은 ‘페루의 아프가니스탄’으로 불린다. 마오주의 게릴라 조직인 빛나는 길(센데로 루미노소) 잔존 세력이 마약상들과 결합하여 정부군에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이 지역에서는 매년 수십 명의 군인과 경찰이 목숨을 잃는다.

볼리비아는 코카 잎 생산량 세계 3위국이다. 하지만 볼리비아의 상황은 다른 국가들과 차이가 있다. 코카 잎은 안데스 고원 원주민들의 전통 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어 단순히 금지할 수 없는 복잡한 문제다.

에보 모랄레스 전 대통령은 코카 재배 농민 출신으로, 집권 기간 동안 전통적 코카 사용을 보호하면서도 마약 거래는 단속한다는 ‘코카 시, 코카인 노(Coca Sí, Cocaína No)’ 정책을 추진했다. 이에 따라 1인당 코카 재배 면적을 제한하고, 합법적 시장을 통해서만 판매하도록 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미국의 대남미 마약 정책과 그 한계

미국은 라틴아메리카 마약 문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외부 행위자다. 1971년 닉슨 대통령이 선언한 ‘마약과의 전쟁’은 지난 50년간 1조 달러 이상의 예산이 투입되었지만, 마약 공급과 소비는 오히려 증가했다.

콜롬비아 플랜은 미국의 대표적인 마약 퇴치 정책이다. 2000년부터 시작된 이 계획에는 100억 달러 이상이 투입되었다. 초기에는 제초제 공중살포를 통한 코카 박멸에 중점을 두었지만, 환경 피해와 농민들의 저항으로 인해 2015년 중단되었다.

메리다 이니셔티브는 멕시코를 대상으로 한 미국의 안보 협력 프로그램이다. 2008년부터 30억 달러가 지원되어 멕시코군과 경찰의 장비 현대화, 훈련 프로그램, 정보 공유 시스템 구축 등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멕시코의 마약 폭력은 오히려 증가했다.

최근 미국은 공급 차단보다는 수요 감소에 초점을 맞추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하고 있다. 마약 사용자를 범죄자가 아닌 치료 대상으로 보는 관점이 확산되고 있으며, 일부 주에서는 마리화나를 합법화하기도 했다.

국제 공조의 성과와 한계

라틴아메리카 마약 문제는 국경을 넘나드는 초국가적 성격을 가지고 있어 국제 공조가 필수적이다. 미주기구(OAS)는 1986년 미주마약남용통제위원회(CICAD)를 설립하여 지역 차원의 협력을 추진하고 있다.

정보 공유와 공동 수사에서 일정한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2019년 ‘아틀라스 작전’에서는 미국, 콜롬비아, 에콰도르, 파나마가 공조하여 250톤의 코카인을 압수했다. 이는 역사상 최대 규모의 마약 압수 작전이었다.

금융 추적과 자금세탁 방지 분야에서도 협력이 강화되고 있다. 카리브해 금융행동기구(CFATF), 남미 금융행동기구(GAFISUD) 등이 의심스러운 금융 거래를 모니터링하고 있다.

하지만 국제 공조에는 여전히 한계가 많다. 각국의 법체계와 수사 절차가 달라 신속한 대응이 어렵고, 정치적 이해관계로 인해 협력이 제한되는 경우도 있다. 또한 마약 조직들이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반면, 법 집행 기관은 주권의 제약을 받는다는 근본적 비대칭성이 존재한다.

사회경제적 요인과 마약 경제의 뿌리

마약 거래가 라틴아메리카에서 근절되지 않는 근본 원인은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제도적 취약성에 있다. 합법적 경제 활동으로는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농민들에게 코카 재배는 가장 수익성 높은 선택지다.

콜롬비아 농촌 지역 농민의 월평균 소득은 200달러 내외에 불과하다. 반면 코카 재배 농민은 월 500-800달러를 벌 수 있다. 더욱이 코카는 년 중 4-5회 수확이 가능하고, 보관과 운송이 쉬우며, 판로가 보장되어 있어 농민들에게 매력적인 작물이다.

도시 빈민들에게도 마약 거래는 사회 이동의 수단이다.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취업 기회가 제한된 젊은이들에게 갱단은 소속감과 경제적 기회를 제공한다. 브라질 파벨라의 마약상 하위직 월급은 합법적 최저임금의 3-4배에 달한다.

국가 제도의 취약성도 마약 조직의 성장을 가능하게 한다. 사법부의 독립성 부족, 경찰의 부패, 교도소 시스템의 붕괴 등으로 인해 법치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일부 지역에서는 마약 조직이 국가를 대체하는 역할을 하면서 주민들의 지지를 받기도 한다.

대안적 접근과 혁신적 정책 실험

전통적인 강경 정책의 한계가 드러나면서 새로운 접근법들이 시도되고 있다. 포르투갈의 비범죄화 모델에 영향을 받아 일부 라틴아메리카 국가들도 마약 사용자에 대한 처벌보다는 치료에 중점을 두는 정책을 도입하고 있다.

우루과이는 2013년 세계 최초로 마리화나를 전면 합법화했다. 국가가 생산과 유통을 관리하여 불법 시장을 축소하고 범죄 수익을 차단하겠다는 취지다. 아직 초기 단계이지만 청소년 마리화나 사용률 감소, 관련 범죄 감소 등의 긍정적 효과가 보고되고 있다.

콜롬비아는 코카 재배 지역에서 통합적 농촌 개발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다. 단순한 작물 대체를 넘어 도로, 학교, 병원 등 인프라를 구축하고, 농민 조직을 육성하며, 시장 접근성을 개선하는 종합적 접근을 시도한다.

멕시코 일부 주에서는 ‘회복적 정의’ 개념을 도입하여 범죄자의 처벌보다는 피해 회복과 사회 복귀에 중점을 두고 있다. 마약 관련 경범죄자들에게는 감옥 대신 치료와 직업훈련 기회를 제공한다.

기술 발전과 마약 거래의 변화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마약 거래 방식에도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암호화폐를 이용한 거래, 다크웹을 통한 판매, 드론을 이용한 운송 등 새로운 방법들이 등장하고 있다.

소셜미디어는 특히 젊은 층을 대상으로 한 마약 거래에 활용되고 있다. 인스타그램, 텔레그램 같은 플랫폼에서 은어를 사용하여 마약을 판매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이에 대응하여 각국 수사기관들도 사이버 수사 역량을 강화하고 있지만, 기술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펜타닐 같은 합성 마약의 확산도 새로운 도전이다. 중국에서 원료를 수입하여 멕시코에서 제조한 펜타닐이 미국으로 밀수되면서 오피오이드 위기를 악화시키고 있다. 펜타닐은 코카인보다 50배 강한 중독성을 가지고 있어 사용자들의 사망률도 급증하고 있다.

결론

라틴아메리카의 마약 문제는 단순한 범죄 문제를 넘어 국가 안보와 사회 발전을 위협하는 복합적 위기다. 지난 수십 년간 각국 정부와 국제사회가 막대한 자원을 투입하여 강경한 소탕 작전을 벌였지만, 마약 생산과 거래는 오히려 증가했다. 이는 공급 차단 중심의 접근법이 근본적 한계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마약 조직의 뿌리는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제도적 취약성에 있다. 합법적 경제 기회가 부족한 상황에서 마약 거래는 가난한 농민과 도시 빈민들에게 생존의 수단이 되고 있다. 따라서 단순한 단속과 처벌보다는 포괄적인 사회경제 정책과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국제 공조도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마약 조직들이 초국가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반면, 각국의 대응은 여전히 국경에 제약받고 있다. 정보 공유, 공동 수사, 자금세탁 방지 등에서 더욱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지만, 정치적 이해관계와 주권 문제로 인해 진전이 제한적이다.

새로운 접근법들이 시도되고 있지만 아직 초기 단계다. 마약 비범죄화, 통합적 농촌 개발, 회복적 정의 등의 실험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분명한 것은 기존의 강경책만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이다. 마약 문제의 근본 원인을 제거하고, 법치주의를 강화하며, 국제 협력을 확대하는 종합적 노력만이 라틴아메리카를 마약 폭력의 악순환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