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아메리카는 전 세계 자원의 보고다. 세계 리튬 매장량의 60%, 구리 매장량의 40%, 그리고 지구 산소의 20%를 생산하는 아마존 열대우림까지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천연자원이 축복인지 저주인지는 여전히 논란이다. 21세기 들어 전기차 혁명과 기후변화 대응이 글로벌 아젠다로 부상하면서, 라틴아메리카의 자원은 새로운 지정학적 의미를 갖게 되었다.
리튬 삼각지대의 부상과 전략적 중요성
볼리비아, 아르헨티나, 칠레로 이루어진 ‘리튬 삼각지대’는 전 세계 리튬 매장량의 절반 이상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볼리비아의 우유니 소금호는 세계 최대 리튬 매장지로, 900만 톤의 리튬을 보유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전 세계 확인 매장량의 21%에 해당하는 규모다.
전기차 시장 급성장과 함께 리튬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2020년 13만 톤이었던 글로벌 리튬 수요는 2030년 100만 톤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리튬 가격도 2020년 톤당 6,000달러에서 2022년 8만 달러까지 치솟았다가 현재는 2만 달러 수준에서 안정화되고 있다.
칠레는 이미 세계 최대 리튬 생산국으로 자리잡았다. 아타카마 사막의 염호에서 추출되는 리튬은 전 세계 생산량의 26%를 차지한다. 칠레 정부는 리튬을 ’21세기의 구리’로 규정하고 국가전략광물로 지정했다. 2023년에는 리튬 국유화 정책을 발표하여 새로운 채굴 계약을 중단하고 기존 민간 기업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국가 통제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아르헨티나는 리튬 생산량 세계 4위국으로, 후후이와 카타마르카 주에 대규모 염호가 위치해 있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상대적으로 개방적인 정책을 유지하면서 외국 기업의 투자를 적극 유치하고 있다. 현재 20여 개의 리튬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며, 2030년까지 생산량을 현재의 5배로 늘릴 계획이다.
볼리비아의 리튬 국유화 실험과 그 한계
볼리비아는 가장 많은 리튬을 보유하고 있지만 생산량은 미미한 수준이다. 에보 모랄레스 정부 시절부터 추진된 리튬 국유화 정책이 개발을 지연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볼리비아 정부는 외국 기업과의 합작을 통해서만 리튬 개발을 허용하되, 볼리비아 측이 최소 51%의 지분을 갖도록 규정했다.
2019년 독일 기업 ACI Systems와 14억 달러 규모의 리튬 개발 계약을 체결했지만, 지역 주민들의 반발로 계약이 취소되었다. 주민들은 리튬 채굴이 지역 환경을 파괴하고 전통적인 소금 채취업을 위협한다며 강력히 반대했다. 이후 중국 기업들과의 협상도 비슷한 이유로 난항을 겪고 있다.
볼리비아의 리튬 개발 지연에는 기술적 한계도 있다. 우유니 소금호의 리튬은 염수에 용해된 형태로 존재하여 추출이 어렵고, 마그네슘 함량이 높아 정제 과정이 복잡하다. 또한 고도 3,500미터의 고지대에 위치해 있어 인프라 구축에도 많은 비용이 든다.
루이스 아르세 현 대통령은 2021년 집권 후 리튬 개발을 가속화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여전히 구체적인 성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볼리비아가 리튬 자원의 잠재력을 현실화하지 못한다면, 칠레와 아르헨티나가 글로벌 리튬 시장을 주도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구리 자원외교의 변화와 새로운 도전
구리는 라틴아메리카의 전통적인 핵심 수출품목이다. 칠레가 세계 생산량의 28%를 차지하며 압도적 1위를 기록하고 있고, 페루가 12%로 2위를 차지한다. 두 나라를 합치면 전 세계 구리 생산량의 40%를 담당한다.
전기차와 재생에너지 인프라 확산으로 구리 수요도 증가하고 있다. 전기차 한 대에는 내연기관차보다 4배 많은 구리가 필요하며, 풍력발전기 한 대에는 4-5톤의 구리가 사용된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40년까지 구리 수요가 2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전망한다고 발표했다.
칠레는 구리 수출 의존도가 높아 국제 구리 가격 변동에 민감하다. 구리 수출이 전체 수출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정부 재정수입의 20% 내외를 구리 관련 세수에 의존하고 있다. 이에 따라 칠레 정부는 구리 산업의 고도화와 다변화에 노력하고 있다.
코데코(CODELCO)는 세계 최대 구리 생산업체로, 칠레 정부가 100% 소유한 국영기업이다. 연간 180만 톤의 구리를 생산하여 칠레 전체 생산량의 30%를 담당한다. 코데코는 단순한 원광 수출에서 벗어나 제련과 가공 부문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으며, 중국과 인도 등지에 구리 가공 공장을 건설하여 부가가치를 높이고 있다.
페루는 구리 생산량 증가에 적극적이다. 라스 밤바스, 케추아 등 대규모 광산 개발로 2010년 120만 톤이었던 구리 생산량이 2020년 220만 톤으로 거의 두 배 증가했다. 페루 정부는 2030년까지 300만 톤 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중국의 자원 투자와 라틴아메리카의 대응
중국은 라틴아메리카 자원 개발의 최대 투자국으로 부상했다. 2005년부터 2020년까지 중국의 라틴아메리카 에너지·광물 부문 투자는 800억 달러를 넘어섰다. 이는 전체 중국 투자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규모다.
리튬 부문에서 중국 기업들의 활동이 특히 활발하다. 간펑리튬은 아르헨티나 마리아나 리튬 프로젝트에 9억 달러를 투자했고, 천치리튬은 칠레 알베마를레와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 중국 기업들은 단순한 자원 확보를 넘어 정제와 배터리 생산까지 연결된 수직계열화를 추진하고 있다.
구리 부문에서도 중국의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다. 중국 기업들은 페루 구리 생산량의 30% 이상을 통제하고 있으며, 칠레에서도 투자를 늘리고 있다. 중국은 라틴아메리카에서 생산된 구리의 최대 수입국이기도 하다.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은 중국의 자원 투자에 대해 복잡한 감정을 보인다. 경제적으로는 투자와 기술 이전의 기회이지만, 정치적으로는 대중국 의존도 심화에 대한 우려가 있다. 또한 중국 기업들의 환경 기준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아마존 열대우림 파괴의 현실과 충격
아마존 열대우림은 지구의 허파로 불리며, 전 세계 산소의 20%를 생산한다. 하지만 브라질, 볼리비아, 페루, 콜롬비아 등에 걸쳐 있는 아마존 유역에서는 매년 서울시 면적의 30배에 달하는 산림이 사라지고 있다.
2019년 브라질 아마존에서는 7만 2,843건의 산불이 발생하여 전년 대비 83% 증가했다. 이는 2008년 이후 최대 규모였다. 자이르 볼소나루 대통령의 친개발 정책과 환경 규제 완화가 산림 파괴를 가속화했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아마존 파괴의 주요 원인은 목축업과 농업 확장이다. 브라질은 세계 최대 쇠고기 수출국이며, 대두 생산량도 미국에 이어 2위다. 아마존 유역의 70% 이상이 목초지로 전용되었고, 20%가 농지로 개간되었다. 이러한 토지 이용 변화는 원주민과 전통 공동체의 생활터전을 파괴하고 있다.
불법 벌목도 심각한 문제다. 브라질 아마존에서 벌목되는 목재의 30% 이상이 불법으로 추정된다. 조직범죄 집단들이 불법 벌목에 연루되어 있으며, 이들은 종종 폭력을 사용하여 환경 운동가들을 위협한다.
기후변화와 아마존의 지정학적 중요성
아마존은 지구 기후 시스템에서 핵심적 역할을 한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탄소 흡수원 역할을 하며, 지역 강수 패턴에도 영향을 미친다. 과학자들은 아마존의 20-25%가 파괴되면 열대우림 전체가 사바나로 변할 수 있는 ‘티핑 포인트’에 도달한다고 경고한다.
현재 아마존 파괴율은 17%에 달한다. 이는 임계점에 근접한 수준이다. 브라질 국립우주연구원(INPE)에 따르면, 2021년 한 해 동안 1만 1,568㎢의 아마존 열대우림이 사라졌다. 이는 카타르 면적보다 큰 규모다.
아마존 보호는 이제 국제적 관심사가 되었다. 2019년 G7 정상회의에서는 아마존 화재 진압을 위한 2,000만 달러 지원을 결정했다. 유럽연합은 남미공동시장(MERCOSUR)과의 무역협정 비준을 아마존 보호와 연계하겠다고 밝혔다.
노르웨이와 독일은 ‘아마존 기금’을 통해 브라질의 산림 보호 노력을 지원해왔다. 하지만 볼소나루 정부 시절 환경 정책 후퇴로 인해 지원이 중단되었다가, 2022년 룰라 대통령 당선 후 재개되었다.
라틴아메리카의 기후 거버넌스와 국제 협력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은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지역 전체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전 세계의 8% 수준이지만, 산림 파괴로 인한 배출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특히 브라질과 인도네시아는 산림 파괴로 인한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세계 1, 2위다.
파리협정 이행에서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역할이 주목받고 있다. 대부분의 국가들이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2005년 대비 20-30% 감축하겠다고 약속했다. 코스타리카는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고 선언한 첫 번째 개발도상국이다.
재생에너지 분야에서 라틴아메리카는 세계적 선도 지역이다. 우루과이는 전력의 95%를 재생에너지로 공급하며, 코스타리카는 99%를 달성했다. 칠레는 태양광 발전 비용이 세계에서 가장 낮은 국가 중 하나다.
지역 차원의 환경 협력도 강화되고 있다. 2020년 설립된 ‘레티시아 협정’은 콜롬비아, 에콰도르, 페루, 볼리비아, 브라질, 가이아나, 수리남 등 아마존 유역 7개국의 환경 협력체다. 이들 국가는 아마존 보호를 위한 공동 전략을 수립하고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원주민과 환경 보호의 연결고리
아마존 지역에는 400여 개의 원주민 부족이 거주하고 있으며, 이들의 전통 영토는 아마존 전체 면적의 23%를 차지한다. 연구에 따르면 원주민 보호구역의 산림 보존율이 국립공원보다 높다. 원주민들의 전통적 생활방식이 자연 보호에 효과적이라는 증거다.
하지만 원주민들은 불법 벌목꾼, 광부, 농장주들의 침입으로 생존 위기에 직면해 있다. 2019년 브라질에서는 원주민 보호구역 침입 사건이 109건 발생했으며, 이는 전년 대비 135% 증가한 수치다.
원주민 권리 보호와 환경 보전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국제 환경단체들은 원주민 토지 권리 인정이 가장 효과적인 산림 보호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원주민 보호구역의 연간 산림 파괴율은 0.08%로, 전체 아마존 평균 0.4%보다 훨씬 낮다.
녹색 경제 전환과 새로운 기회
라틴아메리카는 풍부한 재생에너지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태양광과 풍력 발전 잠재력이 매우 높으며, 수력 발전도 이미 주요 전력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러한 조건을 바탕으로 녹색 수소 생산 허브로 발전할 가능성도 있다.
칠레는 2020년 ‘녹색 수소 국가 전략’을 발표하고 2030년까지 세계에서 가장 저렴한 녹색 수소를 생산하겠다고 목표를 세웠다. 아타카마 사막의 풍부한 태양 에너지와 파타고니아의 강풍을 활용한 계획이다. 독일, 일본 등 선진국들이 칠레의 녹색 수소 프로젝트에 투자하고 있다.
콜롬비아는 ‘블루 이코노미’ 정책을 통해 해양 자원의 지속가능한 이용을 추진하고 있다. 태평양과 카리브해 연안의 풍력 발전, 해양 바이오매스 활용, 지속가능한 어업 등을 포함한다.
생태관광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주목받고 있다. 코스타리카는 생태관광의 성공 모델로, 관광업이 GDP의 6%를 차지한다. 국토의 25%를 보호구역으로 지정하고 생물다양성을 보전하면서 동시에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지속가능한 자원 개발을 위한 정책 과제
라틴아메리카가 자원의 축복을 저주로 만들지 않으려면 몇 가지 핵심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첫째, 자원 수입의 투명한 관리와 효율적 활용이다. 노르웨이의 연기금 모델처럼 자원 수익을 장기 투자에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둘째, 환경 규제의 강화와 이행 확보다. 환경영향평가 시스템을 개선하고, 위반 시 실효성 있는 제재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 또한 시민사회와 언론의 감시 역할을 보장하는 것도 중요하다.
셋째, 원주민과 지역 공동체의 권리 보호다. 사전 동의 원칙을 철저히 지키고, 개발 이익의 공정한 배분을 보장해야 한다. 원주민의 전통 지식과 환경 보호 역할을 인정하고 지원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넷째, 지역 차원의 협력 강화다. 국경을 넘나드는 환경 문제에 대해서는 공동 대응이 필수적이다. 정보 공유, 기술 협력, 공동 연구 등을 통해 지역 전체의 역량을 높여야 한다.
결론
라틴아메리카의 자원과 환경 문제는 21세기 인류가 직면한 가장 중요한 도전 중 하나다. 리튬과 구리 같은 핵심 광물자원은 글로벌 에너지 전환에 필수적이지만, 동시에 환경 파괴와 사회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아마존 열대우림은 지구 기후 안정에 핵심적 역할을 하지만, 경제적 압력으로 인한 파괴가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속가능한 개발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단기적 경제 이익보다는 장기적 환경 보전을 우선시하고, 원주민과 지역 공동체의 권리를 존중하며, 국제 협력을 통해 공동 대응하는 접근이 요구된다. 라틴아메리카의 선택은 지역을 넘어 전 지구적 미래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자원의 축복을 진정한 발전의 기회로 만들 수 있을지, 아니면 환경 파괴와 사회 갈등의 저주로 전락할지는 지금의 정책 결정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