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핵 프로그램과 국제 제재 체제: NPT에서 JCPOA까지의 복잡한 협상사

이란 핵 프로그램의 기원과 발전

이란의 핵 프로그램은 1950년대 팔레비 왕조 시절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이란은 미국의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Atoms for Peace)’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핵 기술을 도입했다. 1967년 테헤란 대학에 미국이 제공한 연구용 원자로가 가동되기 시작했고, 1974년에는 이란원자력공사(AEOI)가 설립되었다.

팔레비 국왕은 석유 수익을 바탕으로 야심찬 핵 개발 계획을 세웠다. 1970년대 중반 서독과 프랑스로부터 원자력 발전소 건설 계약을 체결했고, 부셰르 원전 건설이 시작되었다. 당시 계획으로는 1990년대까지 20기의 원자로를 건설하여 총 2만3000MW의 전력을 생산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1979년 이슬람 혁명으로 모든 것이 바뀌었다. 새로 집권한 이슬람 공화국 정부는 초기에 핵 프로그램을 서구 제국주의의 산물로 보고 중단했다. 아야톨라 호메이니는 핵무기를 이슬람 교리에 어긋나는 것으로 규정했다. 서독과 프랑스는 계약을 파기했고, 부셰르 원전 건설도 중단되었다.

그러나 1980년 이라크의 침공으로 시작된 이란-이라크 전쟁(1980-1988)이 이란의 핵 정책을 다시 바꿔놓았다. 이라크가 화학무기를 사용하고 국제사회가 이를 묵인하는 상황에서, 이란은 자위를 위한 핵 능력 확보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1984년부터 핵 프로그램이 재개되었고, 파키스탄의 압둘 카디르 칸 네트워크를 통해 우라늄 농축 기술을 은밀히 도입했다.

NPT 체제와 이란의 의무

핵확산금지조약(NPT)은 1970년 발효된 핵 군비통제의 핵심 체제다. 이란은 1970년 NPT에 가입했고, 1974년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포괄적 안전조치 협정을 체결했다. NPT 체제 하에서 이란은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는 대신 평화적 핵 이용의 권리를 보장받았다.

NPT 제4조는 모든 당사국이 평화적 목적의 핵에너지 연구, 생산, 이용에 대한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갖는다고 명시한다. 이란은 이 조항을 근거로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의 정당성을 주장해왔다. 하지만 NPT 제3조는 모든 핵 활동이 IAEA의 안전조치 하에 있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이란이 1980년대부터 IAEA에 신고하지 않은 핵 활동을 진행했다는 점이다. 나탄즈 우라늄 농축 시설, 아라크 중수로 건설, 이스파한 우라늄 전환 시설 등이 수년간 은밀히 건설되었다. 2002년 이란 반체제 단체인 무자헤딘 할크가 이를 폭로하면서 이란 핵 위기가 본격화되었다.

IAEA는 2003년부터 이란에 대한 특별 사찰을 시작했다. 사찰 결과 이란이 18년간 IAEA에 신고하지 않은 핵 활동을 진행했음이 드러났다. 우라늄 농축 실험, 플루토늄 분리 실험, 고농축 우라늄 흔적 발견 등이 확인되었다. 이란은 이런 활동들이 모두 평화적 목적이었다고 주장했지만, 국제사회의 의혹은 깊어졌다.

국제 제재의 시작과 확대

이란 핵 문제는 2003년부터 유럽연합(EU) 3개국(영국, 프랑스, 독일)이 주도하는 외교적 해결 시도로 시작되었다. EU3는 이란에 경제적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대신 핵 프로그램 중단을 요구했다. 2004년 파리 협정에서 이란은 우라늄 농축 활동을 일시 중단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2005년 마흐무드 아흐마디네자드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상황이 악화되었다. 아흐마디네자드는 핵 프로그램을 ‘이란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라고 선언하며 우라늄 농축을 재개했다. 협상은 교착상태에 빠졌고, 문제는 유엔 안보리로 넘어갔다.

2006년 유엔 안보리 결의 1696호를 시작으로 이란에 대한 국제 제재가 본격화되었다. 초기 제재는 핵 관련 기술과 장비의 수출 금지, 핵 관련 인사들의 자산 동결과 여행 금지 등에 국한되었다. 하지만 이란이 계속 핵 프로그램을 확대하자 제재 범위도 점차 확대되었다.

2010년 안보리 결의 1929호는 이란에 대한 포괄적 제재를 부과했다. 무기 금수, 탄도미사일 관련 기술 이전 금지, 이란 혁명수비대와 관련 기업들에 대한 제재 등이 포함되었다. 특히 이란의 에너지 부문에 대한 투자 금지와 금융 제재가 이란 경제에 큰 타격을 주었다.

미국과 EU는 유엔 제재를 넘어서는 독자적 제재도 부과했다. 2012년 미국은 이란산 석유를 수입하는 국가들의 은행과 거래를 금지하는 2차 제재를 발동했다. EU도 이란산 석유 수입을 전면 금지했다. 이란의 석유 수출량은 하루 250만 배럴에서 100만 배럴로 급감했고, 이란 경제는 심각한 침체에 빠졌다.

제재가 이란에 미친 영향

국제 제재는 이란 경제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었다. 2012-2013년 이란의 GDP는 9% 감소했고, 인플레이션율은 40%를 넘어섰다. 이란 리알화의 가치는 달러 대비 3분의 1 수준으로 폭락했다. 석유 수출 감소로 외환 수입이 크게 줄어들면서 수입품 가격이 급등했다.

금융 제재의 영향도 컸다. 이란의 주요 은행들이 국제 금융 시스템에서 차단되면서 무역 결제가 어려워졌다. SWIFT(국제은행간통신협회)에서 이란 은행들을 퇴출시킨 것은 결정적이었다. 이란은 물물교환이나 제3국 통화를 이용한 우회 거래에 의존해야 했다.

의료용품과 식료품은 명목상 제재 대상이 아니었지만, 금융 제재로 인해 실질적으로 수입이 어려워졌다. 암 치료제, 당뇨병 치료제 등 생명과 직결된 의약품 부족이 심각해졌다. 항공기 부품 수입 금지로 이란항공의 안전성에도 우려가 제기되었다.

제재는 이란 사회 전반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다. 중산층의 생활 수준이 크게 악화되었고, 젊은 세대의 해외 이민이 급증했다. 두뇌 유출이 가속화되면서 이란의 인적 자본이 손실되었다. 제재가 일반 국민들에게 미치는 고통이 커지면서 핵 프로그램에 대한 국내 여론도 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제재는 이란의 핵 프로그램을 중단시키지는 못했다. 오히려 이란은 제재에 대응하여 핵 능력을 더욱 고도화했다. 2010년 20% 고농축 우라늄 생산을 시작했고, 원심분리기 수도 지속적으로 늘려갔다. 2013년에는 1만9000여 기의 원심분리기를 가동했다.

JCPOA 협상 과정과 주요 내용

2013년 하산 로하니가 이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핵 협상에 새로운 전기가 마련되었다. 로하니는 선거 캠페인에서 제재 해제를 공약으로 내세웠고, 협상을 통한 해결 의지를 보였다. 바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외교적 해결을 선호했다.

2013년 9월 뉴욕 유엔총회에서 오바마와 로하니의 전화 통화가 성사되었다. 이는 1979년 이후 양국 최고 지도자 간 첫 직접 대화였다. 이후 미국과 이란은 오만을 통한 비밀 채널을 가동하여 본격적인 협상을 준비했다.

2013년 11월 제네바에서 이란과 P5+1(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중국) 간 임시 합의가 도출되었다. 이란은 20% 고농축 우라늄 생산 중단과 기존 보유분 희석, 새로운 원심분리기 설치 중단 등에 합의했다. 대신 월 70억 달러 규모의 제재 완화 조치가 제공되었다.

2015년 7월 14일 비엔나에서 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이 최종 타결되었다. 2년간 장기간에 걸친 협상 끝에 이뤄진 합의였다. JCPOA의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란은 우라늄 농축도를 3.67%로 제한하고, 저농축 우라늄 보유량을 300kg으로 제한했다. 원심분리기 수를 1만9000기에서 5060기로 대폭 줄이고, 15년간 추가 설치를 금지했다. 아라크 중수로는 플루토늄 생산이 불가능하도록 개조하기로 했다. 핵무기 개발 가능성이 있는 모든 활동을 중단하고, IAEA의 강화된 사찰을 받아들였다.

대신 이란은 포괄적인 제재 해제를 약속받았다. 유엔, 미국, EU의 핵 관련 제재가 해제되고, 이란의 석유 수출과 금융 거래가 정상화되었다. 동결된 이란 자산 1000억 달러 이상이 해제되었다.

JCPOA 파기와 최대 압박 정책

JCPOA는 초기에 성공적으로 이행되는 듯 보였다. 이란은 합의 사항을 충실히 이행했고, IAEA도 이를 확인했다. 제재 해제로 이란 경제도 점차 회복되기 시작했다. 2016년 이란의 경제성장률은 13%를 기록했다.

하지만 2018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JCPOA에서 일방적으로 탈퇴하면서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갔다. 트럼프는 JCPOA가 “최악의 거래”라고 비판하며 이란에 대한 ‘최대 압박(Maximum Pressure)’ 정책을 추진했다. 2018년 11월부터 이란산 석유 수출에 대한 제재가 재개되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JCPOA 탈퇴를 넘어서 이란에 대한 전방위적 압박을 가했다. 이란 혁명수비대를 테러 조직으로 지정하고, 이란 고위 인사들에 대한 개인 제재를 확대했다. 2020년 1월에는 가셈 솔레이마니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을 드론 공격으로 살해하기도 했다.

이란도 2019년부터 JCPOA 의무 이행을 단계적으로 중단했다. 저농축 우라늄 보유량 한도를 초과하고, 농축도도 3.67%를 넘어 20%까지 높였다. 아라크 중수로 개조 작업도 중단했다. 원심분리기 수도 다시 늘리기 시작했다.

최대 압박 정책은 이란 경제에 다시 심각한 타격을 주었다. 2019년 이란의 GDP는 7% 감소했고, 석유 수출량은 하루 20만 배럴 수준까지 떨어졌다. 코로나19 팬데믹과 겹치면서 이란의 경제적 고통은 더욱 커졌다.

바이든 행정부의 복원 시도와 한계

2021년 조 바이든이 미국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JCPOA 복원에 대한 기대가 높아졌다. 바이든은 선거 캠페인에서 JCPOA 복원 의지를 밝혔고, 외교를 통한 해결을 강조했다. 2021년 4월부터 비엔나에서 JCPOA 복원을 위한 간접 협상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협상은 쉽지 않았다. 이란은 미국이 먼저 모든 제재를 해제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미국은 이란이 먼저 핵 활동을 JCPOA 수준으로 되돌려야 한다고 요구했다. ‘누가 먼저 양보할 것인가’를 두고 줄다리기가 계속되었다.

2021년 6월 이란 대선에서 보수 강경파인 에브라힘 라이시가 당선되면서 협상은 더욱 어려워졌다. 라이시 정부는 미국에 대한 불신이 깊었고, 더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2021년 11월 협상이 재개되었지만 큰 진전은 없었다.

협상 과정에서 이란의 핵 능력은 계속 고도화되었다. 2021년 4월부터 60% 고농축 우라늄 생산을 시작했고, 2022년에는 금속 우라늄 생산에도 착수했다. 핵무기 제조에 필요한 90% 농축까지는 기술적으로 몇 주면 가능한 수준에 도달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중동 지역의 불안정이 협상에 악영향을 미쳤다. 이란이 러시아에 드론을 제공하면서 서방과의 관계가 더욱 악화되었다. 2022년 하반기 이란 내 여성 시위와 이에 대한 정부의 강경 진압도 협상에 부정적 영향을 주었다.

현재 상황과 미래 전망

2024년 현재 JCPOA 복원은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 이란의 핵 능력은 2015년 수준을 훨씬 뛰어넘었고, 정치적 신뢰도 크게 훼손되었다. 이란은 현재 고농축 우라늄을 3000kg 이상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핵무기 10개 이상을 제조할 수 있는 양이다.

이란의 지역 내 영향력도 크게 확대되었다. 예멘의 후티 반군, 레바논의 헤즈볼라, 시리아 정부군 등에 대한 지원을 지속하고 있다. 2023년 10월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 이후 중동 정세가 불안해지면서 이란의 지정학적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미국과 이란 모두 최대 압박과 최대 저항의 악순환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상황이다. 미국은 이란의 핵 위협을 막기 위해 제재를 지속하고 있지만, 제재만으로는 이란의 핵 프로그램을 중단시킬 수 없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이란도 제재로 인한 경제적 고통이 크지만, 핵 프로그램을 포기할 의사는 없어 보인다.

이스라엘은 이란의 핵 시설에 대한 군사적 옵션을 지속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2024년 4월 이스라엘과 이란 간 직접적인 군사적 충돌이 발생하면서 긴장이 고조되었다. 군사적 해결 시도는 중동 전체를 전쟁의 소용돌이로 빠뜨릴 위험이 크다.

중국과 러시아는 이란과의 관계를 강화하면서 서방의 제재 체제에 균열을 만들고 있다. 중국은 이란산 석유를 지속적으로 수입하고 있고, 러시아는 군사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이란은 이런 파트너십을 통해 제재의 영향을 어느 정도 완화하고 있다.

결론

이란 핵 프로그램을 둘러싼 20여 년간의 갈등은 국제 비확산 체제의 한계와 복잡성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NPT 체제 하에서 평화적 핵 이용 권리와 비확산 의무 사이의 균형을 찾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준다. 제재라는 강압적 수단도 상대방의 행동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한계가 있음이 드러났다.

JCPOA의 체결과 파기 과정은 국제 협약의 지속성과 신뢰성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한 국가의 정권 교체로 인해 국제 합의가 일방적으로 파기될 수 있다는 선례는 향후 유사한 협상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다자간 협상에서 모든 당사자의 지속적인 의지와 이행 의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현재 이란 핵 문제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어려운 교착 상태에 있다. 외교적 해결책을 찾지 못한다면 중동 지역의 군사적 긴장이 더욱 고조될 가능성이 크다. 이란의 핵무장은 중동 지역 전체의 핵 확산을 촉발할 수 있는 도미노 효과를 낳을 수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터키, 이집트 등도 핵 개발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이란 핵 문제의 궁극적 해결은 중동 지역의 포괄적 안보 체제 구축과 연결되어 있다. 이란의 안보 우려를 해소하고 지역 내 세력 균형을 안정화하는 것이 핵 확산을 막는 근본적 해법이 될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지정학적 갈등 구조를 볼 때 이런 포괄적 해결책을 찾기는 매우 어려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