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학개론 18. 상법 총론 – 회사, 어음, 보험, 해상법을 통해 본 경제활동의 법적 기반

현대 사회에서 경제활동은 단순한 물물교환을 훨씬 넘어선 복잡하고 정교한 체계를 갖추고 있다. 대규모 기업이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고, 금융거래는 순식간에 국경을 넘나들며, 위험은 보험제도를 통해 분산된다. 이처럼 고도화된 경제활동을 뒷받침하는 법적 기반이 바로 상법이다. 상법은 상거래의 신속성과 안전성을 보장하고, 기업활동을 효율적으로 지원하며, 경제 질서를 유지하는 핵심적 역할을 담당한다.

상법의 본질과 특성

상법은 상행위와 상인에 관한 법이다. 민법이 일반적인 사법관계를 규율하는 반면, 상법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상업적 거래관계를 특별히 규율한다. 상법은 민법에 대한 특별법으로서, 상사관계에 우선 적용되고 상법에 규정이 없는 사항은 민법이 보충적으로 적용된다.

상법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거래의 신속성과 안전성을 보장하는 것이다. 상거래는 대량성, 반복성, 신속성을 특징으로 하므로 복잡한 절차나 과도한 형식은 거래를 방해한다. 따라서 상법은 간이한 절차와 형식을 인정하고, 외관을 중시하며, 선의의 제3자를 두텁게 보호한다.

또한 상법은 영리성을 기본 전제로 한다. 상행위는 이익을 얻을 목적으로 행하는 행위이므로, 상법은 이러한 영리 추구 활동을 효율적으로 지원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어 있다. 동시에 상인의 신용을 중시하고 상관습을 존중하는 특성도 갖는다.

상법의 체계와 구성

우리나라 상법은 총 5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편 총칙, 제2편 상행위, 제3편 회사, 제4편 보험, 제5편 해상이 그것이다. 이 밖에 어음법과 수표법이 별도의 특별법으로 존재한다.

상법 총칙은 상인과 상행위의 일반적 개념을 정의하고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원칙들을 규정한다. 상행위편은 구체적인 상거래 유형과 그 규칙을 다룬다. 회사편은 기업조직의 법적 형태를 규율하고, 보험편과 해상편은 각각 특수한 상거래 영역의 규칙을 정한다.

이러한 체계는 상거래의 다양성과 전문성을 반영한 것이다. 일반적인 상거래부터 고도로 전문화된 보험이나 해상거래까지 각 영역의 특성에 맞는 규율을 제공한다.

상인과 상행위의 개념

상법상 상인은 자기명의로 상행위를 업으로 하는 자를 말한다. 여기서 ‘업’이라는 것은 영리를 목적으로 같은 종류의 행위를 반복계속하는 것을 의미한다. 일회적이거나 우발적인 거래는 상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

상행위는 크게 기본적 상행위, 보조적 상행위, 의제상행위로 분류된다. 기본적 상행위는 상법에서 직접 열거한 행위들로, 동산의 매매업, 부동산의 매매업, 금융업, 보험업, 운송업 등이 포함된다. 보조적 상행위는 상인이 그 영업을 위해 하는 행위로, 그 자체로는 상행위가 아니더라도 상인이 영업과 관련해서 하면 상행위가 된다.

의제상행위는 법률에서 상행위로 의제하는 행위들이다. 어음행위나 회사의 행위 등이 대표적이다. 이는 상거래의 안전과 신속성을 위해 정책적으로 상행위로 취급하는 것이다.

상인이 되면 상업장부 작성의무, 상호사용권, 영업양도의 권리 등 특별한 권리와 의무를 갖게 된다. 또한 상사법정이율 적용, 연대보증 추정, 상사소멸시효 등 민법과는 다른 특별한 규칙이 적용된다.

회사제도의 기본 구조

회사는 상행위나 그밖의 영리를 목적으로 하여 설립한 법인이다. 개인기업과 달리 법인격을 가지므로 회사 자체가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된다. 이는 소유와 경영의 분리, 유한책임, 자본조달의 용이성 등의 장점을 제공한다.

우리 상법은 합명회사, 합자회사, 유한책임회사, 주식회사의 네 가지 회사형태를 인정한다. 각각은 구성원의 책임범위, 지배구조, 자본조달 방식 등에서 차이를 보인다.

합명회사와 합자회사

합명회사는 무한책임사원만으로 구성되는 인적회사다. 모든 사원이 회사채무에 대해 무한연대책임을 지므로 채권자 보호에는 유리하지만, 사원의 부담이 크다는 단점이 있다. 사원 간의 신뢰관계가 중요하므로 지분의 양도가 제한되고, 사원의 변동이 있으면 회사 존속에 영향을 미친다.

합자회사는 무한책임사원과 유한책임사원으로 구성되는 혼합형 회사다. 무한책임사원은 업무집행권을 갖고 회사채무에 무한책임을 지는 반면, 유한책임사원은 출자액을 한도로만 책임을 지고 업무집행에는 참여할 수 없다. 이는 자본조달과 전문경영을 결합한 형태로 볼 수 있다.

유한책임회사

유한책임회사는 2012년 도입된 새로운 회사형태다. 모든 사원이 유한책임을 지면서도 주식회사보다 유연한 조직운영이 가능하다. 정관자치의 폭이 넓어서 사원 간 계약으로 다양한 내부 관계를 설정할 수 있다. 벤처기업이나 소규모 기업에 적합한 형태로 평가된다.

주식회사

주식회사는 자본이 주식으로 분할되고 주주가 그 보유주식에 대해서만 유한책임을 지는 자본적 회사다. 현대 기업조직의 중심을 이루는 형태로, 대규모 자본조달과 전문경영이 가능하다.

주식회사의 핵심은 주식제도다. 주식은 회사에 대한 주주의 지위를 나타내는 증권으로, 자유로운 양도가 가능하다. 이를 통해 투자자는 언제든지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고, 회사는 안정적으로 자본을 유지할 수 있다.

주식회사의 기관구조는 주주총회, 이사, 이사회, 감사로 구성된다. 주주총회는 회사의 최고의사결정기관이고, 이사와 이사회는 업무집행기관, 감사는 업무감독기관이다. 이러한 기관분화를 통해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한다.

어음법의 기본 원리

어음은 일정한 금액의 지급을 약속하거나 위탁하는 유가증권이다. 현금 대신 사용되어 결제의 편의를 도모하고, 신용거래를 가능하게 하며, 자금조달의 수단으로도 활용된다.

어음법은 민법의 일반원칙과는 다른 특별한 원리를 갖는다. 가장 중요한 것이 문언성의 원칙이다. 어음상의 권리의무는 오로지 어음에 기재된 문언에 의해서만 결정된다. 어음 외의 사정이나 약정은 원칙적으로 고려되지 않는다.

무인성의 원칙도 중요하다. 어음상의 권리의무는 그 원인관계와 독립해서 존재한다. 따라서 원인관계에 문제가 있더라도 어음 자체의 효력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이는 어음거래의 안전성을 보장하는 핵심 원리다.

약속어음과 환어음

약속어음은 발행인이 수취인에게 일정한 금액을 지급할 것을 약속하는 어음이다. 발행인과 수취인의 2자 관계로 구성되며, 구조가 단순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어음 형태다.

환어음은 발행인이 제3자(지급인)에게 수취인에 대한 일정 금액의 지급을 위탁하는 어음이다. 발행인, 지급인, 수취인의 3자 관계로 구성되며, 원격지 간 결제에 유용하다.

어음의 유통은 배서에 의해 이루어진다. 배서는 어음의 뒷면에 기재하는 양도방식으로, 간단한 서명만으로도 권리이전이 가능하다. 배서인은 어음금액의 지급에 대해 담보책임을 지므로, 어음의 신용도가 유통과정에서 누적적으로 강화된다.

수표제도

수표는 당좌예금을 기초로 한 무조건적 지급위탁증권이다. 현금과 거의 동일하게 취급되어 즉석 결제수단으로 활용된다. 어음과 달리 일람출급(보는 즉시 지급)이 원칙이고, 만기의 개념이 없다.

수표의 특징은 지급의 확실성이다. 당좌예금이라는 확실한 자금을 바탕으로 하므로 부도 위험이 상대적으로 낮다. 다만 부도수표 발행 시에는 금융거래정지 등 강력한 제재가 따른다.

보험법의 기본 구조

보험은 다수인이 위험공동체를 구성하여 보험료를 갹출하고, 보험사고 발생 시 보험금을 지급받는 제도다. 개별적으로는 대처하기 어려운 큰 위험을 사회적으로 분산시키는 위험관리 기법이다.

보험계약은 보험계약자가 보험료를 지급하고 보험자가 보험사고 발생 시 보험금을 지급할 것을 약속하는 계약이다. 일반적인 계약과 달리 대수의 법칙과 확률론에 기초해서 과학적으로 설계된다.

보험계약의 특성

보험계약은 여러 독특한 특성을 갖는다. 우선 최대선의계약이다. 보험계약자와 피보험자는 보험자에게 위험에 관한 중요한 사실을 고지할 의무가 있다. 고지의무 위반 시에는 계약해지나 보험금 지급거절 사유가 된다.

사행계약적 성격도 있다. 보험사고가 발생하지 않으면 보험료만 지급하고 아무것도 받지 못하지만, 사고가 발생하면 보험료를 훨씬 상회하는 보험금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위험분산이라는 사회적 기능을 수행하므로 법적으로 허용된다.

보험계약은 또한 부합계약의 성격을 갖는다. 보험자가 미리 작성한 약관에 보험계약자가 부합하는 형태로 계약이 체결된다. 이는 대량거래의 필요에 의한 것이지만, 약관규제법의 적용을 받아 소비자 보호가 도모된다.

손해보험과 생명보험

보험은 크게 손해보험과 생명보험으로 구분된다. 손해보험은 우연한 사고로 인한 재산상 손해를 보상하는 보험이다. 화재보험, 자동차보험, 책임보험 등이 대표적이다. 손해보험에서는 실손전보 원칙이 적용되어 실제 손해액을 한도로 보험금이 지급된다.

생명보험은 사람의 생명이나 신체를 보험목적으로 하는 보험이다. 사망보험, 생존보험, 생사혼합보험으로 세분된다. 생명보험에서는 정액보험 원칙이 적용되어 미리 정한 보험금액이 지급된다.

해상법의 특수성

해상법은 해상기업과 해상거래에 관한 특별법이다. 해상운송의 특수성, 즉 장거리성, 위험성, 국제성 등을 고려한 독특한 법리를 발전시켜 왔다.

선박과 선박소유자

선박은 해상법의 중심개념이다. 상법상 선박은 상행위나 그밖의 영리를 목적으로 항해에 사용하는 선박을 의미한다. 선박은 부동산에 준하는 취급을 받아 등기제도가 적용된다.

선박소유자는 선박을 소유하고 해상기업을 경영하는 자다. 선박소유자는 선장이나 해원의 직무상 행위에 대해 사용자책임을 지지만, 선박과 운임의 한도에서만 책임을 지는 책임제한제도가 인정된다.

해상운송계약

해상운송계약은 선박을 이용하여 사람이나 물건을 운송하는 계약이다. 여객운송계약과 물건운송계약으로 구분된다.

물건운송계약에서는 선하증권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선하증권은 운송물의 수령, 운송계약의 성립, 운송물의 인도청구권을 증명하는 유가증권이다. 국제거래에서 신용장과 결합되어 결제수단으로도 활용된다.

해상보험

해상보험은 해상위험으로 인한 손해를 보상하는 보험이다. 선박보험, 적하보험, 운임보험, 책임보험 등이 있다. 해상보험에서는 전손과 분손을 구분하여 취급하고, 공동해손제도 등 해상법 특유의 제도가 적용된다.

공동해손은 선박과 적하의 공동위험을 면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가한 손해를 이해관계자가 공동으로 부담하는 제도다. 예를 들어 좌초 위험을 피하기 위해 화물을 바다에 투기한 경우, 그 손해를 선박소유자와 다른 화주들이 공동으로 분담한다.

상법의 현대적 과제

현대 상법은 급변하는 경제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디지털 경제의 발전, 국제화의 진전, 새로운 금융기법의 등장 등이 상법 발전의 동력이 되고 있다.

전자상거래의 확산은 전통적인 상법 개념에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전자문서, 전자서명, 전자지급 등이 일반화되면서 종이문서 중심의 기존 제도가 재검토되고 있다. 전자어음, 전자선하증권 등 새로운 제도가 도입되고 있다.

기업지배구조 개선도 중요한 과제다. 주주권익 보호, 경영투명성 제고, 사회적 책임 강화 등이 요구되고 있다. 집중투표제, 누적투표제, 전자투표제 등 주주권 행사를 돕는 제도들이 확산되고 있다.

국제적 조화도 필요하다. 상거래의 국제화가 진전되면서 각국 상법의 차이가 거래장벽이 되고 있다. 국제상업회의소의 국제규칙, 유엔국제거래법위원회의 모델법 등을 통해 국제적 통일화가 추진되고 있다.

결론

상법은 경제활동의 법적 인프라로서 시장경제의 원활한 작동을 지원하는 핵심적 역할을 담당한다. 회사제도를 통해 기업조직의 효율적 운영을 가능하게 하고, 어음·수표제도를 통해 신용거래와 결제의 편의를 도모하며, 보험제도를 통해 위험을 사회적으로 분산시키고, 해상법을 통해 국제거래의 안전성을 보장한다.

상법의 각 제도들은 상거래의 신속성, 안전성, 대량성이라는 공통 요구에 부응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형식보다는 실질을 중시하고, 외관을 신뢰하는 선의의 제3자를 보호하며, 간편한 절차를 통해 거래비용을 절감한다. 이러한 특성들이 조화를 이루어 현대적 상거래 질서를 뒷받침하고 있다.

상법은 또한 끊임없이 진화하는 법 영역이다. 경제구조의 변화, 기술의 발전, 국제화의 진전에 따라 새로운 제도가 도입되고 기존 제도가 개선된다. 이는 상법이 살아있는 법으로서 현실의 요구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앞으로 상법은 디지털 경제, 플랫폼 경제, 공유경제 등 새로운 경제형태에 맞는 법적 틀을 제공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동시에 지속가능성, 사회적 책임,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등 새로운 가치를 법제도에 반영해야 한다. 이러한 도전을 성공적으로 해결할 때 상법은 계속해서 경제발전의 든든한 토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