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학개론 17. 가족법 – 혼인, 친자, 상속, 후견제도를 통해 본 가족관계의 법적 체계

가족은 인간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가족이라는 공동체 속에서 성장하고, 성인이 되어서는 새로운 가족을 형성하며, 나이가 들어서는 다음 세대에게 가족의 유산을 물려준다. 이처럼 인간의 삶과 떼어놓을 수 없는 가족관계를 법적으로 규율하는 것이 바로 가족법이다. 가족법은 혼인과 이혼, 부모와 자녀의 관계, 재산의 상속, 무능력자 보호 등 가족 구성원 간의 권리와 의무를 정하고 있다.

가족법의 특성과 구조

가족법은 민법의 한 영역이지만 다른 민법 분야와는 구별되는 독특한 특성을 갖는다. 일반적인 민법이 개인의 자유로운 의사를 존중하는 사적 자치의 원칙을 기초로 하는 반면, 가족법은 가족 공동체의 질서와 사회 전체의 이익을 고려하여 개인의 자유를 일정 부분 제한한다.

우리나라 가족법은 크게 친족법과 상속법으로 구성된다. 친족법은 혼인, 친자관계, 후견 등을 다루고, 상속법은 상속과 유언에 관한 사항을 규정한다. 이들은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하나의 체계를 이루고 있다.

전통적으로 우리나라 가족법은 유교적 가족제도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호주제도, 남녀차별, 장자상속 등이 그 대표적인 예였다. 하지만 헌법상 양성평등 원칙과 개인의 존엄성 원리에 따라 지속적인 개정이 이루어져 왔다. 2005년 호주제 폐지, 2008년 친양자제도 도입 등이 그 성과다.

혼인제도의 법적 의미

혼인은 남녀가 부부관계를 맺기 위한 합의로서, 법률상 부부라는 신분관계를 발생시키는 법률행위다. 단순한 사실상의 결합이 아니라 법이 인정하고 보호하는 제도적 결합이라는 점에서 동거나 사실혼과 구별된다.

혼인의 성립요건

혼인이 유효하게 성립하려면 실질적 요건과 형식적 요건을 모두 갖추어야 한다. 실질적 요건에는 혼인연령, 중복혼 금지, 근친혼 금지, 혼인의사의 합치 등이 있다.

혼인연령은 남녀 모두 만 18세로 통일되었다. 과거에는 남자 18세, 여자 16세로 차이가 있었으나 2023년 개정을 통해 성평등 원칙에 맞게 조정되었다. 중복혼 금지는 일부일처제를 유지하기 위한 것으로, 이미 배우자가 있는 자는 다른 사람과 혼인할 수 없다.

근친혼 금지는 혈족 간의 혼인을 제한하는 것이다. 8촌 이내의 혈족, 4촌 이내의 인척, 6촌 이내의 혈족의 배우자, 배우자의 6촌 이내의 혈족과는 혼인할 수 없다. 이는 우생학적 고려와 윤리적 고려에 기초한다.

혼인의사의 합치는 당사자 쌍방이 부부가 되겠다는 진정한 의사를 갖추어야 함을 의미한다. 강제로 이루어진 혼인이나 사기에 의한 혼인은 무효이거나 취소사유가 된다.

형식적 요건으로는 혼인신고가 있다. 우리나라는 신고혼주의를 채택하고 있어서 혼인신고를 하지 않으면 법률상 부부가 될 수 없다. 혼인식은 법적으로 필수가 아니며, 신고만으로 혼인의 효력이 발생한다.

혼인의 효과

적법한 혼인이 성립하면 다양한 법적 효과가 발생한다. 우선 부부는 동거, 부양, 협조, 정조의 의무를 지게 된다. 이는 부부공동체의 본질에서 나오는 기본적 의무들이다.

재산관계에서는 부부별산제가 원칙이다. 혼인 전 재산은 각자의 소유이고, 혼인 중 취득한 재산도 명의를 기준으로 귀속이 결정된다. 다만 일상가사에 관해서는 부부가 서로 대리권을 갖는다.

부부는 혼인 중 공동으로 협력하여 이룬 재산에 대해 재산분할청구권을 갖는다. 이혼 시 재산형성에 기여한 정도에 따라 분할을 청구할 수 있으며, 가사노동도 재산형성 기여로 평가받는다.

이혼제도와 그 절차

이혼은 혼인관계를 해소하는 제도다. 우리 민법은 협의이혼과 조정이혼, 심판이혼, 판결이혼을 인정하고 있다.

협의이혼

협의이혼은 부부가 합의로 혼인관계를 해소하는 것이다. 가장 간단하고 경제적인 방법이지만, 성급한 이혼을 방지하기 위해 숙려기간 제도를 두고 있다. 미성년 자녀가 있는 경우 3개월, 없는 경우 1개월의 숙려기간을 거쳐야 한다.

협의이혼 시에는 미성년 자녀의 양육에 관한 사항을 정해야 한다. 친권자 및 양육자 지정, 양육비, 면접교섭권 등을 협의로 정하고, 합의가 되지 않으면 가정법원의 결정을 받아야 한다.

조정이혼과 심판이혼

조정이혼은 가정법원에서 조정을 통해 이혼하는 방법이다. 중립적인 조정위원이 참여하여 합리적인 해결책을 모색한다. 조정이 성립하면 확정판결과 같은 효력을 갖는다.

심판이혼은 조정이 불성립된 경우 법원이 직권으로 또는 당사자의 신청에 의해 이혼을 명하는 제도다. 부부가 2년 이상 별거하고 있고, 그 밖의 사유로 혼인관계가 회복될 수 없을 정도로 파탄된 경우 인정된다.

판결이혼

판결이혼은 법정 이혼사유가 있을 때 법원의 판결로 이혼하는 방법이다. 민법은 6가지 법정 이혼사유를 규정하고 있다. 배우자의 부정행위, 악의의 유기, 생사불명, 강도의 정신병, 기타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그것이다.

실무에서는 ‘기타 중대한 사유’가 가장 많이 활용된다. 성격차이, 경제적 무능력, 가정폭력, 알코올 중독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법원은 구체적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혼인관계의 파탄 여부를 판단한다.

친자관계의 성립과 효과

친자관계는 부모와 자녀 사이의 법적 관계를 의미한다. 혈연에 기초한 자연적 친자관계와 법률에 의해 창설되는 법정 친자관계로 구분된다.

친생자 관계

친생자는 혈연관계에 있는 부모와 자녀를 말한다. 모자관계는 출생의 사실로 당연히 성립되지만, 부자관계는 별도의 인정 절차가 필요한 경우가 있다.

혼인 중 출생한 자녀는 부부의 친생자로 추정된다. 혼인성립일로부터 200일 후, 혼인해소일로부터 300일 이내에 출생한 자녀가 그 대상이다. 이 추정을 번복하려면 친생부인의 소를 제기해야 한다.

혼인 외 출생자의 경우 부의 인지가 있어야 법적 부자관계가 성립된다. 인지는 부의 일방적 의사표시로 가능하지만, 인지를 거부하는 경우 강제인지의 소를 통해 법원이 인지를 명할 수 있다.

입양제도

입양은 혈연관계가 없는 사람들 사이에 법률상 친자관계를 창설하는 제도다. 우리 민법은 일반입양과 친양자입양을 인정하고 있다.

일반입양은 양부모와 친부모의 친족관계가 모두 유지되는 입양이다. 양자는 양가와 친가 모두에서 상속권을 갖는다. 입양 후에도 친부모와의 관계가 단절되지 않으므로 입양의 효과가 제한적이다.

친양자입양은 친부모와의 관계를 완전히 단절하고 양부모와의 관계만 인정하는 입양이다. 2008년 도입된 제도로, 미성년자만을 대상으로 하며 가정법원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친양자는 양부모의 친생자와 같은 지위를 갖는다.

친권과 부양의무

친권은 미성년 자녀에 대한 부모의 권리이자 의무다. 자녀의 신상에 관한 권리(거소지정권, 징계권 등)와 재산에 관한 권리(재산관리권, 법정대리권 등)를 포함한다.

친권은 부모가 공동으로 행사하는 것이 원칙이다. 의견이 일치하지 않으면 가정법원이 결정할 수 있다. 친권남용이나 현저한 부적절성이 인정되면 친권상실이나 친권제한 심판을 받을 수 있다.

부양의무는 직계혈족 및 그 배우자 간에 인정되는 의무다. 부양능력과 부양필요성을 고려하여 부양의 정도와 방법을 정한다. 최근 고령화 사회에서 노인부양 문제가 중요한 사회적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상속제도의 기본 원리

상속은 사람의 사망으로 인해 그의 재산상 지위가 포괄적으로 상속인에게 승계되는 제도다. 개인의 재산권을 보장하고 가족의 생활 안정을 도모하는 기능을 한다.

상속의 개시와 상속인

상속은 피상속인의 사망으로 개시된다. 자연사망뿐만 아니라 실종선고나 인정사망도 상속 개시 사유가 된다. 상속은 피상속인의 주소지에서 개시되며, 동시에 상속인이 당연히 승계한다.

법정상속인은 배우자와 혈족상속인으로 구성된다. 배우자는 항상 상속인이 되고, 혈족상속인은 피상속인과의 친등 순서에 따라 결정된다. 1순위는 직계비속(자녀, 손자녀), 2순위는 직계존속(부모, 조부모), 3순위는 형제자매, 4순위는 4촌 이내의 방계혈족이다.

상속분은 동순위 상속인 간에는 균등하되, 배우자의 상속분은 직계비속과 공동상속할 때는 1.5배, 직계존속이나 형제자매와 공동상속할 때는 각각 2배, 3배의 가산이 있다.

상속의 효과

상속인은 피상속인의 적극재산과 소극재산을 모두 승계한다. 즉, 재산뿐만 아니라 부채도 함께 상속받는다. 이때 상속인은 단순승인, 한정승인, 상속포기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단순승인은 무제한으로 상속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별다른 의사표시 없이 상속재산을 처분하거나 3개월의 숙려기간이 지나면 단순승인한 것으로 간주된다.

한정승인은 상속재산의 범위에서만 피상속인의 채무를 부담하는 조건부 승인이다. 상속재산보다 부채가 많을 가능성이 있을 때 유용하다. 반드시 가정법원에 신고해야 효력이 발생한다.

상속포기는 상속권을 포기하는 것이다. 상속포기를 하면 처음부터 상속인이 아니었던 것으로 간주된다. 가정법원에 신고해야 하며, 포기 후에는 철회할 수 없다.

유언제도

유언은 유언자의 사망으로 효력이 발생하는 단독행위다. 법정상속과는 달리 피상속인의 의사에 따라 재산처분을 할 수 있게 해준다.

민법은 5가지 유언방식을 인정한다. 자필증서유언, 녹음유언, 공정증서유언, 비밀증서유언, 구수증서유언이 그것이다. 각각 엄격한 방식을 요구하며, 방식을 위반한 유언은 무효다.

유언으로도 제한할 수 없는 상속인의 권리가 유류분이다. 직계비속과 배우자는 법정상속분의 1/2, 직계존속은 1/3, 형제자매는 1/3의 유류분을 갖는다. 유언이나 증여로 유류분이 침해되면 유류분반환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

후견제도의 현대적 의미

후견제도는 의사능력이 부족한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다. 2013년 전면 개정을 통해 성년후견제도가 새롭게 정비되었다.

법정후견

법정후견은 법원이 후견인을 선임하는 제도로, 성년후견, 한정후견, 특정후견으로 구분된다. 성년후견은 정신적 제약으로 사무를 처리할 능력이 지속적으로 결여된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 한정후견은 정신적 제약으로 사무처리능력이 부족한 사람을 위한 것이다. 특정후견은 정신적 제약으로 특정한 사무에 관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보호한다.

각 유형에 따라 후견인의 권한과 피후견인의 행위능력에 차이가 있다. 성년후견인은 포괄적 대리권을 갖지만, 한정후견인과 특정후견인은 제한된 범위에서만 권한을 행사한다.

임의후견

임의후견은 의사능력이 있는 사람이 장래 자신의 의사능력이 부족해질 경우에 대비해 미리 후견인과 그 권한을 정하는 계약이다. 본인의 자기결정권을 최대한 존중하는 제도로 평가된다.

임의후견계약은 공증을 받아야 유효하며, 후견등기를 통해 공시된다. 본인의 의사능력이 부족해지면 가정법원에 임의후견감독인 선임을 신청하여 계약의 효력을 발생시킨다.

현대 가족법의 과제

현대 사회의 변화는 전통적인 가족 개념에 새로운 도전을 제기하고 있다. 저출산·고령화, 1인 가구 증가, 다문화 가정 확산, 동성 결합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 등이 그 예다.

사실혼 관계의 법적 보호도 중요한 쟁점이다. 현행법상 사실혼은 법률혼과 달리 상속권이나 배우자로서의 지위를 인정받지 못한다. 하지만 사실혼 관계가 증가하면서 이들에 대한 법적 보호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다문화 가정의 증가도 가족법에 새로운 과제를 던진다. 국제결혼 시 준거법 문제, 외국인 배우자의 권리 보호, 다문화 자녀의 정체성 문제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동성 결합에 대한 법적 인정 여부도 향후 중요한 쟁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헌법상 혼인·가족제도의 보장과 평등권, 개인의 존엄성이 어떻게 조화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결론

가족법은 인간의 가장 사적이고 내밀한 영역인 가족관계를 다루면서도, 동시에 사회 전체의 질서와 공익을 고려해야 하는 특수한 법 영역이다. 개인의 자유와 선택권을 존중하면서도 가족 공동체의 안정과 사회 전체의 이익을 조화시켜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안고 있다.

혼인과 이혼, 친자관계, 상속, 후견 등 가족법의 각 제도들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하나의 체계를 이룬다. 각 제도는 시대적 변화와 사회적 요구에 따라 지속적으로 발전해 왔으며, 앞으로도 계속 진화할 것이다.

현대 가족법의 핵심 가치는 개인의 존엄성과 양성평등, 자기결정권의 존중이다. 전통적인 가부장적 가족관에서 벗어나 개인의 인격과 권리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동시에 가족의 사회적 기능과 공적 역할도 인정하여 적절한 균형점을 찾아가고 있다.

가족법은 단순한 법기술의 문제를 넘어 우리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와 이상을 반영하는 거울이다. 법과 제도의 개선을 통해 모든 가족 구성원이 존중받고 보호받을 수 있는 법적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가족법의 궁극적 목표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