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법 5. 법인의 권리능력과 대표행위, 법인의 불법행위책임의 구조

법인은 자연인과 함께 민법상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되는 중요한 존재이다. 현대 사회에서 기업이나 단체의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법인의 역할과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법인이 어떻게 권리능력을 갖게 되는지, 실제로 어떤 방식으로 법률행위를 하는지, 그리고 불법행위를 했을 때 어떤 책임을 지는지 이해하는 것은 현대 민법에서 필수적인 과제이다.

법인의 개념과 본질

법인이란 법률에 의해 권리능력을 인정받은 사단이나 재단을 말한다. 자연인이 아니면서도 법적 인격을 갖는 존재로, 독립적으로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될 수 있다. 법인은 인위적으로 창설된 법적 존재이므로 법률이 정한 요건과 절차에 따라서만 성립할 수 있다.

법인의 본질에 대해서는 여러 학설이 있다. 법인의제설은 법인을 법률이 만들어낸 가공의 존재로 본다. 자연인만이 진정한 권리의 주체이고, 법인은 법률이 특별히 권리능력을 부여한 기술적 존재라는 것이다. 법인실재설은 법인을 실재하는 사회적 존재로 파악한다. 법인은 단순한 법적 기술이 아니라 사회적 실체를 갖는 독립적 존재라는 견해이다.

목적재산설은 법인을 일정한 목적을 위해 출연된 재산으로 본다. 법인의 실체는 사람이 아니라 재산이며, 그 재산이 의인화된 것이 법인이라는 것이다. 현재는 법인실재설이 통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이는 법인의 사회적 기능과 역할을 인정하는 현실적 관점이다.

법인의 종류와 분류

법인은 여러 기준에 따라 다양하게 분류된다. 각각의 분류는 법인의 성격과 규율방식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사단법인과 재단법인

설립 목적과 구조에 따른 분류로, 사단법인은 일정한 목적을 위해 결합한 사람들의 단체이고, 재단법인은 일정한 목적을 위해 출연된 재산의 집합체이다.

사단법인은 사원으로 구성되며, 사원총회가 최고 의사결정기관이 된다. 학교법인, 종교법인, 동창회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사단법인에는 의사결정을 위한 사원총회, 업무집행을 위한 이사, 감독을 위한 감사 등의 기관이 있다.

재단법인은 출연재산과 정관으로 구성되며, 설립자가 정한 목적에 따라 운영된다. 장학재단, 문화재단, 복지재단 등이 여기에 속한다. 재단법인에는 사원이 없으므로 이사회가 최고 의사결정기관이 된다.

공법인과 사법인

설립 근거와 성격에 따른 분류이다. 공법인은 공법에 의해 설립되어 공적 업무를 수행하는 법인이고, 사법인은 사법에 의해 설립되어 사적 활동을 하는 법인이다.

국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이 공법인의 예이다. 이들은 공권력을 행사하거나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사법인은 주식회사, 사단법인, 재단법인 등으로, 사적 이익을 추구하거나 특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설립된다.

영리법인과 비영리법인

활동 목적에 따른 분류이다. 영리법인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법인이고, 비영리법인은 영리가 아닌 다른 목적을 추구하는 법인이다.

주식회사, 유한회사 등이 영리법인의 대표적 예이다. 이들은 수익을 창출하여 구성원에게 분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비영리법인은 학술, 종교, 자선, 문화 등의 공익적 목적을 추구하며, 수익이 발생해도 구성원에게 분배하지 않고 법인의 목적사업에 사용한다.

법인의 권리능력

권리능력의 범위

법인도 자연인과 마찬가지로 권리능력을 갖는다. 하지만 법인의 권리능력은 자연인과 완전히 같지는 않다. 법인은 인위적으로 창설된 존재이므로 그 성질상 자연인에게만 가능한 권리는 가질 수 없다.

법인의 권리능력 범위에 대해서는 목적의 범위 내 설과 일반적 권리능력설이 대립한다. 목적의 범위 내 설은 법인이 정관에서 정한 목적의 범위 내에서만 권리능력을 갖는다고 본다. 일반적 권리능력설은 법인도 자연인과 마찬가지로 일반적 권리능력을 갖되, 다만 목적 범위를 벗어난 행위는 무효가 된다고 본다.

현재 통설은 일반적 권리능력설이다. 법인도 권리능력 자체는 일반적으로 갖되, 목적 범위를 벗어난 행위는 효력이 제한된다는 것이다. 이는 법인과 거래하는 제3자를 보호하고 거래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법인의 주소와 국적

법인도 주소를 갖는다. 법인의 주소는 주된 사무소의 소재지이다. 주된 사무소란 법인의 업무를 통괄하는 본점을 의미한다. 법인의 주소는 법정관할이나 송달 등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법인의 국적은 설립준거법주의를 따른다. 어느 나라 법률에 의해 설립되었느냐에 따라 국적이 결정된다. 우리 법에 의해 설립된 법인은 한국 법인이고, 외국법에 의해 설립된 법인은 외국 법인이다.

법인의 설립

법인설립의 원칙

법인은 법률이 정한 요건과 절차에 따라서만 설립할 수 있다. 이를 법인설립 법정주의라고 한다. 자연인의 권리능력은 출생과 동시에 당연히 취득되지만, 법인의 권리능력은 법률이 정한 절차를 거쳐야만 취득할 수 있다.

법인설립에는 준칙주의와 허가주의, 인가주의가 있다. 준칙주의는 법률이 정한 요건을 갖추면 당연히 법인이 성립하는 방식이다. 허가주의는 행정청의 허가를 받아야 법인이 성립하는 방식이고, 인가주의는 설립행위를 한 후 행정청의 인가를 받아 법인격을 취득하는 방식이다.

사단법인의 설립

사단법인을 설립하려면 정관의 작성, 설립자의 출자, 설립등기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정관에는 목적, 명칭, 사무소의 소재지, 자산에 관한 사항, 이사의 임면에 관한 사항 등이 포함되어야 한다.

사단법인의 설립등기는 주된 사무소 소재지에서 해야 한다. 등기를 하면 법인격을 취득하게 되고, 독립적으로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될 수 있다.

재단법인의 설립

재단법인을 설립하려면 설립자가 일정한 재산을 출연하고 정관을 작성해야 한다. 재단법인의 정관에는 목적, 명칭, 사무소의 소재지, 자산에 관한 사항, 이사의 임면에 관한 사항 등이 기재되어야 한다.

재단법인도 설립등기를 통해 법인격을 취득한다. 재단법인은 설립자의 의사에 따라 운영되므로, 정관의 변경에는 엄격한 제한이 있다.

법인의 기관

법인은 자연인이 아니므로 스스로 의사를 결정하고 행위를 할 수 없다. 따라서 법인을 위해 의사결정을 하고 법률행위를 할 기관이 필요하다. 법인의 기관은 법인 자체의 일부로서, 기관의 행위는 곧 법인의 행위가 된다.

사단법인의 기관

사단법인의 기관에는 사원총회, 이사, 감사가 있다. 사원총회는 사단법인의 최고 의사결정기관으로, 중요한 사항을 결의한다. 정관의 변경, 이사·감사의 선임·해임, 예산·결산의 승인, 법인의 해산 등은 사원총회의 결의사항이다.

이사는 법인의 업무집행기관이다. 법인을 대표하고 법인의 업무를 집행한다. 이사가 여러 명인 경우에는 이사회를 구성하여 중요한 업무를 결의한다. 감사는 이사의 업무집행을 감독하는 기관이다.

재단법인의 기관

재단법인에는 사원이 없으므로 사원총회가 없다. 대신 이사회가 최고 의사결정기관이 된다. 이사는 재단의 업무를 집행하고 재단을 대표한다. 감사는 이사의 업무집행을 감사한다.

재단법인의 이사는 설립자가 정관에서 정한 방법에 따라 선임된다. 설립자가 직접 선임할 수도 있고, 다른 기관이 선임하도록 할 수도 있다.

법인의 대표행위

대표권의 본질

법인의 이사는 법인을 대표할 권한을 갖는다. 이러한 대표권은 법정대표권으로, 법률에 의해 당연히 인정되는 권한이다. 이사의 대표행위는 법인 자신의 행위로 간주되며, 그 효과는 직접 법인에게 귀속된다.

법인의 대표권은 포괄적이다. 법인의 목적 범위 내의 모든 행위에 대해 대표권을 갖는다. 다만 법령이나 정관에서 제한한 사항은 예외이다.

대표권의 제한

법인의 대표권은 법령이나 정관, 사원총회 결의 등에 의해 제한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제한이 항상 제3자에게 대항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민법 제61조는 “법인의 대표권에 가한 제한은 선의의 제3자에게 대항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법인과 거래하는 제3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제3자가 대표권 제한 사실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다면 악의 또는 중과실이 있는 것으로 보아 보호받지 못한다.

표현대표이사

이사가 아닌 사람이 대표이사로 표시되어 제3자와 거래를 한 경우, 일정한 요건 하에서 법인이 책임을 질 수 있다. 이를 표현대표이사 제도라고 한다.

표현대표이사가 성립하려면 객관적으로 대표이사로 보이는 외관이 있어야 하고, 법인 측에 귀책사유가 있어야 하며, 제3자가 선의·무과실이어야 한다. 이 요건들이 갖추어지면 법인은 표현대표이사의 행위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법인의 불법행위책임

법인의 불법행위능력

법인도 불법행위를 할 수 있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질 수 있다. 민법 제35조는 “법인은 이사 기타 대리인이 그 직무를 행함에 있어서 타인에게 가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의 성질에 대해서는 대리책임설과 자기책임설이 대립한다. 대리책임설은 법인이 기관의 행위에 대해 대리인의 책임을 지는 것으로 본다. 자기책임설은 기관의 행위가 곧 법인 자신의 행위이므로 법인이 자기 행위에 대해 책임지는 것으로 본다.

현재 통설은 자기책임설이다. 법인의 기관은 법인과 별개의 존재가 아니라 법인 자체의 일부이므로, 기관의 행위는 곧 법인의 행위라는 것이다.

불법행위책임의 요건

법인의 불법행위책임이 성립하려면 몇 가지 요건이 갖추어져야 한다. 첫째, 이사 기타 대리인의 행위여야 한다. 여기서 ‘기타 대리인’은 법인의 기관이나 법인을 위해 일하는 사용자를 포함한다.

둘째, 그 직무를 행함에 있어서의 행위여야 한다. 완전히 사적인 행위는 법인의 책임 범위에서 제외된다. 하지만 외형상 직무와 관련이 있어 보이는 행위라면 법인이 책임을 질 수 있다.

셋째, 타인에게 손해를 가했어야 한다. 고의나 과실로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여 손해가 발생해야 한다. 손해의 발생과 기관의 행위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어야 한다.

법인과 기관의 관계

법인이 불법행위책임을 지는 경우 기관 개인의 책임은 어떻게 될까? 법인과 기관은 연대하여 책임을 진다. 피해자는 법인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도 있고, 기관 개인에게 청구할 수도 있으며, 둘 다에게 청구할 수도 있다.

법인이 먼저 손해를 배상한 경우, 법인은 기관에게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다. 기관에게 고의나 중과실이 있었다면 전액을 구상할 수 있고, 경과실이었다면 일정 부분만 구상할 수 있다.

법인의 소멸

해산

법인은 여러 사유로 해산될 수 있다. 존립기간의 만료, 해산사유의 발생, 목적달성이나 목적달성 불능, 파산, 설립허가의 취소, 법원의 해산명령 등이 해산사유가 된다.

사단법인의 경우 사원총회의 해산결의로도 해산할 수 있다. 재단법인의 경우에는 설립자가 정관에서 정한 사유가 발생하거나 법원의 해산명령이 있어야 해산된다.

청산

법인이 해산하면 청산절차를 거쳐야 한다. 청산은 법인의 재산관계를 정리하고 잔여재산을 처분하는 절차이다. 청산인이 선임되어 청산업무를 수행한다.

청산 중에도 법인은 청산의 목적 범위 내에서 권리능력을 갖는다. 기존 채무를 변제하고 채권을 회수하며, 필요한 경우 재산을 처분할 수 있다.

청산이 종료되면 법인은 완전히 소멸한다. 잔여재산이 있는 경우 사단법인은 사원에게, 재단법인은 정관에서 정한 자에게 귀속된다. 정관에 정함이 없으면 국가에 귀속된다.

법인격 부인론

예외적으로 법인격을 부인하여 배후에 있는 개인이나 다른 법인에게 직접 책임을 묻는 경우가 있다. 이를 법인격 부인론 또는 법인격 남용 이론이라고 한다.

법인격 부인이 인정되려면 법인격이 남용되거나 형해화되어야 한다. 법인의 독립성이 완전히 무시되어 실질적으로는 배후 인물의 도구에 불과한 경우에 해당한다.

구체적으로는 법인격을 이용한 탈법행위, 법인격을 이용한 채무면탈, 일인회사에서 회사와 개인의 완전한 동일시 등의 경우에 법인격 부인이 고려될 수 있다. 하지만 법인격 부인은 매우 예외적으로만 인정되며, 엄격한 요건 하에서 적용된다.

결론

법인제도는 현대 사회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법적 장치이다. 개인의 능력을 넘어서는 대규모 사업이나 공익활동을 가능하게 하고, 경제활동의 효율성과 안전성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법인의 권리능력과 대표행위, 불법행위책임에 관한 이해는 법인과 관련된 법률관계를 정확히 파악하는 데 필수적이다. 특히 법인의 기관의 행위가 언제 법인에게 귀속되는지, 법인이 언제 책임을 지는지 하는 문제는 실무에서도 자주 다뤄지는 중요한 쟁점이다.

법인격 부인론이나 표현대표이사 제도 등은 법인제도의 경직성을 보완하고 구체적 타당성을 추구하기 위한 법리이다. 이러한 예외적 법리들을 통해 법인제도가 남용되지 않도록 하면서도, 선의의 제3자를 적절히 보호할 수 있다.

앞으로 회사법이나 계약법, 불법행위법 등을 공부할 때 법인에 관한 이러한 기본 개념들이 어떻게 구체적으로 적용되는지 계속 확인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