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법 4. 자연인의 권리능력과 행위능력, 제한능력자 제도의 이해

자연인은 민법상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되는 가장 기본적인 존재이다. 모든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법적 인격을 갖게 되지만, 실제로 법률행위를 할 수 있는 능력은 나이와 정신적 상태에 따라 달라진다. 이러한 능력의 차이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가 바로 제한능력자 제도이다.

권리능력의 개념과 특징

권리능력이란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자격 또는 지위를 말한다. 쉽게 말해 법적 인격을 갖는다는 것이다. 권리능력이 있어야 소유권을 가질 수도 있고, 계약의 당사자가 될 수도 있으며, 손해배상의무를 질 수도 있다.

우리 민법은 권리능력의 평등을 기본 원칙으로 한다. 모든 자연인은 출생과 동시에 동등한 권리능력을 취득하며, 성별, 인종, 종교, 사회적 신분 등에 따른 차별이 없다. 이는 근대 민법의 핵심 이념 중 하나로, 봉건적 신분제도를 극복하고 법 앞의 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다.

권리능력은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능력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권리를 가질 것인지는 별개의 문제이고, 권리능력은 그러한 권리들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일반적 자격을 의미한다. 또한 권리능력은 권리만이 아니라 의무의 주체가 될 수 있는 능력도 포함한다.

권리능력의 시기

권리능력의 취득

민법 제3조는 “사람은 생존한 동안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사람’이란 자연인을 의미하며, ‘생존한 동안’이란 출생부터 사망까지를 의미한다.

출생의 시기에 대해서는 전부노출설이 통설이다. 태아가 모체로부터 전부 분리되어 나오면 출생한 것으로 본다는 견해이다. 이때 독립호흡을 했는지, 탯줄이 절단되었는지는 상관없다. 일부노출설은 태아의 일부만 나와도 출생으로 보는 견해이고, 독립호흡설은 독립호흡을 시작해야 출생으로 보는 견해인데, 현재는 소수설이다.

사산아는 권리능력을 취득하지 못한다. 모체에서 분리되었지만 생명이 없는 경우에는 법적으로 ‘사람’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잠시라도 생명이 있었다가 사망한 경우에는 권리능력을 취득했다가 소멸한 것으로 본다.

태아의 권리능력

태아는 원칙적으로 권리능력이 없다. 아직 출생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하지만 태아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예외적으로 일정한 경우에는 태아를 이미 출생한 것으로 간주한다.

민법은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제762조), 상속(제1000조 제3항), 유증(제1064조)에 있어서 태아의 권리능력을 인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 임신 중인 어머니가 교통사고를 당해 태아가 손상을 입은 경우, 태아는 출생 후 가해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이러한 태아의 권리능력은 정지조건부 권리능력이다. 태아가 살아서 출생하면 권리능력을 소급적으로 취득한 것으로 보고, 사산되면 처음부터 권리능력이 없었던 것으로 본다.

권리능력의 소멸

사망과 권리능력의 소멸

권리능력은 사망과 동시에 소멸된다. 사망은 생물학적 사망을 의미하며, 심장의 정지, 호흡의 정지, 뇌사 등으로 판단한다. 우리나라는 뇌사를 사망의 기준으로 인정하는 장기이식법을 두고 있지만, 이는 장기이식의 경우에 한정된다.

식물인간 상태는 사망이 아니다. 의식은 없지만 생명이 유지되고 있는 상태이므로 여전히 권리능력을 갖는다. 다만 의사능력이나 행위능력에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실종선고

실종선고는 생사불명인 사람을 법적으로 사망한 것으로 간주하는 제도이다. 실제로 사망했는지 확실하지 않지만, 오랫동안 생사를 알 수 없는 상태가 계속되면 법적 안정성을 위해 사망으로 의제하는 것이다.

보통실종의 경우 부재자의 생사가 5년간 분명하지 않으면 실종선고를 할 수 있다. 특별실종의 경우는 전쟁, 선박침몰, 항공기추락 등 생명에 위험한 사고에 의해 생사불명된 경우로, 그러한 위험이 종료한 후 1년이 지나면 실종선고가 가능하다.

실종선고의 효과는 사망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보통실종의 경우 실종기간 만료시에, 특별실종의 경우 위험사고가 발생한 때에 사망한 것으로 본다. 따라서 상속이 개시되고, 혼인관계가 해소되며, 각종 권리의무관계가 정리된다.

실종선고가 취소되면 그 효력은 소급적으로 소멸한다. 실종자가 생존해 있다는 사실이 판명되거나 다른 시기에 사망했다는 사실이 증명되면 실종선고를 취소해야 한다. 하지만 선의의 제3자가 입은 손해까지 모두 회복시킬 수는 없으므로, 일정한 한계가 있다.

행위능력의 개념과 종류

행위능력이란 자신의 행위로 유효하게 법률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권리능력이 권리의무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자격이라면, 행위능력은 스스로 법률행위를 할 수 있는 능력이다.

행위능력과 권리능력은 구별된다. 미성년자도 권리능력은 있어서 재산의 소유자가 될 수 있지만, 행위능력이 제한되어 스스로 매매계약을 체결할 수는 없다. 이 경우 법정대리인의 대리나 동의를 통해 법률행위를 하게 된다.

행위능력의 유무와 범위는 주로 연령과 정신적 상태에 따라 결정된다. 민법은 완전한 행위능력자와 제한능력자를 구분하고, 제한능력자에 대해서는 특별한 보호 조치를 두고 있다.

완전한 행위능력자

성년에 달한 사람은 완전한 행위능력을 갖는다. 우리 민법상 성년 연령은 만 19세이다. 만 19세가 되면 부모의 동의 없이도 혼인을 할 수 있고, 재산처분행위를 할 수 있으며, 각종 계약을 체결할 수 있다.

혼인한 미성년자도 성년으로 간주되어 완전한 행위능력을 갖는다. 이를 혼인에 의한 성년의제라고 한다. 혼인은 독립적인 생활을 시작하는 것을 의미하므로, 비록 연령상으로는 미성년이지만 성년과 동일하게 취급하는 것이다. 혼인이 무효가 되거나 이혼을 해도 성년의제의 효력은 지속된다.

완전한 행위능력자라도 의사능력이 없는 상태에서 한 법률행위는 무효가 된다. 행위능력은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능력이고, 의사능력은 구체적인 법률행위 당시의 정신적 능력이기 때문이다.

제한능력자의 종류

미성년자

미성년자는 만 19세 미만인 사람으로, 혼인에 의해 성년으로 간주되지 않은 사람이다. 미성년자는 행위능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제한되는 것이다. 일상생활에 필요한 법률행위는 단독으로 할 수 있지만, 중요한 법률행위는 법정대리인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미성년자가 법정대리인의 동의를 받지 않고 법률행위를 하면 취소할 수 있다. 취소권은 미성년자 본인이나 법정대리인이 행사할 수 있으며, 성년이 된 후에도 5년간 행사할 수 있다.

미성년자의 법정대리인은 원칙적으로 부모이다. 부모가 모두 없거나 친권을 행사할 수 없는 경우에는 후견인이 법정대리인이 된다. 부모가 공동으로 친권을 행사하지만, 일상적인 사항에 대해서는 각자 단독으로도 대리할 수 있다.

성년후견인

성년후견은 질병, 장애, 노령, 그 밖의 사유로 인한 정신적 제약으로 사무를 처리할 능력이 지속적으로 결여된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이다. 가정법원의 성년후견개시 심판을 받은 사람은 성년후견인이 된다.

성년후견인은 일상생활에 관한 행위를 제외하고는 모든 법률행위에 대해 성년후견인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동의를 받지 않고 한 법률행위는 취소할 수 있다. 성년후견인이 직접 대리하여 법률행위를 할 수도 있다.

성년후견은 피성년후견인의 능력이 회복되거나 사망 등의 사유로 종료된다. 능력이 회복된 경우에는 가정법원의 성년후견종료 심판을 받아야 한다.

한정후견인

한정후견은 정신적 제약으로 인하여 사무를 처리할 능력이 부족한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이다. 성년후견보다는 가벼운 정신적 제약이 있는 경우에 적용된다. 가정법원은 한정후견개시 심판에서 피한정후견인이 동의를 받아야 할 행위를 정한다.

피한정후견인은 가정법원이 정한 특정 행위에 대해서만 한정후견인의 동의를 받으면 되고, 그 외의 행위는 단독으로 할 수 있다. 이는 피후견인의 자기결정권을 최대한 존중하려는 것이다.

특정후견인

특정후견은 일시적으로 사무를 처리할 능력이 부족하거나 특정한 사무에 관하여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이다. 가정법원은 특정후견개시 심판에서 특정후견인이 대리할 사무의 범위를 정한다.

특정후견인은 정해진 사무의 범위 내에서만 피특정후견인을 대리한다. 그 외의 행위에 대해서는 피특정후견인이 단독으로 할 수 있다. 특정후견은 해당 사무가 종료되면 당연히 끝난다.

제한능력자의 보호

취소권

제한능력자가 단독으로 하거나 동의 없이 한 법률행위는 취소할 수 있다. 취소권은 제한능력자 본인이나 법정대리인, 후견인 등이 행사할 수 있다. 제한능력자가 능력자가 된 후에도 일정 기간 동안 취소권을 행사할 수 있다.

취소권 행사의 효과는 소급무효이다. 처음부터 무효였던 것과 같은 효과가 발생한다. 하지만 제3자의 권리를 해하지는 못한다. 선의의 제3자가 있는 경우에는 그 권리를 보호해야 한다.

취소권에는 제척기간이 있다. 추인할 수 있는 때로부터 5년, 행위시로부터 20년이 지나면 취소권은 소멸한다. 이는 법적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추인

제한능력자의 법률행위는 추인을 통해 확정적으로 유효하게 될 수 있다. 추인은 취소할 수 있는 법률행위를 확정적으로 유효하게 만드는 의사표시이다.

추인권자는 취소권자와 동일하다. 제한능력자 본인이나 법정대리인, 후견인 등이 추인할 수 있다. 제한능력자가 능력자가 된 후에는 본인이 직접 추인할 수 있다.

추인의 효과는 소급적이다. 행위시에 소급하여 유효하게 된다. 하지만 제3자의 권리를 해하지는 못한다.

법정추인

일정한 경우에는 추인의 의사표시가 없어도 법률상 당연히 추인한 것으로 간주된다. 전부 또는 일부의 이행, 담보의 공급, 목적물의 일부 또는 전부의 사용, 처분 등이 법정추인의 사유가 된다.

상대방의 보호

제한능력자의 상대방도 일정한 보호를 받는다. 상대방은 제한능력자에게 추인할 것인지 거절할 것인지 확답을 촉구할 수 있다. 1개월 이내에 확답하지 않으면 추인을 거절한 것으로 간주된다.

상대방이 제한능력자임을 알지 못하고 계약을 체결한 경우에는 그 계약을 취소할 수 있다. 이는 상대방을 보호하기 위한 규정이다.

의사능력

의사능력은 자신의 행위의 법적 의미를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는 정신적 능력이다. 행위능력이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능력이라면, 의사능력은 구체적인 법률행위 당시의 정신적 능력이다.

의사능력이 없는 상태에서 한 법률행위는 무효이다. 이는 취소가 아니라 무효이므로 누구든지 주장할 수 있고, 추인으로 유효하게 될 수도 없다.

의사능력의 유무는 구체적인 법률행위마다 개별적으로 판단된다. 같은 사람이라도 어떤 행위에 대해서는 의사능력이 있고, 다른 행위에 대해서는 의사능력이 없을 수 있다. 행위의 복잡성과 중요성, 행위자의 정신상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한다.

결론

자연인의 권리능력과 행위능력, 그리고 제한능력자 제도는 개인의 법적 지위를 규정하는 기본적인 제도이다. 모든 사람이 평등한 권리능력을 갖는다는 원칙과 함께,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세심한 배려가 담겨 있다.

제한능력자 제도는 보호와 자율성 사이의 균형을 추구한다. 능력이 부족한 사람을 보호하되, 그들의 자기결정권도 최대한 존중하려는 것이다. 2008년 성년후견제도 개편은 이러한 방향성을 더욱 분명히 한 것이다.

의사능력과 행위능력의 구별, 권리능력과 행위능력의 구별도 중요하다. 이러한 개념들을 정확히 이해해야 구체적인 사안에서 올바른 법적 판단을 할 수 있다. 앞으로 계약이나 불법행위 등 구체적인 법률관계를 공부할 때 이러한 기본 개념들이 어떻게 적용되는지 계속 확인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