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치권에서 일본은행(BOJ)의 통화정책에 대한 새로운 논의가 제기되고 있다. 특히 야당을 중심으로 현재 2%로 설정된 인플레이션 목표의 재검토와 금리 정책의 유연성 확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어 주목된다. 이는 BOJ가 2024년 3월 17년 만에 마이너스 금리를 종료하고 2025년 1월 기준금리를 0.5%까지 인상한 상황에서 나온 것이어서 더욱 의미가 크다.
현재 BOJ의 통화정책 현황
금리 인상 기조로 전환
일본은행은 지난 2024년 3월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17년 만에 금리를 올려,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종료했다. 이어 지난 2024년 7월과 2025년 1월 24일 연이어 금리를 올리면서 현재 일본 기준금리는 0.5%에 도달했다.
이는 1995년 이후 30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일본 기준금리는 1991년에 6%였으나 이후 계속 하락했고, 1995년 9월부터는 0.5%와 마이너스 사이를 오갔다. 이 시기를 ‘잃어버린 30년’이라고 부른다.
미래 금리 인상 전망
금융시장 전문가들은 일본 기준금리가 6개월 간격으로 0.25%p씩 상승해 2026년 봄에는 1%에 이를 것으로 예측했다고 아사히신문이 보도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피에르 올리비에 그란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일본은행이 2025년과 2026년 두 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인상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그는 일본은행의 추가 금리인상 속도에 대해 “매우 완만하게 통화 긴축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며 “물가 안정과 인플레이션 목표 달성을 보장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야당의 정책 재검토 요구 배경
인플레이션 압력 심화
현재 일본의 인플레이션 상황은 BOJ의 우려를 증폭시키고 있다. 변동성이 큰 신선식품 가격을 제외한 도쿄의 핵심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2.5%에 달해 중앙은행의 목표치 2%를 크게 웃돌면서 물가 상승 압력이 더욱 심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일부 분석가들은 엔화 약세가 지속되면서 수입 비용이 급증하고 있어, 향후 몇 달 안에 인플레이션이 3%까지 치솟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경제성장률 둔화 우려
반면 경제성장률은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BOJ는 2025년도 이후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을 하향 조정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1월 시점에서 정책위원 9명의 중앙값 기준으로 실질 GDP는 2025년 1.1%, 2026년 1.0% 증가로 예상됐으나, 관세 영향을 반영해 2025~2026년 실질 GDP 증가율이 1%를 하회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야당의 구체적 정책 제안
인플레이션 목표 재검토
야당 측에서는 현재 2% 인플레이션 목표가 현실적이지 않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특히 “일시적 변동을 제외한 기조적 물가 상승률이 2%로 수렴해 가는 상황”이 실제로 달성 가능한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며, 목표치의 하향 조정 또는 보다 유연한 운용을 주장하고 있다.
연준 대비 금리 정책 유연성 확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2025년 두 차례 금리 인하를 단행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일본은행이 금리 인상을 지속할 경우 미일 금리차가 3%포인트 이상 벌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야당은 이러한 상황에서 무리한 금리 인상보다는 미국 통화정책과의 조화를 고려한 보다 유연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BOJ의 현재 입장과 딜레마
우에다 총재의 신중한 접근
우에다 가즈오 BOJ 총재는 기준금리 인상 결정 이후 열린 회견에서 “앞으로 데이터를 신중하게 보고 (기준금리 인상 여부를) 판단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 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 종료 후 기자회견에서 “일시적 변동을 제외한 기조적 물가 상승률이 2%로 수렴해 가는 상황이 현실화하면 금리를 인상하는 방침에는 변함이 없다”며 “예단 없이 데이터를 확인하며 적절히 정책을 판단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정책의 불확실성
일본은행이 향후 금리 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에서의 관건은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경제정책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BOJ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관세 정책에 따른 경제적 영향이 불확실한 만큼 시장 동향을 주시한다는 입장이다.
미국 정부가 관세를 인상하면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 시기가 늦어지면서 엔화 약세와 달러 강세가 지속할 수 있어서다.
정치적 압력과 중앙은행 독립성
정치권의 압력 증가
최근 여당 핵심 인사들이 우에다 총재를 향해 ‘엔 약세’ 시정을 적극 촉구한 바 있다. 이는 과거 일본은행 총재들이 전통적으로 환율 문제는 중앙은행의 금융정책 결정에 고려할 요인이 아니라는 입장을 표명해 왔던 것에 비춰보면 상당히 이례적인 상황이다.
중앙은행 독립성 딜레마
BOJ가 정치적 압력과 경제적 현실 사이에서 균형을 맞춰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한편으로는 물가 안정이라는 본연의 임무를 수행해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정치권과 시장의 요구에 부응해야 하는 딜레마에 직면해 있다.
글로벌 통화정책 환경의 변화
미일 통화정책 차별화
미국과 일본의 통화정책 차별화에 대한 기대가 한층 더 강해졌다. 미 연준은 금리인하를 시작한 반면, 일본은 금리 인상 기조를 유지하고 있어 양국 간 정책 방향이 상반되고 있다.
이에 따라 달러/엔 환율의 주요 결정 요소인 미국-일본 10년물 국채금리 격차도 축소가 예상되며, 엔화 환율의 변동성이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글로벌 경제에 미치는 영향
일본의 통화정책 변화는 글로벌 금융시장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아시아 신흥국 통화와 채권시장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클 것으로 분석된다.
향후 전망과 과제
데이터 기반 정책 결정
BOJ는 앞으로도 경제 데이터를 면밀히 분석하여 정책을 결정할 방침이다. 특히 임금 상승세, 소비 회복 정도, 인플레이션의 지속성 등이 주요 판단 지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과의 소통 강화 필요
야당의 정책 재검토 요구에 대해 BOJ는 보다 적극적인 소통과 설명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현재의 2% 인플레이션 목표가 일본 경제에 적합한지, 그리고 금리 정책의 유연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비전 제시가 요구된다.
경제 펀더멘털 개선이 우선
무엇보다 일본 경제의 펀더멘털 개선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임금 상승이 지속되어 소비를 뒷받침하고, 기업이 가격을 인상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BOJ의 정책 목표 달성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마무리: 변화하는 일본 통화정책의 미래
야당의 BOJ 정책 재검토 요구는 일본이 30년간의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성장통으로 해석된다. 2% 인플레이션 목표의 적절성과 금리 정책의 유연성에 대한 논의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중요한 것은 정치적 압력에 흔들리지 않고 경제 데이터에 기반한 합리적 정책 결정을 유지하는 것이다. 동시에 국민과 정치권의 우려를 충분히 수렴하여 정책에 반영하는 소통의 노력도 필요하다.
2025년은 일본은행이 지난 30년간 일본에서 볼 수 없었던 수준으로 기준금리를 인상하는 한 해가 될 전망이다. 이러한 역사적 전환점에서 야당의 정책 제안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