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그 복잡한 퍼즐의 시작
매일 아침 뉴스에서 들려오는 “원달러 환율이 상승했다”는 소식. 해외여행을 계획할 때 확인하는 환전 수수료. 우리 일상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환율이지만, 이 숫자가 어떻게 결정되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환율은 외국 통화 한 단위를 받기 위해 자국 통화를 몇 단위 지불해야 하는가를 나타내는 것으로, 자국 통화와 외국 통화간의 교환비율을 의미한다. 겉보기엔 단순해 보이지만, 이 교환비율 뒤에는 수많은 경제 이론과 복잡한 시장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다.
환율결정이론은 크게 전통적 플로우 접근법과 자산시장 접근법으로 나뉜다. 외환수급 요인 중 어느 측면을 중시하느냐에 따라 전통적 플로우 접근법은 경상거래에 의한 외환수급 플로우 균형을 중시하고, 자산시장 접근법은 자본이동에 의한 외환 수급 자산시장의 스톡 균형을 중시한다.
구매력평가설: 햄버거로 환율을 예측하다
환율결정이론에서 가장 직관적이면서도 널리 알려진 이론이 바로 구매력평가설이다. 구매력 평가란 환율이 양국 통화의 구매력에 의하여 결정된다는 이론으로 일물일가의 법칙이 성립함을 가정하고 있다.
이 이론의 핵심은 간단하다. 동일한 상품이라면 어느 나라에서든 같은 가격에 팔려야 한다는 것이다. 일물일가의 법칙이란 간단히 말하면 동일한 재화의 가격은 어느 시장에서나 같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맥도날드의 빅맥이 미국에서 5달러, 한국에서 6,000원에 판매된다면, 구매력평가설에 따른 적정 환율은 1,200원이 되어야 한다는 논리다. 실제로 영국의 경제지 이코노미스트는 이를 바탕으로 ‘빅맥 지수’를 발표해 각국 통화의 고평가 또는 저평가 정도를 측정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이론만큼 단순하지 않다. 현실에서는 당연히 완전히 동일한 재화가 존재하기 어려우므로 일물일가의 법칙이 성립하기가 어렵다. 또한 그러한 재화가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무역 과정에서 수송비 등 비용이 발생하므로 일물일가의 법칙이 성립하지 않게 된다.
구매력평가설은 절대적 구매력평가설과 상대적 구매력평가설로 구분된다. 절대적 구매력평가설이 현재 물가수준을 비교한다면, 상대적 구매력평가설은 물가변화율, 즉 인플레이션율의 차이에 주목한다.
이자율평가설: 돈이 흐르는 곳을 따라가다
자본이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시대에는 이자율평가설이 더욱 중요해진다. 이자율평가는 자본의 국가 간 이동이 자유로운 경우 국제자본거래에서 이자율과 환율 간의 관계를 나타낸 것이다.
이 이론의 핵심은 투자자들이 항상 더 높은 수익을 추구한다는 점이다. 국내 이자율이 연 9%이고, 미국 이자율이 연 6%라고 가정해 보자. 그리고 외환시장에서 현재 환율은 1달러당 1,200원이며 미래 환율에 대한 예상은 1달러당 1,260원이라고 가정해 보자. 만약 어떤 투자자가 국내금융시장에서 자금을 운용하면 1년 후 9%의 수익을 얻는다. 반면 이 자금을 달러로 환전해 미국금융시장에서 운용하고 1년 후 원화로 환전하면 미국금융시장 수익률 6% 외에 예상환차익 5%를 얻게 된다.
이처럼 해외투자의 총 수익률이 국내투자보다 높으면 자본이 해외로 유출되고, 그 결과 환율이 조정되어 수익률이 균형을 이루게 된다는 것이 이자율평가설의 기본 논리다.
플로우 접근법 vs 자산시장 접근법: 관점의 차이
환율결정이론을 이해하려면 두 가지 큰 틀의 차이를 먼저 알아야 한다.
전통적 플로우 접근법은 상품과 서비스의 수출입, 즉 경상거래에 초점을 맞춘다. 상품 및 서비스의 수출입 변동이 외환 수요 및 공급의 변동을 가져온다고 본다. 탄력성 접근법과 총지출 접근법으로 세분화되며, 환율이 상승하면 수출이 늘고 수입이 줄어 무역수지가 개선된다는 전통적인 논리를 따른다.
반면 자산시장 접근법은 환율을 금융자산의 가격으로 본다. 외환을 금융자산의 하나로 파악하고, 금융자산의 총수요가 총공급과 같아지는 점에서 환율이 결정된다고 설명한다. 이 접근법은 다시 통화적 접근법과 포트폴리오 밸런스 접근법으로 나뉜다.
통화적 접근법은 내외금융자산간 완전대체재라는 가정 하에 화폐시장의 균형인 화폐의 수요와 화폐의 공급이 같아지는 점에서 환율이 결정된다고 본다. 반면 포트폴리오 밸런스 접근법은 내외금융자산간 불완전대체재라는 가정 하에 화폐시장, 국내통화표시 증권시장, 외화표시 증권시장의 동시균형에서 환율이 결정된다고 설명한다.
현실 속 환율 결정 요인들
이론도 중요하지만 실제 환율은 더욱 복잡한 요인들의 영향을 받는다.
장기적 요인으로는 물가와 생산성이 있다. 각국의 물가수준, 생산성 등 경제여건의 변화는 장기적으로 통화의 가치에 영향을 미친다. 환율을 결정하는 가장 근본적인 요인으로는 해당국가와 상대국의 물가수준 변동을 들 수 있다.
중기적 요인으로는 대외거래와 거시경제정책이 중요하다. 대외거래 결과 국제수지가 흑자를 보이면 외환의 공급이 늘어나므로 환율은 하락하고, 국제수지가 적자를 보여 외환의 초과수요가 지속되면 환율은 상승하게 된다.
단기적 요인은 더욱 다양하다. 단기적으로 환율은 외환시장 참가자들의 기대나 주변국의 환율 변동, 각종 뉴스 등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 특히 시장참가자들의 기대는 자기실현적 성격을 갖는다. 대부분의 시장참가자가 환율상승을 예상할 경우 환율이 오르기 전에 미리 외환을 매입하면 이익을 볼 수 있으므로 외환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게 되어 실제 환율이 상승하게 된다.
뉴스와 투기적 거품: 새로운 접근
1980년대 이후 환율의 변동성이 크게 확대되면서 전통적인 이론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현상들이 나타났다. 이에 따라 뉴스 접근법과 투기적 거품 접근법 같은 새로운 이론들이 등장했다.
뉴스 접근법은 거시경제 환율결정모형에 뉴스의 역할을 도입하여 환율의 움직임을 설명한다. 새로운 정보, 즉 예상하지 못한 뉴스의 출현이 시장참가자의 기대환율 변동을 통해 현재 환율 변동을 가져온다고 본다.
투기적 거품 접근법은 더욱 흥미롭다. 외환시장 참가자들이 합리적으로 행동을 하더라도 외환시장의 속성상 환율이 과도하게 변동할 수 있다. 환율이 주식, 부동산가격 등 다른 자산의 가격과 마찬가지로 장래에 대한 예상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는 설명이다.
한국의 환율 경험: 이론과 현실의 만남
한국의 환율 역사는 환율결정이론을 검증하는 살아있는 실험실이다. 원/달러 환율이 구매력평가설을 따르는가를 분석한 연구에서는 대부분의 검정통계량, 기간, 물가지수에서 실질환율에 단위근이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나 구매력평가설이 성립하지 않는 것으로 해석되었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1997년 외환위기 동안의 환율 급변 시기를 포함할 경우 비선형 단위근 검정에서는 실질환율이 평균회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자유변동환율제도가 도입된 외환위기부터 원/달러 환율이 구매력평가설과 더 일치하도록 결정되는 현상도 다소 발견되었다.
이는 환율결정이론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시장 구조와 경제 상황에 따라 설명력이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환율 이론의 실무적 활용
환율결정이론은 단순한 학문적 관심사가 아니다. 기업의 환헤지 전략, 정부의 환율정책, 개인의 투자 결정에 모두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구매력평가설에 따르면 장기적으로 고평가된 통화는 절하 압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이자율평가설은 금리 차이를 고려한 투자 전략의 이론적 근거가 된다. 플로우 접근법은 무역수지와 환율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자산시장 접근법은 국제 자본이동의 영향을 파악하는 데 유용하다.
환율 예측의 한계와 교훈
다양한 환율결정이론이 존재하지만, 환율을 정확히 예측하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각 이론마다 설명력이 있는 시기와 상황이 다르고, 현실의 환율은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율결정이론을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 환율 변동의 메커니즘을 파악하고, 각 경제 변수가 환율에 미치는 영향을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정책 당국이 환율 안정을 위해 어떤 수단을 사용할 수 있는지, 그 효과와 한계는 무엇인지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미래의 환율 이론: 새로운 도전들
글로벌화가 심화되고 금융시장이 더욱 발달하면서 환율결정이론도 계속 진화하고 있다. 고주파 거래, 알고리즘 트레이딩, 중앙은행 디지털화폐 등 새로운 요소들이 환율 결정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는 연구들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또한 행동경제학적 접근, 빅데이터를 활용한 분석, 기계학습을 이용한 예측 모델 등 새로운 방법론들도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발전은 환율결정이론을 더욱 정교하고 현실적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환율은 결국 두 나라 경제의 상대적 건전성과 미래 전망을 반영하는 거울이다. 완벽한 예측은 불가능하지만, 다양한 이론적 틀을 통해 환율 변동의 논리를 이해하고 대비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환율결정이론은 바로 그 이해의 출발점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