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이 대기업이 되는 과정에서 겪는 5가지 위기

창업자들은 보통 회사가 성장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회사가 클수록 새로운 문제들이 계속 생긴다. 어제까지 잘 돌아가던 시스템이 오늘은 발목을 잡고, 예전에는 간단했던 의사결정이 복잡한 프로세스를 거쳐야 한다.

래리 그라이너(Larry Greiner)가 1972년 제시한 성장 모델은 이런 현상을 명쾌하게 설명한다. 기업은 성장하면서 반드시 거쳐야 할 5단계의 위기를 맞게 되고, 각 위기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따라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지가 결정된다.

1단계: 창의성 위기 – 창업자의 한계가 드러나는 순간

모든 회사는 창업자의 아이디어와 열정에서 시작된다. 초기에는 창업자가 모든 걸 직접 결정하고 실행한다. 개발부터 영업, 채용까지 창업자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이 시기에는 공식적인 조직구조나 체계적인 프로세스 같은 건 없다. 그냥 필요하면 바로 하는 식이다.

문제는 회사가 성장하면서 창업자 혼자 모든 걸 관리하기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직원이 10명일 때는 가능했던 일이 50명, 100명이 되면 불가능해진다. 창업자는 여전히 모든 걸 통제하려 하지만, 실제로는 점점 더 많은 일들이 그의 손을 벗어난다.

이때 나타나는 것이 바로 ‘창의성 위기’다. 창업자의 개인적 역량에만 의존하던 경영 방식이 한계에 부딪힌다. 의사결정은 지연되고, 직원들은 무엇을 해야 할지 혼란스러워한다.

해결책은 전문 경영진을 영입하고 체계적인 관리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창업자들이 이 단계에서 권한을 내려놓기를 거부한다. “내가 키운 회사인데 왜 남에게 맡겨야 하나”라는 생각 때문이다. 이런 창업자들의 회사는 결국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고 정체된다.

2단계: 방향성 위기 – 체계가 족쇄가 되는 역설

1단계 위기를 성공적으로 넘긴 회사들은 전문 경영진 중심의 체계적인 조직 운영을 시작한다. 부서별 역할이 명확해지고, 업무 프로세스가 표준화되며, 성과 관리 시스템이 도입된다. 한동안은 이런 체계 덕분에 효율성이 크게 향상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새로운 문제가 생긴다. 너무 체계적이고 중앙집권적인 구조 때문에 현장의 목소리가 경영진에게 전달되지 않는다. 고객과 직접 접촉하는 영업팀이나 고객서비스팀이 시장 변화를 감지해도, 이 정보가 의사결정권자에게까지 올라가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더 큰 문제는 현장 직원들의 자율성과 창의성이 억제된다는 점이다. 모든 것이 매뉴얼화되고 승인 과정을 거쳐야 하다 보니, 직원들은 점점 시키는 일만 하게 된다. 혁신적인 아이디어나 개선 제안은 복잡한 보고 체계 속에서 사라진다.

이것이 바로 ‘방향성 위기’다. 회사는 성장했지만 방향을 잃고 표류하기 시작한다. 해결책은 권한을 하부 조직으로 위임하고, 현장 중심의 의사결정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본사는 전략적 방향만 제시하고, 실행은 각 부문의 자율성에 맡기는 식으로 변화해야 한다.

3단계: 통제 위기 – 자율성이 가져온 혼란

2단계를 극복한 회사들은 각 부문에 상당한 자율권을 부여한다. 영업팀은 독립적으로 고객을 관리하고, 제품팀은 자체적으로 개발 일정을 결정하며, 지역별 사업부는 각자의 시장 상황에 맞춰 전략을 수립한다. 이런 분권화된 구조 덕분에 시장 대응력이 크게 향상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부작용이 나타난다. 각 부문이 제각각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영업팀이 약속한 서비스를 개발팀이 구현하지 못하고, 마케팅 메시지와 실제 제품 기능이 일치하지 않는다. 심지어 같은 회사 안에서도 부서끼리 경쟁하거나 갈등하는 경우가 생긴다.

더 심각한 문제는 회사 전체의 방향성과 일관성이 사라진다는 점이다. 각 부문이 자신들의 성과에만 집중하다 보니, 전사적인 시너지나 협력은 뒷전이 된다. 고객 입장에서는 하나의 회사와 거래한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여러 개의 다른 회사와 거래하는 것 같은 혼란을 겪는다.

이것이 ‘통제 위기’다. 해결책은 강력한 조정 메커니즘을 도입하는 것이다. 부문별 자율성은 유지하되, 전사적 목표와 일관성을 보장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통제가 아니라 협력과 조정을 통한 통합이다.

4단계: 관료주의 위기 – 시스템이 목적이 되는 함정

3단계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한 조정 시스템들이 점점 복잡해지고 관료적으로 변한다. 부서 간 협력을 위한 회의가 늘어나고, 승인 절차가 복잡해지며, 각종 보고서와 문서 작업이 증가한다. 처음에는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시스템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린다.

직원들은 실제 업무보다 시스템 관리에 더 많은 시간을 쓰게 된다. 고객을 위한 서비스 개선보다는 내부 보고서 작성이 더 중요해진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행하려면 너무 많은 사람의 승인과 협의가 필요해서, 결국 포기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는 시장 변화에 대한 대응 속도가 현저히 떨어진다. 경쟁사가 새로운 서비스를 출시하는 동안 우리는 아직 기획 단계에서 회의만 하고 있다. 혁신보다는 안정성을 추구하게 되고, 도전보다는 현상 유지를 선호한다.

이것이 ‘관료주의 위기’다. 해결책은 조직을 더 유연하고 협력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불필요한 절차는 과감히 없애고, 팀 간 협업을 촉진하는 새로운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규칙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임을 다시 한번 강조해야 한다.

5단계: 성장 피로 위기 – 성장 자체가 부담이 되는 순간

4단계까지 성공적으로 넘어온 회사들은 이미 상당한 규모의 대기업이 되어 있다. 하지만 여기서 새로운 종류의 위기가 기다린다. 바로 ‘성장 피로 위기’다.

회사가 너무 커져서 더 이상 예전처럼 빠른 성장을 유지하기 어렵다. 시장에서의 점유율이 이미 높아서 추가 확장의 여지가 제한적이고, 조직이 복잡해져서 의사결정과 실행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 직원들도 성장에 대한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더 중요한 문제는 성장을 위한 성장에 매몰되는 것이다. 의미 있는 혁신보다는 단순한 규모 확장에 집중하고, 장기적 가치 창출보다는 단기적 성과에 매달린다. 이런 상황에서는 진짜 혁신이 일어나기 어렵다.

그라이너는 이 위기의 해결책으로 ‘협력’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는 단순한 내부 협력이 아니라, 외부와의 전략적 파트너십, 생태계 구축, 그리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실험을 통한 재창조를 의미한다.

현대적 관점에서 본 그라이너 모델의 한계와 개선점

그라이너 모델이 제시된 지 50년이 넘었다. 그동안 비즈니스 환경은 완전히 달라졌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기업의 성장 속도와 패턴이 바뀌었고, 글로벌화와 네트워크 경제의 등장으로 전통적인 조직 구조의 개념도 변화했다.

특히 플랫폼 기업들의 등장은 기존 성장 모델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같은 회사들은 전통적인 단계를 거치지 않고도 빠른 시간 내에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들의 성공 요인은 기존 모델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또한 애자일 조직, 네트워크 조직, 홀라크라시 같은 새로운 조직 운영 방식들이 등장하면서, 전통적인 위계적 조직 구조를 전제로 한 그라이너 모델의 적용 범위가 제한적이 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라이너 모델의 핵심 통찰은 여전히 유효하다. 성장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위기와 그에 따른 조직 구조의 진화 필요성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관찰된다.

스타트업 시대의 새로운 성장 위기들

현대의 기업들, 특히 테크 스타트업들은 그라이너가 제시한 전통적 위기 외에도 새로운 종류의 성장 위기를 경험한다.

첫째는 ‘기술 부채 위기’다. 빠른 성장을 위해 임시방편으로 만든 시스템들이 회사가 커지면서 발목을 잡는다. 코드 구조가 복잡해지고, 데이터베이스가 불안정해지며, 보안 취약점이 증가한다. 이를 해결하려면 성장을 잠시 멈추고 시스템을 다시 구축해야 하는데, 이는 성장 압박을 받는 스타트업에게는 쉽지 않은 결정이다.

둘째는 ‘문화 희석 위기’다. 초기 멤버들이 만든 독특한 기업 문화가 새로운 직원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희석되거나 변질된다. 예전에는 자연스럽게 공유되던 가치와 원칙들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고, 그렇다고 새로운 문화가 확립되지도 않은 애매한 상황이 지속된다.

셋째는 ‘경쟁 환경 위기’다. 성공한 스타트업은 반드시 모방자들과 경쟁자들을 만나게 된다. 특히 대기업들이 뒤늦게 시장에 진입하면서 자원의 압도적 우위를 바탕으로 공격적인 경쟁을 펼친다. 이때 스타트업들은 단순한 성장 전략으로는 대응하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한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리더십의 역할

각 단계의 위기를 성공적으로 넘기는 기업들의 공통점은 리더십의 역할이 단계별로 진화한다는 것이다. 창업 단계에서는 비전을 제시하고 실행하는 기업가적 리더십이 필요하지만, 성장 단계에서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관리하는 전문 경영 리더십이 요구된다.

더 중요한 것은 각 위기 상황에서 기존 방식을 고집하지 않고 변화할 수 있는 용기다. 많은 기업들이 과거의 성공 방식에 매몰되어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지 못한다. 반면 성공하는 기업들은 과감히 기존 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한다.

특히 현대의 리더들은 불확실성과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세가 필요하다. 완벽한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것보다는, 빠르게 실험하고 학습하며 적응하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

조직 진화의 미래 방향

앞으로의 기업들은 그라이너가 제시한 선형적 성장 모델보다는 더 유연하고 적응적인 진화 과정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조직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내부와 외부의 구분이 흐려지고 있다.

미래의 성공적인 조직은 고정된 구조가 아니라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변화할 수 있는 ‘살아있는 시스템’이 될 것이다. 이런 조직들은 전통적인 위기 단계를 거치지 않고도 지속적인 성장과 혁신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라이너 모델이 제시한 핵심 원리 – 성장에 따른 위기의 필연성과 그에 대한 적응적 대응의 필요성 – 는 여전히 유효할 것이다. 형태는 달라질 수 있지만, 성장하는 모든 조직이 겪어야 할 본질적 도전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