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틀린 선택을 할까? 제한적 합리성이 만드는 의사결정의 함정

매일 아침 일어나서 잠들 때까지 우리는 수백 가지 선택을 한다. 무엇을 입을지, 어떤 길로 출근할지, 점심은 뭘 먹을지부터 시작해서 중요한 투자 결정이나 인생의 전환점이 될 선택까지. 그런데 나중에 돌이켜보면 “그때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하고 후회하는 경우가 많다.

경제학에서는 인간을 완전히 합리적인 존재로 가정한다. 모든 정보를 완벽하게 처리하고, 항상 자신에게 최적의 선택을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어떨까? 우리는 정말 그렇게 완벽한 판단을 내리고 있을까?

제한적 합리성이란 무엇인가

1978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허버트 사이먼(Herbert Simon)은 인간의 의사결정이 완전히 합리적이지 않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가 제시한 ‘제한적 합리성(Bounded Rationality)’ 이론은 인간이 완전한 정보를 가지지도 못하고, 무한한 시간과 계산 능력을 갖지도 못한다는 현실을 반영한다.

쉽게 말해, 우리는 제한된 조건 안에서 ‘그럭저럭 괜찮은’ 선택을 하려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완벽한 선택이 아니라 ‘만족스러운(satisficing)’ 선택을 추구한다는 개념이다.

예를 들어 새 휴대폰을 사려고 할 때를 생각해보자. 이론적으로는 시중에 나와 있는 모든 휴대폰의 성능, 가격, 디자인, 사후 서비스 등을 완벽하게 비교해서 최적의 선택을 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몇 개 브랜드만 비교해보고, 주변 사람들의 추천을 듣고, 온라인 리뷰 몇 개만 확인한 후에 결정을 내린다.

우리 뇌가 만드는 의사결정의 함정들

제한적 합리성 때문에 우리는 여러 가지 체계적인 오류를 범하게 된다. 이런 오류들은 우연히 발생하는 실수가 아니라, 인간의 인지 과정에서 나타나는 패턴적인 편향이다.

대표성 휴리스틱의 함정

우리는 복잡한 확률 계산 대신 ‘대표성’에 의존해서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어떤 사람이 안경을 쓰고 조용해 보인다면 ‘전형적인 도서관 사서’ 같다고 생각하고, 그 사람이 실제로 사서일 확률을 과대평가한다.

투자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최근 며칠간 주가가 오른 종목을 보면 ‘상승세’라는 대표적 이미지에 매몰되어 계속 오를 것이라고 착각한다. 실제로는 과거의 짧은 패턴이 미래를 예측하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데도 말이다.

가용성 편향이 만드는 착각

최근에 경험했거나 강렬한 인상을 남긴 사건일수록 더 자주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뉴스에서 비행기 사고 소식을 들으면 비행기 여행이 위험하다고 느끼지만, 실제로는 자동차 사고가 훨씬 더 빈번하게 일어난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최근에 실패한 프로젝트가 강렬하게 기억에 남아있으면, 비슷한 유형의 새로운 프로젝트를 제안받았을 때 과도하게 보수적으로 판단하게 된다. 반대로 최근의 성공 경험에 도취되어 위험을 과소평가하기도 한다.

확증 편향의 위험성

한번 어떤 믿음을 갖게 되면, 그 믿음을 뒷받침하는 정보만 찾아보고 반대되는 정보는 무시하거나 왜곡해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이를 확증 편향이라고 한다.

온라인 쇼핑을 할 때도 이런 편향이 나타난다. 마음에 드는 제품을 발견하면 긍정적인 리뷰만 눈에 들어오고, 부정적인 리뷰는 “특별한 경우”라고 생각하며 넘어간다. 투자 결정을 할 때도, 이미 매수를 결정한 종목에 대해서는 호재 뉴스만 기억하고 악재는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일상에서 만나는 제한적 합리성

쇼핑에서의 의사결정 오류

마트에 가서 장을 볼 때를 생각해보자. 원래는 필요한 것만 사려고 했는데, 입구에서 보는 할인 상품에 마음이 흔들린다. “지금 사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에 장바구니에 넣는다. 이는 ‘손실 회피’ 편향 때문이다.

또한 3개에 1만원, 5개에 1만 5천원이라는 묶음 할인을 보면 당장 5개가 필요하지 않음에도 “더 저렴하니까”라는 이유로 더 많이 산다. 하지만 나중에 다 쓰지 못하고 버리게 되면서 실제로는 손해를 본다.

직장에서의 판단 오류

회의에서 의견을 낼 때도 제한적 합리성이 작용한다. 첫 번째로 나온 의견이 강한 인상을 남기면, 나머지 논의는 그 의견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이를 ‘앵커링 효과’라고 한다.

또한 팀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우리 팀은 다른 팀보다 우수하다”고 생각하는 과신 편향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일정을 너무 낙관적으로 잡거나, 잠재적 위험 요소를 간과하게 된다.

인간관계에서의 오판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도 제한적 합리성이 작용한다. 첫인상에 과도하게 의존하거나, 상대방의 한두 가지 특징만으로 전체 성격을 판단하려고 한다.

연인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상대방의 작은 행동 하나로 “이 사람의 성격은 이런 거구나”라고 속단하거나, 반대로 사랑에 빠진 상태에서는 상대방의 단점을 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제한적 합리성을 극복하는 방법

의도적 시간 지연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는 즉석에서 판단하지 말고 하루나 이틀 정도 시간을 두고 다시 생각해보는 것이 좋다. 감정적인 영향이 줄어들고, 놓쳤던 부분들을 발견할 수 있다.

온라인 쇼핑을 할 때도 장바구니에 넣어두고 며칠 후에 다시 확인해보면, “정말 필요했나?” 싶은 물건들이 많다는 걸 깨닫게 된다.

다양한 관점 수집하기

혼자서 판단하지 말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구해보자. 특히 나와 다른 성향이나 경험을 가진 사람들의 조언이 도움이 된다. 그들은 내가 놓치고 있는 맹점을 지적해줄 수 있다.

회사에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도 팀 내부의 의견만 들을 게 아니라, 다른 부서나 외부 전문가의 시각을 구하는 것이 중요하다.

체크리스트 활용하기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때 고려해야 할 요소들을 미리 정리해두고, 체크리스트처럼 활용하는 방법도 효과적이다. 감정에 휩쓸려서 놓칠 수 있는 중요한 포인트들을 체계적으로 점검할 수 있다.

투자를 할 때도 “수익률, 위험도, 투자 기간, 유동성” 등의 기준을 미리 정해두고 각 항목을 차근차근 검토하면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제한적 합리성과 함께 살아가기

제한적 합리성은 인간의 한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효율적인 생존 전략이기도 하다. 모든 결정을 완벽하게 내리려고 한다면 시간과 에너지가 너무 많이 소모된다. 때로는 “적당히 괜찮은” 선택으로도 충분하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특히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객관적으로 판단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모두 제한된 조건 안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다. 완벽한 선택을 하지 못했다고 해서 자책할 필요는 없다. 다만 우리 뇌가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 이해하고, 그에 맞는 대비책을 마련해두는 것이 현명한 접근법이다.

다음번에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잠깐 멈춰 서서 “내가 지금 어떤 편향에 빠져있는 건 아닐까?”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그 작은 질문 하나가 더 나은 결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