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9. 사회적 기본권 –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교육받을 권리, 근로의 권리, 환경권, 보건권

사회적 기본권은 20세기에 들어 새롭게 등장한 기본권으로서, 국가의 적극적인 급부를 통해 실질적 자유와 평등을 실현하려는 권리다. 전통적인 자유권이 국가로부터의 자유를 추구했다면, 사회적 기본권은 국가를 통한 자유를 지향한다. 모든 국민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개인의 권리 보장을 넘어서 사회정의 실현과 복지국가 건설의 헌법적 근거가 된다.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의 헌법적 의미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는 헌법 제34조가 보장하는 권리로서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되어 있다. 이는 사회적 기본권의 모법이자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인간다운 생활의 의미를 규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시대와 사회에 따라 그 기준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소한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는 물질적 기초는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의식주의 기본적 해결, 질병 치료, 교육 기회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우리 헌법재판소는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최저생활보장청구권으로 해석한다. 국가는 모든 국민이 적어도 최저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절대적 빈곤의 해소를 의미하며,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헌법적 근거가 된다.

생존권적 성격급부권적 성격을 동시에 갖는다. 생존권적 성격은 국가가 국민의 생존을 위협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소극적 의무를 말한다. 급부권적 성격은 국가가 적극적으로 생활 조건을 개선해야 한다는 적극적 의무를 의미한다. 전자는 비교적 명확하지만, 후자는 구체적 내용이 불분명해서 논란이 된다.

프로그램 규정설과 법적 권리설의 대립이 있다. 프로그램 규정설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가 단순히 국가의 정책 목표를 제시한 것에 불과하므로, 구체적인 법률이 제정되기 전까지는 법정에서 주장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니라고 본다. 반면 법적 권리설은 헌법에 명시된 이상 그 자체로 법적 권리이며, 최소한의 내용은 바로 실현되어야 한다고 본다.

우리 헌법재판소는 절충적 입장을 취한다. 일반적으로는 입법부의 구체화가 필요하지만, 최저생활보장의 핵심 영역에서는 헌법상 권리로서 직접 효력을 갖는다고 본다. 예를 들어 생계급여가 현저히 부족해서 최소한의 생존도 어려운 상황이라면, 법원이 직접 개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교육받을 권리와 교육의 기회균등

교육받을 권리는 헌법 제31조가 보장하는 권리로서, 모든 국민이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를 갖는다고 규정한다. 교육은 개인의 인격 발전과 사회 발전의 토대가 되므로, 국가가 적극적으로 보장해야 할 중요한 권리다.

교육받을 권리의 성격은 다층적이다. 우선 학습권으로서의 성격이 있다. 개인이 자신의 능력과 적성에 따라 학습할 권리, 교육 내용을 선택할 권리 등이 포함된다. 국가나 교육기관이 일방적으로 정한 교육과정만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교육 기회에 접근할 권리도 중요하다. 경제적 능력이나 사회적 배경에 관계없이 모든 국민이 교육 기회를 가져야 한다. 이를 위해 국가는 무상교육제도를 운영하고, 저소득층에게는 교육비를 지원해야 한다. 또한 지역 간 교육 격차를 해소하고, 장애인이나 다문화가정 자녀 같은 교육 취약계층을 위한 특별한 배려도 필요하다.

의무교육제도는 교육받을 권리의 핵심 실현 수단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9년간 의무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의무교육은 국가의 의무인 동시에 국민의 의무이기도 하다. 부모는 자녀를 취학시킬 의무가 있고, 정당한 사유 없이 이를 거부하면 제재를 받을 수 있다.

교육의 자주성과 정치적 중립성도 헌법이 명시한 중요한 원칙이다. 교육은 외부의 부당한 간섭 없이 자주적으로 이루어져야 하고, 특정 정치 세력의 도구로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이것이 교육 내용에 대한 국가의 모든 개입을 금지하는 것은 아니다. 국가교육과정 기준을 정하고, 교과서를 검정하며, 교육의 질을 관리하는 것은 국가의 정당한 역할이다.

교육제도 설계의 자율성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국가가 획일적인 교육제도를 강요하기보다는 다양한 교육 방식을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대안학교, 홈스쿨링, 온라인교육 등 새로운 교육 형태를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가는 중요한 과제다.

고등교육의 문제도 복잡하다. 대학교육까지 국가가 보장해야 하는가? 현재 헌법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를 규정하고 있는데, 이것이 대학교육까지 포함하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경제적 능력 부족으로 대학교육을 받지 못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 견해다.

근로의 권리와 노동기본권

근로의 권리는 헌법 제32조가 보장하는 권리로서, 모든 국민이 근로의 권리를 가지며 국가는 이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또한 헌법 제33조는 노동기본권을 보장한다.

근로권의 의미는 두 가지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일할 권리로서는 국민이 능력에 따라 직업을 가지고 일할 기회를 보장받을 권리를 의미한다. 국가는 완전고용을 위해 노력하고, 일자리 창출과 고용 안정을 위한 정책을 펼쳐야 한다. 일하지 않을 권리로서는 강제노동을 거부할 권리를 의미한다. 노예제나 강제노역은 절대 금지된다.

하지만 근로권이 특정 직장에 대한 권리까지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개인이 원하는 직장에서 일할 권리나, 해고당하지 않을 권리까지 헌법상 권리로 인정되지는 않는다. 이는 시장경제 원리와 기업의 경영권을 고려한 것이다.

국가의 고용정책 의무가 중요하다. 국가는 완전고용을 달성하기 위해 적극적인 정책을 펼쳐야 한다. 경기 조절을 통한 거시경제 안정, 직업훈련과 취업알선 서비스, 창업 지원과 중소기업 육성 등이 그 내용이다. 또한 고용 차별을 금지하고, 특정 계층의 고용을 촉진하는 정책도 필요하다.

노동기본권은 근로자의 지위 향상과 경제적 자유 실현을 위한 핵심 권리다. 단결권은 근로자가 자주적으로 단체를 결성하거나 가입할 권리다. 노동조합 설립과 가입의 자유, 노조 활동의 자유 등이 포함된다. 국가는 노조 설립을 방해하거나 노조 활동을 부당하게 제약해서는 안 된다.

단체교섭권은 노동조합이 사용자와 근로조건에 대해 교섭할 권리다. 개별 근로자가 사용자와 대등한 지위에서 교섭하기 어려우므로, 집단적 교섭을 통해 협상력의 균형을 맞추려는 것이다. 사용자는 정당한 이유 없이 단체교섭을 거부할 수 없다.

단체행동권은 파업 등 집단적 행동을 할 권리다. 단체교섭이 결렬되었을 때 근로자들이 집단적으로 노동력 제공을 거부함으로써 사용자에게 압력을 가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무제한 자유는 아니며, 공공복리를 위해 일정한 제한을 받는다.

공무원과 교원의 노동기본권은 특별한 고려가 필요하다. 헌법은 공무원과 교원의 노동기본권을 인정하면서도 법률로 그 범위를 정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 교원은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 때문에 일반 근로자와는 다른 취급을 받는다.

환경권과 지속가능한 발전

환경권은 헌법 제35조가 보장하는 권리로서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되어 있다. 이는 1980년 헌법에서 처음 도입된 비교적 새로운 권리다.

환경권의 성격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다. 절차적 환경권설은 환경권이 환경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할 권리에 불과하다고 본다. 환경영향평가에 참여하거나, 환경 정보를 공개받거나, 환경 소송을 제기할 권리 등이 그 내용이다. 실체적 환경권설은 일정 수준의 환경질을 요구할 구체적 권리라고 본다.

우리 헌법재판소는 환경권을 국가의 환경보호 의무를 강조하는 쪽으로 해석한다. 개인이 특정한 환경 수준을 요구할 구체적 권리라기보다는, 국가가 환경 보호를 위해 노력해야 할 헌법적 근거로 본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환경권 침해를 이유로 한 개인의 법정 구제는 제한적이다.

환경보호와 경제발전의 조화가 핵심 과제다. 환경 보호만 강조하면 경제성장이 저해되고, 경제발전만 추구하면 환경이 파괴된다. 헌법도 이런 딜레마를 인식해서 “환경보전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는 추상적 표현을 사용했다. 구체적인 조화점은 정치적 과정을 통해 찾아야 한다.

지속가능한 발전 개념이 새로운 해답으로 제시되고 있다. 현재 세대의 필요를 충족하면서도 미래 세대의 필요 충족 능력을 훼손하지 않는 발전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환경과 경제의 대립을 넘어서 장기적 관점에서 통합적 접근을 시도한다.

환경정의의 문제도 중요하다. 환경 오염의 피해는 주로 사회적 약자들이 집중적으로 받는 경우가 많다. 고소득층은 깨끗한 지역으로 이주할 수 있지만, 저소득층은 오염된 지역에서 계속 살아야 한다. 이런 환경 불평등을 해소하는 것도 환경권 보장의 중요한 내용이다.

기후변화와 환경권의 관계도 새로운 쟁점이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가 인간의 생존과 환경권에 미치는 영향이 심각해지고 있다. 개별 국가 차원을 넘어서 국제적 협력이 필요한 영역이다. 탄소중립 정책이나 재생에너지 확대 같은 기후변화 대응 정책도 환경권 실현의 중요한 수단이 되고 있다.

보건권과 건강한 삶

보건권은 명시적으로 헌법에 규정되어 있지는 않지만,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와 생명권에서 도출되는 중요한 권리다. 모든 국민이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국가가 보건의료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건권의 내용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건강권은 개인이 최고 수준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유지할 권리다. 의료접근권은 필요한 의료 서비스를 차별 없이 받을 권리다. 건강결정요인에 대한 권리는 깨끗한 물, 안전한 식품, 적절한 주거 등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조건에 대한 권리다.

국민건강보험제도는 보건권 실현의 핵심 수단이다. 모든 국민이 경제적 능력에 관계없이 필요한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사회보장제도다. 우리나라의 건강보험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단일보험제도로서, 의료비 부담을 사회적으로 분산시키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의료 양극화 문제는 여전히 심각하다. 건강보험이 있어도 비급여 항목이 많아서 실제 의료비 부담은 크다. 또한 지역 간, 계층 간 의료 접근성 격차도 존재한다. 수도권과 지방의 의료 인프라 차이, 상급병원 집중 현상 등이 보건권의 평등한 실현을 저해하고 있다.

공공보건의료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다. 시장 실패가 발생하는 영역에서는 국가가 직접 의료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응급의료, 정신보건, 감염병 관리, 취약계층 의료 등이 대표적인 영역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면서 공공보건의료 체계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었다.

건강증진과 질병예방도 보건권의 중요한 내용이다. 치료 중심에서 예방 중심으로 보건의료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다. 국가는 국민의 건강 생활 실천을 지원하고, 질병 발생을 사전에 예방하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 금연정책, 비만 관리, 정신건강 증진 등이 그 예다.

보건의료와 개인정보보호의 충돌도 새로운 쟁점이다. 효과적인 보건정책을 위해서는 개인의 건강정보가 필요하지만, 이는 동시에 민감한 개인정보다. 특히 감염병 대응 과정에서 개인정보 활용과 프라이버시 보호 사이의 균형점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사회적 기본권의 실현과 한계

사회적 기본권은 그 성격상 자유권과는 다른 특징을 갖는다. 국가의 적극적 급부를 전제로 하므로, 재정적 뒷받침이 필요하고 정치적 과정을 통한 구체화가 불가피하다.

재정적 제약이 가장 큰 현실적 한계다. 아무리 좋은 취지의 사회보장제도라도 재정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실현될 수 없다. 따라서 사회적 기본권의 실현 수준은 국가의 경제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선진국일수록 사회보장제도가 발달한 것도 이런 이유다.

세대 간 형평성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 현재의 복지 확대가 미래 세대에게 과도한 부담을 지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지속가능한 복지제도를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고령화 사회에서는 연금이나 의료보험의 장기적 안정성이 핵심 과제다.

보편주의와 선별주의의 선택도 중요하다.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보편적 복지와 저소득층만을 대상으로 하는 선별적 복지 중 어느 것이 바람직한가? 보편주의는 사회통합 효과가 크지만 비용이 많이 들고, 선별주의는 효율적이지만 낙인효과가 있다.

근로 유인과의 조화도 고려해야 한다. 과도한 복지는 근로 의욕을 저해할 수 있다. 복지 혜택과 근로 소득의 적절한 균형을 통해 근로 유인을 유지하면서도 기본적 생활을 보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근로장려세제(EITC)나 조건부 현금지원 같은 정책들이 그 예다.

결론

사회적 기본권은 20세기 들어 등장한 새로운 유형의 기본권으로서, 실질적 자유와 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국가의 적극적 역할을 요구한다.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비롯해 교육권, 근로권, 환경권, 보건권 등은 모든 국민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권리들이다.

이러한 권리들은 단순히 개인의 복지 향상을 넘어서 사회 전체의 발전과 통합에 기여한다. 교육을 통한 인적자본 형성, 건강한 노동력 확보, 환경 보전을 통한 지속가능한 발전 등은 사회 전체의 이익이 된다. 따라서 사회적 기본권에 대한 투자는 비용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투자라 할 수 있다.

현대 사회에서는 디지털 격차, 기후변화, 고령화, 양극화 등 새로운 도전들이 등장하고 있다. 이런 변화에 맞춰 사회적 기본권의 내용과 실현 방식도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디지털 교육권, 기후변화 대응권, 돌봄권 등 새로운 권리 개념들도 논의되고 있다.

궁극적으로 사회적 기본권이 제대로 보장되는 사회야말로 모든 구성원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진정한 복지국가라 할 수 있다. 이는 헌법이 지향하는 사회정의 실현과 인간 존엄성 보장의 핵심 내용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