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라틴아메리카의 관계는 200년 가까운 역사 동안 지배와 종속, 갈등과 협력이 복잡하게 얽힌 독특한 양상을 보여왔다. 1823년 먼로 독트린 선언으로 시작된 이 관계는 19세기 ‘운명적 팽창(Manifest Destiny)’, 20세기 ‘큰 막대기 정책(Big Stick Policy)’, 냉전 시대의 반공주의, 그리고 21세기 테러와의 전쟁과 마약과의 전쟁을 거치며 끊임없이 진화해왔다. 이 과정에서 미주기구(OAS)라는 다자 협력 기구가 탄생했고, 수많은 자유무역협정(FTA)들이 체결되었으며, 라틴아메리카는 미국의 ‘뒷마당(Backyard)’에서 점차 독립적 행위자로 변모해왔다. 오늘날 이 관계는 중국의 부상, 글로벌 가치사슬의 재편, 기후변화와 이민 문제 등 새로운 도전들 앞에서 또 다른 전환점을 맞고 있다.
먼로주의의 탄생과 초기 개입
1823년 12월 2일 제임스 먼로 대통령이 의회 연설에서 발표한 먼로 독트린은 미국-라틴아메리카 관계의 출발점이 되었다. “아메리카는 아메리카인을 위한 것(America for the Americans)”이라는 구호로 요약되는 이 정책은 표면적으로는 유럽 열강의 라틴아메리카 재식민화를 방지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실질적으로는 미국의 서반구 패권을 선언하는 것이었다.
먼로 독트린이 선언될 당시 미국은 아직 라틴아메리카에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할 능력이 부족했다. 실제로 이 정책의 실효성은 영국 해군력에 의존하고 있었다. 하지만 19세기 중반 미국의 산업화가 가속화되고 서부 개척이 완료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1846-1848년 멕시코-미국 전쟁을 통해 미국은 텍사스, 캘리포니아, 뉴멕시코 등 광대한 영토를 획득했으며, 이는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미국의 영토적 야심을 보여주는 첫 번째 사례였다.
1898년 스페인-미국 전쟁은 미국의 라틴아메리카 정책에 결정적 전환점이 되었다. 이 전쟁을 통해 미국은 쿠바의 독립을 보장하고 푸에르토리코를 직접 지배하게 되었다. 특히 쿠바에 대해서는 플랫 수정안(Platt Amendment)을 통해 미국의 개입권을 제도화했다. 이 수정안은 쿠바가 외국과 조약을 체결하거나 차관을 도입할 때 미국의 승인을 받도록 했으며, 미국이 필요하다고 판단할 때 언제든 군사 개입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했다.
20세기 초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큰 막대기 정책’은 먼로 독트린을 더욱 공격적으로 해석한 것이었다. 1904년 루스벨트 독트린은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이 국제적 의무를 이행하지 못할 경우 미국이 ‘국제 경찰’ 역할을 수행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는 도미니카공화국(1905), 니카라과(1912), 아이티(1915), 도미니카공화국 재점령(1916) 등 일련의 군사 개입으로 이어졌다.
파나마 운하 건설은 미국의 라틴아메리카 개입이 얼마나 적극적이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다. 1903년 미국은 콜롬비아로부터 파나마의 독립을 지원하고, 새로 독립한 파나마와 운하 건설 협정을 체결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노골적인 외교적 압력과 군사적 위협을 동원했으며, 이후 100년 가까이 파나마 운하를 직접 관리했다.
선린정책과 2차 대전 시기의 협력
1930년대 프랭클린 루스벨트 행정부는 기존의 일방적 개입 정책을 ‘선린정책(Good Neighbor Policy)’으로 전환했다. 이는 1929년 대공황과 유럽에서의 파시즘 위협이라는 새로운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적 변화였다. 1933년 몬테비데오에서 열린 범아메리카 회의에서 미국은 “어떤 국가도 다른 국가의 내정에 개입할 권리가 없다”는 불간섭 원칙에 합의했다.
선린정책의 구체적 표현으로 1934년 플랫 수정안이 폐지되었고, 미군이 아이티와 니카라과에서 철수했다. 또한 1936년 부에노스아이레스 회의에서는 미주 지역의 평화와 안보를 위한 상호 협력 원칙이 확립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환영을 받았으며, 2차 대전 중 대부분의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이 연합국 편에 서는 결과로 이어졌다.
2차 대전 중 미국과 라틴아메리카의 협력은 전례 없는 수준에 달했다. 1942년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외무장관 회의에서 대부분의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이 추축국과의 외교 관계를 단절했다. 브라질은 연합군에 파병했고, 멕시코도 태평양 전쟁에 참전했다. 경제적으로도 라틴아메리카는 전략 원자재 공급기지 역할을 했으며, 미국은 대규모 경제 지원을 제공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면서 미국의 관심은 유럽 재건과 아시아 안보로 옮겨갔다. 마셜 플랜 같은 대규모 경제 지원은 라틴아메리카에는 제공되지 않았고, 이는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실망과 불만을 사게 되었다. 1947년 트루먼 독트린과 함께 시작된 냉전은 미국의 라틴아메리카 정책을 다시 일방적 개입 방향으로 돌려놓았다.
냉전 시대: OAS 창설과 반공주의
1948년 4월 보고타에서 열린 제9차 범아메리카 회의는 미주기구(Organization of American States, OAS) 창설로 이어졌다. OAS는 서반구 최초의 지역 기구로서 집단 안보, 평화적 분쟁 해결, 경제 협력, 민주주의 증진을 목표로 했다. 표면적으로는 평등한 주권 국가들의 연합이었지만, 실질적으로는 미국이 라틴아메리카 정책을 다자주의적 틀 안에서 추진하는 수단이었다.
OAS의 초기 활동은 냉전 논리에 크게 지배되었다. 1954년 과테말라에서 아르벤스 정부가 미국 기업의 토지를 수용하고 토지개혁을 추진하자, 미국은 CIA를 통한 비밀 작전으로 정권을 전복시켰다. 이 과정에서 OAS는 미국의 일방적 행동을 사후 승인하는 역할에 그쳤다. 1962년 쿠바가 OAS에서 제명된 것도 냉전 논리의 산물이었다.
1959년 쿠바 혁명은 미국의 라틴아메리카 정책에 근본적 충격을 주었다. 90마일 떨어진 곳에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선 것은 먼로 독트린 이래 미국이 추구해온 서반구 패권에 대한 직접적 도전이었다. 미국은 1961년 피그스만 침공을 시도했지만 실패했고, 이후 쿠바에 대한 경제 봉쇄와 고립화 정책을 지속했다.
쿠바 혁명에 대한 대응으로 케네디 행정부는 1961년 ‘진보를 위한 동맹(Alliance for Progress)’을 출범시켰다. 이는 10년간 200억 달러를 투입하여 라틴아메리카의 경제 발전과 사회 개혁을 지원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이었다. 토지개혁, 교육 확대, 민주주의 강화 등을 목표로 했지만, 실제로는 반공주의와 결합되어 제한적 성과만 거두었다.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미국은 라틴아메리카에서 반공 군사 정권들을 적극 지원했다. 1964년 브라질 군부 쿠데타, 1973년 칠레 피노체트 쿠데타, 1976년 아르헨티나 군정 등은 모두 미국의 묵인이나 지원 하에 이루어졌다. 미국은 파나마의 아메리카 학교(School of the Americas)를 통해 라틴아메리카 군인들에게 반게릴라 전술과 정보 수집 기법을 교육했다.
1980년대 중미 분쟁은 냉전 시대 미국의 라틴아메리카 개입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였다. 레이건 행정부는 니카라과의 산디니스타 정부를 전복시키기 위해 콘트라 반군을 지원했고, 엘살바도르에서는 좌파 게릴라에 맞서 군사 정권을 지원했다. 1983년 그레나다 침공과 1989년 파나마 침공도 이 시기의 일방적 개입 정책을 보여준다.
탈냉전 시대: 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와 냉전 종료는 미국의 라틴아메리카 정책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왔다. 반공주의라는 기존의 정책 동력이 사라지면서, 미국은 민주주의 증진과 자유시장 경제 확산을 새로운 목표로 설정했다. 1990년대 조지 H.W. 부시와 빌 클린턴 행정부는 ‘워싱턴 컨센서스’를 바탕으로 한 신자유주의 정책을 라틴아메리카에 확산시키려 했다.
1990년 부시 대통령이 제안한 ‘아메리카를 위한 기업(Enterprise for the Americas Initiative)’은 알래스카에서 칠레까지를 아우르는 자유무역지대 구축을 목표로 했다. 이는 1994년 제1차 미주정상회의에서 ‘미주자유무역지대(FTAA, Free Trade Area of the Americas)’ 구상으로 구체화되었다. FTAA는 34개 민주주의 국가들이 참여하는 거대한 자유무역지대로 설계되었지만, 2000년대 들어 라틴아메리카 좌파 정부들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이 시기 OAS도 새로운 역할을 모색했다. 1991년 산티아고 의정서는 민주주의 수호를 OAS의 핵심 임무로 명시했고, 2001년 미주민주주의헌장(Inter-American Democratic Charter)은 민주주의 위기 상황에서 OAS의 개입 근거를 마련했다. 이에 따라 OAS는 선거 감시, 민주주의 교육, 거버넌스 개선 등의 활동을 확대했다.
하지만 이 시기에도 미국의 일방적 개입은 지속되었다. 1994년 아이티 개입, 2002년 베네수엘라 쿠데타 시도에 대한 지원 의혹, 2004년 아이티 아리스티드 대통령 축출 등이 대표적 사례다. 특히 마약과의 전쟁(War on Drugs)은 새로운 개입 명분이 되었다. 1999년 시작된 콜롬비아 플랜은 70억 달러 규모의 군사 지원을 통해 콜롬비아의 마약 퇴치를 지원한다는 명목이었지만, 실질적으로는 좌파 게릴라 척결에 초점을 맞춘 것이었다.
자유무역협정 네트워크의 확산
1990년대부터 미국은 라틴아메리카와의 경제 통합을 위해 양자 및 다자 자유무역협정을 적극 추진했다. 1994년 발효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은 이러한 전략의 출발점이었다. NAFTA는 미국, 캐나다, 멕시코 간의 상품, 서비스, 투자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했으며, 멕시코를 미국의 제조업 생산 기지로 통합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NAFTA의 성공에 힘입어 미국은 라틴아메리카 각국과 개별 FTA 협상을 시작했다. 2004년 칠레와의 FTA를 시작으로, 중미-도미니카공화국 FTA(CAFTA-DR, 2006), 페루 FTA(2009), 콜롬비아 FTA(2012), 파나마 FTA(2012) 등이 차례로 발효되었다. 이들 협정은 단순한 무역 자유화를 넘어 지적재산권, 정부 조달, 분쟁 해결 등 광범위한 분야를 포괄했다.
FTA 네트워크의 확산은 미국 기업들에게 라틴아메리카 시장 접근을 용이하게 했고,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에게는 미국 시장에 대한 안정적 접근을 보장했다. 특히 제조업 분야에서 글로벌 가치사슬이 형성되면서, 멕시코는 자동차와 전자제품의 주요 생산 기지가 되었고, 중미 국가들은 섬유 산업에 특화되었다.
하지만 FTA의 혜택 분배는 불균등했다. 미국의 대기업들과 라틴아메리카의 수출 지향적 기업들은 큰 이익을 얻었지만, 소농과 중소기업들은 경쟁에서 밀려나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농업 보조금 문제로 인해 멕시코의 옥수수 농민들이 피해를 입는 등 부작용도 발생했다.
9.11 이후 안보 중심 정책
2001년 9.11 테러 공격 이후 미국의 라틴아메리카 정책은 안보 중심으로 급변했다. 부시 행정부는 테러와의 전쟁을 전 세계적으로 확대하면서, 라틴아메리카도 잠재적 테러 위협 지역으로 간주했다. 특히 브라질,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3국 접경지대인 삼각지대(Triple Frontier)가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의 활동 거점이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 시기 미국은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에게 대테러 협력을 강요했다. 국경 통제 강화, 금융 거래 감시, 정보 공유 등이 주요 내용이었다. 또한 마약 밀매와 테러리즘을 연결하는 ‘나르코테러리즘(Narcoterrorism)’ 개념을 도입하여 마약과의 전쟁을 정당화했다.
하지만 이러한 안보 중심 접근은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반발을 샀다. 특히 2000년대 들어 집권한 좌파 정부들은 미국의 일방적 안보 정책에 강하게 저항했다.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볼리비아의 모랄레스, 에콰도르의 코레아 등은 미국의 마약 퇴치 정책을 ‘신식민주의’라고 비판하며 대안적 협력 모델을 추구했다.
2008년 콜롬비아가 에콰도르 영토 내 FARC 기지를 폭격한 사건은 미국의 안보 정책이 지역 갈등을 증폭시킬 수 있음을 보여줬다. 이 사건으로 베네수엘라와 에콰도르가 콜롬비아와 외교 관계를 단절했고, 지역 전체가 긴장 상태에 빠졌다. 결국 OAS와 리우그룹의 중재로 갈등이 해결되었지만, 미국의 일방적 안보 정책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오바마 시대: 관여와 파트너십
2009년 취임한 오바마 대통령은 부시 시대의 일방적 접근에서 벗어나 ‘동등한 파트너십’을 강조했다. 2009년 트리니다드토바고에서 열린 제5차 미주정상회의에서 오바마는 “미국이 라틴아메리카의 상급자(senior partner)가 되려 하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이는 미국의 라틴아메리카 정책에서 수사적으로나마 중요한 변화였다.
오바마 행정부의 가장 주목할 만한 성과는 쿠바와의 관계 정상화였다. 2014년 12월 오바마와 라울 카스트로가 동시에 관계 개선을 발표했고, 2015년 양국 대사관이 재개관했다. 2016년 3월 오바마는 현직 미국 대통령으로는 88년 만에 쿠바를 방문했다. 비록 트럼프 행정부에서 일부 후퇴했지만, 이는 냉전 시대 적대 관계의 상징적 종료를 의미했다.
중미에서는 ‘번영을 위한 동맹(Alliance for Prosperity)’ 계획을 통해 온두라스, 엘살바도르, 과테말라의 경제 발전과 치안 개선을 지원했다. 이는 중미에서 미국으로의 불법 이민을 줄이기 위한 근본적 접근이었다. 또한 콜롬비아 평화 과정을 적극 지원하여 2016년 FARC와의 평화 협정 체결에 기여했다.
하지만 오바마 행정부도 전통적 개입 정책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 2009년 온두라스 쿠데타에 대한 애매한 대응, 베네수엘라에 대한 경제 제재 등은 여전히 일방적 접근의 흔적을 보여줬다. 또한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추진 과정에서 태평양 연안의 라틴아메리카 국가들과의 협력을 강화하려 했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TPP 탈퇴로 무산되었다.
트럼프 시대: 일방주의의 복귀
2017년 취임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내세우며 라틴아메리카 정책에서도 일방적 접근을 강화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라틴아메리카 정책은 이민, 마약, 무역에 집중되었으며, 전통적인 개발 협력이나 민주주의 증진에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었다.
이민 문제는 트럼프 행정부의 최우선 과제였다. 멕시코 국경에 장벽 건설을 추진하고, 불법 이민자에 대한 단속을 강화했다. 또한 중미 국가들에게 이민자 억제를 위한 협력을 강요했고, 이에 불응할 경우 원조 중단으로 압박했다. 2019년에는 과테말라, 온두라스, 엘살바도르와 ‘안전한 제3국’ 협정을 체결하여 이들 국가에 난민 신청자들을 송환하도록 했다.
베네수엘라 문제에서는 마두로 정부에 대한 강력한 압박 정책을 추진했다. 2019년 후안 과이도를 임시 대통령으로 승인하고, 베네수엘라에 대한 경제 제재를 대폭 강화했다. 또한 “모든 옵션이 테이블 위에 있다”며 군사 개입 가능성까지 시사했다. 하지만 이러한 압박에도 불구하고 마두로 정부는 권력을 유지했고, 오히려 베네수엘라 경제와 인도적 상황만 악화되었다.
무역 정책에서는 NAFTA를 재협상하여 2020년 USMCA(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로 대체했다. 새 협정은 자동차 원산지 규정 강화, 노동 기준 개선, 지적재산권 보호 강화 등을 포함했다. 또한 중국과의 무역 전쟁 과정에서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에게 중국과의 관계를 축소하고 미국을 선택하도록 압박했다.
쿠바 정책에서는 오바마 시대의 관계 개선을 대부분 번복했다. 쿠바에 대한 여행 제한을 재강화하고, 송금 제한을 부활시켰다. 또한 헬름스-버튼법 3조를 처음으로 완전 적용하여 쿠바에 투자한 외국 기업들을 미국 법원에서 고소할 수 있도록 했다.
바이든 시대: 파트너십의 재구축
2021년 취임한 조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 시대의 일방적 접근에서 벗어나 ‘존중과 파트너십’을 기반으로 한 관계 재구축을 약속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기후변화, 민주주의, 이민, 경제 회복을 핵심 의제로 설정하고, 라틴아메리카와의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2022년 6월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제9차 미주정상회의는 바이든 행정부의 새로운 접근을 보여주는 무대였다. ‘지속가능하고 회복력 있는 미래를 위한 민주적 거버넌스’라는 주제 하에 기후변화 대응, 디지털 전환, 공급망 다변화 등의 협력 방안이 논의되었다. 특히 ‘미주 경제 번영을 위한 파트너십(Partnership for Economic Prosperity in the Americas)’을 출범시켜 역내 투자와 무역을 촉진하기로 했다.
이민 문제에 대해서는 트럼프 시대의 강압적 접근에서 벗어나 근본 원인 해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근본 원인 해결 전략(Root Causes Strategy)’을 통해 중미 국가들의 경제 발전, 거버넌스 개선, 치안 강화를 지원하고 있다. 카말라 해리스 부통령이 이 문제를 전담하며, 40억 달러 규모의 지원을 약속했다.
베네수엘라 문제에서는 대화를 통한 해결을 모색하고 있다. 2022년 노르웨이 중재로 마두로 정부와 야당 간 대화가 재개되었고, 미국도 이를 지원하고 있다. 일부 경제 제재를 완화하고, 인도적 지원을 확대하는 등 유연한 접근을 보이고 있다.
쿠바 정책에서도 점진적 개선이 나타나고 있다. 송금 제한을 일부 완화하고, 가족 방문을 위한 여행을 허용했다. 비록 완전한 관계 정상화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트럼프 시대의 전면적 적대 정책에서는 벗어나고 있다.
기후변화 대응에서는 라틴아메리카를 핵심 파트너로 인식하고 있다. 아마존 보호를 위한 브라질과의 협력 재개, 중미 국가들의 재생에너지 전환 지원, 카리브 국가들의 기후 적응 지원 등이 주요 내용이다. 2021년 기후 정상회의에서는 라틴아메리카 국가들과 함께 탄소 중립 목표를 공유했다.
중국의 도전과 미국의 대응
21세기 들어 중국의 라틴아메리카 진출은 미국에게 새로운 도전이 되고 있다. 2000년 200억 달러에 불과했던 중국-라틴아메리카 교역 규모는 2021년 4,500억 달러를 넘어서며 미국을 위협하는 수준에 도달했다. 중국은 일대일로 이니셔티브를 통해 라틴아메리카 인프라에 대규모 투자를 하고 있으며, 19개 라틴아메리카 국가가 일대일로에 참여하고 있다.
중국의 영향력 확대는 미국의 전통적 패권에 직접적 도전이 되고 있다. 특히 파나마(2017), 도미니카공화국(2018), 엘살바도르(2018)가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 수교한 것은 미국에게 큰 충격이었다. 현재 대만을 승인하는 라틴아메리카 국가는 8개국에 불과하다.
미국은 이에 대응하여 ‘중국 견제’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2018년 아르헨티나 G20 정상회의에서 펜스 부통령은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에게 “중국의 일대일로는 부채 함정”이라고 경고했다. 또한 DFC(미국국제개발금융공사)를 통해 인프라 투자를 확대하고, 블루닷 네트워크 같은 대안적 이니셔티브를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전략적 균형을 추구하고 있다. 대부분의 국가들이 미국과의 안보 협력과 중국과의 경제 협력을 동시에 추진하는 ‘헤징(hedging)’ 전략을 택하고 있다. 이는 냉전 시대와는 다른 새로운 지정학적 현실을 반영한다.
OAS의 진화와 한계
미주기구(OAS)는 75년 역사 동안 여러 차례 변신을 거듭해왔다. 냉전 시대 미국의 정책 도구 역할에서 벗어나 1990년대부터는 민주주의 수호와 분쟁 해결에 집중해왔다. 특히 선거 감시 임무에서는 상당한 성과를 거뒀으며, 2000년 페루 대선, 2017년 온두라스 대선 등에서 부정선거를 폭로하는 역할을 했다.
2001년 채택된 미주민주주의헌장은 OAS의 새로운 정체성을 보여준다. 이 헌장은 민주주의를 “미주 지역 인민들의 권리”로 규정하고, 민주주의 위기 시 OAS의 집단 대응을 의무화했다. 2009년 온두라스 쿠데타, 2019년 볼리비아 정치 위기 등에서 OAS는 민주주의헌장을 적용하여 개입했다.
하지만 OAS는 여전히 미국의 과도한 영향력과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불신이라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2019년 볼리비아 선거 보고서 논란은 이러한 문제를 잘 보여준다. OAS가 선거 부정을 주장하며 에보 모랄레스의 사임을 촉발했지만, 이후 독립적 조사에서 부정 증거가 없었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는 OAS의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베네수엘라 문제에서도 OAS는 명확한 한계를 드러냈다. 2017년 베네수엘라가 OAS 탈퇴를 선언했고, 회원국들 간에도 마두로 정부에 대한 입장이 엇갈리면서 효과적 대응에 실패했다. 현재 OAS는 과이도를 베네수엘라 대표로 인정하고 있지만, 실질적 영향력은 미미하다.
이민과 국경 안보
이민 문제는 현재 미국-라틴아메리카 관계에서 가장 민감한 현안 중 하나다. 현재 미국 내 히스패닉 인구는 6,200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18.5%를 차지한다. 이 중 멕시코계가 3,700만 명으로 가장 많고, 푸에르토리코, 쿠바, 엘살바도르, 도미니카공화국 출신이 뒤를 잇는다.
2010년대 이후 중미에서 미국으로의 이민이 급증했다. 온두라스, 엘살바도르, 과테말라는 세계에서 살인율이 가장 높은 국가들 중 하나이며, 마라 살바트루차(MS-13) 같은 갱단의 위협과 경제적 절망이 이민의 주요 원인이다. 특히 동반자 없는 아동 이민자들의 증가는 인도적 위기를 초래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민 억제를 위해 ‘가족 분리 정책’, ‘멕시코 잔류 정책’, ‘제3안전국 협정’ 등 강경 정책을 추진했다. 이러한 정책들은 일시적으로 이민자 수를 줄이는 효과를 거뒀지만, 인권 침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 시대의 강경 정책을 대부분 철회하고, 근본 원인 해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중미 삼각지대(과테말라, 온두라스, 엘살바도르)에 40억 달러를 투입하여 경제 기회 창출, 거버넌스 개선, 치안 강화를 지원하고 있다. 또한 합법적 이민 경로를 확대하고, 난민 보호를 강화하는 등 인도적 접근을 강조하고 있다.
마약과의 전쟁: 성과와 한계
1971년 닉슨 대통령이 선언한 ‘마약과의 전쟁’은 50년 넘게 미국-라틴아메리카 관계의 핵심 축 중 하나였다. 미국은 공급 차단(supply reduction) 전략을 바탕으로 라틴아메리카의 마약 생산과 밀매를 억제하기 위해 막대한 자원을 투입했다. 콜롬비아 플랜(1999-2016)에만 100억 달러가 넘는 자금이 지원되었다.
일부 성과도 있었다. 콜롬비아에서는 코카인 생산량이 2000년대 중반 크게 감소했고, 멕시코에서는 주요 카르텔 두목들이 검거되었다. 또한 마약 단속 과정에서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법 집행 능력이 향상되었다.
하지만 근본적 한계도 명확했다. ‘풍선 효과(balloon effect)’로 인해 한 지역의 생산이 줄어들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현상이 반복되었다. 콜롬비아의 코카 재배가 줄어들자 페루와 볼리비아에서 증가했고, 멕시코 카르텔을 압박하자 중미로 경로가 이동했다. 현재 콜롬비아의 코카 재배면적은 오히려 역사상 최고 수준에 달하고 있다.
또한 공급 중심 접근의 한계가 드러났다. 미국 내 마약 수요가 줄어들지 않는 상황에서 공급만 차단하려는 전략은 마약 가격 상승과 폭력 증가만 초래했다. 멕시코의 마약 전쟁은 2006년 이후 30만 명 이상의 사망자를 낳았으며, 중미 국가들도 세계 최고 수준의 살인율을 기록하고 있다.
최근에는 패러다임 전환 논의가 활발하다. 포르투갈의 비범죄화 모델, 우루과이의 대마초 합법화 등이 새로운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미국에서도 여러 주에서 대마초를 합법화했으며, 바이든 행정부는 피해 감소(harm reduction) 접근을 강화하고 있다.
경제 관계의 변화
미국과 라틴아메리카의 경제 관계는 지난 30년간 크게 심화되었다. 양방향 교역 규모는 1990년 750억 달러에서 2021년 8,000억 달러로 10배 이상 증가했다. 미국은 라틴아메리카의 최대 교역 상대국이며, 라틴아메리카는 미국의 세 번째 교역 상대 지역이다.
투자 관계도 밀접하다. 미국의 대라틴아메리카 직접투자는 4,000억 달러를 넘어서며, 제조업, 에너지, 서비스업 등 전 분야에 걸쳐 있다. 특히 멕시코는 미국 기업들의 최대 해외 투자 대상국 중 하나가 되었다. 반대로 라틴아메리카 기업들의 대미 투자도 증가하고 있으며, 브라질의 JBS, 멕시코의 CEMEX 등이 미국 시장에 진출했다.
하지만 경제 관계의 불균형도 지속되고 있다. 대부분의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이 1차 상품 수출에 의존하는 반면, 미국은 고부가가치 제조업과 서비스업을 수출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는 라틴아메리카의 기술 종속과 부가가치 유출을 심화시키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공급망 다변화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미국 기업들이 중국 의존도를 줄이고 ‘니어쇼링(nearshoring)’을 추진하면서, 라틴아메리카는 새로운 기회를 맞고 있다. 특히 멕시코는 USMCA의 혜택과 지리적 근접성을 활용하여 제조업 허브로 부상하고 있다.
미래 전망과 과제
미국과 라틴아메리카의 관계는 여러 구조적 변화에 직면해 있다. 첫째, 라틴아메리카의 경제적·정치적 성숙이다. 많은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이 중진국 수준에 도달했으며, 국제 무대에서 독립적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는 과거의 일방적 종속 관계에서 상호 의존적 파트너십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둘째, 중국의 부상으로 인한 지정학적 경쟁이다.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은 더 이상 미국만을 선택지로 갖지 않으며, 중국, 유럽, 인도 등과의 관계를 다변화하고 있다. 미국은 독점적 영향력을 포기하고 경쟁적 환경에서 매력적 파트너가 되어야 한다.
셋째, 새로운 글로벌 의제들의 부상이다. 기후변화, 디지털 전환, 팬데믹 대응, 불평등 해소 등은 전통적인 안보나 무역 의제를 넘어서는 협력 영역들이다. 이러한 분야에서 미국과 라틴아메리카는 공통 이익을 바탕으로 한 협력 모델을 개발할 수 있다.
넷째, 라틴아메리카 내부의 다양성 증가다. 과거 라틴아메리카를 단일 블록으로 접근했던 것과 달리, 이제는 태평양 동맹, 메르코수르, 중미, 카리브 등 소지역별 특성을 고려한 차별화된 접근이 필요하다.
결론
200년에 걸친 미국-라틴아메리카 관계사는 패권과 저항, 지배와 자율성이 끊임없이 경합해온 역사였다. 먼로주의로 시작된 일방적 패권 추구는 21세기 들어 상호 의존적 파트너십으로 점진적 전환을 경험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OAS라는 다자 협력 기구가 탄생했고, 광범위한 FTA 네트워크가 구축되었으며, 민주주의와 인권, 자유무역과 경제통합이라는 공동 가치가 확산되었다. 하지만 동시에 개입과 주권 침해, 불평등한 발전, 마약과 이민 같은 초국경적 문제들도 지속되고 있다. 중국의 부상과 새로운 글로벌 의제들의 등장은 이 관계에 새로운 기회와 도전을 제공하고 있으며, 앞으로 이 관계가 진정한 상호 존중과 평등에 기반한 파트너십으로 발전할 수 있을지가 양 지역의 미래를 좌우할 핵심 변수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