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을 넘나드는 교류가 일상이 된 현대사회에서 국제법은 더 이상 먼 이야기가 아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각국의 입국 제한 조치나 백신 공급 문제,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등 국제적 갈등 상황에서 국제법의 역할과 한계가 연일 화제가 되고 있다. 또한 무역분쟁이나 환경문제, 사이버 범죄처럼 한 나라 안에서만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계속 늘어나면서 국제법에 대한 이해가 필수가 되었다.
하지만 국제법은 국내법과는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국내에서는 국가라는 강력한 권력기관이 법을 만들고 집행하지만, 국제사회에는 각국을 강제할 수 있는 상위 권력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들이 서로 약속을 맺고 지키려고 노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제법이 실제로 어떻게 만들어지고 적용되는지 살펴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정교한 체계를 갖추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국제법의 본질과 특징
국제법은 주권국가들 사이의 관계를 규율하는 법체계다. 국내법처럼 입법기관이 만든 성문법이 중심이 아니라, 국가들이 서로 합의해서 만든 조약과 오랜 기간 반복된 관행이 법으로 인정받는 관습국제법이 핵심을 이룬다.
국제법의 가장 큰 특징은 ‘수평적 질서’라는 점이다. 국내법에서는 국가가 개인보다 우위에 있는 수직적 관계지만, 국제법에서는 모든 국가가 주권평등 원칙에 따라 대등한 지위를 갖는다. 미국이나 중국 같은 강대국도, 바티칸이나 나우루 같은 소국도 법적으로는 동등한 주체인 것이다.
또 다른 특징은 ‘강제력의 분산’이다. 국내법 위반 시에는 경찰이나 법원 같은 국가기관이 직접 제재를 가하지만, 국제법 위반에 대해서는 다른 국가들의 외교적 압력, 경제제재, 때로는 군사적 조치 등 다양한 방식으로 압박이 이뤄진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나 국제사법재판소 같은 국제기구들이 있긴 하지만, 이들도 각국의 협력 없이는 실질적인 강제력을 발휘하기 어렵다.
조약 – 국가 간 합의의 법적 구속력
조약은 국제법의 가장 중요한 법원이다. 두 개 이상의 국가가 서면으로 체결하는 국제적 합의로서, 당사국들에게 법적 구속력을 갖는다. 조약의 명칭은 다양해서 협정(agreement), 협약(convention), 의정서(protocol), 각서(memorandum) 등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명칭과 상관없이 국가 간 합의의 실질을 갖추면 모두 조약이다.
조약 체결 과정은 보통 협상(negotiation), 서명(signature), 비준(ratification), 발효(entry into force) 단계를 거친다. 협상 단계에서는 각국의 외교관들이 조약문 내용을 토의하고 합의점을 찾는다. 서명은 협상 결과에 대한 정치적 승인을 의미하지만, 아직 법적 구속력은 발생하지 않는다. 비준은 각국이 헌법에 따른 국내 절차를 거쳐 조약에 최종 동의하는 과정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통령이 조약을 체결하지만,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경우가 많다.
조약의 해석과 적용에서는 ‘조약법에 관한 비엔나협약’이 기본 원칙을 제시한다. 조약 조문의 통상적 의미를 우선하되, 조약의 대상과 목적에 비춰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합의는 지켜져야 한다(pacta sunt servanda)’는 원칙에 따라 조약 당사국은 성실하게 조약을 이행할 의무를 진다.
조약 위반 시에는 상대방이 조약 이행을 정지하거나 조약을 종료할 수 있다. 다만 조약 위반이 경미한 경우나 인도주의적 조약인 경우에는 함부로 조약 관계를 끊을 수 없도록 제한하고 있다. 최근에는 기후변화협약이나 인권협약처럼 전 지구적 문제를 다루는 다자조약이 늘어나면서, 조약 체제의 안정적 운영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관습국제법 – 오랜 관행이 만드는 법
관습국제법은 성문화되지 않았지만 오랜 기간 반복된 국가 관행이 법적 확신과 결합해 형성되는 국제법이다. 두 가지 요소가 갖춰져야 하는데, 하나는 ‘일반관행(general practice)’이고 다른 하나는 ‘법적 확신(opinio juris)’이다.
일반관행은 다수 국가들이 일정한 행위를 반복적으로 해왔다는 객관적 사실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외교관에 대한 면책특권이나 영해 12해리 원칙 등은 처음엔 몇몇 나라의 관행에서 시작됐지만, 점차 많은 나라들이 따르게 되면서 일반관행으로 정착됐다. 관행의 기간은 정해져 있지 않지만, 보통 수십 년 이상의 장기간에 걸쳐 형성된다.
법적 확신은 국가들이 그런 관행을 법적 의무로 인식하고 있다는 주관적 요소다. 단순한 예의나 관례가 아니라, 반드시 지켜야 할 법적 의무라고 생각해야 관습국제법이 된다. 국가들의 공식 성명이나 법원 판결, 외교문서 등을 통해 이런 법적 확신을 확인할 수 있다.
관습국제법의 장점은 모든 국가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된다는 점이다. 조약은 당사국에게만 구속력을 갖지만, 관습국제법은 별도로 반대 의사를 표시하지 않은 이상 모든 국가를 구속한다. 하지만 내용이 명확하지 않아 해석상 다툼이 생기기 쉽고, 변화하는 국제환경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어렵다는 단점도 있다.
최근에는 국제법위원회나 각국 법원의 판례를 통해 관습국제법의 내용을 명확히 하려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또한 인권법이나 환경법 분야에서는 비교적 짧은 기간에 새로운 관습국제법이 형성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어, 전통적인 관습국제법 이론에 변화가 일고 있다.
국제기구와 국제법 발전
20세기 들어 국제기구의 역할이 크게 확대되면서 국제법 발전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유엔을 비롯해 세계무역기구(WTO), 국제통화기금(IMF), 세계보건기구(WHO) 등 다양한 국제기구들이 각자의 전문 분야에서 국제규범을 만들고 집행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유엔은 가장 포괄적인 국제기구로서 국제평화와 안전 유지라는 기본 목적을 갖고 있다. 유엔 헌장은 그 자체로 중요한 국제법 문서이면서, 동시에 다른 국제법 발전의 토대가 되고 있다. 유엔 총회에서 채택되는 결의는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국제여론 형성과 관습국제법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는 상황에 따라 법적 구속력을 가질 수 있어, 국제평화 위협 상황에서 강력한 수단으로 활용된다.
국제사법재판소는 유엔의 주요 사법기관으로서 국가 간 분쟁을 해결하고 국제법 해석에 권위 있는 판단을 제시한다. 재판소의 판결은 당사국들을 구속하며, 국제법 발전에도 중요한 선례가 된다. 다만 국가들이 재판소의 관할권을 미리 수락해야 재판이 가능하므로, 모든 분쟁을 다룰 수는 없다는 한계가 있다.
지역별로는 유럽연합(EU), 아세안(ASEAN), 아프리카연합(AU) 등 지역기구들도 각자의 지역에서 독특한 법체계를 발전시키고 있다. 특히 EU는 회원국들 사이에 초국가적 법질서를 구축해 국제법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국제기구들이 만드는 ‘연성법(soft law)’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정치적·도덕적 구속력을 갖는 규범들로서, 국제기준이나 가이드라인 형태로 나타난다. 이런 연성법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조약이나 관습국제법으로 발전하기도 해, 국제법 형성의 중요한 통로 역할을 한다.
국가책임의 원리와 구제 수단
국제법 위반 시 국가가 져야 할 책임에 관한 법리도 중요한 영역이다. 국가책임법은 어떤 행위가 국가에게 귀속되고, 언제 국제법 위반이 되며, 위반 시 어떤 결과가 따르는지를 다룬다.
국가의 국제적 책임이 성립하려면 두 가지 요건이 필요하다. 첫째는 ‘국가 귀속성’으로, 문제가 된 행위가 그 국가의 행위로 간주될 수 있어야 한다. 정부 기관의 공식 행위는 물론이고, 공무원이 직무 범위를 벗어난 행위를 하더라도 공적 자격을 이용했다면 국가 행위로 본다. 둘째는 ‘국제의무 위반’으로, 그 행위가 조약이나 관습국제법상 의무를 위반했어야 한다.
국가책임이 성립하면 위반 국가는 손해배상 의무를 진다. 배상 방식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원상회복(restitution)’은 위반 행위가 없었다면 존재했을 상황으로 되돌리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불법으로 점령한 영토를 반환하거나 구금된 사람을 석방하는 것이다. ‘보상(compensation)’은 금전으로 손해를 배상하는 방식이고, ‘만족(satisfaction)’은 공식 사과나 책임자 처벌 등 비금전적 구제를 의미한다.
심각한 국제법 위반에 대해서는 국제사회 전체가 대응할 수 있다. 집단학살이나 반인도적 범죄, 침략 등 국제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해치는 중대한 위반에 대해서는 모든 국가가 그 위반 상태를 인정하지 않고 종료를 위해 협력할 의무를 진다. 이런 경우에는 피해를 직접 받지 않은 국가들도 위반 국가에 대해 책임을 추궁할 수 있다.
최근에는 국가책임과 별도로 개인의 국제형사책임도 중요해지고 있다. 국제형사재판소(ICC)를 통해 국가 지도자나 군 지휘관 등이 직접 처벌받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어, 국제법 위반에 대한 억제 효과를 높이고 있다.
국제법의 국내법적 효력
국제법과 국내법의 관계는 각국의 헌법 체계에 따라 다르게 정리된다. 크게 ‘일원론’과 ‘이원론’으로 나뉘는데, 일원론은 국제법과 국내법을 하나의 통합된 법체계로 보는 관점이고, 이원론은 서로 별개의 법체계로 보는 관점이다.
우리나라는 헌법상 이원론적 체계를 채택하고 있다. 조약이 국내에서 효력을 갖으려면 헌법에 따른 체결·공포 절차를 거쳐야 한다. 헌법 제6조 제1항은 “헌법에 의하여 체결·공포된 조약과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법규는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고 규정해, 적법하게 체결된 조약과 관습국제법이 국내법과 동등한 지위를 갖는다고 명시했다.
다만 조약과 국내법이 충돌할 때 어느 것이 우선하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은 일반적으로 ‘후법 우선 원칙’을 적용해, 나중에 제정된 법률이 먼저 체결된 조약보다 우선한다는 입장을 취해왔다. 하지만 인권 관련 조약처럼 헌법적 가치와 직결되는 경우에는 조약이 우선할 수 있다는 견해도 있어, 앞으로 더 정교한 기준이 필요한 상황이다.
관습국제법의 경우 별도의 국내 입법 없이도 직접 적용될 수 있다. 하지만 관습국제법의 내용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 법원이 구체적 사안에서 관습국제법의 존재와 내용을 인정하는 데는 신중한 접근을 보이고 있다.
국제법의 국내 적용에서 중요한 것은 법원의 역할이다. 법관들이 국제법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국제법과 국내법을 조화롭게 해석·적용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춰야 한다. 또한 입법부도 새로운 법률을 제정하거나 기존 법률을 개정할 때 국제법상 의무와의 합치성을 검토해야 한다.
현대 국제법의 새로운 도전과 과제
21세기 들어 국제법은 전통적인 틀을 넘어서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기후변화, 사이버 공간, 우주 활동, 인공지능 등 새로운 영역에서 국제규범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지만, 기존 국제법 체계로는 충분히 대응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기후변화 분야에서는 파리협정을 통해 전 지구적 대응 체계를 구축했지만, 각국의 자발적 감축 목표에 의존하는 구조라 실효성에 한계가 있다. 기후 피해에 대한 국가책임 문제도 복잡한데, 온실가스 배출과 피해 사이의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어렵고, 역사적 배출 국가와 현재 배출 국가가 다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사이버 공간에서는 기존 국제법이 사이버 활동에도 적용된다는 것이 일반적 견해이지만, 구체적 적용 방식에 대해서는 국가들 사이에 견해차가 크다. 사이버 공격에 대한 자위권 행사나 사이버 전쟁의 규범 등은 아직 명확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이다.
비국가 행위자의 역할 확대도 중요한 변화다. 다국적 기업, 국제 NGO, 테러 조직 등이 국제관계에서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전통적인 국제법은 주로 국가 간 관계를 다루도록 설계되어 있다. 최근에는 다국적 기업의 인권 책임이나 NGO의 국제법상 지위 등에 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분쟁 해결 메커니즘의 다양화도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전통적인 외교적 해결이나 국제사법재판소 외에도, 다양한 전문 분야별 국제재판소들이 설립되고 있다. 국제해양법재판소, 국제형사재판소, WTO 분쟁해결기구 등이 각자의 영역에서 분쟁 해결과 국제법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결론
국제법은 무정부 상태의 국제사회에서 질서와 예측가능성을 제공하는 중요한 장치다. 강제력이 제한적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국가들이 평화롭게 공존하고 협력할 수 있는 법적 틀을 제공한다. 조약과 관습국제법이라는 두 기둥 위에서, 국제기구들이 규범 형성과 집행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국가책임 원리를 통해 국제법 위반에 대한 책임을 묻고 피해를 구제하는 체계도 점점 정교해지고 있다. 각국의 국내법 체계와의 조화로운 연결도 국제법의 실효성을 높이는 핵심 요소다. 현대적 도전들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기존 국제법의 창조적 해석과 새로운 규범의 개발이 동시에 필요하다.
국제법은 이상향을 추구하는 학문적 논의가 아니라, 현실 국제정치 속에서 작동하는 살아있는 법체계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인류가 공동으로 만들어온 소중한 자산이며, 더 나은 국제질서를 위한 지속적인 발전이 필요한 영역이다. 개별 국가의 이익을 넘어 인류 공동의 가치를 실현하는 방향으로 국제법이 발전해 나갈 때, 진정한 법치주의적 국제질서가 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