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학개론 3. 법치주의의 역사와 원칙 – 권력분립, 사법독립, 적법절차를 통한 현대 민주국가의 기초

법치주의의 개념과 본질

법치주의는 현대 민주국가의 기본 원리 중 하나다. 영어로는 ‘Rule of Law’라고 하는데, 말 그대로 법이 지배하는 사회를 의미한다. 사람이 사람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법이 모든 것을 지배한다는 뜻이다. 아무리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라도 법 위에 설 수 없고, 법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 법치주의의 핵심이다.

법치주의를 이해하려면 먼저 그 반대 개념을 생각해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법치의 반대는 인치다. 인치는 사람의 자의적 판단이나 권력자의 뜻에 따라 사회가 운영되는 것을 말한다. 왕이나 독재자가 자신의 기분이나 이익에 따라 백성을 다스리는 것이 전형적인 인치 사회다. 오늘은 이것이 법이라고 했다가 내일은 저것이 법이라고 하고, 같은 일을 해도 누구는 처벌하고 누구는 봐주는 식의 자의적 통치가 인치의 특징이다.

법치주의는 이런 자의적 통치를 배격한다. 미리 정해진 법에 따라 모든 일을 처리하고, 법 앞에서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며, 권력자라도 법을 어기면 처벌받는다는 것이 법치주의의 기본 정신이다. 이를 통해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고 예측 가능한 사회질서를 만드는 것이 법치주의의 목적이다.

하지만 단순히 법이 있다고 해서 법치주의가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 독재국가에도 법은 있다. 중요한 것은 법의 내용과 법이 운영되는 방식이다. 진정한 법치주의가 되려면 법 자체가 정의롭고 합리적이어야 하고, 법을 만들고 집행하는 과정도 민주적이어야 한다.

법치주의의 역사적 발전

법치주의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개념이 아니다. 오랜 역사를 통해 점진적으로 발전해온 결과물이다. 그 뿌리는 고대 그리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법이 지배하는 것이 사람이 지배하는 것보다 낫다”고 말했다. 사람은 감정에 휩쓸리고 사적 이익에 치우칠 수 있지만, 법은 이성적이고 객관적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법치주의 사상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중세 유럽에서는 교회법과 자연법 사상이 발달했다. 왕의 권력도 신의 법 아래에 있다는 생각이 퍼졌다. 왕이라도 신의 뜻에 어긋나는 일은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는 왕권에 대한 제약의 논리로 작용했다.

근대 법치주의의 결정적 계기는 1215년 영국의 마그나 카르타(대헌장)였다. 존 왕이 귀족들의 압력에 못 이겨 서명한 이 문서는 왕의 권력에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명문으로 규정했다. 왕이라도 법정에서 재판을 받지 않고는 신하의 생명이나 재산을 빼앗을 수 없다고 했다. 이것이 적법절차 원칙의 시초가 되었다.

17-18세기 계몽주의 시대에는 법치주의 이론이 본격적으로 체계화되었다. 존 로크는 정부의 권력이 국민의 동의에서 나온다고 했고, 몽테스키외는 권력분립론을 제시했다. 권력이 한 곳에 집중되면 반드시 부패하므로 입법, 행정, 사법권을 분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19세기 독일에서는 법치국가(Rechtsstaat) 이론이 발달했다. 국가도 법에 구속되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국가가 국민에게 명령할 때도 법적 근거가 있어야 하고, 국민이 국가의 위법한 행위에 대해 구제받을 수 있는 장치가 있어야 한다고 봤다.

20세기에 들어서는 두 차례 세계대전과 전체주의의 경험을 통해 법치주의의 의미가 더욱 깊어졌다. 단순히 법이 있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법의 내용 자체가 인간의 존엄성과 기본권을 보장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권력분립의 원리와 실현

권력분립은 법치주의를 실현하는 핵심 장치다. 한 사람이나 한 기관에 모든 권력이 집중되면 그 권력은 반드시 남용된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따라서 국가권력을 여러 기관으로 나누어 서로 견제하고 균형을 이루도록 하는 것이 권력분립의 취지다.

전통적인 권력분립론은 삼권분립을 기본으로 한다. 법을 만드는 입법권, 법을 집행하는 행정권, 분쟁을 해결하는 사법권을 각각 다른 기관이 담당하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헌법도 이런 삼권분립 구조를 채택하고 있다.

입법권은 국회가 담당한다. 국회는 국민이 직접 선출한 국회의원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민주적 정당성이 가장 강하다. 따라서 국민의 권리와 의무에 관한 중요한 사항은 반드시 국회에서 만든 법률로 정해야 한다. 이를 법률유보 원칙이라고 한다.

행정권은 대통령과 정부가 담당한다. 대통령은 국가원수이자 행정부의 수반으로서 국정을 총괄한다. 각 부처의 장관들은 대통령을 보좌해서 각 분야의 행정업무를 처리한다. 행정부는 국회에서 만든 법률을 구체적으로 집행하는 역할을 한다.

사법권은 법원이 담당한다. 법원은 법률 분쟁을 해결하고 범죄자를 처벌하는 권한을 가진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법부의 독립성이다. 법관은 오직 법과 양심에 따라 판단해야 하고, 다른 권력기관의 간섭을 받아서는 안 된다.

하지만 권력분립이 각 권력기관을 완전히 분리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서로 견제하고 협력하는 관계를 만드는 것이 목적이다. 예를 들어 대통령은 국회에서 통과된 법률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고, 국회는 국정감사와 국정조사를 통해 행정부를 견제한다. 법원은 위헌법률심판권을 통해 입법부와 행정부의 권력 남용을 막는다.

사법독립의 의미와 보장장치

사법독립은 법치주의의 핵심 요소 중 하나다. 법관이 외부의 간섭 없이 오직 법과 양심에 따라 재판할 수 있어야 진정한 법치가 가능하다. 만약 정치권력이나 경제적 이익집단이 재판에 개입한다면 법의 공정성과 권위는 땅에 떨어질 것이다.

사법독립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하나는 법원이라는 기관의 독립이고, 다른 하나는 개별 법관의 독립이다.

기관으로서의 법원 독립은 다른 국가기관으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한다. 행정부나 입법부가 법원의 재판에 개입하거나 압력을 가해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 헌법은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규정해서 이를 보장하고 있다.

개별 법관의 독립은 법관이 상급법원이나 법원행정처의 간섭 없이 독립적으로 재판할 수 있다는 의미다. 대법원장이나 고등법원장이라도 개별 사건의 재판 내용에 대해 하급심 법관에게 지시할 수 없다.

사법독립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해서는 여러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법관의 신분보장이다. 법관이 외부 압력을 무릅쓰고 공정한 재판을 하려면 불이익을 당할 걱정이 없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법관의 임기를 보장하고 있다. 대법원장과 대법관은 6년, 다른 법관들은 10년의 임기를 가지며, 중대한 사유가 없는 한 해임되지 않는다. 탄핵이나 금고 이상의 형을 받는 경우가 아니면 의사에 반해서 면직되지 않는다.

법관의 보수도 재임 중에 감액할 수 없도록 규정되어 있다. 법관이 권력에 불리한 판결을 했다고 해서 급여를 깎는 식의 보복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법관의 인사에 있어서도 독립성을 보장한다. 대법원장과 대법관은 대통령이 임명하지만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다른 법관들은 대법원장이 대법관회의의 동의를 얻어 임명한다. 행정부가 일방적으로 법관을 임명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적법절차의 원칙

적법절차(Due Process of Law)는 국가가 개인의 생명, 자유, 재산을 제약할 때 반드시 지켜야 하는 절차적 요건들을 말한다. 아무리 좋은 목적이라도 절차를 무시하고 개인의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적법절차 원칙은 크게 절차적 적법절차와 실체적 적법절차로 나뉜다. 절차적 적법절차는 형식적인 절차의 공정성을 요구한다. 수사나 재판 과정에서 지켜야 할 절차들을 제대로 따랐는지를 보는 것이다.

형사사건에서 절차적 적법절차가 특히 중요하다. 체포영장 없이 사람을 붙잡을 수 없고, 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권리를 보장해야 하며, 법정에서 충분히 방어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자백을 강요하거나 고문을 해서는 안 되고, 증거도 적법한 절차에 따라 수집해야 한다.

실체적 적법절차는 절차뿐만 아니라 법의 내용 자체도 합리적이어야 한다는 원칙이다. 아무리 절차를 잘 지켰다고 해도 법 자체가 불합리하거나 자의적이면 안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빨간 옷을 입으면 처벌한다”는 식의 터무니없는 법을 만들어서 절차만 지켜 처벌한다면 이는 적법절차에 위반된다.

우리나라 헌법은 제12조에서 “누구든지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체포·구속·압수·수색 또는 심문을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해서 적법절차 원칙을 명문화하고 있다. 또한 “모든 국민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해서 재판을 지연시켜서는 안 된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현대적 법치주의의 특징

19세기의 법치주의는 주로 국가권력을 제한하는 소극적 의미가 강했다. 국가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하지만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법치주의의 의미가 확장되었다.

현대적 법치주의는 단순히 국가권력을 제한하는 것을 넘어서 적극적으로 정의를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형식적 평등뿐만 아니라 실질적 평등을 추구하고,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며,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는 것까지 법치주의의 내용에 포함시킨다.

이런 변화는 두 차례 세계대전과 전체주의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나치 독일에서는 법이 있었지만 그 법 자체가 인간의 존엄성을 부정하는 내용이었다. 이런 경험을 통해 법의 내용도 정의로워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현대적 법치주의는 인간의 존엄성을 최고 가치로 인정한다.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존엄한 존재이고, 국가는 이를 보장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존엄성에 반하는 법은 비록 절차에 따라 만들어졌다고 해도 무효라고 본다.

기본권 보장도 현대적 법치주의의 핵심 요소다. 자유권뿐만 아니라 생존권, 교육받을 권리, 환경권 같은 사회적 기본권도 보장해야 한다고 본다. 국가는 단순히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것을 넘어서 적극적으로 기본권을 실현할 의무가 있다.

법의 지배도 더욱 엄격해졌다. 과거에는 법률만 있으면 되었지만, 이제는 헌법에 합치하는 법률이어야 한다. 헌법재판소가 위헌법률을 심사해서 무효화할 수 있는 제도가 그 예다.

법치주의 실현의 한계와 과제

법치주의는 이상적인 원리이지만 현실에서 완벽하게 실현되기는 어렵다. 여러 가지 한계와 문제점들이 있다.

첫째, 법만능주의의 위험이 있다. 모든 사회 문제를 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법은 사회 문제 해결의 한 수단일 뿐이고, 도덕이나 관습, 경제적 인센티브 등 다른 수단들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둘째, 법의 형식성으로 인한 경직성 문제가 있다. 법은 일반적이고 추상적으로 규정될 수밖에 없어서 구체적 상황의 특수성을 반영하기 어렵다. 때로는 법을 엄격히 적용하는 것이 오히려 불의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셋째, 법치주의와 민주주의 사이의 긴장 관계가 있다. 민주주의는 다수의 의사를 존중하는 원리인데, 법치주의는 다수라도 침해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고 본다. 이 두 원리가 충돌할 때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는 어려운 문제다.

넷째, 사회 변화 속도와 법의 변화 속도 사이의 괴리가 있다. 과학기술의 발달이나 사회구조의 변화는 매우 빠르지만 법의 개정은 상대적으로 느리다. 이로 인해 법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이런 한계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법을 만들고 집행하는 과정에서 시민들의 참여를 확대하고, 법관들의 전문성과 도덕성을 높이며, 사회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유연한 제도를 만들어가야 한다.

결론

법치주의는 인류가 오랜 투쟁을 통해 얻어낸 소중한 가치다. 권력자의 자의적 지배를 거부하고 모든 사람이 법 앞에 평등하다는 원칙을 확립한 것은 인류 문명사의 위대한 성취라고 할 수 있다.

권력분립, 사법독립, 적법절차는 법치주의를 실현하는 핵심 장치들이다. 이 원칙들이 제대로 작동해야 진정한 법치가 가능하다. 단순히 제도를 만드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그 제도를 운영하는 사람들의 의식과 시민들의 감시가 함께 해야 한다.

현대적 법치주의는 과거의 소극적 법치를 넘어서 적극적으로 정의를 실현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는 법치주의의 진화이자 발전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법치주의도 만능은 아니다. 여러 한계와 문제점들이 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법치주의는 완성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발전시켜 나가야 할 과제다.

현대 민주국가에서 법치주의가 가지는 의미는 매우 크다. 법치주의 없이는 진정한 민주주의도, 인권 보장도, 사회 정의도 불가능하다. 따라서 법치주의를 이해하고 실현하려는 노력은 모든 시민의 책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