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체계 분류의 필요성
현대 사회의 법은 수많은 개별 법률들로 이루어져 있다. 헌법, 민법, 형법, 상법, 행정법 등 셀 수 없이 많은 법들이 존재한다. 이렇게 복잡한 법들을 체계적으로 이해하려면 적절한 분류 기준이 필요하다. 마치 도서관에서 책들을 주제별로 분류해서 정리하는 것처럼, 법도 일정한 기준에 따라 분류해야 전체적인 구조를 파악할 수 있다.
법체계를 분류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어떤 기준으로 나누느냐에 따라 다양한 분류 체계가 가능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분류는 법이 규율하는 관계의 성격에 따른 구분이다. 즉, 공법과 사법으로 나누는 것이다. 여기에 현대에 들어서 등장한 사회법까지 포함하면 3분법 체계가 된다.
또 다른 중요한 분류 기준은 법이 적용되는 공간적 범위다. 한 나라 안에서만 적용되는 국내법과 여러 나라에 걸쳐 적용되는 국제법으로 구분하는 것이다. 이런 분류들을 통해 복잡한 법의 세계를 체계적으로 정리할 수 있다.
공법의 개념과 특징
공법은 국가나 공공단체가 개인과의 관계에서 공권력을 행사하는 영역을 규율하는 법이다. 여기서 핵심은 ‘권력 관계’다. 국가와 개인 사이에는 본질적으로 힘의 차이가 있다. 국가는 법을 만들고 집행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지고 있는 반면, 개인은 그런 권력이 없다. 이런 수직적 관계를 규율하는 것이 공법이다.
공법의 가장 대표적인 예는 헌법이다. 헌법은 국가권력의 조직과 작용, 그리고 국민의 기본권을 규정한다. 국가가 어떻게 구성되고 어떤 권한을 가지는지, 국민의 권리는 무엇이고 국가는 이를 어떻게 보장해야 하는지를 정한다. 이는 전형적인 공법 영역이다.
행정법도 중요한 공법 분야다. 행정기관이 국민에 대해 행정처분을 내리거나 행정서비스를 제공하는 과정을 규율한다. 건축허가, 영업허가, 과세처분, 행정명령 등이 모두 행정법의 적용을 받는다. 여기서도 행정청과 국민 사이의 권력 관계가 핵심이다.
형법과 형사소송법도 공법에 속한다.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처벌하는 것은 국가의 고유한 권한이다. 개인이 다른 개인을 직접 처벌할 수는 없다. 반드시 국가기관인 법원을 통해서만 형벌을 부과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형법은 공법적 성격을 가진다.
공법의 특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권력 관계를 전제로 한다. 국가와 개인 사이의 수직적 관계가 기본이다. 둘째, 공익을 추구한다. 개인의 이익보다는 사회 전체의 이익을 우선시한다. 셋째, 강행법규의 성격이 강하다. 당사자들이 임의로 바꿀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사법의 개념과 특징
사법은 개인과 개인 사이의 관계를 규율하는 법이다. 여기서는 당사자들이 대등한 지위에서 관계를 맺는다. 국가가 개입하는 경우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개인들의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법률관계가 형성된다. 이런 수평적 관계를 규율하는 것이 사법이다.
민법이 사법의 대표적인 예다. 계약, 물권, 불법행위, 가족관계 등을 규정하는 민법은 개인 간의 권리와 의무를 다룬다. A가 B에게 물건을 파는 매매계약, C가 D로부터 돈을 빌리는 소비대차계약 등은 모두 개인 간의 대등한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거래다.
상법도 사법 영역에 속한다. 상인 간의 거래나 회사 운영에 관한 법률이다. 회사를 설립하고 운영하는 것, 어음이나 수표를 발행하는 것, 보험계약을 체결하는 것 등이 상법의 규율 대상이다. 이 역시 기본적으로는 개인(법인 포함) 간의 자유로운 거래 관계다.
국제사법도 사법에 포함된다. 국제적인 요소가 있는 사법 관계에서 어느 나라 법을 적용할지를 정하는 법이다. 예를 들어 한국인과 미국인이 일본에서 계약을 체결했다면, 이 계약에 대해서는 어느 나라 법을 적용해야 할까?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국제사법이다.
사법의 특징은 공법과 대조된다. 첫째, 대등한 관계를 전제로 한다. 당사자들 사이에 권력 관계가 없고 평등한 지위에서 거래한다. 둘째, 사익을 추구한다. 각자의 이익을 위해 거래하고 분쟁이 생기면 개인의 권리 구제에 중점을 둔다. 셋째, 임의법규의 성격이 강하다. 당사자들이 합의하면 법률과 다르게 정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사회법의 등장과 의미
전통적으로는 공법과 사법의 2분법으로 법체계를 분류했다. 하지만 19세기 말부터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새로운 유형의 법이 등장했다. 바로 사회법이다. 사회법은 공법과 사법의 중간적 성격을 가지는 법 영역이다.
사회법이 등장한 배景은 산업혁명과 자본주의의 발달이다. 자유방임주의 하에서 개인 간의 자유로운 계약을 보장했지만, 현실에서는 강자와 약자 사이의 불평등이 심화되었다. 특히 노동자와 사용자 사이의 힘의 차이가 너무 커서 형식적인 계약의 자유만으로는 실질적 평등을 보장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때의 국가 개입은 전통적인 공법과는 다른 성격을 가졌다. 공권력을 행사해서 일방적으로 명령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실질적 평등을 실현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런 새로운 유형의 법을 사회법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노동법이 사회법의 대표적인 예다. 근로기준법은 최저임금, 근로시간, 휴일 등에 대해 강제적으로 규정한다. 형식적으로는 사용자와 근로자가 자유롭게 계약을 체결하지만, 실제로는 법으로 정한 최소 기준 이하로는 정할 수 없다. 이는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경제법도 사회법에 속한다. 독점금지법, 공정거래법 등은 시장에서의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기 위해 기업들의 행위를 규제한다. 개인 간의 자유로운 거래를 인정하면서도, 경제적 강자가 시장을 독점하거나 불공정한 방법으로 경쟁하는 것을 막는다.
사회보장법도 중요한 사회법 분야다. 국민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 등을 통해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한다. 개인의 책임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을 사회 전체가 분담해서 해결하는 것이다.
국내법과 국제법의 구분
공법, 사법, 사회법이 법의 성격에 따른 분류라면, 국내법과 국제법은 적용 범위에 따른 분류다. 국내법은 한 나라 안에서만 효력을 가지는 법이고, 국제법은 여러 나라에 걸쳐 적용되는 법이다.
국내법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대부분의 법이다. 헌법, 민법, 형법, 상법 등이 모두 국내법이다. 이 법들은 대한민국 영토 안에서만 효력을 가진다. 한국의 민법이 미국이나 일본에서 직접 적용되지는 않는다.
국내법의 특징은 명확한 입법기관과 집행기관이 있다는 점이다. 국회에서 법을 만들고, 행정부에서 집행하며, 법원에서 분쟁을 해결한다. 법을 위반하면 명확한 제재 수단도 있다.
반면 국제법은 여러 나라 사이의 관계를 규율한다. 조약, 국제관습법, 국제기구의 결정 등이 국제법의 법원이다. 유엔헌장, 제네바협약, 국제인권규약 등이 대표적인 예다.
국제법의 특징은 통일된 입법기관이나 집행기관이 없다는 점이다. 각국이 주권을 가지고 있어서 일방적으로 명령할 수 있는 상위 기관이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국제법의 효력은 기본적으로 각국의 동의에 기초한다.
최근에는 국내법과 국제법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경우가 늘고 있다. 국제화가 진행되면서 국제법이 국내법에 미치는 영향이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 헌법도 “국제법규와 조약은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법 영역별 상호관계
각 법 영역들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하나의 사건에 여러 법 영역이 동시에 적용되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교통사고가 발생했다고 하자. 운전자가 교통법규를 위반했다면 행정법상 면허정지나 벌점 부과 처분을 받을 수 있다. 이는 공법 영역이다. 동시에 상대방에게 상해를 입혔다면 형법상 업무상과실치상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 이 역시 공법이다. 또한 피해자에게 손해배상을 해야 하는데, 이는 민법상 불법행위 책임으로 사법 영역에 해당한다.
기업의 부당한 해고 사건도 마찬가지다.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노동청의 시정명령을 받을 수 있고(사회법), 근로자는 민사소송을 통해 해고무효 확인과 임금지급을 요구할 수 있으며(사법), 경우에 따라서는 형사처벌도 가능하다(공법).
이런 상호관계 때문에 법을 공부할 때는 각 영역을 따로 떼어서 생각하기보다는 전체적인 체계를 염두에 두고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의 사안을 여러 각도에서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법학의 핵심이다.
성문법과 불문법
법을 분류하는 또 다른 기준은 법이 문서로 기록되어 있는지 여부다. 성문법은 문서로 기록된 법이고, 불문법은 문서로 기록되지 않은 법이다.
우리나라는 대륙법계 국가로서 성문법 중심의 법체계를 가지고 있다. 헌법, 법률, 대통령령, 총리령, 부령 등이 모두 성문법이다. 조문 형태로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어서 누구나 그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불문법도 완전히 배제되는 것은 아니다. 관습법이나 판례법 같은 불문법도 일정한 조건 하에서 법적 효력을 가진다. 특히 상관습이나 조리 같은 것들은 민법에서도 법원으로 인정하고 있다.
영미법계 국가들은 판례법 중심의 체계를 가지고 있어서 불문법의 비중이 높다. 법관이 구체적 사건을 해결하면서 만들어내는 판례가 중요한 법원이 된다. 우리나라도 최근에는 판례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어서 두 체계가 점차 수렴하는 경향을 보인다.
결론
법체계의 분류는 복잡한 법의 세계를 이해하는 나침반 역할을 한다. 공법, 사법, 사회법으로 나누는 3분법은 법이 규율하는 관계의 성격에 따른 분류로, 각각 고유한 특징과 원리를 가지고 있다. 공법은 국가와 개인 사이의 권력 관계를, 사법은 개인 간의 대등한 관계를, 사회법은 사회적 약자 보호를 위한 국가 개입을 다룬다.
국내법과 국제법의 구분은 적용 범위에 따른 분류로, 국제화 시대에 그 경계가 점차 모호해지고 있다. 성문법과 불문법의 구분도 법의 존재 형태에 따른 중요한 분류 기준이다.
이런 분류들을 통해 우리는 방대한 법 규범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이해할 수 있다. 하나의 사건에 여러 법 영역이 동시에 적용될 수 있다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법은 유기적으로 연결된 하나의 체계이기 때문이다.
법체계에 대한 이해는 개별 법률을 공부하는 기초가 된다. 어떤 법이 어느 영역에 속하는지, 다른 법들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알아야 그 법의 의미와 기능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앞으로 각론적인 법 분야들을 공부할 때 이런 체계적 관점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