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법 8. 의사표시와 하자: 착오·사기·강박의 법적 효과와 무효·취소의 구별

의사표시는 법률행위의 핵심 요소지만, 항상 완전한 형태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착각으로 잘못된 의사표시를 하거나, 사기나 강박에 의해 진정하지 않은 의사표시를 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의사표시에 하자가 있을 때 그 법적 효과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는 거래안전과 표의자 보호라는 상반된 요청을 조화시켜야 하는 복잡한 문제다.

의사표시의 구조와 하자의 개념

의사표시의 내부구조

의사표시는 효과의사, 표시의사, 표시행위의 세 요소로 구성된다. 효과의사는 일정한 법률효과의 발생을 의욕하는 내심의 의사다. 표시의사는 그 효과의사를 외부에 표시하려는 의사다. 표시행위는 의사를 외부에 나타내는 행위 자체다.

정상적인 의사표시에서는 이 세 요소가 일치한다. 물건을 팔려는 마음(효과의사)이 있고, 그것을 상대방에게 알려주려는 의사(표시의사)가 있으며, 실제로 “판다”고 말하는 행위(표시행위)가 일치할 때 완전한 의사표시가 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 요소들이 불일치하는 경우가 많다. 착각으로 잘못 말하거나, 농담으로 한 말이 진담으로 받아들여지거나, 강요에 의해 원하지 않는 의사표시를 하는 경우 등이 그것이다.

의사표시 하자의 유형

의사표시의 하자는 크게 의사의 흠결과 의사의 부자유로 나뉜다.

의사의 흠결은 진정한 의사가 없거나 의사와 표시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다. 의사없는 표시, 단순한 착오, 표시상의 착오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런 경우 표의자에게는 진정한 의사가 없거나 의사와 표시가 다르다.

의사의 부자유는 진정한 의사는 있지만 그 의사형성 과정에 하자가 있는 경우다. 사기나 강박에 의한 의사표시가 대표적이다. 이 경우 표의자는 의사표시를 했지만, 그 의사형성이 자유롭지 못했다.

착오에 의한 의사표시

착오의 개념과 종류

착오란 표의자의 내심의 의사와 표시행위가 일치하지 않고, 표의자가 그 불일치를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를 말한다. 단순히 사실을 잘못 안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해 의사와 표시가 다르게 된 것이 착오다.

착오는 표시상의 착오와 내용의 착오로 나뉜다. 표시상의 착오는 내심의 의사는 정확하지만 표시할 때 실수한 경우다. “100만원”이라고 하려다가 “10만원”이라고 잘못 말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내용의 착오는 내심의 의사 자체에 착오가 있는 경우다. 상대방이나 목적물에 대한 착각으로 잘못된 의사를 형성한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복제품을 진품으로 착각하고 비싼 값에 사는 경우가 전형적인 예다.

착오의 요건

착오로 인한 의사표시를 취소하려면 법률이 정한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민법 제109조).

첫째, 법률행위의 요소에 착오가 있어야 한다. 요소란 표의자가 의사표시를 할 때 그 사정을 알았더라면 의사표시를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인정되는 중요한 사정을 말한다. 사소한 착오는 취소사유가 되지 않는다.

둘째, 표의자에게 중대한 과실이 없어야 한다. 일반인이라면 당연히 알 수 있었을 것인데도 부주의로 착각한 경우에는 보호받을 수 없다. 다만 중대한 과실의 판단은 표의자의 개인적 능력과 상황을 고려한다.

셋째, 표의자가 착오를 주장해야 한다. 착오는 표의자를 위한 제도이므로, 상대방이나 제3자가 착오를 이유로 무효를 주장할 수는 없다.

착오의 효과

착오가 있는 의사표시는 취소할 수 있다. 취소권은 표의자에게만 있고, 착오를 안 때부터 3년, 법률행위를 한 때부터 10년 내에 행사해야 한다.

착오로 인한 취소는 소급효가 있다. 법률행위가 처음부터 없었던 것과 같은 상태가 된다. 따라서 당사자는 받은 것을 돌려주어야 한다.

하지만 착오취소는 선의의 제3자에게 대항할 수 없다. 취소 전에 권리를 취득한 선의의 제3자는 보호받는다. 이는 거래안전을 위한 것이다.

표의자는 착오로 인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상대방이 법률행위가 유효할 것으로 믿고 준비한 비용이나 기회손실 등을 배상해야 한다. 이를 신뢰이익의 손해배상이라고 한다.

사기에 의한 의사표시

사기의 개념과 성립요건

사기란 고의로 상대방을 기망하여 착오에 빠뜨려 의사표시를 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사기에는 적극적 사기와 소극적 사기가 있다.

적극적 사기는 거짓사실을 말하여 상대방을 속이는 경우다. 없는 사실을 있다고 하거나, 있는 사실을 없다고 하는 것이 여기에 해당한다.

소극적 사기는 말해야 할 사실을 고의로 숨기는 경우다. 일반적으로는 침묵이 사기가 되지 않지만, 신의칙상 고지의무가 있는 경우에는 침묵도 사기가 될 수 있다.

사기가 성립하려면 기망행위, 착오유발, 의사표시, 인과관계가 있어야 한다. 기망자가 고의로 상대방을 속이고, 그로 인해 상대방이 착오에 빠져 의사표시를 했으며, 기망행위와 의사표시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어야 한다.

제3자의 사기

제3자의 사기에 의한 의사표시도 취소할 수 있지만, 상대방이 제3자의 사기를 알고 있었거나 알 수 있었을 경우에만 가능하다(민법 제110조 제2항).

제3자란 당해 법률행위의 당사자가 아닌 자를 말한다. 중개인이나 대리인의 사기는 제3자의 사기에 해당한다.

상대방이 선의무과실이면 제3자의 사기를 이유로 취소할 수 없다. 이는 선의의 상대방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상대방이 제3자의 사기에 대해 악의이거나 과실이 있으면 취소할 수 있다.

사기의 효과

사기에 의한 의사표시는 취소할 수 있다. 취소권은 사기를 안 때부터 3년, 법률행위를 한 때부터 10년 내에 행사해야 한다.

사기에 의한 취소도 소급효가 있어서 법률행위가 처음부터 무효였던 것과 같다. 따라서 당사자는 받은 것을 원상회복해야 한다.

사기에 의한 취소는 선의의 제3자에게 대항할 수 없다. 다만 강박의 경우와 달리 사기의 경우에는 피사기자에게도 일정한 부주의가 있는 것이 보통이므로, 제3자 보호에 더 비중을 둔다.

사기로 인한 손해배상 문제도 있다. 사기를 당한 자는 사기행위자에게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이는 신뢰이익뿐만 아니라 이행이익도 포함한다.

강박에 의한 의사표시

강박의 개념과 요건

강박이란 상대방 또는 제3자가 표의자나 그 친족에게 해악을 가할 것을 알려서 공포심을 일으켜 의사표시를 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민법 제110조).

강박이 성립하려면 해악의 고지, 공포심의 유발, 의사표시, 인과관계가 있어야 한다. 강박자가 해악을 가하겠다고 알리고, 그로 인해 표의자가 공포심을 느껴 의사표시를 했으며, 강박과 의사표시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어야 한다.

해악의 내용은 생명, 신체, 자유, 명예, 재산 등에 대한 것이어야 한다. 해악은 표의자 본인뿐만 아니라 그 친족에 대한 것도 포함한다.

강박은 위법한 것이어야 한다. 법적으로 정당한 행위를 한다는 고지는 강박이 아니다. 예를 들어 채권자가 정당한 권리행사를 한다는 것은 강박이 아니다.

강박의 특수성

강박은 사기와 달리 표의자에게 아무런 잘못이 없다. 사기의 경우 피사기자에게도 경솔함이나 탐욕 등 일정한 비난가능성이 있지만, 강박의 경우 피강박자는 순전히 피해자일 뿐이다.

따라서 강박에 의한 의사표시의 취소는 선의의 제3자에게도 대항할 수 있다. 제3자가 선의라고 하더라도 강박의 피해자를 희생시켜 보호할 이유는 없다.

제3자의 강박의 경우에도 상대방의 선의 여부를 불문하고 취소할 수 있다. 사기와 달리 강박에서는 상대방의 주관적 상태를 묻지 않는다.

강박의 효과

강박에 의한 의사표시도 취소할 수 있다. 취소권의 행사기간은 강박상태가 종료된 때부터 3년, 법률행위를 한 때부터 10년이다.

강박에 의한 취소는 소급효가 있고, 선의의 제3자에게도 대항할 수 있다. 이는 강박의 특수성을 반영한 것이다.

강박으로 인한 손해배상도 가능하다. 강박행위자는 불법행위책임을 지며, 피강박자는 이행이익까지 배상받을 수 있다.

무효와 취소의 구별

무효의 개념과 특징

무효란 법률행위가 성립요건을 갖추지 못하여 처음부터 법적 효력이 없는 것을 말한다. 무효인 법률행위는 당연무효로서 별도의 의사표시 없이도 효력이 없다.

무효는 누구나 주장할 수 있다. 당사자뿐만 아니라 제3자도 무효를 주장할 수 있고, 법원도 직권으로 무효를 인정할 수 있다.

무효는 추인으로 치유할 수 없다. 무효인 법률행위를 유효하게 하려면 새로운 법률행위를 해야 한다.

무효는 시효로 치유되지 않는다.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무효인 법률행위가 유효하게 되지는 않는다.

취소의 개념과 특징

취소란 법률행위가 일단 유효하게 성립했지만 일정한 취소사유가 있어 소급적으로 무효가 되는 것을 말한다.

취소권은 법률이 정한 자만 행사할 수 있다. 착오, 사기, 강박의 경우 표의자만 취소할 수 있다. 제한능력자의 법률행위는 제한능력자나 법정대리인이 취소할 수 있다.

취소는 추인으로 확정할 수 있다. 취소권자가 취소사유를 알면서도 추인하면 더 이상 취소할 수 없다.

취소권은 소멸시효에 걸린다. 취소사유를 안 때부터 3년, 법률행위를 한 때부터 10년 내에 행사해야 한다.

무효와 취소의 효과 차이

무효와 취소는 법률행위의 효력을 부정한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구체적인 효과에서 차이가 있다.

제3자와의 관계에서 차이가 난다. 무효는 선의의 제3자에게도 대항할 수 있지만, 취소는 원칙적으로 선의의 제3자에게 대항할 수 없다. 다만 강박에 의한 취소는 예외다.

전환의 가능성에서도 차이가 있다. 무효인 법률행위는 다른 법률행위의 요건을 충족하면 그 법률행위로 전환될 수 있다. 취소는 소급무효이므로 전환이 문제되지 않는다.

일부무효와 일부취소에서도 차이가 있다. 법률행위의 일부가 무효인 경우 그 부분만 무효가 되는 것이 원칙이다. 일부취소의 경우에는 취소권자가 일부만 취소할 수 있는지 문제된다.

의사표시 하자의 현대적 쟁점

전자상거래와 의사표시 하자

전자상거래가 확산되면서 새로운 형태의 의사표시 하자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온라인에서는 컴퓨터 조작 실수나 시스템 오류로 인한 착오가 빈번하다.

클릭 미스나 수량 입력 오류 등은 표시상의 착오에 해당할 수 있다. 상품 정보의 착오나 가격 표시 오류도 내용의 착오 문제를 야기한다.

전자상거래에서는 거래의 신속성과 자동화로 인해 착오 발견이 늦어질 수 있다. 또한 거래량이 방대하여 개별적 검토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

소비자보호와 의사표시 하자

소비자계약에서는 사업자와 소비자 간의 정보력과 교섭력 격차로 인해 특별한 보호가 필요하다. 약관규제법이나 소비자기본법 등에서 특별한 규정을 두고 있다.

사업자의 불완전한 정보제공이나 과장광고는 소비자의 착오를 유발할 수 있다. 이 경우 소비자는 착오취소뿐만 아니라 특별법상 구제수단도 활용할 수 있다.

방문판매나 전화권유판매에서는 소비자가 충분한 검토 없이 계약하는 경우가 많다. 청약철회권이나 계약해제권 등으로 소비자를 보호한다.

국제거래와 의사표시 하자

국제거래에서는 언어와 문화의 차이로 인한 의사표시 하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통역이나 번역의 오류, 상관습의 차이 등이 착오의 원인이 될 수 있다.

국제물품매매계약에 관한 UN협약(CISG)은 착오에 대해 국내법과 다른 규정을 두고 있다. 착오의 요건과 효과에서 차이가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국제중재에서는 의사표시 하자에 대한 판단기준이 문제된다. 준거법의 결정과 적용에서 복잡한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결론

의사표시의 하자는 거래생활에서 빈번히 발생하는 현실적 문제로, 표의자 보호와 거래안전이라는 상반된 요청을 조화시켜야 하는 복잡한 영역이다. 착오에 의한 의사표시는 법률행위의 요소에 착오가 있고 표의자에게 중대한 과실이 없을 때 취소할 수 있으며, 이 경우 표의자는 신뢰이익의 손해배상책임을 진다. 사기에 의한 의사표시는 기망행위로 인해 착오에 빠져 한 의사표시로 취소할 수 있지만, 선의의 제3자에게는 대항할 수 없다. 강박에 의한 의사표시는 해악의 고지로 공포심을 유발하여 한 의사표시로, 피강박자에게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점에서 선의의 제3자에게도 대항할 수 있다.

무효와 취소는 모두 법률행위의 효력을 부정하지만, 주장권자, 치유가능성, 제3자와의 관계에서 중요한 차이를 보인다. 현대 사회에서는 전자상거래의 확산, 소비자보호의 강화, 국제거래의 증가 등으로 의사표시 하자에 대한 새로운 쟁점들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의사표시 하자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법률행위 이론의 핵심을 이루며, 실무에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