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6. 기본권 일반이론 – 적용범위와 주체, 충돌과 제한의 헌법적 원리

기본권은 헌법이 보장하는 인간의 기본적 권리로서, 국가권력의 핵심적 제약 원리이자 헌법질서의 토대를 이룬다. 그런데 기본권이 실제 사회에서 작동하려면 누가 언제 어떤 범위에서 기본권을 행사할 수 있는지, 기본권끼리 충돌할 때는 어떻게 해결할지, 국가가 기본권을 제한할 때는 어떤 한계가 있는지 등 복잡한 법리적 문제들이 등장한다. 바로 기본권 일반이론이 다루는 영역이다.

기본권의 적용범위와 성격

기본권의 적용범위를 파악하는 것은 헌법 해석의 출발점이다. 우리 헌법상 기본권은 크게 세 가지 차원에서 그 범위가 결정된다.

먼저 대국가적 효력이다. 기본권은 본질적으로 국가권력에 대한 개인의 방어권이다. 국가가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려 할 때 “여기까지는 안 된다”고 선을 긋는 역할을 한다. 표현의 자유를 예로 들면, 국가가 언론을 검열하거나 집회를 금지할 때 개인은 기본권을 근거로 저항할 수 있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대사인적 효력 문제도 중요하다. 사인 간의 관계에서도 기본권이 적용되는가? 예를 들어 사기업이 직원의 사생활을 침해하거나, 사적 단체가 특정 개인을 차별할 때도 기본권 침해가 될 수 있을까? 우리 헌법재판소는 기본권이 사인 간에도 간접적으로 적용된다는 간접적용설을 채택하고 있다. 즉, 민법의 선량한 풍속이나 사회질서 같은 일반조항을 통해 기본권 가치가 사인 관계에서도 실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기본권은 제도보장적 성격도 갖는다. 개별적 권리 보호를 넘어서 특정 제도 자체를 헌법적으로 보장한다는 의미다. 언론의 자유는 개별 언론인의 표현권을 보호하는 동시에 자유로운 언론제도 전체를 보장한다. 대학의 자율성도 개별 교수의 학문의 자유와 함께 대학이라는 제도적 틀 자체를 헌법이 보호한다는 취지다.

기본권의 주체

기본권을 누가 행사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생각보다 복잡하다. 일단 자연인은 당연히 기본권의 주체다. 하지만 모든 자연인이 모든 기본권을 다 가지는 건 아니다. 선거권은 성인에게만, 공무담임권은 국민에게만 인정된다.

외국인의 기본권 문제는 특히 논란이 많다. 헌법재판소는 인간의 존엄성에서 비롯되는 기본권(생명권, 인신의 자유 등)은 외국인에게도 보장되지만, 국민주권 원리와 직결되는 정치적 권리(선거권, 공무담임권 등)는 원칙적으로 국민에게만 인정된다고 본다. 다만 거주·직업의 자유나 재산권 같은 경제적 기본권은 상호주의나 조약에 따라 외국인에게도 일정 범위에서 보장될 수 있다.

법인의 기본권도 중요한 쟁점이다. 법인은 자연인이 아닌데 기본권을 가질 수 있을까? 헌법재판소는 법인도 그 성질상 가능한 기본권은 누릴 수 있다고 본다. 재산권이나 영업의 자유는 법인에게도 당연히 인정되고, 언론의 자유나 종교의 자유도 언론사나 종교법인에게는 보장된다. 하지만 인간의 존엄성이나 양심의 자유처럼 자연인만의 고유한 영역은 법인에게 적용되지 않는다.

기본권의 충돌과 조화

현실에서는 서로 다른 기본권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언론의 자유와 인격권이 충돌하고, 종교의 자유와 평등권이 갈등을 빚고, 재산권과 환경권이 대립한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기본권을 우선할 것인가?

전통적으로는 기본권의 서열론이 제시되기도 했다. 자유권이 사회권보다 우선하고, 정신적 자유권이 경제적 자유권보다 중요하다는 식이다. 하지만 현재 통설은 실용적 조화론을 따른다. 추상적인 서열을 정하기보다는, 구체적 사안에서 충돌하는 기본권들의 중요성과 제약 정도를 비교 형량해서 조화점을 찾는다는 접근이다.

예를 들어 집회의 자유와 교통권이 충돌하는 경우를 보자. 도심 한복판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면 시민들의 교통권이 심각하게 제약된다. 이때 집회의 정치적 의미, 교통 마비의 정도, 대안적 장소의 가능성, 집회 시간과 규모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합리적인 조화점을 모색해야 한다. 절대적 우선권을 인정하지 않고 상황에 따른 균형을 추구하는 것이다.

기본권 제한의 한계와 과잉금지원칙

기본권은 중요하지만 절대적이지는 않다. 공공복리나 다른 사람의 권리를 위해 일정한 제한이 가능하다. 문제는 그 제한이 어디까지 허용되느냐다.

우리 헌법 제37조 제2항은 기본권 제한의 기본 틀을 제시한다.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

여기서 핵심은 과잉금지원칙(비례원칙)이다. 기본권을 제한하려면 네 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

목적의 정당성부터 살펴보자. 기본권 제한 목적이 헌법적으로 정당해야 한다.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공공복리, 타인의 기본권 보호 등이 정당한 목적에 해당한다. 하지만 특정 정치 세력의 이익이나 권력 유지를 위한 제한은 목적 자체가 부당하다.

수단의 적합성도 중요하다. 선택한 제한 수단이 추구하는 목적 달성에 실제로 도움이 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청소년 보호를 위해 인터넷 실명제를 도입한다면, 실명제가 정말로 청소년 보호에 효과가 있는지 입증되어야 한다.

피해의 최소성은 더욱 까다로운 기준이다. 동일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여러 수단 중에서 기본권을 가장 적게 침해하는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 집회 질서 유지를 위해 집회 자체를 금지하기보다는 시간이나 장소를 조정하는 방법이 있다면 후자를 택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법익의 균형성이다. 기본권 제한으로 달성되는 공익과 침해되는 사익을 비교 형량해서, 공익이 사익보다 명백히 클 때만 제한이 정당화된다. 사소한 공익을 위해 중대한 기본권을 희생시킬 수는 없다.

본질적 내용 침해 금지

아무리 공익이 중요해도 기본권의 본질적 내용까지는 침해할 수 없다. 그런데 본질적 내용이 무엇인지는 쉽게 답하기 어려운 문제다.

절대적 이론은 각 기본권마다 절대 침해해서는 안 되는 핵심 영역이 있다고 본다. 표현의 자유라면 최소한의 의사표현 가능성, 재산권이라면 최소한의 재산 보유 가능성이 그 예다. 상대적 이론은 구체적 상황에서 비례원칙을 적용한 결과 정당화되지 않는 제한이 본질적 내용 침해라고 본다.

우리 헌법재판소는 두 이론을 절충한 입장을 취한다. 일반적으로는 비례원칙 심사로 충분하지만, 특별히 중요한 기본권 영역에서는 절대적 한계도 인정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형사피고인의 변호인 선임권은 아무리 공익상 필요해도 완전히 박탈할 수는 없다.

기본권 심사 기준의 다층적 구조

기본권 제한에 대한 위헌 심사는 획일적이지 않다. 제한되는 기본권의 성격과 제한의 정도에 따라 심사 강도가 달라진다.

엄격심사는 정신적 자유권이나 평등권의 핵심 영역에서 적용된다. 국가는 기본권 제한의 필요성과 정당성을 엄격하게 입증해야 하고, 법원도 까다로운 기준으로 심사한다. 언론 검열이나 종교 탄압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중간심사는 경제적 자유권이나 사회적 기본권 영역에서 주로 사용된다. 국가에게 어느 정도 재량을 인정하면서도 자의적 제한은 허용하지 않는다. 직업의 자유 제한이나 사회보장제도 운영이 그 예다.

완화심사는 국가의 정책 재량이 넓게 인정되는 영역에서 적용된다. 명백히 자의적이거나 현저히 불합리하지 않은 한 위헌으로 보지 않는다. 조세 정책이나 경제 규제가 여기에 해당한다.

기본권 보호의무와 국가의 적극적 역할

전통적으로 기본권은 국가로부터의 자유, 즉 소극적 권리로 이해되었다. 하지만 현대에는 국가의 기본권 보호의무도 강조된다. 국가가 단순히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는 것을 넘어서, 적극적으로 기본권을 보호하고 실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생명권을 예로 들면, 국가가 국민을 죽이지 않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범죄나 재해로부터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의료제도를 정비하고, 안전한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교육받을 권리도 마찬가지다. 국가가 교육을 금지하지 않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실제로 교육 기회를 제공하고 교육 여건을 개선해야 한다.

이러한 보호의무는 특히 사회적 기본권 영역에서 중요하다.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근로의 권리, 환경권 등은 국가의 적극적 급부 없이는 실현되기 어렵다. 다만 구체적으로 어떤 조치를 취할지는 입법부와 행정부의 재량 영역이고, 사법부는 명백히 부족한 경우에만 개입한다.

결론

기본권 일반이론은 헌법상 기본권이 실제 사회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규명하는 핵심 영역이다. 기본권의 적용범위와 주체를 명확히 하고, 기본권 간 충돌 상황에서 조화로운 해결책을 모색하며, 국가의 기본권 제한에 대해서는 엄격한 한계를 설정한다. 특히 과잉금지원칙은 기본권 제한의 헌법적 통제 장치로서 핵심적 역할을 한다.

현대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기본권을 둘러싼 갈등과 쟁점은 더욱 다양해진다.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기본권, 다문화 사회에서의 기본권 주체 확장, 코로나19 같은 위기 상황에서의 기본권 제한 등 새로운 도전들이 계속 등장한다. 이런 상황에서 기본권 일반이론이 제시하는 원칙과 기준은 헌법적 가치를 실현하는 나침반 역할을 한다. 기본권은 헌법의 꽃이자 민주주의의 토대다. 그 기본권이 제대로 보장되고 실현되는 사회야말로 진정한 법치국가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