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신의 자유권은 개인이 외부의 부당한 간섭이나 강제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이는 인간의 존엄성을 실현하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이자, 모든 자유권의 전제 조건이다. 아무리 훌륭한 사상이나 표현의 자유가 있어도 몸이 구속되어 있다면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헌법은 신체의 자유를 비롯해 거주이전의 자유, 직업선택의 자유, 사생활의 자유 등을 폭넓게 보장하고 있다.
신체의 자유와 적법절차원리
신체의 자유는 자신의 몸에 대한 권리로서 가장 원초적이면서도 중요한 기본권이다. 우리 헌법 제12조는 이를 상세히 규정하고 있는데, 단순히 신체 구속을 금지하는 차원을 넘어서 형사절차 전반에 걸친 권리를 포괄한다.
적법절차 없는 체포·구속 금지가 핵심이다. 누구든지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체포·구속·압수·수색을 당하지 않는다. 여기서 법률은 단순히 법률이 존재한다는 형식적 의미가 아니라, 그 법률이 적정한 절차를 규정하고 있어야 한다는 실질적 의미를 포함한다. 예를 들어 ‘의심스러운 사람은 누구나 체포할 수 있다’는 식의 자의적 법률로는 신체의 자유를 제한할 수 없다.
체포·구속 시에는 영장주의가 적용된다. 검사의 신청에 의해 법관이 발부한 영장이 있어야만 체포나 구속이 가능하다. 다만 현행범이나 중대한 범죄를 범하고 도주할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사후영장으로 긴급체포가 허용된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체포 후 48시간 이내에 영장을 청구해야 하고, 법관이 72시간 이내에 영장 발부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고문 금지와 진술거부권도 중요한 내용이다. 고문은 절대 금지되며, 고문이나 폭행으로 얻은 자백은 증거능력이 없다. 피의자나 피고인은 진술을 거부할 권리가 있고,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않는다. 또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도 보장된다.
구속된 사람에게는 구속적부심사청구권이 인정된다. 구속이 부당하다고 생각하면 법원에 그 적법성을 심사해달라고 요구할 수 있다. 이는 영미법상 인신보호영장(habeas corpus)과 유사한 제도로서, 행정부의 자의적 구속으로부터 개인을 보호하는 중요한 장치다.
거주이전의 자유와 출입국의 자유
거주이전의 자유는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살 권리와 자유롭게 이동할 권리를 의미한다. 헌법 제14조는 “모든 국민은 거주·이전의 자유를 가진다”고 규정하면서, 이를 거주의 자유와 이전의 자유로 구분한다.
거주의 자유는 자신이 선택한 장소에서 생활할 권리다. 국가가 특정 지역에 강제로 거주하게 하거나 특정 지역에서의 거주를 금지할 수 없다.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 자주 있었던 연좌제나 강제 이주 조치 같은 것들이 대표적인 위반 사례다. 다만 전염병 확산 방지나 자연재해 대응을 위한 일시적 거주 제한은 공공복리를 위해 허용될 수 있다.
이전의 자유는 국내에서 자유롭게 이동할 권리다. 교통수단을 이용할 권리, 도로를 통행할 권리 등이 포함된다. 하지만 교통 질서 유지나 안전을 위한 합리적 제한은 가능하다. 운전면허제도나 교통법규가 그 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출국의 자유다. 우리 헌법재판소는 거주이전의 자유에 출국의 자유가 포함된다고 본다. 국민이 외국으로 나갈 권리는 원칙적으로 자유롭게 보장되어야 한다. 다만 국가안전보장이나 질서유지를 위해 필요한 경우 여권 발급을 거부하거나 출국을 금지할 수 있다. 병역 의무자의 출국 제한이나 형사피의자의 출국금지 조치 등이 그 예다.
반면 입국의 자유에 대해서는 견해가 나뉜다. 우리 국민이 외국에서 돌아올 때 입국을 거부당하지 않을 권리는 당연히 보장된다. 하지만 외국인의 입국은 국가주권의 영역으로서 각국이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 국제법의 일반 원칙이다.
직업선택의 자유와 영업의 자유
직업선택의 자유는 헌법 제15조가 보장하는 권리로서, 자신이 원하는 직업을 자유롭게 선택하고 수행할 권리를 말한다. 이는 개인의 자아실현과 직결되는 동시에 경제생활의 기초가 되는 중요한 권리다.
직업 선택의 자유는 좁은 의미에서 어떤 직업을 가질 것인지 결정할 자유를 의미한다. 국가가 신분제도를 통해 직업을 고정시키거나, 특정 직업을 금지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 다만 공공복리를 위해 필요한 경우 자격제도나 허가제도를 통한 제한은 가능하다. 의사나 변호사가 되려면 국가시험에 합격해야 하고, 음식점을 운영하려면 위생 관련 신고를 해야 하는 것이 그 예다.
직업 수행의 자유는 선택한 직업을 실제로 영위할 자유다. 여기에는 영업의 자유, 계약의 자유, 경쟁의 자유 등이 포함된다. 하지만 시장경제질서를 유지하고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각종 규제는 허용된다. 독점금지법이나 소비자보호법, 환경규제 등이 대표적이다.
직업의 자유 제한에 대해서는 단계이론이 적용된다. 직업 선택의 자유에 대한 제한은 엄격한 요건 하에서만 허용되지만, 직업 수행의 자유에 대한 제한은 상대적으로 완화된 기준이 적용된다. 예를 들어 의사가 되는 것 자체를 제한하려면 매우 엄격한 사유가 필요하지만, 의료행위의 구체적 방법을 규제하는 것은 비교적 쉽게 허용된다.
영업의 자유는 직업의 자유의 핵심 내용 중 하나다. 사업을 시작하고 경영할 자유, 상품이나 서비스를 판매할 자유, 가격을 결정할 자유 등이 포함된다. 하지만 공정한 경쟁질서를 위해 다양한 제한이 가해진다. 부당한 덤핑이나 담합 행위는 금지되고, 특정 업종에 대해서는 진입 규제가 있기도 하다.
사생활의 자유와 개인정보보호
사생활의 자유는 명시적으로 헌법에 규정되어 있지는 않지만, 인간의 존엄성과 행복추구권에서 도출되는 중요한 권리다. 현대 사회에서 개인의 사적 영역이 점점 더 중요해지면서 그 의미도 확대되고 있다.
사생활 비밀의 자유가 핵심이다. 개인의 사적인 영역에 대해 국가나 타인이 함부로 간섭하거나 공개할 수 없다. 편지나 전화, 이메일 등 사적 통신의 비밀은 엄격히 보장되어야 한다. 수사기관이 통신을 감청하려면 법관의 영장이 필요하고, 그것도 중대한 범죄에 한정된다.
주거의 자유도 사생활의 자유에 포함된다. 헌법 제16조는 “모든 국민은 주거의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한다. 개인의 주거에 함부로 침입하거나 수색할 수 없으며, 영장 없는 압수수색은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다만 긴급한 경우나 현행범 체포 상황에서는 예외가 인정된다.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은 현대적 의미의 사생활 자유권이다. 자신에 대한 정보가 언제, 누구에게, 어느 범위에서, 어떤 목적으로 수집·이용·제공되는지를 스스로 결정할 권리다. 특히 디지털 시대에 들어서면서 그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개인정보 수집 시에는 동의의 원칙이 적용된다. 당사자의 명시적 동의 없이는 개인정보를 수집할 수 없고, 수집 목적과 이용 범위를 명확히 고지해야 한다. 또한 목적 구속의 원칙에 따라 수집 목적을 벗어난 이용은 금지된다. 주민등록번호나 의료정보 같은 민감정보에 대해서는 더욱 엄격한 보호가 이루어진다.
정보공개청구권과의 균형도 중요한 문제다. 국민의 알 권리와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충돌할 때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일반적으로는 공인의 경우 사생활 보호 범위가 축소되고, 공익과 관련된 정보일수록 공개 필요성이 크다고 본다. 하지만 구체적 사안에서는 이익형량을 통해 판단해야 한다.
통신의 자유와 디지털 권리
통신의 자유는 헌법 제18조가 보장하는 권리로서, 개인 간의 의사소통을 자유롭게 할 권리를 의미한다. 전통적으로는 편지나 전화 통신이 주된 대상이었지만, 현재는 인터넷이나 모바일 통신까지 확장되고 있다.
통신의 비밀은 통신 내용이 당사자 이외의 제3자에게 공개되지 않을 권리다. 우편물을 함부로 개봉하거나 전화를 도청하는 행위는 금지된다. 수사기관의 통신제한조치도 엄격한 요건 하에서만 허용된다. 법관이 발부한 영장이 있어야 하고, 그것도 중대한 범죄에 한정되며, 기간도 제한된다.
통신의 자유는 원하는 상대방과 자유롭게 통신할 권리다. 국가가 특정인과의 통신을 금지하거나 통신수단 자체를 차단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 다만 국가비상사태나 자연재해 같은 특수한 상황에서는 일시적 제한이 가능할 수 있다.
인터넷 접근권도 새롭게 대두되는 권리다. 현대 사회에서 인터넷은 단순한 편의시설을 넘어서 기본적인 소통 수단이 되었다. 따라서 인터넷에 접근할 권리도 통신의 자유에 포함된다고 보는 견해가 늘고 있다. 정부의 인터넷 차단이나 속도 제한 조치에 대해서도 엄격한 심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인신의 자유권 제한의 한계
인신의 자유권은 다른 기본권의 전제가 되는 중요한 권리이지만, 절대적이지는 않다. 공공복리나 타인의 권리를 위해 일정한 제한이 가능하다. 문제는 그 제한이 어떤 요건과 한계 내에서 이루어져야 하는가다.
법률유보의 원칙이 먼저 적용된다. 인신의 자유를 제한하려면 반드시 법률의 근거가 있어야 한다. 단순한 행정명령이나 조례로는 부족하고, 국회가 제정한 법률이어야 한다. 또한 그 법률은 제한의 요건과 절차를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
비례원칙도 엄격히 적용된다. 특히 신체의 자유나 사생활의 자유처럼 중요한 권리일수록 제한 사유와 수단이 비례적이어야 한다. 경미한 질서 위반을 이유로 장기간 구속하거나, 단순한 행정 목적으로 광범위한 개인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적법절차의 원칙은 특히 중요하다. 단순히 법률에 근거가 있다고 해서 충분한 것이 아니라, 그 절차가 공정하고 합리적이어야 한다.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 불복 절차를 통해 구제받을 권리 등이 실질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국가의 보호의무와 적극적 실현
인신의 자유권에 대한 국가의 역할은 단순히 침해하지 않는 소극적 차원을 넘어선다. 개인의 자유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의무도 있다.
범죄로부터의 보호가 대표적이다. 국가는 효과적인 치안 시스템을 구축해서 국민을 범죄로부터 보호해야 한다. 경찰력이 부족해서 강력범죄가 빈발한다면 그것도 국가의 보호의무 위반이 될 수 있다. 특히 가정폭력이나 스토킹 같은 사적 영역의 침해에 대해서도 국가가 적극 개입해야 한다.
사회적 약자 보호도 중요하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이 변호인을 선임할 수 없다면 국선변호인을 제공해야 하고, 장애인이나 외국인이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는다면 통역이나 보조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형식적 평등을 넘어서 실질적 평등을 추구하는 것이다.
정보화 시대의 새로운 과제도 등장하고 있다.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디지털 격차를 해소하며, 사이버 범죄에 대응할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 등이 국가의 새로운 의무가 되고 있다.
결론
인신의 자유권은 모든 기본권의 토대가 되는 핵심적 권리다. 신체의 자유에서 출발해 거주이전의 자유, 직업선택의 자유, 사생활의 자유에 이르기까지, 개인이 자유롭고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권리들을 포괄한다.
이러한 권리들은 역사적으로 권력의 자의적 행사에 맞서 싸워서 얻어낸 소중한 성과다. 따라서 그 제한에 대해서는 엄격한 요건과 절차가 요구된다. 특히 적법절차의 원칙과 비례원칙은 국가권력을 통제하는 핵심적 기준이 된다.
현대 사회에서는 전통적인 인신의 자유권 개념도 확장되고 있다. 디지털 시대의 개인정보보호권, 인터넷 접근권 같은 새로운 권리들이 등장하고, 국가의 보호의무도 더욱 적극적인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 이런 변화에 맞춰 인신의 자유권을 보다 실질적이고 포괄적으로 보장하는 방향으로 헌법 해석과 제도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 궁극적으로 인신의 자유권이 제대로 보장되는 사회야말로 자유민주주의의 기본 조건을 갖춘 사회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