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대륙에서 새로운 지정학적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중국의 일대일로(BRI) 이니셔티브가 지난 10년간 아프리카 인프라 개발을 주도해온 가운데, 유럽연합이 야심찬 대안을 내놓았다. 2021년 발표된 ‘글로벌 게이트웨이(Global Gateway)’ 전략과 2022년 EU-아프리카 정상회의에서 합의된 신파트너십은 단순한 개발 원조를 넘어 전략적 동반자 관계 구축을 목표로 한다. 특히 그린수소, 재생에너지, 디지털 인프라 등 미래 산업 분야에서의 협력은 양 대륙의 경제 지형을 크게 바꿀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유럽의 이러한 움직임은 결코 순수한 개발 협력이 아니다. 중국의 영향력 확산에 대한 견제, 러시아 의존도 탈피를 위한 에너지 다변화, 그리고 아프리카 청년층의 유럽 이주 압력 완화라는 복합적 목표가 얽혀 있다. 이는 냉전 이후 가장 복잡한 글로벌 경쟁 구도 속에서 유럽이 선택한 전략적 대응이라고 할 수 있다.
글로벌 게이트웨이의 전략적 비전
유럽연합의 글로벌 게이트웨이는 2027년까지 전 세계에 3000억 유로를 투자하는 대규모 인프라 프로그램이다. 이 중 아프리카에는 1500억 유로가 배정되어 있어 전체 예산의 절반을 차지한다. 이는 중국의 일대일로에 대한 직접적인 대응책으로, 유럽식 가치와 기준에 부합하는 ‘질 좋은 인프라’ 구축을 강조한다.
글로벌 게이트웨이의 핵심 원칙은 투명성, 지속가능성, 그리고 현지 주도성이다. 중국의 불투명한 차관 조건과 부채 함정 외교에 대한 비판을 의식해 모든 프로젝트의 재정 조건과 계약 내용을 공개하고, 환경 영향 평가를 의무화했다. 또한 아프리카 국가들이 직접 우선순위를 정하고 프로젝트를 제안할 수 있도록 상향식(bottom-up) 접근법을 채택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민관협력(PPP) 모델의 적극적 활용이다. 유럽투자은행(EIB)과 유럽부흥개발은행(EBRD)이 주축이 되어 공적 자금으로 위험을 분담하고, 민간 자본의 참여를 유도하는 방식이다. 이는 제한된 공적 예산으로 최대한의 투자 효과를 거두려는 현실적 접근이면서, 동시에 시장경제 원리를 아프리카에 확산시키려는 이념적 목표도 담고 있다.
그린수소 협력의 게임체인저 잠재력
EU-아프리카 신파트너십에서 가장 혁신적인 요소는 그린수소 협력이다. 아프리카는 풍부한 태양광과 풍력 자원을 바탕으로 세계 최대의 그린수소 생산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에 따르면 아프리카는 2050년까지 연간 5000만 톤의 그린수소를 생산할 수 있으며, 이는 전 세계 수요의 25%에 해당한다.
유럽은 2030년까지 연간 1000만 톤의 그린수소가 필요하지만 자체 생산만으로는 절반도 충족할 수 없다. 따라서 아프리카로부터의 그린수소 수입은 필수적이다. 이미 독일은 나미비아, 남아프리카와 양자 협정을 체결했고, 네덜란드는 모로코와 그린수소 파트너십을 구축했다.
모로코는 이미 구체적인 성과를 보이고 있다. 우아르자자트(Ouarzazate) 태양열 발전소는 세계 최대 규모로, 여기서 생산된 전력으로 그린수소를 제조해 유럽으로 수출하는 계획이 진행 중이다. 모로코 정부는 2030년까지 그린수소 수출로 연간 50억 달러의 수익을 올릴 것으로 전망한다고 발표했다.
이집트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수에즈 경제구역에 대규모 그린수소 생산단지를 조성하고 있으며, 독일의 지멘스, 덴마크의 오스테드 등 유럽 기업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집트는 지중해와 홍해를 연결하는 지리적 위치를 활용해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그린수소 허브로 자리매김하려 한다.
인프라 개발의 새로운 패러다임
글로벌 게이트웨이는 전통적인 인프라 개발을 넘어 디지털 연결성과 그린 인프라에 중점을 둔다. 아프리카대륙자유무역지대(AfCFTA) 출범으로 역내 교역이 확대되면서 교통 인프라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데, 유럽은 이를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충족하려 한다.
케냐의 몸바사-나이로비 고속철도 프로젝트가 대표적인 사례다. 중국이 건설한 기존 노선의 부채 문제가 불거지면서 케냐 정부는 확장 구간을 유럽 방식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프랑스의 알스톰과 독일의 지멘스가 컨소시엄을 구성해 태양광 발전으로 운행되는 친환경 철도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서아프리카에서는 대서양 광케이블 프로젝트가 주목받고 있다. 구글과 메타 등 미국 기업들이 주도하는 기존 프로젝트와 달리, 유럽은 오렌지(Orange), 보다폰(Vodafone) 등 유럽 통신업체들과 협력해 아프리카 내 디지털 주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접근하고 있다.
가나의 테마 항구 확장 프로젝트는 민관협력의 성공 사례로 평가받는다. 네덜란드 로테르담 항만공사와 덴마크 머스크가 참여해 서아프리카 최대의 컨테이너 허브로 개발하고 있으며, 항만 운영에 AI와 자동화 기술을 도입해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있다.
중국 일대일로와의 경쟁 구도
중국의 일대일로는 2013년 시작된 이후 아프리카에 1000억 달러 이상을 투자했다. 도로, 철도, 항만, 공항 등 하드 인프라 구축에 집중하면서 아프리카 정부들의 호응을 얻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부채 지속가능성 문제와 환경 파괴 논란이 제기되면서 일부 국가들이 입장을 재고하고 있다.
스리랑카 함반토타 항구의 중국 양도 사례는 아프리카 국가들에게 경고가 되었다. 지부티, 앙골라, 잠비아 등은 GDP 대비 중국 부채 비율이 20%를 넘어서면서 재정 압박을 받고 있다. 이는 유럽이 ‘부채 함정 외교’의 대안으로 자신들의 모델을 제시할 기회를 제공한다.
하지만 중국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최근 중국은 기존의 대규모 하드 인프라 투자에서 벗어나 보건, 교육, 농업 등 소프트 인프라와 그린 에너지 분야로 투자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고 있다. 또한 부채 조건을 완화하고 현지 고용 창출을 늘리는 등 비판에 대응하고 있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아프리카 국가들의 협상력도 강해지고 있다. 나이지리아, 남아프리카, 이집트 등 주요국들은 중국과 유럽을 경쟁시키면서 더 나은 조건을 이끌어내고 있다. 이는 결과적으로 아프리카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내고 있다.
에너지 전환과 광물 자원 확보
유럽의 그린딜 정책과 에너지 전환은 아프리카의 핵심 광물 자원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고 있다. 리튬, 코발트, 희토류 등 배터리와 재생에너지 기술에 필수적인 광물들이 아프리카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콩고민주공화국은 전 세계 코발트의 70%를, 남아프리카는 백금족 금속의 80%를 생산한다.
유럽은 중국이 아프리카 광물 공급망을 독점하는 것을 막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2023년 발표된 ‘핵심원자재법(Critical Raw Materials Act)’은 2030년까지 핵심 광물의 EU 역내 생산 비중을 10%, 재활용 비중을 15%까지 늘리되, 나머지는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 국가들과의 협력을 통해 확보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나미비아와의 전략적 파트너십이 대표적인 사례다. 나미비아는 풍부한 우라늄과 희토류 매장량을 가지고 있으며, 독일과 협력해 그린수소 생산도 추진하고 있다. 독일은 나미비아에 20억 유로를 투자해 광물 채굴부터 가공, 그린수소 생산까지 전 밸류체인을 구축하고 있다.
르완다는 탄탈럼과 주석 등 IT 산업 핵심 광물의 주요 생산국이다. 벨기에와 네덜란드가 참여하는 컨소시엄이 르완다에 친환경 광물 가공 단지를 건설하고 있으며, 이는 기존의 원료 수출 중심에서 벗어나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농업과 식량 안보 협력
기후변화와 인구 증가로 아프리카의 식량 안보가 위협받고 있는 가운데, EU는 지속가능한 농업 발전을 위한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글로벌 식량 위기가 심화되면서 아프리카의 농업 생산성 향상이 더욱 중요해졌다.
네덜란드는 세계 최고 수준의 농업 기술을 바탕으로 아프리카 여러 국가와 스마트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케냐의 나이바샤에 구축된 온실 단지는 물 사용량을 90% 줄이면서도 생산성을 3배 높이는 성과를 거뒀다. 이 기술이 성공하면 사헬 지역의 사막화 문제 해결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프랑스는 서아프리카 프랑어권 국가들과 농업 가치사슬 현대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코코아, 커피, 면화 등 전통 수출 작물의 가공 능력을 현지에서 키워 부가가치를 늘리는 것이 목표다. 코트디부아르의 코코아 가공 공장은 이미 가나와 말리에도 복제되고 있다.
이탈리아는 지중해 농업 기술을 북아프리카에 전파하는 ‘지중해 농업 협력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모로코, 튀니지, 이집트에서 올리브, 감귤류, 포도 재배 기술을 개선하고, 기후변화에 적응하는 품종 개발을 지원하고 있다.
디지털 전환과 인적자원 개발
아프리카의 디지털 전환은 놀라운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모바일 머니의 글로벌 확산을 주도했고, 핀테크 스타트업들이 급성장하고 있다. 유럽은 이러한 아프리카의 디지털 혁신 잠재력에 주목하고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에스토니아는 자국의 전자정부 노하우를 아프리카에 전수하는 ‘e-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르완다, 우간다, 보츠와나 등이 이 프로그램에 참여해 디지털 행정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특히 르완다는 아프리카 최초로 전국민 디지털 신분증 시스템을 도입해 주목받고 있다.
독일은 아프리카 청년들을 위한 직업훈련 프로그램을 대폭 확대하고 있다. ‘스킬스 파트너십’ 프로그램을 통해 매년 1만 명의 아프리카 청년들에게 독일에서 직업 교육을 받을 기회를 제공하고, 이들이 귀국 후 현지에서 기술을 전파하도록 지원한다.
프랑스는 ‘캠퍼스 프랑스 아프리카’ 프로그램을 통해 아프리카 학생들의 프랑스 유학을 지원하고 있다. 특히 과학기술 분야에 집중해 미래 아프리카의 기술 리더들을 육성한다는 목표다. 현재 매년 4만 명의 아프리카 학생들이 프랑스에서 공부하고 있다.
보건 의료 협력과 팬데믹 대응
코로나19 팬데믹은 아프리카의 의료 시스템 취약성을 극명하게 드러냈다. 백신 접근성 격차와 의료 인프라 부족이 심각한 문제로 부각되면서, EU는 아프리카 보건 시스템 강화를 위한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EU는 ‘Team Europe’ 이니셔티브를 통해 아프리카에 30억 유로의 코로나 대응 지원을 제공했다. 이는 백신 구매뿐만 아니라 백신 생산 능력 구축, 의료진 훈련, 보건 시스템 강화 등 종합적인 접근을 포함한다.
남아프리카는 아프리카 최초의 mRNA 백신 허브로 선정되어 독일 바이오엔테크의 기술 지원을 받고 있다. 이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아프리카가 백신 자급자족 능력을 갖추게 되어 미래 팬데믹에 대한 대응력이 크게 향상될 것으로 기대된다.
르완다의 드론 의료배송 시스템은 유럽의 기술 지원으로 구축된 혁신적 사례다. 독일 기업과 협력해 개발된 이 시스템은 혈액, 백신, 의약품을 외딴 지역까지 신속하게 배송할 수 있어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로 확산되고 있다.
기후변화 대응과 녹색 전환
아프리카는 기후변화의 최대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글로벌 탄소중립 달성의 핵심 파트너다. EU는 아프리카와의 기후 협력을 통해 파리협정 목표 달성과 동시에 녹색 성장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다.
‘아프리카 재생에너지 이니셔티브’는 2030년까지 아프리카 전체에 300GW의 재생에너지 설비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현재 아프리카의 전력 설비 용량이 200GW인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에너지 시스템을 완전히 바꾸는 프로젝트다.
모로코의 누어(Noor) 태양열 발전 단지는 이미 성공적인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스페인과 독일 기업들이 참여해 건설된 이 발전소는 580MW 규모로 100만 명에게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 모로코는 이를 통해 2030년까지 전력의 52%를 재생에너지로 공급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에티오피아의 그랜드 르네상스 댐 프로젝트에도 유럽 기업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탈리아의 살리니 임프레길로가 건설을 담당하고 있으며, 완공되면 아프리카 최대의 수력 발전소가 된다. 하지만 이집트와 수단의 반발로 지역 갈등이 계속되고 있어 EU의 중재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다.
평화와 안보 협력
아프리카의 평화와 안보는 유럽의 직접적인 이해관계와 연결되어 있다. 사헬 지역의 테러와 내전, 소말리아의 해적 문제, 그리고 이로 인한 난민과 이주민 증가는 유럽 안보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고 있다.
EU는 아프리카평화안보기구(APSA) 강화를 위해 연간 10억 유로를 지원하고 있다. 아프리카연합(AU)의 평화유지 역량을 키우고, 지역 기구들의 갈등 해결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이 목표다. 서아프리카경제공동체(ECOWAS)의 평화유지군 훈련에 프랑스와 독일이 참여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사헬 지역에서는 ‘Sahel Alliance’를 통해 말리, 부르키나파소, 니제르, 차드, 모리타니에 대한 종합적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안보 지원뿐만 아니라 교육, 보건, 농업 개발을 통해 테러의 근본 원인을 해결하려는 접근이다.
하지만 최근 서아프리카에서 연속된 군사 쿠데타와 반서방 정서 확산으로 유럽의 영향력이 축소되고 있다. 말리, 부르키나파소, 니제르에서 친러시아 군사정부가 들어서면서 프랑스군이 철수하고 러시아 용병업체 바그너가 진출하는 상황이다.
이주와 인적 이동 관리
아프리카-유럽 간 이주 문제는 양 대륙 관계의 가장 민감한 쟁점 중 하나다. 아프리카의 인구 증가와 경제적 어려움으로 유럽행 이주 압력이 계속 증가하고 있으며, 이는 유럽 내 정치적 갈등을 야기하고 있다.
EU는 ‘합법적 이주 경로 확대’와 ‘불법 이주 단속 강화’라는 양면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아프리카 청년들에게 유럽에서 교육과 취업 기회를 제공하는 동시에, 본국으로의 송환을 늘리고 경유국의 국경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독일의 ‘숙련인력 이민법’은 아프리카 전문인력들에게 독일 취업 기회를 확대하는 정책이다. 간병, 의료, IT 분야에서 인력 부족을 겪고 있는 독일이 아프리카 인재들을 적극 유치하면서, 동시에 아프리카 청년들의 합법적 이주 통로를 제공하고 있다.
스페인과 모로코는 농업 계절 근로자 프로그램을 통해 윈-윈 협력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다. 매년 2만 명의 모로코 농민들이 스페인에서 6개월간 일하고 돌아가는 순환 이주 시스템으로, 양국 모두에게 경제적 이익을 제공한다.
문화와 교육 교류 확대
‘소프트파워’ 경쟁에서도 유럽은 중국에 맞서 아프리카와의 문화적 유대를 강화하고 있다. 언어, 교육, 문화 교류를 통해 장기적인 파트너십 기반을 구축하려는 전략이다.
프랑스는 ‘프랑코포니(Francophonie)’ 네트워크를 활용해 서아프리카와 중앙아프리카 프랑어권 국가들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반프랑스 정서가 확산되면서 프랑스어 교육 감소와 영어 교육 확대 현상이 나타나고 있어 우려를 낳고 있다.
독일은 괴테 인스티튜트를 통해 아프리카 전역에서 독일어 교육과 문화 교류를 확대하고 있다. 특히 기술 교육과 연계한 독일어 교육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있으며, 독일 대학과 아프리카 대학 간 파트너십도 늘어나고 있다.
포르투갈은 브라질과 함께 루소포니아(Lusophonia) 네트워크를 통해 앙골라, 모잠비크, 기니비사우 등 포르투갈어권 아프리카 국가들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브라질의 남남협력 경험을 아프리카에 전수하는 삼각 협력 모델이 주목받고 있다.
향후 전망과 도전 과제
EU-아프리카 신파트너십의 성공 여부는 여러 변수에 달려 있다. 우선 유럽 내 정치적 지지 기반이 중요하다. 극우 정당들의 부상과 아프리카 이주민에 대한 반감 확산은 대아프리카 지원에 대한 정치적 제약으로 작용할 수 있다.
재정 조달도 큰 과제다. 글로벌 게이트웨이의 3000억 유로는 대부분 기존 예산의 재편성과 민간 투자 유치를 통해 마련되어야 한다. 하지만 경제 침체와 다른 우선순위들로 인해 목표 달성이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과의 경쟁도 계속 치열해질 것이다. 중국은 아프리카에서 이미 확고한 입지를 구축했으며, 최근에는 소프트파워 확산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공자학원 확대, 중국어 교육 지원, 미디어 협력 등을 통해 문화적 영향력도 키우고 있다.
아프리카 내부의 정치적 불안정도 변수다. 쿠데타, 내전, 테러 등이 계속되면서 장기적인 개발 프로젝트 추진이 어려워지고 있다. 특히 사헬 지역의 안보 악화는 유럽의 아프리카 전략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기후변화의 가속화도 도전 요인이다. 가뭄, 홍수, 사막화 등 기후변화의 영향이 심화되면서 아프리카의 개발 노력이 상쇄될 위험이 있다. 이는 결국 더 많은 기후 난민을 발생시켜 유럽의 이주 압력을 가중시킬 수 있다.
하지만 기회 요인도 많다. 아프리카대륙자유무역지대(AfCFTA)의 본격 가동으로 역내 교역이 활성화되면서 인프라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또한 아프리카의 젊은 인구 구조와 급속한 도시화는 거대한 시장 잠재력을 의미한다.
디지털 기술의 확산도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다. 아프리카는 고정 인프라를 건너뛰고 바로 모바일과 위성 기술로 도약하는 ‘리프프로깅(leapfrogging)’ 현상을 보이고 있어, 전통적인 개발 모델과는 다른 혁신적 접근이 가능하다.
결론: 새로운 파트너십의 가능성과 한계
EU-아프리카 신파트너십은 전통적인 원조 중심의 관계를 넘어 상호 이익에 기반한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발전할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특히 그린수소, 재생에너지, 디지털 기술 등 미래 산업 분야에서의 협력은 양 대륙의 지속가능한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
하지만 성공을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 유럽은 진정한 파트너십 정신을 보여야 한다. 아프리카를 단순한 자원 공급지나 시장으로 보는 관점을 버리고, 아프리카의 주도성과 우선순위를 존중해야 한다.
둘째, 장기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중국의 일대일로가 10년 이상의 긴 호흡으로 추진되는 것처럼, 유럽도 정치적 변화에 흔들리지 않는 일관된 정책을 유지해야 한다.
셋째, 아프리카 내부의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 54개 국가로 구성된 아프리카는 경제 발전 수준, 정치 체제, 문화적 배경이 모두 다르다. 획일적인 접근보다는 각국의 특성에 맞는 맞춤형 협력이 필요하다.
넷째, 민간 부문의 적극적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 공적 자금만으로는 아프리카의 거대한 개발 수요를 충족할 수 없다. 유럽 기업들이 아프리카를 매력적인 투자처로 인식하도록 리스크 완화와 수익성 보장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글로벌 거버넌스 개혁에도 함께 나서야 한다. UN 안보리 상임이사국 확대, 국제금융기구 개혁, 무역 규칙 개선 등을 통해 아프리카의 글로벌 발언권을 강화하는 것이 진정한 파트너십의 증거가 될 것이다.
21세기 중반, 아프리카는 25억 명의 인구를 가진 거대한 대륙이 될 것이다. 이들이 빈곤과 절망 속에서 유럽으로 몰려오는 ‘위협’이 될지, 아니면 함께 번영하는 ‘기회’가 될지는 지금 우리가 만들어가는 파트너십의 질에 달려 있다. EU-아프리카 신파트너십은 그 중요한 시험대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