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가 들어서면서 동네 상권이 몰락하는 모습, 몇 개 대기업이 시장을 독점하여 소비자가 선택권을 잃는 상황, 대기업이 협력업체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조건을 강요하는 현실. 이런 문제들은 모두 시장의 자유경쟁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나타나는 현상들이다. 자유시장경제는 경쟁을 통해 효율성을 달성하고 소비자 후생을 극대화한다는 전제 위에 서 있지만, 현실에서는 시장실패와 경쟁제한 행위들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경제법과 공정거래법은 바로 이런 시장의 모순을 교정하고 공정한 경쟁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탄생한 법 영역이다.
경제법의 개념과 발전 과정
경제법은 국가가 경제활동에 개입하여 시장질서를 유지하고 경제정책을 실현하기 위한 법 영역이다. 전통적으로 사법은 개인 간의 자유로운 거래를 보장하고, 공법은 국가의 권력행사를 규율한다고 이해되어 왔다. 하지만 20세기 들어 국가의 경제개입이 본격화되면서 사법과 공법의 중간 영역에 해당하는 경제법이 독자적 법 영역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경제법의 발전은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변화와 궤를 같이 한다. 19세기 자유방임주의 시대에는 시장의 자율적 조정기능을 신뢰했지만, 1929년 대공황을 계기로 시장실패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국가개입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특히 독점과 과점으로 인한 경쟁제한, 경제력 집중으로 인한 불공정 거래 등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인식되면서 이를 규제하는 법제도가 발달하게 되었다.
우리나라 경제법의 핵심은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즉 공정거래법이다. 1980년에 제정된 이 법은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금지, 기업결합 규제, 불공정거래행위 금지, 부당한 공동행위 금지 등을 통해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을 촉진하고 경제력 집중을 방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경제법은 규제의 성격에 따라 크게 경쟁법과 규제법으로 구분할 수 있다. 경쟁법은 시장에서의 자유경쟁을 보장하고 경쟁제한행위를 금지하는 법으로, 공정거래법이 대표적이다. 규제법은 특정 산업이나 경제활동에 대해 직접적인 규제를 가하는 법으로, 금융업, 통신업, 전력업 등에 대한 개별 규제법들이 이에 해당한다.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규제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규제는 공정거래법의 핵심 영역 중 하나다. 시장지배적 지위란 해당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에 있거나 경쟁사업자의 사업활동을 실질적으로 제약할 수 있을 정도의 지위를 말한다. 단순히 시장점유율만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경쟁사업자의 존재와 규모, 진입장벽의 정도, 구매자의 협상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
시장지배적 지위 자체는 위법하지 않다. 우수한 기술이나 효율적인 경영을 통해 시장에서 지배적 지위를 차지하는 것은 정당한 경쟁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러한 지위를 남용하여 경쟁을 제한하거나 소비자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다.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행위의 유형에는 가격남용, 거래거절, 배타적 거래, 끼워팔기, 약탈적 가격설정 등이 있다.
가격남용은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정당한 이유 없이 상품이나 용역의 가격을 부당하게 결정·유지·변경하는 행위다. 과도하게 높은 가격을 책정하여 소비자에게 피해를 주거나, 반대로 지나치게 낮은 가격으로 경쟁사업자를 시장에서 퇴출시키려는 행위가 여기에 해당한다. 다만 시장경제에서 가격결정은 기업의 기본적 자유에 속하므로, 남용행위로 인정되려면 매우 엄격한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거래거절은 정당한 이유 없이 다른 사업자와의 거래를 거부하는 행위다. 특히 필수설비(essential facility)를 보유한 사업자가 경쟁사업자에게 그 이용을 거부하는 경우 문제가 된다. 필수설비란 경쟁사업자가 사업활동을 하기 위해 반드시 이용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복제하기 어려운 설비를 말한다. 통신망, 전력망, 철도망 등이 대표적인 예다.
끼워팔기는 특정 상품을 구매하는 조건으로 다른 상품의 구매를 강요하는 행위다. 소비자의 선택권을 제약하고 경쟁사업자의 시장진입을 봉쇄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다만 기술적 연관성이 있거나 경제적 합리성이 인정되는 경우에는 정당화될 수 있다.
기업결합 규제와 경제력 집중 방지
기업결합 규제는 기업 간 결합을 통한 경제력 집중을 방지하고 경쟁구조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다. 기업결합에는 합병, 영업양수, 주식취득 등 다양한 형태가 있으며,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결합은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하거나 승인을 받아야 한다.
기업결합 심사에서는 해당 결합이 경쟁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분석한다. 관련시장에서의 시장점유율과 집중도 변화, 경쟁사업자의 존재와 경쟁력, 진입장벽의 정도, 구매력의 존재 등을 고려하여 경쟁제한성을 판단한다. 또한 효율성 증대, 경영합리화, 기술혁신 등 경쟁촉진 효과도 함께 고려하는 종합적 접근법을 취한다.
수직결합은 생산단계가 다른 기업 간의 결합으로, 원재료 공급업체와 제조업체, 제조업체와 유통업체 간의 결합이 대표적이다. 수직결합은 거래비용 절감과 효율성 향상 효과가 있지만, 동시에 시장봉쇄나 경쟁사업자 배제 효과도 가져올 수 있다. 따라서 각각의 구체적 상황에 따라 경쟁제한성을 개별적으로 판단한다.
수평결합은 동일한 시장에서 경쟁관계에 있는 기업 간의 결합이다. 수평결합은 직접적으로 경쟁사업자의 수를 줄이고 시장집중도를 높이므로 경쟁제한 효과가 명확하다. 따라서 결합 후 시장점유율이나 시장집중도가 일정 수준을 넘으면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혼합결합은 서로 관련 없는 사업영역의 기업 간 결합으로, 직접적인 경쟁제한 효과는 작지만 전체적인 경제력 집중을 가져올 수 있다. 우리나라는 대규모기업집단에 대한 별도의 규제를 두어 순환출자, 상호출자 등을 금지하고 있다.
카르텔과 부당한 공동행위 금지
카르텔은 경쟁사업자들이 서로 경쟁하지 않기로 합의하는 행위로, 경쟁법에서 가장 엄격하게 금지하는 행위 중 하나다. 가격담합, 시장분할, 생산량 제한, 입찰담합 등이 대표적인 카르텔 유형이다. 카르텔은 가격상승과 품질저하를 가져와 소비자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고, 시장의 효율적 자원배분 기능을 왜곡시킨다.
가격담합은 경쟁사업자들이 상품이나 용역의 가격을 공동으로 결정하거나 유지하는 행위다. 직접적인 가격 합의뿐만 아니라 가격 인상 시기를 조율하거나, 할인율을 공동으로 결정하는 것도 가격담합에 해당한다. 가격 관련 정보를 교환하는 것도 상황에 따라 가격담합의 수단이 될 수 있다.
시장분할은 경쟁사업자들이 거래지역이나 거래상대방을 나누어 각자의 영역에서만 사업을 하기로 합의하는 행위다. 지역분할, 고객분할, 제품분할 등의 형태가 있다. 시장분할은 각 영역에서 독점적 지위를 보장해주므로 가격담합과 유사한 효과를 가져온다.
생산량 제한은 경쟁사업자들이 상품의 생산량이나 공급량을 제한하기로 합의하는 행위다. 생산량을 인위적으로 줄여서 공급부족을 유발하고 가격상승을 도모하는 것이 목적이다. 설비투자를 제한하거나 생산능력 확장을 제한하는 것도 여기에 포함된다.
입찰담합은 경쟁입찰에서 사업자들이 사전에 낙찰자를 정하거나 입찰가격을 조정하는 행위다. 공공조달 시장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며, 정부 예산의 낭비와 공정한 경쟁질서의 파괴를 가져온다. 최근에는 전자입찰시스템의 도입과 수사기관의 강력한 단속으로 감소 추세에 있다.
불공정거래행위의 유형과 규제
불공정거래행위는 공정한 거래질서를 해치는 행위로서 구체적인 경쟁제한 효과가 없더라도 그 자체로 금지되는 행위다. 불공정거래행위는 사업자의 활동을 부당하게 방해하는 행위, 거래상 지위를 부당하게 이용하는 행위, 경쟁자를 배제하는 행위, 거래질서를 혼란시키는 행위 등으로 분류된다.
거래거절과 차별적 취급은 정당한 이유 없이 특정 사업자와의 거래를 거부하거나 불리하게 대우하는 행위다. 특히 대기업이 중소기업과의 거래에서 우월적 지위를 이용하여 일방적으로 불리한 조건을 강요하는 경우가 문제된다. 납품단가 인하 강요, 판매촉진비 부담 전가, 부당한 반품이나 교환 요구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경쟁사업자에 대한 방해행위도 중요한 불공정거래행위다. 경쟁사업자의 고객을 빼앗기 위해 부당한 수단을 사용하거나, 경쟁사업자의 사업활동을 직접적으로 방해하는 행위가 금지된다. 허위사실 유포, 비방광고, 영업비밀 침해 등이 대표적인 예다.
부당염매는 정당한 이유 없이 원가 이하로 상품을 판매하여 경쟁사업자를 시장에서 배제하려는 행위다. 일시적인 가격인하는 정상적인 경쟁행위이지만,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원가 이하 판매는 불공정거래행위로 규제된다. 특히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시장에서 몰아내기 위해 단기간 손실을 감수하면서 염매를 하는 경우가 문제된다.
끼워팔기와 묶어팔기는 특정 상품의 구매를 조건으로 다른 상품의 구매를 강요하거나, 여러 상품을 하나의 패키지로만 판매하는 행위다. 소비자의 선택권을 제약하고 관련 시장에서의 경쟁을 제한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하도급거래와 대·중소기업 관계
우리나라 경제구조상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하도급거래가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하지만 대기업의 우월적 지위로 인해 불공정한 거래가 빈번하게 발생하므로, 이를 규제하기 위한 별도의 법률인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어 있다.
하도급법은 원사업자가 하도급사업자에게 일정한 행위를 위탁하는 거래관계를 규율한다. 제조위탁, 수리위탁, 건설위탁, 용역위탁 등이 하도급거래에 해당한다. 하도급법은 서면발급 의무, 대금지급 기한 준수, 부당한 하도급대금 결정 금지, 물품구매 강요 금지 등의 의무를 원사업자에게 부과한다.
하도급대금은 하도급계약 체결일부터 60일 이내에 지급해야 하며, 현금비율도 법정 기준 이상을 유지해야 한다. 원사업자가 일방적으로 하도급대금을 삭감하거나, 물품이나 용역 구매를 강요하거나, 기술자료를 요구하는 행위 등은 금지된다. 이를 위반할 경우 과징금이나 과태료가 부과된다.
최근에는 원사업자의 협력업체에 대한 기술탈취 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우수한 기술을 빼앗아 직접 생산하거나 다른 업체에 넘겨주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다. 이에 대응하여 기술자료 요구행위 제한, 기술자료 임치제도 등이 도입되었다.
동반성장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생협력을 통해 함께 발전한다는 개념으로, 최근 경제정책의 핵심 키워드가 되고 있다. 동반성장지수 평가, 상생결제시스템,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 등이 대표적인 동반성장 정책이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역할과 집행
공정거래위원회는 공정거래법과 하도급법 등을 집행하는 준사법기관이다. 위원장 1명과 부위원장 2명을 포함하여 총 9명의 위원으로 구성되며, 각 위원은 경제, 법률 등 관련 분야의 전문가 중에서 임명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독립성을 보장받으면서 전문적이고 일관된 경쟁정책을 수행한다.
공정거래위원회의 권한에는 조사권, 처분권, 분쟁조정권 등이 있다. 조사권은 위반 혐의가 있는 사업자에 대해 자료제출을 명하거나 현장조사를 실시하는 권한이다. 최근에는 새벽 기습조사(dawn raid)를 통해 증거인멸을 방지하고 조사의 실효성을 높이고 있다.
처분권에는 시정명령, 과징금, 고발 등이 있다. 시정명령은 위반행위의 중단, 시정조치 이행 등을 명하는 것이고, 과징금은 위반행위로 얻은 이익을 환수하고 제재하는 경제적 불이익이다. 중대한 위반의 경우 검찰에 고발하여 형사처벌을 받도록 한다.
과징금 제도는 행정적 제재로서 신속하고 효율적인 집행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과징금은 위반행위의 정도, 매출액 규모, 위반기간 등을 고려하여 부과되며, 매출액의 일정 비율로 상한이 정해져 있다. 최근에는 과징금 수준을 현실화하여 위반행위에 대한 억제효과를 높이고 있다.
집단소송제와 손해배상제도도 중요한 집행수단이다. 담합 등으로 피해를 본 소비자나 사업자는 민사소송을 통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처분이 확정되면 법원에서 위반사실이 인정되므로 피해자의 입증부담이 크게 줄어든다.
결론
경제법과 공정거래법은 자유시장경제의 기반이 되는 공정한 경쟁질서를 유지하고, 시장의 힘의 불균형을 교정하는 핵심적 역할을 담당한다.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금지, 기업결합 규제, 카르텔 금지, 불공정거래행위 규제 등을 통해 경쟁을 보호하고 소비자 후생을 증진시킨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대기업 중심의 경제구조를 가진 나라에서는 경제력 집중 방지와 중소기업 보호가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경쟁법의 적용은 단순하지 않다. 경쟁제한 효과와 효율성 증대 효과를 균형있게 고려해야 하고, 급변하는 경제환경과 새로운 사업모델에 대응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디지털 플랫폼의 등장, 빅데이터와 AI의 활용, 글로벌 경쟁의 심화 등은 전통적인 경쟁법 이론에 새로운 도전을 제기한다.
공정거래법의 궁극적 목표는 시장경제의 효율성과 공정성을 동시에 실현하는 것이다. 자유로운 경쟁을 통해 혁신과 효율성을 추구하면서도, 불공정한 수단에 의한 경쟁제한이나 경제력 남용을 방지해야 한다. 이는 시장참여자들의 자율적 준수문화 조성과 정부의 효과적인 집행이 조화를 이룰 때 달성될 수 있다. 경제법의 발전은 우리 경제의 건전한 발전과 직결되는 중요한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