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는 국민의 대표기관이자 국가권력 분립체제에서 입법부로서의 핵심적 역할을 담당한다. 단순히 법률을 만드는 기관을 넘어서 행정부를 견제하고 감시하며, 국민의 다양한 의견을 국정에 반영하는 민주주의의 핵심 장치다. 우리 헌법상 국회는 단원제로 구성되어 있으며, 입법권뿐만 아니라 예산 심의권, 국정감사·조사권, 탄핵소추권 등 광범위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 특히 대통령제 하에서 국회의 견제·감시 기능은 권력분립의 균형을 유지하는 핵심적 요소로 작용한다.
국회의 헌법적 지위와 구성 원리
헌법 제40조는 “입법권은 국회에 속한다”고 규정하여 국회가 국가의 입법기관임을 명확히 한다. 여기서 입법권은 단순히 법률을 제정하는 권한만이 아니라 법률을 개정하고 폐지하는 권한까지 포함하는 포괄적 개념이다. 또한 국회는 헌법 제41조에 따라 “국민의 보통·평등·직접·비밀선거에 의하여 선출된 국회의원으로 구성된다”고 규정되어 있어, 국민 주권 원리를 구현하는 대표기관임을 강조하고 있다.
국회의원의 임기는 4년이며, 국회의원 수는 헌법 제41조 제2항에 따라 법률로 정하되 200명 이상으로 규정되어 있다. 현재 공직선거법에 따라 300명의 국회의원이 선출되고 있으며, 이 중 253명은 지역구 의원, 47명은 비례대표 의원으로 구성된다. 이러한 구성은 지역 대표성과 정당 대표성을 동시에 확보하려는 의도를 반영한다.
국회의 단원제 채택은 우리 헌정사의 특징 중 하나다. 미국의 상하 양원제나 독일의 연방상원제와 달리, 우리는 하나의 원으로 구성된 국회를 두고 있다. 이는 단일국가 체제 하에서 의사결정의 신속성과 효율성을 추구한 결과로 볼 수 있지만, 동시에 견제와 균형의 관점에서는 아쉬운 점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국회의 조직과 운영 체계
국회는 의장 1인과 부의장 2인을 두며, 이들은 국회의원 중에서 선출된다. 의장은 국회를 대표하고 의사를 정리하며 의사당의 질서를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부의장은 의장을 보좌하고 의장이 부득이한 사유로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 그 직무를 대행한다.
국회의 실질적인 업무는 상임위원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현재 17개의 상임위원회와 예산결산특별위원회가 설치되어 있으며, 각 상임위원회는 특정 분야의 법안 심사와 국정감사를 담당한다. 상임위원회 제도는 전문성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것으로, 복잡하고 전문적인 현대 사회의 입법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다.
국회의 의사는 공개가 원칙이며, 헌법 제50조 제1항은 “국회의 회의는 공개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출석의원 과반수의 찬성이 있거나 의장이 국가의 안전보장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공개하지 아니할 수 있다. 국회 공개의 원칙은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고 국정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다.
입법절차와 법률안 심의 과정
국회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인 입법은 엄격한 절차를 거쳐 이루어진다. 법률안 발의는 정부 또는 국회의원 10인 이상이 할 수 있으며, 예산안과 조세법안은 정부만이 발의할 수 있다. 이는 재정에 관한 사항의 전문성과 책임성을 고려한 것이다.
법률안이 발의되면 먼저 소관 상임위원회에서 심사를 받는다. 상임위원회에서는 법률안의 내용을 자세히 검토하고 필요에 따라 수정안을 제시한다. 상임위원회를 통과한 법률안은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체계·자구 심사를 받은 후 본회의에 상정된다.
본회의에서는 제안설명, 대표발언, 축조심의, 표결의 순서로 진행된다. 법률안이 가결되려면 재적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의원 과반수의 찬성이 필요하다. 다만 헌법 개정안이나 탄핵소추안 등 특별한 사안에 대해서는 더 엄격한 요건이 적용된다.
국회에서 의결된 법률안은 정부에 이송되어 대통령이 15일 이내에 공포해야 한다. 대통령이 이의가 있을 때는 재의를 요구할 수 있으며, 이 경우 재적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재의결되면 법률로 확정된다. 이러한 재의요구권과 재의결 제도는 대통령제 하에서 입법부와 행정부 간의 견제와 균형을 위한 중요한 장치다.
예산 심의권과 재정 통제 기능
국회의 예산 심의권은 민주주의의 핵심 원리인 ‘대표 없이 과세 없다’는 원칙을 구현하는 핵심 권한이다. 헌법 제54조는 “국회는 국가의 예산안을 심의·확정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제55조는 “한 회계연도를 넘어 계속하여 지출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정부는 연한을 정하여 계속비로서 국회의 의결을 얻어야 한다”고 하여 다년도 지출에 대한 국회 통제도 명시하고 있다.
정부는 매년 회계연도 개시 90일 전까지 다음 연도의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해야 한다. 국회는 예산결산특별위원회를 중심으로 예산안을 심사하며, 각 상임위원회에서도 소관 부처의 예산을 세부적으로 검토한다. 예산안 심의 과정에서 국회는 예산을 증액하거나 새로운 비목을 설치할 수 있지만, 정부의 동의 없이는 할 수 없다는 제약이 있다.
예산안은 회계연도 개시 전까지 의결되어야 하지만, 부득이한 경우 정부는 국회에서 예산안이 의결될 때까지 직전 연도 예산에 준하여 집행할 수 있다. 이를 준예산 제도라고 하며, 예산안 의결 지연으로 인한 국가 업무 공백을 방지하기 위한 장치다.
결산 심사도 국회의 중요한 재정 통제 기능이다. 정부는 매년 세입·세출 결산을 다음 연도 5월 31일까지 국회에 제출해야 하며, 국회는 결산을 심사하여 승인 또는 불승인을 결정한다. 결산 심사를 통해 국회는 정부의 예산 집행이 적절했는지 사후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
국정감사·조사권의 의미와 한계
국회의 국정감사·조사권은 행정부에 대한 견제·감시 기능의 핵심이다. 헌법 제61조는 “국회는 국정을 감사하거나 특정한 국정사안에 대하여 조사할 수 있으며, 이에 필요한 서류의 제출 또는 증언이나 의견의 진술을 요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정감사는 매년 정기적으로 실시되는 종합적 감사로, 국정 전반에 대한 점검 기능을 한다. 각 상임위원회는 소관 분야의 행정기관과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감사를 실시하며, 필요한 서류 제출과 증인 출석을 요구할 수 있다. 국정감사를 통해 행정부의 정책 집행 과정에서 나타나는 문제점을 점검하고 개선 방안을 제시할 수 있다.
국정조사는 특정한 국정사안에 대해 실시하는 집중적 조사로, 재적의원 4분의 1 이상의 요구가 있으면 본회의 의결을 거쳐 실시할 수 있다. 국정조사는 보통 중대한 국정 현안이나 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에 대해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을 묻기 위해 실시된다.
하지만 국정감사·조사권에는 한계도 있다. 먼저 사법권의 독립 원칙에 따라 법원의 재판에 관한 사항은 감사·조사 대상에서 제외된다. 또한 수사 중인 사건에 대해서는 수사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에서만 감사·조사가 가능하다. 개인의 사생활 침해나 영업비밀 누설 등의 문제도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할 영역이다.
국회의 기타 중요 권한들
국회는 입법권과 예산권, 국정감사·조사권 외에도 여러 중요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 탄핵소추권은 그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견제 수단이다. 대통령, 국무총리, 국무위원, 행정각부의 장, 헌법재판소 재판관, 법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 감사원장, 감사위원 등이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에는 국회가 탄핵소추를 할 수 있다.
동의권도 국회의 중요한 권한이다. 국무총리 임명, 대법원장·헌법재판소장·감사원장 임명, 헌법재판소 재판관 중 3인 지명 등에 대해 국회의 동의가 필요하다. 이는 주요 공직자의 임명에 대한 입법부의 견제 장치로서 권력분립 원리를 구현하는 것이다.
조약의 체결·비준에 대한 동의권도 있다. 상호원조 또는 안전보장에 관한 조약, 중요한 국제조직에 관한 조약, 우호통상항해조약, 주권의 제약에 관한 조약, 강화조약, 국가나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조약 또는 입법사항에 관한 조약의 체결·비준에는 국회의 동의가 필요하다.
국회 운영의 현실과 문제점
국회의 헌법적 권한이 아무리 강력해도 실제 운영에서는 여러 한계와 문제점이 나타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여야 간 정치적 대립으로 인한 국정 공백이다. 필리버스터나 의사진행 발언 등을 통한 무제한 토론, 물리적 충돌, 회의장 점거 등은 국회의 권위를 실추시키고 국민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요인이 된다.
상임위원회 중심의 전문화된 심의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정파적 이해관계에 따른 심의가 우선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예산 심의 과정에서 지역구 이익을 위한 예산 증액 요구나 정치적 고려에 의한 예산 삭감 등이 반복되고 있다.
국정감사의 경우에도 진정한 견제·감시 기능보다는 정치적 공방의 장으로 변질되는 경우가 많다. 언론의 관심을 끌기 위한 이벤트성 질의나 개인 비리 추궁에 치중하여 정책 대안 제시나 제도 개선 방안 모색은 상대적으로 소홀히 되는 문제가 있다.
국회 기능 강화를 위한 개선 방안
국회가 본연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여러 개선이 필요하다. 먼저 국회의원의 전문성 제고가 중요하다. 복잡하고 전문적인 현대 사회의 입법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의원들의 정책 전문성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국회 차원에서 정책 연구 기능을 강화하고, 의원들의 전문성 개발을 지원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국정감사의 실효성 제고도 중요한 과제다. 현재의 국정감사는 일회성 지적에 그치는 경우가 많아 실질적인 개선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감사 결과에 대한 체계적인 후속조치와 이행 점검 시스템을 마련하여 국정감사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
예산 심의의 전문성도 강화되어야 한다. 현재의 예산 심의는 각 부처별 칸막이 심의에 머물러 있어 예산의 우선순위나 효율성에 대한 종합적 검토가 부족하다. 성과 중심의 예산 심의 시스템을 도입하고, 중장기적 관점에서 재정 정책을 검토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비교헌법적 관점에서 본 우리 국회의 특징
다른 나라와 비교해보면 우리 국회의 몇 가지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먼저 단원제 채택은 상당히 독특한 선택이다. 대부분의 연방국가는 물론이고 단일국가 중에서도 상당수가 양원제를 채택하고 있는데, 우리는 의사결정의 효율성을 위해 단원제를 선택했다.
국정감사제도 역시 우리만의 독특한 제도다. 미국의 경우 의회의 감시 기능은 주로 청문회를 통해 이루어지며, 독일은 연방하원의 조사위원회 제도가 있지만 우리처럼 매년 정기적으로 전면적인 국정감사를 실시하는 경우는 드물다.
대통령제 하에서 국회의 권한 범위도 특징적이다. 미국 의회와 비교하면 우리 국회는 대통령의 주요 인사에 대한 동의권이 상대적으로 제한적이다. 반면 탄핵소추권의 대상은 더 광범위하여 행정부뿐만 아니라 사법부와 헌법기관까지 포함하고 있다.
결론
국회는 국민 주권 원리를 구현하는 대표기관이자 권력분립 체제에서 입법부로서의 핵심적 역할을 담당한다. 입법권을 비롯하여 예산 심의권, 국정감사·조사권, 탄핵소추권 등 광범위한 권한을 통해 행정부를 견제하고 감시하며, 국민의 의사를 국정에 반영하는 민주주의의 핵심 장치로 기능한다. 하지만 정치적 대립으로 인한 국정 공백, 전문성 부족, 정파적 이해관계 우선 등의 문제점도 여전히 존재한다. 국회가 헌법이 부여한 권한을 제대로 행사하기 위해서는 의원들의 전문성 제고, 국정감사의 실효성 강화, 예산 심의의 전문성 향상 등 지속적인 개선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복잡하고 전문적인 현대 사회에서 국회가 제대로 된 견제·감시 기능을 수행하려면 단순한 정치적 공방을 넘어 정책 대안을 제시하고 제도 개선을 이끌어내는 건설적 역할로 발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