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학개론 21. 범죄 체계론 – 미수·예비·공범과 죄의 성립 단계별 분석

범죄라는 개념은 단순히 ‘나쁜 행위’라는 일반적 인식을 넘어, 법학적으로 매우 정교한 체계를 갖추고 있다. 한 사람이 칼을 들고 다른 사람을 향해 달려가다 주변 사람들의 제지로 실제 상해를 입히지 못했다면, 이는 어떻게 처벌되어야 할까? 또한 여러 명이 함께 범죄를 계획하고 실행했다면 각자의 역할에 따라 책임은 어떻게 달라질까? 범죄 체계론은 바로 이런 복잡한 상황들을 체계적으로 분석하는 법학의 핵심 영역이다.

범죄 성립의 기본 구조

범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단계별로 특정한 요건들이 충족되어야 한다. 형법학자들은 이를 구성요건해당성, 위법성, 책임이라는 삼단계 구조로 설명한다. 구성요건해당성은 법조문에 규정된 범죄의 객관적·주관적 요소가 모두 충족되었는지를 판단하는 단계다. 예를 들어 절도죄의 경우 ‘타인의 재물을 절취’라는 객관적 요소와 ‘절취할 의사’라는 주관적 요소가 모두 존재해야 한다.

위법성은 그 행위가 전체 법질서에 반하는지를 판단하는 단계다.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행위라도 정당방위나 긴급피난 등의 위법성 조각사유가 있다면 범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책임은 행위자에게 그 행위에 대한 비난가능성이 있는지를 판단한다. 정신질환으로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었다면 책임이 조각될 수 있다.

미수범의 이론과 실무적 적용

범죄는 항상 완성된 형태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범행을 시도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결과가 발생하지 않은 경우가 있는데, 이를 미수범이라고 한다. 미수범은 크게 실행의 착수가 있었는지, 그리고 범행이 완성되지 못한 이유가 무엇인지에 따라 분류된다.

실행의 착수란 구성요건 실현에 직접 연결되는 행위를 시작하는 것을 의미한다. 단순히 범죄를 계획하거나 준비하는 단계를 넘어서 실제로 법익에 위험을 발생시킬 수 있는 행위에 들어가야 한다. 강도죄의 경우 흉기를 준비하고 현장에 나타나는 것만으로는 실행의 착수가 인정되지 않으며, 실제로 피해자를 향해 폭행이나 협박을 가하기 시작해야 착수가 인정된다.

실행에 착수한 후에도 범행이 완성되지 못한 이유에 따라 장애미수와 중지미수로 구분된다. 장애미수는 범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외부적 장애로 인해 범행이 완성되지 못한 경우다. 반면 중지미수는 범인이 자발적으로 범행을 중단하거나 결과 발생을 방지한 경우로, 이때는 형을 감경하거나 면제할 수 있다. 이는 범죄자의 자발적 개선 의지를 인정하여 형사정책적 배려를 한 것이다.

예비·음모죄의 법적 의미

모든 범죄가 실행에 착수되기 전에도 처벌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중요한 범죄의 경우 예비나 음모 단계에서도 처벌할 수 있도록 별도의 조문을 두고 있다. 내란죄, 외환죄, 방화죄, 살인죄 등이 대표적인 예다. 예비란 범죄 실행을 위한 준비행위를, 음모란 두 명 이상이 특정 범죄를 실행하기로 합의하는 것을 말한다.

예비·음모죄의 처벌 근거는 중대한 법익 침해의 위험성과 행위자의 의사의 위험성에 있다. 특히 살인이나 방화 같은 범죄는 일단 실행에 착수되면 되돌리기 어렵고 피해가 극심하기 때문에 사전에 차단할 필요성이 크다. 다만 예비·음모죄가 성립하려면 단순한 의사나 계획을 넘어서 외부적으로 표출된 구체적인 준비행위나 합의가 있어야 한다.

실무에서는 예비·음모죄의 인정 범위를 엄격하게 제한하는 경향이 있다. 단순히 범죄를 계획하거나 논의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실제로 범행 도구를 준비하거나 현장을 답사하는 등의 구체적 행위가 필요하다. 또한 음모의 경우 범죄 실행에 대한 진지하고 구체적인 합의가 있어야 하며, 막연한 이야기나 농담 수준으로는 인정되지 않는다.

공범의 유형과 책임 구조

현실의 범죄는 혼자서 저지르는 경우보다 여러 명이 관여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 각 관여자의 역할과 기여도에 따라 책임을 차등화하는 것이 공범 이론의 핵심이다. 형법은 공범을 공동정범, 교사범, 방조범으로 구분하여 규정하고 있다.

공동정범은 두 명 이상이 공동으로 범죄를 실행하는 경우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공동의 의사와 공동의 실행이다. 공동의 의사란 함께 범죄를 저지르겠다는 의사의 연락을 말하며, 반드시 명시적 합의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묵시적으로도 의사의 연락이 인정될 수 있다. 공동의 실행은 각자가 역할을 분담하여 범죄 실현에 기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공동정범에서는 일부실행전체책임의 원칙이 적용된다. 즉, 공동정범자 중 한 명이 실행한 행위에 대해 다른 공동정범자들도 동일한 책임을 진다. 예를 들어 강도 과정에서 한 명이 폭행을 가하고 다른 한 명이 재물을 탈취했다면, 폭행을 직접 가하지 않은 사람도 강도죄 전체에 대해 책임을 진다.

교사범은 타인으로 하여금 범죄를 실행하도록 부추기거나 결의를 강화시키는 경우다. 교사는 정범의 범죄 결의를 발생시키거나 기존 결의를 강화하는 것으로, 단순히 범죄 방법을 알려주거나 도움을 주는 것과는 구별된다. 교사범이 성립하려면 교사행위와 정범의 실행행위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어야 하고, 정범이 실제로 범죄를 실행하거나 적어도 실행에 착수해야 한다.

방조범은 정범의 범죄 실행을 용이하게 하는 일체의 행위를 말한다. 방조행위는 물리적 도움뿐만 아니라 정신적 지원도 포함한다. 범행 도구를 제공하거나, 망을 보거나, 격려하는 것 등이 모두 방조행위가 될 수 있다. 다만 방조범이 성립하려면 방조행위가 정범의 범죄 실행에 실제로 도움이 되어야 하고, 방조의 고의가 있어야 한다.

공범의 특수 문제들

공범 이론에서는 여러 복잡한 사안들이 발생한다. 간접정범은 타인을 도구로 이용하여 범죄를 실행하는 경우로, 형식적으로는 타인이 실행행위를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배후자가 정범이 된다. 어린아이나 정신질환자를 이용하거나, 상대방을 속여서 범죄를 실행하게 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승계적 공동정범은 범죄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새로운 사람이 가담하는 경우의 책임 범위를 다룬다. 원칙적으로는 가담 이후의 행위에 대해서만 책임을 지지만, 가담 이전의 행위에 대해서도 승인하고 자신의 행위로 받아들였다면 전체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있다.

공범의 중지는 각각 다른 요건과 효과를 갖는다. 공동정범의 경우 자신의 행위를 중지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다른 공동정범자들의 범행도 중지시켜야 한다. 교사범과 방조범은 자신의 기여 부분을 철회하거나 상쇄하는 행위를 해야 중지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죄수론과 경합범

한 사람이 여러 개의 범죄를 저지르거나, 하나의 행위가 여러 개의 죄명에 해당하는 경우의 처리 방법을 다루는 것이 죄수론이다. 이는 실무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데, 죄수 판단에 따라 처벌의 정도가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일죄는 구성요건적으로나 실질적으로 하나의 범죄만 성립하는 경우다. 하나의 행위가 하나의 죄명에 해당하는 가장 단순한 형태다. 포괄일죄는 여러 개의 행위가 있지만 전체적으로 하나의 범죄로 평가되는 경우로, 동일한 피해자에 대한 계속적 절도나 상습범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경합범은 하나의 행위가 여러 죄명에 해당하거나(상상적 경합), 여러 개의 행위로 여러 범죄가 성립하는 경우(실체적 경합)를 말한다. 상상적 경합의 경우 가장 중한 죄로 처벌하고, 실체적 경합의 경우 각 죄의 형을 합산하되 최고형의 1.5배를 초과할 수 없다.

결론

범죄 체계론은 형법의 추상적 원리들을 구체적 사건에 적용하는 정교한 틀을 제공한다. 미수범 이론을 통해 완성되지 않은 범죄의 처벌 근거와 한계를 설정하고, 예비·음모죄로 사회 안전을 위한 사전 예방의 필요성과 개인의 내심의 자유 사이의 균형점을 찾는다. 공범 이론은 현대 사회의 복잡한 범죄 현실에 대응하여 각자의 역할과 기여도에 따른 차등적 책임을 구현한다.

이러한 체계적 분석은 단순히 학문적 의미만 갖는 것이 아니라, 실제 형사사건에서 공정하고 정확한 판단의 기준이 된다. 범죄의 성립 단계를 세밀하게 구분하고, 각 관여자의 책임을 정확히 평가하는 것은 형사정의 실현의 핵심이다. 또한 이는 예방일반과 특별예방이라는 형벌의 목적을 효과적으로 달성하는 데도 기여한다. 범죄 체계론의 정확한 이해는 법학도뿐만 아니라 법 실무에 종사하는 모든 이들에게 필수적인 기초 소양이라 할 수 있다.